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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채록

납북자-장명선 (증언자-박선자)
이름: 관리자
2013-09-17 11:59:26  |  조회: 2143
2007. 1. 23. 채록
070123A 장 명 선 (張明善)

피랍인
생년월일: 1922년 음력 2월 1일생
출생지: 평북 신의주
당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용강동 195-1호
피랍일: 1950년 8월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목재상
학력/경력: 신의주 상고 졸업.
직계/부양가족: 부모, 배우자, 자녀 2남 1녀
외모/성격: 활발하고 사교적

증언자
성명: 박선자(1924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6․25전쟁 중 늦은 밤에 인민위원회에서 네댓 명이 자택으로 찾아와 연행해 감. 공덕초등학교, 아현초등학교를 거쳐 북송된 후 연락 없음.
- 피랍인의 납북 이후에도 인민군들의 감시와 협박이 계속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사변 나고,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와서 조사를 하는 거야. 집집마다 전부 문을 두드리고는 '쌀을 묻었나, 뭘 묻었나?' 하고. 그래서 이리 숨고 저리 숨고 하던 중에 어느 날은 밤 중 1시에 와서 '인민 위원회가 조사할 것이 있다'며 잠깐 나와 보라고 했어요. 그러니 우리 시아버지께서 (남편에게) 나가 보라고, 본인이 말을 잘못 할 지도 모르니까 나가보라고 해서 나갔는데, 잠깐이 아니라 그대로 그 쪽으로 끌려 간 거예요.”

“정부에 바라는 것은 소식이라도, 생사라도 알았으면 하는 거지. 이제 85세에 만나서 호강을 보겠어요? 어쩌겠어요. 그간의 애쓴 보람으로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그것밖에 없지. 우리가 열심으로 찾고 헤매다가 이젠 기운이 빠졌어요. 어디 호소한다고 해도 하나 알아주지도 않고 하니. 정부고 국회의원이고 어디 힘 있는 데가 없어.”

○ 직업 및 활동

<피랍인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목재상에서 근무함>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학교 졸업하고 와서는 어른들이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제재소에 다녔어요.

문_ 다른 활동은 안 했는지?
답_ 정치는 안 했다니까.

문_ 북한에서 출생하셨는데 언제 월남했는지?
답_ 일제시대 때 시아버지네 유지 일곱 분이 마포 도화동에 오셔서 큰 제재소를 시작하셨어요. 나는 어른들이 아는 관계로 그리로 시집을 왔던 거지. 그렇게 마포에 자리 잡고 살았는데 사변 통에 몽땅 잘못된 거야.



○ 납북 경위

<6.25전쟁 중 늦은 밤에 인민위원회에서 네댓 명이 자택으로 찾아와 연행해 감. 공덕초등학교, 아현초등학교를 거쳐 북송된 후 연락 없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사변 나고,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와서 조사를 하는 거야. 집집마다 전부 문을 두드리고는 '쌀을 묻었나, 뭘 묻었나?' 하고. 그래서 이리 숨고 저리 숨고 하던 중에 어느 날은 밤 중 1시에 와서 '인민 위원회가 조사할 것이 있다'며 잠깐 나와 보라고 했어요. 그러니 우리 시아버지께서 (남편에게) 나가 보라고, 본인이 말을 잘못 할 지도 모르니까 나가보라고 해서 나갔는데, 잠깐이 아니라 그대로 그 쪽으로 끌려간 거예요. 다섯 명인가 왔었어요.

문_ 찾아보려는 노력?
답_ 그 다음에 알아보니까 우리는 사업을 하던 사람이니 금방 내보내 준다고 해놓고는 그게 아니었어요. 당시 마포에 공덕 국민 학교가 있었어요. 그리로 우리처럼 사업하던 사람이며, 정치하던 사람이며, 청년들이며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그 국민 학교에 1, 2층 가득 차도록 낮이고 밤이고 다 잡아들인 거예요. (남편은) 거기 잡혀있었는데, 그 다음에는 또 밤중에 아현국민학교로 또 전부 끌고 가고 했어요. 그걸 알고 밤낮으로 가서 지켜 서서 대면하려고 해도 만날 수도 없고, 거기서 끝장난 거예요. 그러다 밤중에 다 끌고 갔다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의용군'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는 정치한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납치된 거예요. 잡혀간 사람 중에는 도중에 도망 온 사람도 있는데, 이분은 도대체 소식을 모르게 됐어요.

문_ 납치당한 날짜가 언제인지?
답_ 납치된 날짜를 아무리 기억해 봐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여름이거든.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아현초등학교 다음에는 어디로 이동했는지?
답_ 그 다음에는 아현국민학교에서 밤중에 조를 짜서 이북으로 끌고 갔다는 거야. 어떤 사람 말로는 가는 도중에 그 사람들을 총살시켰다고도 하고,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거지. 나중에는 KBS에서 이산가족찾기 할 때도 알아보고, 혹시 국군에 들어가서 어떻게 잘못 됐나 해서 논산에 전사군인 쪽도 알아보고, 국방부에도 알아보고 다 가봤지. 그러다 안 돼서 지금은 포기한 거지.



○ 남은 가족의 생활은?

<가장의 납북 이후에도 인민군들의 감시와 협박이 계속되어 피랍인의 부모님이 곧바로 돌아가시고, 배우자가 힘겹게 자녀 셋을 키움.>

답_ 그 때부터 소식을 몰라서 어른들이 하도 속이 타서 찾아보고 알아보고 하려고 해도 통 몰랐어요. 그러다 병이 나셔서 시아버님이 3일 만에 말을 못하고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도 1년 후에 돌아가셨어요. 재산도 어떻게 됐는지 몰라. 그 때는 여자들이 남자들이 하는 일에 전혀 관여를 안했어요. 갖다 주는 것으로만 먹고 살고 해서 시아버님이 제재소 사장을 한다는 건 알지만, 재산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는 거예요. 그 와중에 사기꾼도 끼고, 내가 사회 일도 하나도 모르고 하니 어떤 사람이 뭘 가져갔는지도 잘 몰랐어요. 애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었는데, 큰 집을 팔아 자꾸 줄여가며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산 거죠.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꼭 밤중에 인민군들이 대문간을 박차고 오곤 했어요. 밤중에 너댓 명이 무장해서 와서는 발길로 대문간을 차고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러더니 우리가 나가기도 전에 자기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한 사람은 대청마루, 한 사람은 안방으로, 한 사람은 뒤채로 배치를 해서 다 뒤집어 찾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이 숨어있을 수 있어? 그 상황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른들이 돌아가신 거예요.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시니까 제재소에 있던 분들이 제각기 재산을 팔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재산도 없어지고, 사람도 없어지고.

남편은 납치당하고 아직 시부모님은 살아계실 때였는데, 용강동은 지대가 수돗물이 잘 안 나오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당시 물 길어주고 문간방에 같이 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 별안간 빨갱이로 돌아서 가지고는, 우리 집 내용을 전부 연락을 해 주는 바람에 우리가 더 곤란을 겪었죠. 한번은 인민군들이 달밤에 또 집에 쳐들어 와서는 나오라고 그래요. 아버님, 시어머님, 나, 애들이 있었고, 우리 시동생은 지붕으로 올라가서 납작 엎드리고 있었어. 그 놈들이 '당신들이 이남방송을 들었다는데 이남 방송 들으면 총살되는 거 모르냐'고 그래요. 그러니까 시부모님은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어린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놀래서 옆에 서 있고. 그놈들이 공포 총을 막 쏘는데, 그 때 난 우리한테 총을 쏘는 줄 알았어. 당시 지하실이 있었는데, 그놈들이 공포탄을 쏘더니 그리로 내려가서는 물건들을 마당으로 다 끌어 내. 사실 우리가 지하실에서 라디오 장치를 해서 방송을 들었어요. 언제 국군들이 서울로 입성하게 되나 하고. 그놈들이 라디오를 발각하고는 "너희들 만일 라디오 틀어서 잘 들리면 각오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살 사람은 사나 봐요. 한 놈이라도 지켰으면 우리 중 누가 죽든지 죽었을 텐데, 다섯 놈 모두 다 갑자기 그냥 철수하더라고. 그러니 그 사이에 우리 시동생이 담요로 방문을 다 막고서는 라디오를 망치로 고장 내고는 다시 그 놈들이 둔 곳에 갖다 뒀었어.

다음 날 아침 일찍 인민군들이 다시 왔어. 시어머니가 벌벌 떨면서 "그럼 어디 라디오 시험해 보라"고 했는데, 인민군들이 라디오 전원 넣는 걸 잘 모르더라고요. 아무리 끼워 봐도 안 되니 기술자가 와야 된대요. 다행히 살았죠. 그렇게 죽을 뻔 한 것을 모면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우리처럼 당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너무 질려서 어른들이 빨리 돌아가셨지.

문_ 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답_ 지금 말이 나와서 조금 하는 거지만, 그 고생이란 건 말로 다 못해요. 그 당시 정부에서 아직 (피난)나가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방송을 하더라고.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피난가라고. 애들이 두 살, 네 살, 여섯 살 조그만 애들을 데리고 이불 보따리 싸서 내려가서 겨울을 보내고는, 어차피 죽는 거 집에 와서 죽겠다며 그냥 서울에 다시 올라 왔어요.

문_ 생계는?
답_ 당시 생계라는 것이 전쟁 통에 먹을 거라고는 바닥이 난 상태였어요. 시부모님은 피난 간 1년 동안 돌아가셨고. (남은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국군이 우리 집 하고 옆 집 등 몇 집 큰 집에 주둔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하루 이틀은 밥을 얻어먹다가, 공짜로 먹을 수는 없어서 내가 젊을 때이니, 군인들 밥하는 걸 시중을 해 줬어. 그리고 밥을 얻어 와서 우리 식구들 먹이고 그랬지. 나중에 그 사람들이 떠난 후에는 내가 남대문까지 걸어가서 과일이든가 뭐든 물건을 받아 이고 오면서 좌우지간 사람만 만나면 '사세요' 하고 파는 거야. 처음엔 그 말이 잘 안 나오더니 닥치니까 하더라고. 그렇게 겨우 먹고 살았어. 그러다 시동생이 서울 수복하고 돌아와서 생활을 좀 도와줬어.

문_ 아이들의 공부는?
답_ 아이들은 피난 갔다 들어와서 용광국민학교 입학하고, 밑에 애들도 용강 초등학교 다 나왔어요. 그 때는 시동생이 도와주고, 집이 크니까 세를 조금씩 받아가고, 내가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지 했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다 공부시켰지.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제가 반장을 해서 납치당했다는 걸 동네에서 다 알았어요. 앞집 사람이 통장이었는데 그 집 아들은 청년회 회장을 했기 때문에 우리보고 계속 남쪽으로 피난시키라고 했는데, 시아버님이 우리가 정치한 것도 아닌데 괜찮을 거라고 하셔서 있다가 그렇게 된 거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국회의원한테도 호소했고, 현재까지도 노력했지만 아직까진 이렇다 할만한 게 없어요.
만나기는 고사하고 소식도 모르니. 이제 희망이 없다 싶은 거죠.



○ 호적정리

<사망 처리함>

답_ 호적에 사망으로 했지. 왜냐면 집을 팔 적에 시아버님 집인데, 시아버님이 난리 중에 돌아가셨으니 그게 남편의 이름으로 재산이 내려오잖아요. 그 때 누가 사망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처리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없어요. 우리가 뭐 감시당할 일 하나 한 것도 없고, 정치에 관여한 적도 없으니까. 우리 애들도 정치에 관련 없이 자기네들 사업하고 하니까. 다만 우리 사위가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려고 할 때, 장인이 납치당했다는 것 때문에 대령이 안되고 중령 때 제대하고 말았어. 이렇게 되니까 우리가 정부에서 도움 받는 것도 없고, 재산 잃고 사람이 이렇게 됐다고 호소해도 알아주는 것도 없고. 사위는 진급 문제 때 애를 써도 안 되고. 그렇게 피해만 보고 살았죠.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 정부에 바라는 것은 소식이라도, 생사라도 알았으면 하는 거지. 이제 85세에 만나서 호강을 보겠어요? 어쩌겠어요. 그간의 애쓴 보람으로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그것밖에 없지. 우리가 열심으로 찾고 헤매다가 이젠 기운이 빠졌어요. 어디 호소한다고 해도 하나 알아주지도 않고 하니. 정부고 국회의원이고 어디 힘 있는 데가 없어.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하고 싶은 말?
답_ 결혼생활도 지금처럼 죽자 살자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어른들이 중매로 한 거니 부부가 되어서 산 거죠. 그래도 당시 38선이 전쟁 나기 전에 있었잖아요. 내가 38선 막히기 전에 친정(이북)에 해산을 하러 갔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38선이 막혔다고. 그러니 여기서 이북으로 오려면 산을 넘고 힘들게 와야 되는데, (남편이) 38선을 넘어 목숨 걸고 나를 찾으러 왔더라고. 그걸 보니 '아, 이분이 사랑으로 나를 데리러 왔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오랜 세월을 이렇게 이별을 하고 사는 동안 보고 싶은 일도 많았어요. 생사라도 알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곳에 알아도 봤어요. 지금은 이렇게 6.25납북인사 가족회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고, 무슨 좋을 소식이 있을까 희망을 가져 봅니다. 어찌 되었건 살아 계시면 건강하게 있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볼 수 있으면 봤으면 좋겠어요. 건강하시고, 나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지켜주시면 만날 것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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