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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오남택(증언자-오순이)
이름: 관리자
2017-03-16 15:04:21  |  조회: 1486

오 남 택( 吳南澤)
2016. 9. 30.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3년 3월 1일
출생지: 함경남도 북청
당시주소: 서울 마포구 공덕동 429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초순경
피랍장소: 서울 마포구 공덕동 내무서원
직업: 자전거 상회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4남 1녀 (유복자 포함)
외모/성격: 남을 돕고 착실하였음.


증언자
성명: 오순이
관계: 장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직업 및 활동
<납북자는 함경남도 북청에 살다가 재산이 많아 다 몰수될 것 때문에 1946년 가족들과
함께 남하하여 자전거 상회를 하였고, 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하였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오순이. 1936년 8월 28일 생이에요. 납북된 분은 아버지. 저는 장녀에요.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오남택. 생년월일은 1913년 3월 1일. 출생지는 함경남도 북청. 전쟁 때는 공덕동
에 살았어요. 마포구 공덕동 429번지.
문_ 납북자가 남한으로 내려 온 시기는?
답_ 전쟁 나기 4년 전에. 1946년도에 했어요.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자전거 상회. 출신 학교는 모르겠어요. 잊어버렸어.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남동생 넷하고 어머니하고 아버지. 나까지 여섯 식구였어요.


납북 경위
<6·25가 나고 청년단에 대한 학대가 심했는데, 단장이었던 아버지에게 진술서를 써서
내무서로 들어오라고 하여 간 뒤에 나오지 못함>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청년단 단장이셨어요. 그 전에 6·25때 그 사람들 학대를 많이 했대. 그래서 아버지
더러 진술서 써서 내무서에 들어오라고 그런 거래.
문_ 피난은?
답_ 우리가 제일 늦게 갔어요. 아버지 기다리다가. 한강 건너 가니까 다리를 끊어 놓고.
1월 4일에 모래사장에서 이불을 깔고 잤어.
문_ 남하한 이유는?
답_ 재산 때문에. 재산이 많았어요. 북한 땅은 그냥 두고 현금만 가지고 왔나 봐. 내가
10살이나 됐을 때 왔어요. 학교 다니다가 가을에 아버지께서 경찰서로 가셨지. 남하한
이유는 재산이 많았는데 공산당이니까 다 나눠야 되잖아요. 그래서 있는 땅은 농사지으
라고 머슴 주고. 그리고 올 때 열차를 안 타고 북청이라는 아버지 고향에서 1년 정도 있
다가 남하했어요.
문_ 남하할 때 어려웠던 일은?
답_ 아버지가 열병에 걸리셨어요. 그 때는 열병으로 많이 죽었거든. 그래서 아버지를 포
기하고 남동생 셋 하고 우리 어머니가 그 때 동생 임신했을 때 네 식구가 오다가 인민군
한테 손목시계를 줬어. 그래서 두 시간만 빌려 준 건데 안 줘서 너네 먼저 건너가라고 그
래서 삼남매가 건넜는데 87살 된 노인이 보리밭 보러 나왔다가 우리를 쏜 총에 그 노인
네가 맞았어. 그래서 우리는 총을 계속 쏘니까 계속 건너 왔지. 그래서 나와서 해 떨어
질 때 어머니를 한탄강에서 만나서 같이 갔어. 그 때 아버지하고 떨어졌지. 아버지는 한
2개월 있다가 오셨지. 무사히 만나서 만 3년 살았지 같이.
문_ 남하한 후에는 공덕동에 사셨던 건가요?
답_ 네. 지금도 큰아들은 거기 살고 있어요.
문_ 피난은?
답_ 피난 갔어요. 16일 동안 보따리 지고 하루에 30리씩. 걸어서 전북 임실에 갔어요.
전주에서 70리를 걸어요. 해는 짧고 그래서 30리 밖에 못 걷겠더라고.
문_ 그럼 아버님의 납치 장소는?
답_ 공덕동. 잡혀간 게 아니라 아버지가 진술서를 써서 들어갔어요 내무서에. 그래서 기
다리고 기다리다가 서울이 텅텅 비었을 때 1월 20일경에 피난을 갔죠. 그 때는 아버지
께서 안 오시니까 포기하고 우리끼리 보따리 싸서 한강을 걸어 나갔지.
문_ 아버지가 언제 내무서로 가셨고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6·25가 나고 40일 정도 뒤에 진술서를 써갔죠.
문_ 누가 진술서를 쓰라고 했는지는 모르시나요?
답_ 모르죠. 남동생 둘은 안 보이고 내가 길가에 나가 섰는데 아버지가 전차를 탔는데
나하고 눈이 마주쳤어. 그런데 굉장히 마음이 서운하고 아버지를 못 볼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전차가 없어질 때까지 보고 있었어.
문_ 그 때 아버님이 남기신 말씀은 없는지?
답_ 없어요. 그냥 눈만 마주치고. 갔다가 오실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마음이 서운
하더라고.
문_ 아버님은 혼자 가셨나요?
답_ 혼자 가셨어요. 그 때 우리 아버지 나이가 38세였어요.
문_ 누가 진술서를 쓰라고 했는지는 전혀 모르시는 건가요?
답_ 모르죠. 그런 얘긴 안 하시고.


납치 후 소식
<어떤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가 서대문형무소에 있다고 소식을 전해준 적이 있음>


문_ 그 뒤로 아버님을 찾으려는 노력은?
답_ 내무서에 계시다는 것만 알지,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데 길가에 나와서 앉아 있으니
까 어떤 사람이 와서 오남택씨 집이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내가 아버지 소식을 가
지고 왔는데 좀 늦으실 거라고.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서대문 형무소에 있을 거라고 그
러더라고.
문_ 서대문 형무소에는 방문 하셨는지?
답_ 아뇨, 못 가봤어요.
문_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답_ 할 데가 없었어요. 우리 아랫집이 철물점 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도 아버
지 소식 영영 모른다고 그랬죠.
문_ 아버님 이야기를 해 준 분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으신지?
답_ 몰라요. 이름을 알려 줬었는데 내가 열 다섯 살 때라 잊어버렸지. 그리고 아버지가
조금 늦을 거라는 이야기만 했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아버지가 거기에서 반장으
로 있는데 반장이라 밥 한 술이라도 더 주고 그렇게 신임을 얻고 잘 계시다고 하면서 그
얘기만 하더라고.
문_ 피난은 맨 마지막으로 가셨나요?
답_ 그렇죠. 그 때는 돈을 땅을 파고 묻었어요. 얼마 안 있으니까 종이가 썩더라고.


남은 가족의 생활
<가지고 있던 재산으로 살고, 어머니가 밀수품 장사를 하여 형무소를 가기도 했고, 서른
둘에 재혼을 하였음. 남동생 둘은 폭격에 맞아 죽음.>


문_ 피난 간 뒤에는 어떻게 사셨나요?
답_ 우리 어머니가 정부에서 하지 말라는 밀수품 장사를 하셨어. 그래서 바로 밑에 동생
은 11살, 12살 때 남의 집 가서 밥이라도 얻어먹으라고 남의 집에 줬어. 나는 집에서 밥
해먹고. 우리 어머니 장사 해 오시면. 여수까지 갔어. 전주에서 밀수품 장사 하시다가
어머니가 형무소에 가셨어. 그러고 여수로 내려갔거든. 우리 어머니가 그 해에 서른 둘
이었어. 그래서 재혼을 하셨지. 재혼은 61년 전에.
문_ 여수까지 피난 가신 뒤 전쟁 끝나고 나서 서울로 올라오신 건지?
답_ 네. 그래도 소식이 없어서 납치당한 가족들이 행여나 어디 소식이라도 있나 하고 어
떻게 이북 넘어 가서 사시는 건가 싶고. 우리는 통일 가도 아무도 없어. 누가 소식을 전
해 왔는데 우리 친할머니가 시체를 보면서 울더래. 우리 오씨 가문에서 방공호를 팠대.
그런데 폭탄이 떨어져서 우리 집안만 다 죽었어. 할머니가 송장을 다 가리면서 앉아서
우는 거 보고 나왔다고 그러시더라고. 그러니까 나는 이산가족 찾는데 아무도 없어.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했어요. 남들이 6·25때 죽은 가족 찾는다 그러면 어디서 찾냐고 그러고. 이제는
하도 오래 돼서 잊어버렸지.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그냥 있는 돈으로 살다가 우리 어머니가 정부에서 못 하게 하는 장사만 해요. 막걸
리, 밀주 장사를 전주에서 하시더라고. 우리 식구들이 다 심장이 안 좋아요. 조마조마해
서 그 때. 정부에서 백성들한테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밀수품도 다 잡아 갔
거든. 그런데 그것도 하시고. 정부에서 술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것도 꼭 하시고. 그
래서 내가 심장이 안 좋고 그런데 그거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그리고 내가 재봉도 했어요. 그 당시에. 붕대 있죠? 그걸로 남자들 와
이셔츠 하고 여자들 속치마 해 입고 그랬거든. 보자기도 만들고. 그걸 했는데 내가 그
때 3학년 1반이었을 때 학생들을 강당에 몰아넣고 소지품 검사를 했거든. 그런데 내 자
리에서 붕대를 보고 이게 뭐냐고 그래서 내가 이거 재봉해서 학용품이나 사고 그럴 거라
고 했더니 우리 반에 이런 학생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그러셨지. 나는 어머니가 둘
이에요. 우리 어머니(친어머니)가 아버지가 돈이 있어서 술집에 다닌다고 자식들한테
매질을 하셨어. 그러면 외갓집이 먼데 7살 때 버선을 신고 매 안 맞으려고 갔어요. 그래
서 외숙모 밑에서 자랐어요 내가. 우리 어머니가 매질을 잘 해서. 그런데 또 시집을 가
니까 서방이라는 사람이 개 패듯 나를 패고. 그래서 내가 정신병원에도 갔었어요. 그랬
더니 병원에서 한국 국립병원 생긴 지가 6년인데 나 같은 여자가 하나밖에 없대. 말 시
키니까 대답도 잘 한다고 하면서. 보호자(남편)가 무식하니까 아내를 잘 다루라고 그러
더라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호적 정리
<호적 정리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사망으로 되어 있더라고.
문_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나요?
답_ 한 7, 8년 되셨어요. 93세에 돌아가셨어요.
문_ 아버님이 남기고 가신 형제 분들은 다 계신 건지?
답_ 둘은 폭격에 죽고. 38선 넘어 온 3남매만 남았지. 폭격은 6·25가 나고 7월 넘어
서 서울에 마지막 폭격을 할 때였어요. 그래서 우리 3남매만 우리 어머님 따라서 18일
을 걸어서 전북으로 갔어요. 그 추운 겨울에 안 죽겠다고. 오산에 가니까 오랑캐가 우리
앞에 와 있는 거야. 그래서 그만 가자고 그랬어. 죽어도 여기서 죽자고. 그래도 가는데
까지 가자고 그래서 쫓아서 갔지.
문_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해 묘사하신 말씀이 있나요?
답_ 너희 아버지가 그 전에 돈을 줘서 살림을 해서 그렇게 잘 살았는데 너희들도 커서 아
버지처럼 재산 많이 모으고 잘 살라고. 그런 이야기 하셨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없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국민들이 대한민국 후손으로서 범죄를 저지르지 말고 착실한 삶을 살았으면>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것은?
답_ 없어요. 그냥 납북자 가족으로 살면서 우리가 현명하게 대한민국을 지키고 살았잖
아요? 그런데 우리 후손이 한국 사람으로서 범죄를 저지르지 말고 착실한 그리스도인으
로서 살기를 바랄 뿐이지 아무 바람도 없어요 나는.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나는 우리 아버지가 늙는 것 같지도 않고 어느 하늘 밑에서 사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_ 회원님이 아버님과의 추억이 있으신가요?
답_ 내가 늘 쓸고 닦는 걸 좋아해요. 청소하는 거. 학교 다녀오면 매일 운동화를 빠는 게
일이에요. 그러면 아버지가 화장실 갔다가 오시면서 저한테 순이야 아버지가 돈 많이 벌
어서 운동화 많이 사줄 테니까 빨래 그만 하라고. 그리고 저희는 외사촌이랑 한 건물에
살았어요. 거기도 5남매라 10남매였는데 그 중에 내가 말 제일 잘 듣는대. 그래서 우리
순이는 나중에 시집가면 잘 살 거라고 그랬어.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은?
답_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 같아 나는. 너무 젊은 나이에 가셨기 때문에 우리 아버
지가 원래 남 돕고 착실히 사셨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께서 100세 넘어도 살아
계실 것 같아. 지금 살아 계시면 105세인가 그래요. 마음 속에는 항상 살아 계신 것 같
아요. 그래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 아버지가 저 하늘에 계실 텐데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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