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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임숙기 (증언자-임운기)
이름: 관리자
2013-09-17 12:05:31  |  조회: 1968
2007. 1. 29. 채록
070129A 임 숙 기 (林熟基)

피랍인
생년월일: 1932년 6월 20일생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군 북후면 신전동 537번지
당시 주소: 주소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625번지
피랍일: 6.25전쟁 중
피랍장소: 자택
직업: 무직(입대 대기 중)
학력/경력: 후쿠오카 고가국민학교 8학년 중퇴
직계/부양가족: 부모님, 5형제
외모/성격: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함.

증언자
성명: 임운기(1935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이 나고 좌익이던 송씨라는 반장이 인민군과, 인민위원장 등 서너 명과 함께 집으로 찾아와 연행해 감. 2~3개월 후 함께 끌려갔던 사람이 도망쳐 나와 행방을 알려줌. 의용군으로 차출된 것으로 추정.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유해 송환

“6.25가 터지고 며칠 있다가 바로 송씨 반장이 인근에 사는 인민군, 인민위원장과 관계되는 사람 해서 서너 사람이 우리 집에 왔더라고. 집에 들어오지 않고 대문 밖에 서서 우리 부모님에게 임숙기를 불러내라고 한 거야. 깊은 밤이라 자다가 일어났으니 정신이 없는 상태잖아. 형님은 열 아홉이라도 덩치도 좋고 성인 정도로 체격도 좋으니, 아무 말도 없이 보고는 그냥 끌고 가는 거예요. ”

“지금까지 통일부, 외무부, 청와대까지 진정을 내고 '찾아 달라'고 신청했는데, 통일부에서는 연락이 오기를, 자기네들은 찾지 못하고 구역마다 이산가족을 전문으로 찾아 주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주더라고요.”

○ 직업 및 활동

<일본에서 오래 살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언어가 서툴러서 당시는 무직인 상황이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본적지는 경북이지만 원래 우리는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되고 나왔어요. 그래서 마포구 대흥동에 살다가 6.25를 만나서 형님이 납북된 거지. 형은 6.25나기 전, 지원 입대하려고 대기 중이었어. 왜냐면 우리가 당시 일본에서 바로 나와서 한국말을 잘 몰랐어. 그래서 곧바로 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었어. 직업도 구할 수 없고. 우리가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몰라도 일본에서 온 지 안 됐으니. 그러다가 6.25를 맞은 거지.

문_ 청년회 활동 같은 것은?
답_ 그런 건 전혀 없고.

문_ 가정 형편은?
답_ 일본에서 가져나온 돈을 까먹고 살던 때였어.



○ 납북 경위

<전쟁이 나고 좌익이던 송씨라는 반장이 인민군과, 인민위원장 등 서너명과 함께 집으로 찾아와 연행해 감, 2~3개월 후 함께 끌려갔던 사람이 도망쳐 나와 행방을 알려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6.25가 날 적에 마포구 대흥동 625번지에 거주하는데, 심야 아주 깊은 밤이었어. 당시 우리 윗집이 반장집이었어. 송씨라고 성만 기억하는 데, 이 집 식구들이 완전 빨갱이야. 인민군이 들어오니 인민 위원장이고 뭐고 전부 감투 쓰고 집안이 확 일어나는 거야. 6.25가 터지고 며칠 있다가 바로 송씨 반장이 인근에 사는 인민군하고, 인민 위원장과 관계되는 사람하고 해서 서너 사람이 우리 집에 왔더라고. 집에 들어오지 않고 대문 밖에 서서 우리 부모님에게 임숙기를 불러내라고 한 거야. 깊은 밤이라 자다가 일어났으니 정신이 없는 상태잖아. (형님은) 열 아홉이라도 덩치도 좋고 성인 정도로 체격도 좋으니, 아무 말도 없이 보고는 그냥 끌고 가는 거예요. 그렇게 끌려간 뒤 2-3개월이 지났는데, 하루는 형님이랑 같이 끌려갔었던 사람이 왔어요. 그 사람이 와서는 '임숙기도 혹시 (돌아)왔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없다'고 했더니, 자기는 형님과 같이 끌려가다가 여의도 모래사장에서 야간에 미군 비행기가 폭격할 때 도망해 집으로 돌아왔대요. 그리고는 우리 형님 소식을 물으러 우리 집에 온 거였죠. 그래서 우리는 '아, 인민군에게 끌려갔구나'하고 (행방을) 알게 된 거죠.

문_ 가족들이 찾으러 다니지는 않았는지?
답_ '죽지 않았으면 오겠지' 하면서 기다린 거지.
그런데 전쟁이라는 건 정말 없어야 돼. 그 비참함은 말할 수도 없고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고.

문_ 피난은?
답_ 피난은 1.4후퇴 때 나하고 동생하고 갔어. 다른 사람은 못 가고.



○ 납치이유

<의용군으로 쓸 목적>

답_ 당시 우리 형님으로 같이 끌려간 사람이 '의용군'이라고 했으니 우리는 의용군이라 생각했지.



○ 납치 후 소식

<없음>



○ 남은 가족의 생활은?

<극심한 가난 속에 납북된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활함>

답_ 그냥 있는 돈 다 쓰고, 이후엔 별의별 일 다 하면서 살았지. 힘들다는 건 말할 수도 없는 거야. 당시 여섯 끼도 굶어 봤으니.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낙원에 사는 거지.

문_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답_ 항상 어떻게 해야 찾을지 고심하셨죠. 울기도 하시고. 어머니는 1973년, 아버지는 1978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말하자면 우리 형님 때문에 화병 때문에 돌아가신 거나 다름없죠 뭐. 병이 깊으셔서 유언 같은 건 남긴 게 없고, 살아계실 적에 항상 형님 얘기를 했어요. '한 번 만났으면' 하고 항상 바라셨죠.



○ 정부의 노력

<없었음, 계속적으로 생사확인을 의뢰하자 통일부는 브로커들의 연락처를 준 바 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이후 1960년대였는데 KBS에서 이산가족을 찾는다고 했어요. 그 때 광고도 하고, 써서 붙이기도 하고, 신청도 하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 봤는데. 그 이후로는 뭐 아직까지 KBS에서 그 서류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또 지금까지 통일부, 외무부, 청와대까지 진정을 내고 '찾아 달라'고 신청했는데, 통일부에서는 연락이 오기를, 자기네들은 찾지 못하고 구역마다 이산가족을 전문으로 찾아 주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주더라고요. 당시 내가 살던 곳과 제일 가까운 곳이 안양이라 그 쪽에 사는 사람에게 문의했더니 자기도 그걸 하자면 당장 돈이 있어야 한다 이거야. 중국에 가든 신문에 내든 라디오에 내든.

문_ 일종의 브로커죠? 그것을 통일부에서 알려주던가요?
답_ 그렇지. 이름하고 주소하고 전화번호가 죽 적힌 명단을 주더라고. 그런데 당시 돈을 약간만 달래면 줬을지도 모르는데, 엄청나게 많은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 그러니 내가 포기를 한 거지. 3, 4년 됐어요. 최근에는 정부에서 하는 진상규명위원회에 내용을 죽 얘기했더니, 당시 형님이 끌려가는 중에 여의도에서 폭격이 있었다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이거야. 그런데 내 얘기는 이산가족 상봉방송을 보다 보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이산가족으로 만나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고. 그러니 우리 형님도 살아계시기만 하다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지.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정부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그리고 내가 지금 제일 답답한 게 이산가족 신청은 있는 대로 다 했어. 통일부다 적십자다 전부. 그런데 어떻게 그 만남이 이뤄지는지, 돈을 쓰는 건지, 우리는 혹시 열외가 된 것은 아닌지 너무 궁금해.



○ 호적정리

<정리됨>

답_ 67년도인가 68년도인가에 우리 형님을 실종 신청을 했어요. 그래서 법원에서 실종 처리가 됐어요.



○ 연좌제 피해

<가족들이 납북 사실을 숨겨와 특별한 연좌제 피해는 없었음.>

답_ 그런 건 없었지만 형님이 이북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빨갱이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
항상 불안한 마음은 계속 있었지. 일종의 연좌제. 그러니 가능한 그것을 숨기고 산 거지. 그러다 세상이 좀 개방이 되니까, 맘 놓고 얘기하게 된 거지, 그 당시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면 전부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답_ 이산가족 상봉이 활성화돼서 한 번 만났으면 하는 게 바람이죠. 생이냐 사냐? 그것이 궁금한 거예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형님, 살아계시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죠. 하루 빨리 만나봅시다. 살아계신다면 몸 성히 잘 계시고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문_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답_ 찾는 사람의 입장은 속된 말로 몸이 달아요. 나이가 점점 많아지니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하루빨리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고 싶고, 살았다면 빨리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면 하는 게 바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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