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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지금순 (증언자-지이만)
이름: 관리자
2013-09-17 12:15:55  |  조회: 2098
2007. 10. 18. 채록
071018A 지 금 순 (池今順)

피랍인
생년월일: 1924년 3월 30일생
출생지: 서울시 용산구
당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481-7
피랍일: 1950년 7월 중순에서 8월 초경
피랍장소: 직장(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직업: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현 조폐공사) 부녀부장
학력/경력: 용산 금양초등학교
직계/부양가족: 배우자(사실혼 관계), 자매 1, 형제 2
외모/성격: 미인형 얼굴에 조금 깐깐한 성격

증언자
성명: 지이만(1938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내 부녀회장(현 노동조합 여성회장)으로 활동했던 피랍인은 직장에 출근했다가 물어볼게 있다는 내무서원을 따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함.
- 피랍인의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배우자가 대한청년단 단장이었으며, 피랍 당시 피신해 있었던 상황이라 그와 관련해 조사차 연행된 것으로 추정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회사에 출근했다가 내무서원이 데려갔다고 수위아저씨가 말해줬지. 우리는 데려가는 거는 못 보고 수위실에서 우리 누님 찾으니까 수위가 내무서원이 와서 물어볼게 있어서 데려갔으니까 집에 가서 있으면 갈 거라고. 그런데도 안 돌아와. 그 다음날 또 갔지. 기다리면 갈 거라고 몇 번을 가도 똑같은 대답만 해.”

“지금으로 보면 노동(조합) 여성회장같은 그런 직책이예요. 그런 것도 있었고, 매형이 대한청년단 단장이라는걸 다 아니까, 누가 거기서 들어오면 찌르는 사람이 있잖아. 뭐가 되려면 다 아부하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어. 인민군 내려오면 가만히 있던 사람도 다 손짓해. 동네는 누구누구, 어떤 놈이 누구누구, 그런 것 다 해.”


○ 직업 및 활동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근무, 사내 부녀회장으로 활동. 왜정 때 독립운동을 하며 중국을 드나들 때 함께 활동하던 사람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 6.25전쟁 당시 그는(이하 매형) 원효로3가 대한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용산구 용문동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가 있었어요. 돈도 찍고 국정교과서도 찍고 하던 인쇄소인데 거기에 누님이 부녀회장(당시 직함은 부녀부장)으로 계셨어요.

문_ 납북 당시 피랍인이 기혼이었나요?
답_ 왜정때 매형하고 독립운동한다고 중국으로 드나들곤 했는데 일본놈들이 검열을 많이 하니까 부부마냥 다녔죠. 나도 한 두어 번 중국을 왔다갔다 했죠. 국민학교 가느라 나왔다가 해방되는 바람에 못 들어갔거든. 누님하고 매형은 동거형식으로 생활하게 된 거지. 법적으로 결혼한 건 아니고 애기는 하나 낳았는데 얼마 안 있다가 죽고, 그런 관계인 거죠.
매형은 원효로3가 대한청년단 단장으로 있었고, (매형)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또 다른) 우리 누님한테 물어봐도 기억을 못한대요. 6.25사변 이후에 (매형이) 우리집에 찾아왔는데 경찰제복을 입고 찾아왔었다고 해요. 나는 객지 생활하느라 나와 있어서 몰랐고, 누이가 봤는데 사변 나고 3년 후에 누이 안부를 물으러 왔다고 하더라고.

문_ 납북된 누님도 대한청년단 활동을 하셨어요?
답_ 같이 했는지는 모르지 나는. 우리 누님은 부녀회장으로 있었는데 부부로 한 집에 사니까 같이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



○ 납북 경위

<6.25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쯤 후에 회사에 출근했다가 내무서원이 물어볼게 있다며 연행해 감.>

문_ 언제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우리가 6.25사변 나고 부곡으로 잠깐 피난 갔다 왔었거든요, 한 달간. 그리고 (누님이) 출근을 했으니까 7월 중순경쯤 될 거예요. 출근해서 그렇게 됐으니까 일정을 자세히는 몰라도 그쯤 될 거예요. 6.25사변 나고 한 달쯤 후에.

문_ 출근을 했다가 납치가 된 건가요?
답_ 회사에 출근했다가 내무서원이 데려갔다고 수위아저씨가 말해줬지. 우리는 데려가는 거는 못 보고 수위실에서 우리 누님 찾으니까 수위가 내무서원이 와서 물어볼 게 있어서 데려갔으니까 집에 가서 있으면 갈 거라고. 그런데도 안 돌아와. 그 다음날 또 갔지. 기다리면 갈 거라고 몇 번을 가도 똑같은 대답만 해. (같이 간) 우리 누님이 20살, 내가 14살, 어린 마음에 인민군 보면 무섭고, 그 당시에는 어디 찾아간다거나 그런 엄두도 못 냈지. 기다리고만 있었지. 돌아오려니...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미군 들어오고 그렇게 된 거지.

문_ 매형은 납치되지 않았고요?
답_ 3년 후에 경찰제복을 입고 왔다니까 납치된 건 아니지.

문_ 누님이 납치될 때 매형과 같이 살고 있었나요?
답_ 같이 살다가 사변이 나니까 우리 매형은 자기 식구들하고 피난가고, 우리 누님은 우리집에서 제일 맏이니까 우리들 데리고 피난 나갔다가 들어온 거지. 그 전에는 우리 누이하고 우리 매형하고 나하고 효창동 철도관사에서 세식구가 살았었어. 우리 마포집에는 작은 누님하고 우리 형님, 형수가 살았었어. 형은 철도청, 작은 누님은 전매청에 다녔고 우리 형은 철도청 다니니까 6.25사변 나서 제2 국민병으로 피신해서 나갔고, 우리는 어리니까 그냥 남게 된 거죠.



○ 납치이유

<피랍인의 배우자(사실혼 관계)가 대한청년단 단장이었으며 피랍인은 직장에서 지금의 노동조합 여성회장으로 활동, 대한청년단 단장이었던 배우자는 이미 피신한 상황>

답_ 남편이 대한청년단이라는 것도 문제가 됐을 거고, 또 부녀회장이라는 직함도 문제가 됐을는지 모르죠. 노동자들 중에서는 여자 우두머리니까. 내 기억으로는 거기서 우리 누님이 따로 쓰는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놀러가고 그랬어요. 지금으로 보면 노동조합 조합장 같은 곳이었어요. 거기 있으면 직원들이 있고 여자 대장 같은 위치였죠. 부장님, 부장님으로 불리던 기억이 많이 나요. 지금으로 보면 노동(조합) 여성회장같은 그런 직책이에요. 그런 것도 있었고 매형이 대한청년단 단장이라는 것을 다 아니까, 누가 거기서 들어오면 찌르는 사람이 있잖아. 뭐가 되려면 다 아부하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어. 인민군 내려오면 가만히 있던 사람도 다 손짓해. 동네는 누구누구, 어떤 놈이 누구누구, 그런 것 다 해. 우리 동네도 그런 놈이 하나 있었어. 아랫동네에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면 마당 큰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아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 다 지목했어요. 경찰들 다 붙들고 갔다고, 그 당시에. 사변 나고 그 놈은 도망가고 그 가족들은 혼찌검이 났지. 동네사람이 패가지고.

문_ 누님이 피랍될 당시에 매형은 피신해 있었나요?
답_ 그렇지, (피난) 나갔지. 못 나가서 남아 있었던 거지. 다 나갔어. 대한청년단 사람들이 남아있을 수가 없었지. 안 나갔으면 다 죽었지. 다 알아요. 동네마다 요원들이 있어서. 빨갱이들이 완장차고 내무서원들 끌고 다니면서 집 뒤지고 그랬어. 그 사람이 와서 뭘 알아. 몰라. 그 끄나풀들이 빨간 완장 차고 그러고 돌아다니잖아. 이북에서 넘어와서 누가 뭘 했는지, 경찰을 했는지 부자인지 모르지. 다 그네들이 지목하면 모두 끌고 가는 거지.



○ 납치 후 소식

<부모님은 안 계시고 남은 동생들은 어려서 여러 내무서를 찾아다니며 누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기를 여러 번, 피랍인의 소식은 알 수 없었음.>

문_ 내무서로 찾아가 보셨어요?
답_ 앞에까지 갔는데 안 들여보내. 그 당시 총 들고 있는 인민군이 얼마나 무서웠어. 지금 같으면 안 무서워할 수도 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칼만 봐도 무서워했어. 그 때 사람들은 모두 어수룩해서 순경만 봐도 쑤시고 들어가는 판이었어. 지금처럼 사람들이 똑똑하지 못하고 무식하고 무지했지.
우리 누님이 용산 보통 소학교 나왔거든. 미스코리아보다 더 예뻐. 그 당시에 소문난 미인이었는데 여자가 뭐 한다고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6.25사변 나서 행방불명된 거지. 우리가 전부 어리니까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하고, 내무서 앞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 한두 사람이 아니야. 가족 내어달라고 많이 서 있어도 안 보내줘. 나와서 딱꿍총이라고 하나, 총에다 칼 낀 것으로 펴서 막 휘젓고 그랬어. 누구 하나 면회가 안 돼. 그리고 우리가 마포에 살 때 앞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6.25사변 때 인민군들이 사람들을 많이 죽였어. 총으로 쏴 죽인 것도 아니고 총알 아깝다고 죽창으로 많이들 죽였어. 어렸을 때 그런 것을 보고 하니까 더 무서운 거야.

문_ 내무서 앞 상황은 어땠어요?
답_ 붙잡혀 오는 놈이나 나가는 놈이나 엉망진창이지. 많이 끌려 들어갔지. 기다리다가 안 되면 배고파서 집에 가서 밥 먹고 또 가보자 하고, 다른데 가서 혹시나 (누님이) 나올까 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저쪽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혹시나 우리 누님 나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야. 배고프면 집에 가서 수제비 먹고 와서 여기 가서 기웃거려보고 저기 가서 기웃거려보고 그거밖에 한 게, 해본 게 없어. 알아볼 방도도 없고.



○ 남은 가족의 생활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가장의 역할을 했던 큰 누님이 피랍된 이후 남은 남매들은 꿀꿀이죽과 강냉이 가루를 먹으며 힘들게 생활함.>

문_ 부모님은?
답_ 부모님은 모두 안 계셨지. 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두 살 때 돌아가시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납치된 우리 누님이 가장이었지. 지금 생존해 있는 사람은 작은 누님하고 나만 있지. 형님은 15년 전에 사망하고 4남매에서 우리 남매만 지금 살아있는 거지.

문_ 경제적 어려움이 컸을 텐데.
답_ 우리는 힘들게 살았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지. 그 당시 다 그랬지. 꿀꿀이죽, 강냉이 가루 먹고 살았지. 우리뿐이 아니야. 당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문_ 이후에 매형의 소식은?
답_ 우리 매형이 2, 3년 후엔가 찾아왔대. 그래서 우리 작은 누님이 뭐라고 했대. 사람이 왜 그러냐고. 수복되고 얼마 안 있다가 인쇄소에서 퇴직금하고 봉급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대. 그래서 우리 누이가 찾으러 가니까 담당이 남편이 먼저 다 찾아갔다고. 우리 매형이라는 사람이 (누님 소식을) 알아보러 갔다가 돈이 있다고 하니까 찾아간 건가봐.
우리 작은 누님이 괘씸해서 2년 후엔가 안부 물으러 찾으러 왔을 때 누님이 매형한테 막 뭐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언니가 이렇게 됐는데 알아보지도 않고 무슨 명목으로 찾아갔냐고. 6.25사변 때 경황이 없었겠지. 그 당시 대한청년단 하다가 6.25사변 나고 경찰에 투신했나봐. 그리고 2년 후엔가 안부 물으러 왔다가 간 뒤로는 끝이죠.



○ 정부의 노력

<없었음>



○ 호적정리

<미정리>

답_ 정리 안 되어있어. 호적을 쓸 일이 없으니까 안 했지. 언젠가는 정리해야겠지.



○ 연좌제 피해

<없었음>

답_ 피해는 별로 없었지.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런 건 없었어.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 앞으로 세월이 좋아져서 죽었으면 죽었고, 살아있으면 살아있다는 확실한 걸 알고 싶은 거지. 지난번 적십자사에도 가서 신청을 했거든요. 보든 안 보든 이전에 우리 누님은 우리집 주소를 아니까, 우리 마포 주소, 지금 나도 어릴 적 주소를 외우고 있는데 우리 누님이 본가 주소를 모를 리는 없겠지. 살아있다 해도 저 쪽에서 내놔 줘야지 되는 거지, 주소만 안다고 찾는 건 아니잖아. 이북에서 납치돼서 어디 살아있으면... 내가 봐도 너무 예뻐서도 죽이지 않고 살려두지 않았을까, 인민군들도 사람인데 예쁜 사람들을 열외로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혹시나 살아있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감도 있었던 거지.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누님, 그래도 여태까지 살아있어서 고맙습니다. 오래 살다 보니까 만나게 돼서 혹시나 해서 맨날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 뵈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서 남매간에 의를 잊지 않고 했으면 고맙겠습니다.

문_ 누님이 많이 보고 싶으실 때가 언제였는지?
답_ 그 당시에는 엄청 보고 싶었지. 세월이 가다 보니까 그렇게 됐고, 누님을 기리기 위해서 제사라도 (지내고 싶지만) 우리가 죽은 날짜를 모르니까, 차례 지낼 적에 같이 한 옆에 따로 지내고 그렇게 해온 거죠. 내가 결혼하고부터 시작해서 (부인 상처까지) 38년간을 그렇게 해온 거지.

문_ 누님에 대한 기억은?
답_ 만주 갔다 나오는 길에 역전에서 옛날에 애들 장난감 거북이가 이렇게 하면 가. 줄을 이렇게 하면 거북이가 걸어가는, 그걸 사달라고 내가 떼를 부렸어. 근데 그 당시 우리 누님이 돈이 없었나 봐. 아마 차표만 갖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그걸 안 사준다고 거기서 뒹굴고 그런 게 기억나. 그리고 만주에서는 한 집에 20가구, 30가구씩 살더라고. 2층에 (일본식) 다다미방인데, 거기서는 음식으로 두부를 바깥에다 얼려요. 창에다 내 놓고 추우니까 바짝 얼려서 아침에 더운 물을 녹여서 꺼내면 그게 스펀지같이 돼. 그걸 가지고 찌개를 끓이면 유부지. 고기마냥. 내가 한번 들어가면 4개월 있다 나왔고, 마지막에는 2년여 있다가 나왔지. 내 기억으로는 신경이라고 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심양인지 봉천 지나서 신의주 지나서 한 네다섯 시간 더 가면 되거든. 거기서 젊은 사람들이 다니면 검문이 심하니까 우리 매형하고 같이 나를 끼어서 데리고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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