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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안태희 (증언자-안선복)
이름: 관리자
2013-09-17 12:11:49  |  조회: 1895
2007. 3. 29. 채록
070329A 안 태 희 (安泰熙)

피랍인
생년월일: 1921년 1월 21일생
출생지: 서울
당시 주소: 서울시 성북구 번동
피랍일: 6.25전쟁 중
피랍장소: 자택 근처
직업: 농업, 지역 감찰단 간부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외모/성격 : 키가 크고 온순하고 고지식한 편.

증언자
성명: 안선복(1945년생)
관계: 아들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지역 감찰단 간부였던 피랍인은 6.25사변 중 자택 근처에서 연행됨, 이후 소식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그 당시 아버지가 감찰단을 했잖아요. 감찰단이란 게 뭡니까? 지역에서 지역민을 위하는 단체니 '반역자'로 취급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싶고.”

“처음엔 동사무소, 구청, 원호처에 가서 물어봐도 민간인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군인들에 한해서만 접수를 받는다고.”


○ 직업 및 활동

<지역 감찰단 간부였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살던 지역에 감찰단이 있었는데 거기서 간부를 맡아 활동하셨다고 해요.



○ 납북 경위

<지역 감찰단 간부였던 피랍인은 6.25사변 중 자택 근처에서 연행됨, 이후 소식 없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아버지가 감찰단으로 활동하실 때, 그런 일을 하면 다 잡아간다는 소문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포천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가 포천으로 와서 숨어있으라고 했는데, 이 양반이 말을 안 들었나 봐요. 끌려가는 걸 우리 이모님이 보셨대요. 미숫가루 싸서 주면서 '가다가 도망쳐 와라'고 했대요. 그리고는 영영 못 본 거죠.

문_ 누가 집으로 잡으러 왔던가요?
답_ 저는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아마 그런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잡으러 왔겠죠.

문_ 언제 어디에서 납북되셨는지?
답_ 집인지 감찰단 사무실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번동에서 6.25사변 중에 납북된 거죠. 들은 얘기로는 잡혀가실 때 제 어머니의 남동생 하고 같이 가셨나 봐요. 총을 옆에다 대고, 안 가면 죽인다는데. 가시다가 제 외삼촌은 배가 아프다고 뒹굴었대요. 그러니 귀찮으니까 북괴군이 저리 가라고 발로 찬 거죠. 그래서 외삼촌은 가다가 중간에 빠져나왔는데 ‘매형도 같이 가자’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버지는 못 나오신 거죠.



○ 납치이유

답_ 잘은 모르지만, 그 당시 아버지가 감찰단을 했잖아요. 감찰단이란 게 뭡니까? 지역에서 지역민을 위하는 단체니 '반역자'로 취급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싶고, 그러니 그런 사람을 붙들어 의용군으로 끌고 가지 않았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배우자가 행상을 하면서 생계유지함.>

답_ 어머니가 행상하시며 고생 많이 하셨죠.

문_ 어머니께서 평소 아버님 말씀은 많이 하셨나요?
답_ 아버지 말씀은 그렇게 많이는 안 하셨어요. 살다가 너무 고생이 되니까 다 이것저것 포기하시고. 가만히 보면 그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시다 돌아가신 거 같아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처음엔 동사무소, 구청, 원호처에 가서 물어봐도 민간인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군인들에 한해서만 접수를 받는다고. 최근에도 적십자사에 이산가족찾기 신청하고. 거기선 그냥 무한정 기다리란 거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 호적정리

<정리함>

답_ 1982년도에 호적을 정리했습니다. 저의 친할아버지(안영기)가 독립유공자시라 작은 아버지가 연금을 받을 기회가 됐는데, 형인 아버지가 이렇게 돼 있어서 안 된다고 해서 제가 법원에 가서 신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6.25때 생사불명이라고 판결을 받았습니다.



○ 연좌제 피해

<없었음>

답_ 그런 것도 전혀 없습니다.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 우선 6.25납북자가족협의회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요. 그러면 앞으로 정부에서도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하고 해 주고. 내 일처럼 귀담아 듣고. 이건 정말 국가적으로 큰 문제에요. 이 살아남은 사람들, 유가족들이 얼마나 뼈아프고 가슴 아프겠어요? 고통을 참고 살아가니. 원호청이나 그런 데에서도 이 납북돼 끌려간 사람들은 명단도 나와 있잖아요. 그걸 뭐 거짓말하겠어요? 그러면 검사라도 해서 접수를 받아 주던가 해야지. 57년이 지나서 이제 와서 진실 화해 정리 위원회 시작하고, 저도 작년에나 되어서야 접수를 받아주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민간단체에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정부는 여기의 몇 배를 더 해야 하는 건데 참.

문_ 더 하고 싶은 말?
답_ 이모님이나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실 때 어릴 땐 잘 몰랐지만, 정부가 참 너무 무심하다 싶고. 아버지는 지역에서 조금이라도 일을 돕겠다고 활동하신 분인데, 거기서는 반역이지만 여기서는 애국자 아닙니까? 독립유공자 할아버지의 피를 받아서인지 아버지도 그렇게 된 거 같고, 저도 동에서 예전에 반공연맹에서 활동도 좀 했었고. 그래서 남달리 이런 일에 애착을 더 갖는 것 같아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셨나요?
답_ 아버지가 잘 생각은 안 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이제 아이들도 장성하고 하니까,
당시 아버지가 서른도 안됐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섯 살 배기, 세 살 배기를 두고 끌려갔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참. 휴우. (눈물)

문_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
답_ 아버지, 살아계시면 건강하신지 궁금합니다. 돌아가셨으면 명복을 빌 뿐입니다. 아마 부처님께서 돌봐주실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문_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답_ 1983년도에 돌아가셨어요.

문_ 고생 많으셨죠?
답_ 그건 정말, 가족이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거죠.

문_ 유언은 남기셨나요?
답_ 유언이라기보다 평상시에 '너희 아버지와 살아보지도 못하고, 결혼 초기에도 (아버지가) 늘 돌아다니면서 그런 활동만(감찰단) 하시느라 나만 고생 많이 했다' 그런 얘긴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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