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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강재원 (증언자-최정목,강선종)
이름: 관리자
2013-09-17 11:55:42  |  조회: 2197
2006. 11. 30. 채록
061130A 강 재 원 (姜在元)

피랍인
생년월일: 1922년 10월 4일
출생지: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당시 주소: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715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25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토목주식회사 운영, 농업, 대한청년단 (지역) 부단장
직계/부양가족: 부모님, 배우자, 자녀 5남
외모/성격: 호남형에 건강함. 성격은 급한 편.

증언자
성명: 1.최정목(1922년생) 2.강선종(1945년생)
관계: 1.배우자 2.차남
증언 성격: 직접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인은 토목 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한청년단 부단장을 겸함.
- 전쟁 직후 인근 야산으로 피신했다가 아내의 출산 사실이 궁금해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지역 좌익에게 발각, 집에 들어오자마자 인민군에게 연행됨.
- 청평 내무서, 가평 지서로 갔다가 소식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추모비 건립


“내가 직접 (남편을) 만나지는 못하니까, 이 양반 친구들을 찾아갔어. 그것들이 빨갱이, 진짜 빨치산이야. 청평을 찾아가서 '좌우지간 어떻게 됐느냐? 서울로 넘겼느냐? 가평에 있느냐?' 그랬더니 '아직은 서울로 가진 않았고 가평에 있다', 그런데 그 정치에도 '돈 싫은 사람은 없다.' 그래요. 돈을 내놓으면 내놔 주겠다는 뜻이야.”

“동네 유지라고 우리 시아버지도 붙잡혀 갔어. 아주 그 동네 유지들은 다 붙잡혀 갔어. 그랬다가 그 양반들은 사흘 만에 나오고, 젊은 사람들은 나오지도 못하고 거기서 없어졌어.”

“남편이 얼마나 아들들을 사랑했는지 몰라. 가서 죽을 적에 그 아들들을 두고 가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 직업 및 활동

<토목 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대한청년단 부단장을 겸임>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최정목)_ 직업은 토목주식회사라고 강에서 내려오는 뗏목 있잖아. 그 뗏목을 발전소 밑으로 하산시켜 서울 한강까지 오는 그런 회사를 했었어. 우리가 인부들을 사서 쓰면서 토목 주식회사를 운영했지.

문_ 가정 형편은?
답(최정목)_ 잘 살았지. 그래서 붙잡혀 간 거야. 보기만 하면 붙잡아 가려고 했으니까.

문_ 직업 외의 활동은?
답(최정목)_ 대한 청년단 부회장이었어. 옛날에야 그렇게 동네에서 일들을 보고 했으니.



○ 납북 경위

<전쟁 직후 인근 야산으로 피신했다가 아내의 출산 사실이 궁금해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지역 좌익에게 발각, 집에 들어오자마자 인민군에게 연행됨. 청평 내무서, 가평 지서로 갔다가 소식 없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최정목)_ 6.25가 나는 날부터 사람들이 동네를 내놓고 피난을 갔었어. 그래서 발전소 밑에까지 가기도 하고. 나는 그 때 애기를 뱃속에 갖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었고, 우리는 그냥 돌아왔다고. 나는 돌아와서 애기를 낳았어.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남편이 잡혀 간 거야. 이 사람은 산 속에 숨어 있다가 피난 간 지 한 달이을 됐으니 집이 궁금한 거야. 당시 발전소 다리가 5백 촉 다마(전구)를 켜서 사람 건너가는 것도 다 보이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새벽에 거기를 건너온 거야. 집에 몰래 왔다가 가려고. 그걸 건너오는데 부락 빨갱이들이 '아무개다'라고 일러줬단 말이야. 그래서 집에 들어서서 밥 한 번도 못 먹고 바로 잡혀간 거야. 내가 애기를 낳은 지 일주일 됐고, 이제 겨우 만났는데, 밖에 벌써 잡으러 왔지 뭐야. 밖에는 인민군들이 서 있고, 안으로는 부락 사람이 들어와서 '잠깐 좀 나오란랜다'고 나간 게 잡혀간 거야. 청평 내무서로 붙잡혀 갔어. 거기서 가평 지서로 갔어. 그 때 부터는 그만이야.

문_ 가족들이 찾으러 갔나요?
답(최정목)_ 어떻게 찾아? 발전소가 있기 때문에 비행기가 날마다 폭격을 해서 집에 있지도 못했어. 다니지도댕기기지 못하고. 그런데다 동네 유지라고 우리 시아버지도 붙잡혀 갔어. 아주 그 동네 유지들은 다 붙잡혀 갔어. 그랬다가 그 양반들은 사흘 만에 나오고, 젊은 사람들은 나오지도 못하고 거기서 없어졌어.



○ 납치이유

답_ 젊은 사람이 청년 단 부단장 했다고 잡아간 거야.



○ 납치 후 소식

<피랍인의 아내가 좌익 사상의 동료들을 찾아 수소문해봤으나 돈만 요구할 뿐 만날 수 없었음.>

답(최정목)_ 내가 직접 (남편을) 만나지는 못하니까, 이 양반 친구들을 찾아갔어. 그것들이 빨갱이, 진짜 빨치산이야. 청평을 찾아가서 '좌우지간 어떻게 됐느냐? 서울로 넘겼느냐? 가평에 있느냐?' 그랬더니 '아직은 서울로 가진 않았고 가평에 있다', 그런데 그 정치에도 '돈 싫은 사람은 없다.' 그래요. 돈을 내놓으면 내놔주겠다는 뜻이야. 그러니 뭐라 그래. 빨갱이들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시아버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 빨치산 이재문을 만났는데 돈을 좀 내 놓으라 더라고 했더니, 우리 시아버님이 펄펄 뛰고 난리 났어. 아니 집안 식구들 죄 죽으라고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고. 그럼 그만이지 뭐. 그러니 가지도 못하고 그만 뒀어.



○ 남은 가족의 생활은?

<자녀 셋은 병, 혹은 의료 사고로 죽고, 피랍인의 아내가 시부모님과 남은 아들 둘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함. 서울로 상경해서는 하숙 등을 하며 자녀를 뒷바라지 함.>

답(최정목)_ 내가 스물 아홉이고 시집살이를 했는데, 사는 거야 집에서 농사를 많이 짓고 사니까, 먹는 거야 쌀이 많지만, 쌀을 뺏으러 오기 때문에 그것도 감춰두고 조금씩 죽을 쒀 먹고. 호박이 늙으니까 호박죽 쑤고. 이렇게 생활을. 말할 것도 없어, 6.25라는 건. 어휴, 보기만 하면 붙잡아 가니까.

문_ 어머니는 고생 많으셨다면서요?
답(강선종)_ 시골에 계실 때는 일꾼들이랑 일하셨고, 서울 올라와서는 아들들 공부시킨다고 하숙도 하고 일도 다니고 하셨어요. 고생 무지 하셨지. 우리 어머니는 스물 아홉에 청상과부가 되셨는데 재혼을 안 하시고, 우리 형제를 기르셨다고. (아버지를 향한) 그리운 마음이야 많겠지만 속으로 기억하지 겉으로 표현하진 않으셨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늙으막에도 이렇게 고생을 하시니.

문_ 형제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답(강선종)_ 원래 5남 이예요야. 둘째는 옛날에 아편을 먹어서 죽었어. 예전엔 체할 때 아편을 먹였는데, 그걸 먹고 죽었어요. 또 넷째는 감기 걸려 죽고, 막내는 6.25 피난을 다녀와서 주사를 맞다가 부작용이 나서 죽었어요. 그리고 큰 형이랑 나만 살았어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최정목)_ 정부의 도움이라는 것은 없어요. 그럴 때는. 다 나부터 살려고 도망가지, 도움은 없어.



○ 호적정리

<정리됨>

답(최정목)_ 호적 정리를 했어요. 왜냐하면 시아버님이 몇 년 안 사시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금방 돌아가셨어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니까 논이고 땅이고 세무서에서 전부 측량을 해. 그래서 그 때 돈으로 9만 얼마를 세무서에 돈을 바치느라 힘들었지. 그리고는 호주 상속을 아들에게을 시켜야 하는데 남편을 못 찾고 있으니 법원에 남편을 실종 신고를 하고, 큰 아들에게 상속을 시킨 거지. 내가 큰 아들을 서울에서 공부 시키고 있었거든. 그리고 땅을 다 팔아 시어머니하고 서울로 왔어요. 그래도 그렇게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호적을 청평을에서 정리하고 청량리에 와서 살았어요. 아들 장가들이고 살았지.



○ 연좌제 피해

<없었음>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추모비 건립>

답(최정목)_ 내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살았나, 살았으면 올 텐데. 그런데 이제는 바라지도 않아요. 지금 나이가 85이거든. 그 양반도 죽었을 거고, 나도 이제 바보가 됐어. 귀도 먹고, 이렇게 말도 잘 못해. 기억력이 없어.

답(강선종)_ 정부에서 납북자들을 위해 탑을 세워줘서 다만 영혼이라도 기리고, 애달프면 가서 보고 했으면 좋겠어요. 남들은 군인이라 죽었다지만, 옛날엔 있는 사람은 군에 안 갔어. 6.25사변이란 건 있는 놈과 없는 놈의 싸움이야. 있는 사람은 다 죽인 거야.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최정목)_ 세상에 피난을 가서 먹지도 못하고 굶고서 집에 오다가 붙잡힌 게 너무 불쌍해. 너무 한이 돼. 시체도 못 찾았지. 밥 한 번 먹이지도 못하고 붙잡혀 갔지. 그게 너무 한이야. 아들들 앞에서도 시체를 못 찾았으니 큰 소리를 못하지. 어디가 있어야 뭘 찾지.

여보. 내가 당신의 시체를 못 찾았어. 아들하고 손자하고 나만 이렇게 혼자 재미있게 사는 게 항상 마음에 가슴이 아파. 지금 죽더라도 내 죄를 당신이 용서하고 (흐느낌). 언젠가 보고 죽을 줄 알았더니 이제는 끝이 나네. 그래도 이렇게 와서 얘기라도 하니 한풀이를 하는 것 같소. 누구에게 이런 얘기 한 마디 할 수가 있었겠소. 56년이나 지났는데 누가 알았냐 말이야. 이렇게 와서 다시 물어주니 살아서 와서 서로 얘기하는 것거나 같으니 고맙습니다.

답(강선종)_ 아버지 살아계시면 뵈면 좋겠지만 살아계신 것 같지는 않고 영혼이라도 하늘에서 (눈물)…. 아버지 죄송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답(최정목)- 남편이 얼마나 아들들을 사랑했는지 몰라. 가서 죽을 적에 그 아들들을 두고 가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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