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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상렬 (증언자-최명숙)
이름: 관리자
2013-09-17 12:14:05  |  조회: 1990
2007. 7. 18. 채록
070718A 최 상 렬 (崔祥烈)

피랍인
생년월일: 1914년 2월 29일생
출생지: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고지리 168번지
당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피랍일: 1950년 8월 일경
피랍장소: 자택 인근 노상
직업: 모름
학력/경력: 휘문고, 보성전문대, 일본 유학 / 대한청년단 활동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매
외모/성격 : 미남형

증언자
성명: 최명숙(1948년생)
관계: 딸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이 나고 대한청년단 활동 전적이 있던 피랍인은 자택 다락에 숨어 지내던 중 상황이 궁금해 잠시 나갔다가 인근 노상에서 피랍,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감. 이후 소식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명예 회복

“수소문을 하고 다니셨는데 누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고 그러더래요. 그 때부터 연줄을 대고 빼낼 수 없나 알아보셨죠. 매일 저를 업고 형무소 앞에서 살다시피 하신 거예요. 그러니 간수가 '당신 남편 여기서 잘 먹고 있으니, 나오면 알려 주겠다. 집에 가 있어라.' 그랬대요. 그래서 나중에는 얼굴에 숯검댕칠을 하고 나를 업고는 형무소 앞에다 좌판을 벌였대요. 복숭아니 과일 같은 거. 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간수가 '가라' 그러니 안 가려고. 남편 나올 때를 기다린 거죠.”

“오빠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치매가 있으시고, 병원에 누워계시고 하니까 제가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이렇게 정말 역사가 다 묻혀 버리나 싶고. 아버지의 위상이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랄 뿐이고요. 돌아오지 않는 군인들, 무명용사처럼 덮어두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 직업 및 활동

<일본에서 유학하다 해방 전 귀국해 고향에서 대한청년단을 결성해 지부 단장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가 기반을 마련하려는 중 전쟁을 맞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해방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나라가 이 꼴인데 너는 무슨 공부만 하냐고 일본에서 나오라고 하셔서 나와서는 정말 당시 우익, 좌익으로 나뉘어져 시끄럽고 하니 아버지가 면에 나가 대한청년단(지부)를 결성을 해서 연설도 하고 그러셨대요. 그렇게 일을 보시다가 어떻게 되어서 서울로 올라오셨대요. 이제 살 길을 찾으신 거죠. 집안에 동생들도 있고 하니, 서울로 올라와서 기반을 잡으려고 하셨죠.



○ 납북 경위

<전쟁이 나고 고향의 대한청년단장 전적이 있던 피랍인은 자택 다락에 숨어 지내던 중 상황이 궁금해 잠시 나갔다가 인근 노상에서 피랍,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감. 이후 소식 없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서울 온 지 얼마 안 돼 바로 6.25전쟁이 나고, 일단 아버지는 대한청년단 전적이 있으니 장롱 뒤에 숨으셨어요. 그 때부터 어머니가 몰래 밥을 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정세가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잠깐 나갔다가 붙잡히신 거래요. 어머니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걸 모르니 저를 등에 없고 수소문을 하고 다니셨는데 누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고 그러더래요. 그 때부터 연줄을 대고 빼낼 수 없나 알아보셨죠. 매일 저를 업고 형무소 앞에서 살다시피 하신 거예요. 그러니 간수가 '당신 남편 여기서 잘 먹고 있으니, 나오면 알려 주겠다. 집에 가 있어라.' 그랬대요. 그래서 나중에는 얼굴에 숯검댕칠을 하고 나를 업고는 형무소 앞에다 좌판을 벌이고는 복숭아니 과일 같은 것을 팔 생각은 하지도 않았대요. 간수가 '가라' 그러니 안 가려고. 남편 나올 때를 기다린 거죠.

그러다 수복이 되기 직전에 빨갱이들이 퇴각을 하면서 형무소에 있는 사람을 총살을 하고 나머지는 오라줄을 묶어서 미아리고개로 다 끌고 갔다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니 어머니가 놀라서 뛰어가 봤더니 가마니로 덮어놓은 시체가 즐비하더래요. 그래서 아들들은 시어머니가 키울 거고, 시체를 찾으면 본인도 따라 죽겠다는 심정으로 그 많은 시체를 하나하나 다 확인을 했다는 거예요. 그랬는데 남편 시체가 없으니, '아, 끌려갔으면 똑똑하니 살아올 거다.' 하시며, 시골로 내려가신 거죠. 그때는 악만 남아서 무섭고 말고가 없더래요.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니. 일부는 미아리고개 가다가 쏴 죽였다고 해서 거기까지 가서 일일이 시체를 다 확인하고 그랬대요. 그때부터는 남편이 올 때까지 내가 자식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일념 하에 사셨대요. 나중에 아버지 만나면 '내가 당신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다' 당당하게 말하시려고 재혼도 안하고 살았다고 저한테 말씀하시더라고요.

답_ 방효남(1920년생: 납북자의 처) 6.25나고 그냥 오라고 그래서 동에 갔다가 잡혀갔어.
그때는 공부 많이 하고 부자로 사는 사람은 다 부르조아라고 죽였거든. 그래서 죽였는지 이북으로 끌고 갔는지 몰라.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서대문 형무소에 틀림없이 갇혀 있다는 것은 간수가 얘기했으니 알았고, 그 이후엔 모르죠.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배우자가 고생하며 자녀 셋을 양육함.>

답_ 허성빈(1923년생: 납북자의 제수) 6&#8228;25가 나고 하루는 빨갱이들이 총을 겨누고 들어와서는 마당에 쭉 늘어서라는 거야. 금방 죽일 것 같아. 한 사람이 날더러 막 야단치면서 어디있냐고 찾아내라고 난리야. 서울에 가셔서 모른다니까 왜 모르냐고 막 다그쳐. 옆에 동네 사람이 '이 사람은 제수다'라고 하니까 그 때부터는 조금 덜하다가 가더라고. 나중에는 집에 딱지 붙이고 내쫓고 그랬고. 그 당시 형님하고 아주버니와 딸 하나는 해방 이후 서울에 올라가서 사셨거든요. 전쟁 전에 아주버니가 우익 활동을 하셨지만, 매 맞고 하니까 동네 빨갱이들이 불쌍해서 숨겨도 주고 안 맞도록 도와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6.25전쟁 나고 붙잡혀가고 나니까, 형님이 내려와서 그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도장을 좀 찍어달라고 해도 하나도 안 찍어주더라고. 재산 다 차지하고 우리 집을 뺏으려고. 그러다 나중에 우리 식구들을 다 내쫓고 걸어 잠그고는, 우리 짐을 다 쓸어갔어. 그래서 우리는 쫓겨나서 집도 없이 돌아다니면서 자고. 그 사람들이 우리 집을 자기 사무실로 삼았어. 나중에 형님은 서울에서 아주버님을 찾다 못 찾고 시골로 내려오셔서 같이 사셨지.

답_ (최명숙) 어머니는 농사지으며 사셨죠. 저희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셨죠. 처음엔 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다가 이렇게 있다가는 자식들 공부도 못시키겠다 싶어서 서울로 올라오셨어요. 오셔서는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바느질 품팔이를 해 가면서. 시골 재산은 빨갱이에게 다 몰수 당했고, 당시 땅이 있다 해도 땅값이란 게 똥값이었잖아요. 다행히 저희 오빠가 공부를 잘해서 장학생으로만 학교를 다녔어요. 연세대 의대를 나오셨죠. 작은 오빠는 병 때문에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고, 저도 대학까지 마쳤고.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했어요. 가족회를 통해 명단을 확인해 보니 아버지가 '농부'로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왜 아버지를 농부로 신고했냐고 (집에) 물어보니 '만에 하나 살아계시면 북한에서 핍박받을까봐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일체 없었죠.



○ 호적정리

<정확히 모름>

답_ 처음에는 살아 돌아오신다고 해서 물만 떠놓고 그랬는데 언제인가 오빠가 '도저히 안 되겠다. 돌아가신 걸로 치자'며 제사 지내자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명예 회복>

답_ 오빠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치매기가 있으시고, 병원에 누워계시고 하니까 제가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이렇게 정말 역사가 다 묻혀 버리나 싶고. 아버지의 위상이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랄 뿐이고요. 돌아오지 않는 군인들, 무명용사처럼 덮어두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엄마 인생도 너무 그렇고.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지를 평소에 많이 그리워하셨는지?
답_ 저는 '아버지'라는 소리가 너무 해보고 싶고,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어요. '아버지'라 부르는 애들이 너무 부러웠고, 그래서 대신 작은 아버지에게 어떤 때는 '작은'은 조그맣게 말하고, '아버지'만 크게 부르고 그랬어요.

문_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답_ '아버지, 진정 당신이 내 아버지십니까? 없는 줄만 알았는데, 아버지, 이렇게 계셨네요.' (흐느낌) 그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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