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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장원식 (증언자-김용섭)
이름: 관리자
2013-09-17 11:58:47  |  조회: 2298
2007. 1. 17. 채록
070117A 장 원 식 (張源植)

피랍인
생년월일: 1911년 음력 9월 13일생
출생지: 서울
당시 주소: 인천시 율목동
피랍일: 1950년 9․28서울 수복 직전
피랍장소: 서울시 을지로 4가 국도극장 앞 골목
직업: 경찰관
학력/경력: 양정고보 졸업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외모/성격: 건장한 체격. 쾌활한 편

증언자
성명: 김용섭(1921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성격: 직접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경찰서 사찰과에서 근무했던 피랍인은 전쟁이 나고 주변의 감시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가족과 서울로 피난, 지인의 도움으로 해남여관에 머물던 중 여관에서 일하던 식모의 밀고로 출동한 인민군에 의해 피랍, 적선동 파출소로 잡혀가고 곧 9.28서울 수복이 되면서 소식이 두절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피해 가족 보상.

“갑자기 방에서 문을 툭 차고 인민군이 나오더니 이 사람을 잡아서 끌고 가는 거야. 나는 금방 쏴 죽일 줄 알고 뒤를 가만가만 따라가 봤더니, 큰 길로 가더니 어디로 쑥 들어가. 거기가 적선동 파출소야. '적선동 파출소' 하얀 간판 위에 '내무서'라고 쓴 것만 같다 붙여 놓은 거야. '적선동'은 그대 있고. 그 이튿날 아침에 밥을 해서 갔어요. 가서 '어제께 데려 온 사람 밥 좀 먹게 해 주세요'하니까, 지하실로 내려가더니 데리고 오더라고. 그래서 쳐다보니 구타당한 건 없어. 어저께 간 그대로야. 조금 떠먹더니 애들이나 먹이지 뭐 하러 왔냐며 날 이렇게 쳐다보더니 '당신이 이제 어떻게 살지?' 그러더라고요. 난 그저 아무 소리 안하고 밥그릇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내가 쇼크를 먹었어. 탄식하면서 돌아서 오는데 한국은행이 저만큼 보이고, 지금 백화점 있던 곳 근처야. 거기서부터 배가 살살 아픈 거야. 그 때 난 너무 너무 배가 아프고 통증이 와서 전봇대를 붙잡고 있으니, 일신 국민 학교에서 보초 서던 인민군 하나가 나오더니 '아주마이 왜 그러우?' 그러더라고. ‘애기가 나오려고 하는지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동료를 데려와서 나를 부축하고는 국민 학교 뒷골목 빈집 문을 따 주더라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래요. 그래서 거기 들어가서 앉아 있으니, 나는 아파하고 애들은 겁이 나서 둘이 껴안고 어미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 양수가 터져서 나오네. 속옷을 벗고 짧은 치마 바람에 앉아 있었는데 애가 쑥 나와서 '으앙'하고 우는 거야. 두 애들이 그것까지 봤어. 그게 조산된 거야.”


○ 직업 및 활동

<인천 경찰서 사찰과에서 근무함>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지금 내가 남편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데, (남편)이름은 수원경찰청 인사과에 있어요. 직업이 경찰관이었거든. 조소앙씨가 추천서를 써서 경찰청장한테 보내줬어요. 그래서 특채로 경사 발령을 받았어. 정복을 내 준 그날부터 그걸 입고 경찰대학에 가서 한 달간 수료를 하고, 경찰청 사찰과에 근무했다고. 지금 사찰과가 없어. 당시는 빨갱이들을 다루니까 그게 있었지. 그러다 인천 경찰서로 전근을 가서 사찰과에서 근무를 한 거야.



○ 납북 경위

<경찰서 사찰과에서 근무했던 피랍인은 전쟁이 나고 주변의 감시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가족과 서울로 피난, 지인의 도움으로 해남여관에 머물던 중 여관에서 일하던 식모의 밀고로 출동한 인민군에 의해 피랍, 적선동 파출소로 잡혀가고 곧 9.28서울 수복이 되면서 소식이 두절됨>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인천 경찰서로 전근을 가서 사찰과에 있던 때였는데, 어느 날인가 많이 늦게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숙직인가? 참 이상하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와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러니까 말도 말라고, 오늘 두 놈 전향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그래요. 아무 것도 모르는 놈들이 뛰어들어 빨갱이 노릇을 하니까 올바른 길로 인도하느라고 유치장에서 내어 놓고 조사하고 전향시키고 온 거예요. '내일 또 한 놈 더 있는데 힘드네. 피곤해서 자야겠다'며 잤어요. 그런데 새벽에 누가 문을 똑똑 두드려요. 가만히 일어나서 문을 여니까 집 주인 할머니가 와서 '쉿' 그래요. 그리고는 발소리 내지 말고 대문 밖을 내다보래요. 나무 대문 틈새로 보니까 빨갱이 두 놈이 총을 겨누고 서 있는 거야. 그래서 살금살금 와서 "여보 빨갱이 두 놈이 총을 겨누고 있어요." 하니까,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차려입고 일곱 살, 네 살 된 애들이 깰까 봐 숨도 크게 못 쉬고 가만히 한참 동안을 앉아 있었어요. 얼마나 있었는지 몰라요.

그러다 남편이 일어나서 들창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니 없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대문 밖에 나가 보니 없어요. 그 길로 애들을 데리고 인근에 다섯 째 삼촌 집으로 피신을 했어요. '뒷방에 숨어 있으라'해서 우리는 그리로 숨었고, 삼촌은 상황을 살피러 밖에 나가셨어요. 다녀오시더니 '큰일 났다. 인천 경찰서장이 그놈들한테 붙잡혀서 소달구지에 매달려 밤새 끌려 다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른다'그래요. 그리고는 '너희도 여기 있으면 안 되겠구나' 그래요. 그리고 담 날 아침에 나갔다 오시더니 앞 집에 순경이 세들어 사는 데 잡혀 갔다는 거야. 앞 뒷 집이니 우리도 위험한 거지. 인천은 갈 데가 없으니 서울 넓은 데로 피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하셔서, 논두렁을 따라 애들을 데리고 간 거야.

난 마침 그 때 임신 중이었어. 걸어서 한강까지 왔는데 다리가 끊어져 있더라고. 그런데 나룻배로 건너 주더라고. 그래서 남대문 시장 입구 쪽으로 왔어요. 남편 친구 아버지가 여관업을 하시는데 남편이 출장 다니면 그 집에서 자고 가고 했대요. 천일여관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길래 들어갔더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위험하다고 빨리 피하래요. 그러면서 '중앙청 뒤에 해남 여관이 있는데 우리 식모가 거기서 집을 지키고 있어, 우리 집 식모 알지?' 그래요. 남편이 안다고 하니까 빨리 그리로 피하래서, 우리는 그 쪽으로 갔어요. 가는 길에 보니 인도에는 사람들이 죽어 있고, 송장을 뛰어넘어 건너가야 할 정도였어요. 옆에 두어 사람이 지나가는데 남편이 '저기 검사 아들 잡혀가네, 그 집 가서 일러줘야 겠다.'고 해요. 그러면서 서둘러 해남여관에 들어가니까 그 집 식모가 '오셨어요?' 하더라고. 그 식모가 아주 잘생겼어. 부잣집 마누라 같아. 그렇게 한 동안은 잠잠히 있었는데, 당시 소문이 인민군이 들어오면 주인은 하채로 내려가고 종은 상채로 올라온다는 말이 있었거든. 그러니 그 때서부터 그 마누라가 화장을 하고 '내가 이 집 주인이다' 하기 시작한 거야. 여관이 얼마나 큰지, 방이 꽤 많고, 안채는 또 따로 있었어. 이 여편네는 그게 자기 집이 되는 줄 알고, 우리를 찌른 거야. 경찰관이 숨어 있다고.

처음에 여관에 머물면서 며칠 있다가 남편이 '나 밖에 좀 나갔다 올게' 그래요. 위험한 데 나가지 말라고 했더니, 신문이 있나? 라디오가 있나 도통 바깥소식을 들을 수 없다 이거야. 이 박사님이 부산에 가 있어도 거기서 가만히 계시진 않으실 거래. 미군이 와도 올 거라며 나가보겠다며 다녀오더라고. 그리고 며칠 있다가 또 한 번 나갔어. 나갔다 여관으로 들어오면서 큰 애 이름이 영식이거든. '영식아'하고 부르는데, 갑자기 방에서 문을 툭 차고 인민군이 나오더니 이 사람을 잡아서 끌고 가는 거야. 나는 금방 쏴 죽일 줄 알고 뒤를 가만가만 따라가 봤더니, 큰 길로 가더니 어디로 쑥 들어가. 거기가 적선동 파출소야. '적선동 파출소' 하얀 간판 위에 '내무서'라고 쓴 것만 같다 붙여 놓은 거야. '적선동'은 그대로 있고. 그 이튿날 아침에 밥을 해서 갔어요. 가서 '어저께 데려 온 사람 밥 좀 먹게 해 주세요' 하니까, 지하실로 내려가더니 데리고 오더라고. 그래서 쳐다보니 구타당한 건 없어. 어저께 간 그대로야. 조금 떠먹더니 애들이나 먹이지 뭐 하러 왔냐며 날 이렇게 쳐다보더니 '당신이 이제 어떻게 살지?' 그러더라고요. 난 그저 아무 소리 안하고 밥그릇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리고 며칠 밤인가를 잤는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 그 전에는 조용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 9.28수복 됐다고 그 놈들 다 도망간다고 그래요. 그러니 숨어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는 밖에서 소리를 지르고 다닌 거예요. 그래서 나는 안되겠다 싶어서 애들을 데리고서 여관 밖으로 나왔어요. 나와서 적선동 파출소로 왔어요. (남편이 있는) 지하실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발이 딱 붙어서 계단 두 개 올라갔는데 더는 못 올라가겠는 거야. 만약에 사람을 죽여 놨으면 내가 어떻게 할 거야? 시체를 어찌 할 수도 없고. 차라리 안 보고 가는 게 낫지 하고는 그냥 애들 데리고 인천 집으로 돌아 왔어요.

주인집 할머니가 '애들 아빠는 왜 안 왔어?' 물어요. '그놈들한테 붙잡혀 갔어요.' 했더니, '저런' 그러더라고. 우리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니 부엌 바닥에 피가 한강이에요. '할머니, 여기 왜 이래요?' 그랬더니, 그 놈들이 젊은 놈을 하나 데려와서 방문을 열어보더니, 나중에 총을 쏴서 죽였대요. 그 놈이 밀고를 했던 거야. 여기 경찰관이 산다고. 와서 보니 빈방이잖아. 그러니 (밀고한) 그 놈을 죽여 놓고 간 거야. 거기가 하숙치는 집이니 남자들이 시체는 끌어다가 처리를 한 거였어. 그래서 나는 양동이에 흙을 한 바가지 퍼 와서 피를 다 덮고, 방문을 여니까 새 털이불이 다 뜯겨 있고, 인천경찰서에서 쌀이 한 가마니 나왔었는데 쌀도 없어졌고, 결혼사진 액자 하나 밖에 없는 거야. 나머지는 다 가져갔어. 그러니 이불 털은 다 쓸어서 태워버리고, 그 이후엔 근근이 살았지. 내가 산 거 하나도 잊어버린 거 없어. 아휴. 말도 마.

문_ 인천 집에서 서울로 피신해 도망 나올 때는 언제쯤?
답_ 인민군 들어오고, 이틀인가 후였어. 날짜는 정확히는 몰라.

문_ 잡혀간 날짜는?
답_ 잡혀가고 이내 9.28수복이 됐으니까. 그 때 뭐 달력이 있어 뭐가 있어. 정확히는 몰라.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납치돼 갔는데 무슨 소식을 들어.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남편이 피랍된 후 임신 중이던 배우자가 자녀 둘을 데리고 인천 집으로 내려가던 중, 남대문 인근 노상에서 쇼크로 조산,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귀가해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으나 끝내 그 아이는 도중에 사망, 이후 배우자가 친정 동생과 살면서 고생하며 자녀를 키움>

문_ 서울 피난생활을 마치고 인천 집으로 돌아가셔서 그 때부터는 어떻게 사셨나요?
답_ 아이고. 말도 마슈. 집을 치우고 나니 주인할머니가 동에 가보라더라고. 동에 가면 배급을 준다고. 가서 '서울에 피난 갔다가 왔다'고 하니까, 벼 반가마니를 갖다 주더라고 (9.28수복 이후). 생전 절구질도 안 해 봤는데, 절구에 벼를 쪄서 밥도 해 먹고 죽도 끓여 먹고 그 때는 살았지. 아휴. 내가 산 건 말도 못해.

내가 빠뜨린 게 있는데, 우리가 해남여관에서 있다가 우리 국군이 들어오니, 처음 우리에게 해남여관을 소개해 준 사람이 사는 천일여관을 가야 할 거 아냐. 남편 친구 집이니까. 거길 가보니 천일 여관이고 남대문 시장이고 다 폭격을 맞아서 하얀 연기만 올라오고 있는 거야.
거기서 내가 쇼크를 먹었어. 탄식하면서 돌아서 오는데 한국은행이 저만큼 보이고, 지금 백화점 있던 곳 근처야. 거기서부터 배가 살살 아픈 거야. 빨리 가야겠다 싶어서 막 걸어가다가 아프면 조금 앉아서 쉬고 하면서 가는데, 옆에 일신 국민 학교를 보니 인민군들이 모여서 노래를 하고 하더라고. 그 때 난 너무 너무 배가 아프고 통증이 와서 전봇대를 붙잡고 있으니, 일신 국민 학교에서 보초 서던 인민군 하나가 나오더니 '아주마이 왜 그러우?' 그러더라고. ‘애기가 나오려고 하는지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동료를 데려와서 나를 부축하고는 국민 학교 뒷골목 빈집 문을 따 주더라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래요. 그래서 거기 들어가서 앉아 있으니, 나는 아파하고 애들은 겁이 나서 둘이 껴안고 어미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 양수가 터져서 나오네. 속옷을 벗고 짧은 치마 바람에 앉아 있었는데 애가 쑥 나와서 '으앙'하고 우는 거야. 두 애들이 그것까지 봤어. 난 꿈쩍도 못하고 앉아있는데 마침 인민군들이 어디 가서 할매를 데려온 거야. 그 할머니가 보고 ‘이를 어뜩하냐?’면서 태를 잘라 주고 홑이불을 가져 와 애를 싸서 뉘여 놓고 가더라고.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만 하고 있으니까 그 할머니가 미역국하고 밥 한 그릇을 가져왔어. 그건 애들 주고 하룻밤 자고는 다음 날 그 집에서 나왔어. 나와서 그냥 '인천으로 가야지'하고 인천으로 온 거지. 그게 조산된 거야. 제 날짜도 아닌데. 애가 아는지 젖도 잘 안 빨고.

9.28수복이 되고는 해병대가 먼저 상륙했었어. 인천 상업고등학교에 해병대가 들어와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마침 거기 의사가 있었어. 내가 애를 안고 의사한테 보였더니, 의사가 '하사관, 내방에다 불 좀 짚여 놔' 그래요. 불을 떼 놓고 방이 뜨끈하니 애를 안고 당신 방으로 들어가서 진찰하고 주사 놓고 간병을 했어. 2-3일을 있었는데, 애가 안 나아. 그 이후엔 다시 데려가서 젖도 먹이고 보살피라 해서 데려오고, 가끔 그 의사가 와서 진찰도 하고 했는데, 하루는 또 너무 열이 많아 데리고 갔더니, 집안에 뉘여 놓고 치료했는데도 결국 죽더라고. 그 때도 그 의사가 하사관을 불러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라고 보내니, 트럭이 두 대가 가대. 가서 묻어주고 오더라고. 그러고 나서는 뭐든 해서 애들하고 살아야겠다 싶어 남의 집일 다니며 이렇게 저렇게 살아왔어요. 나보다 10년 아래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폐가 안 좋았어요. 약으로 치료를 하고 결혼을 해서 딸 낳고, 아들 쌍둥이를 낳았어요. 그래서 내가 그 동생네 집에 들어간 거예요.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 '이 세상에 너희 형제밖에 없다. 네 동생은 몸이 약해서 밥 한 번 못해봤고, 너희 언니는 저렇게 혼자 됐으니 서로가 불쌍히 여기고 돌봐주라'고 해서, 그 집 남편 성질이 나빠서 유모도 못 견디고 하니 내가 거기 산 거지. 동생네 애들 키우고. 그 바람에 내 자식도 살고.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인천경찰서에 새 서장이 왔잖아. 전 서장은 (인민군에) 끌려 다니다 죽고, 부인도 생사를 모르고, 장모는 미쳐서 시장바닥 돌아다니고. 내가 새 서장을 만나서 '저희 남편이 사찰과에 근무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서류 좀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전부 서류가 소실되고 없다는 거야. 대책이 없는 거지. 그렇게 그냥 살다가 이번에 사람들이 이산가족 만나고 하는 거 보면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몇날 며칠 울다가 인천 경찰서도 가고 했는데, 가서 물어보니 거기 서류가 다 수원 경찰청으로 넘어갔대요. 그래서 인사과에 가서 책을 뒤지니, 장원식 이름이 나오더라고. 그걸 가지고 본적지에 가서 호적을 떼니까 이름이 장의형으로 돼 있는 거야. 그래서 종친회에 가니까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서류가 없다는 거야. 이름을 고치지도 못했지. 어쨌든 그걸 다 모아서 원호처에 서류를 내니까, 이름이 다르니 보상금을 못 준다는 거야. 그러니 어쩌면 좋아.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없어요. 서류에 이름만 똑같아도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름이 다르니 못한다는 거야. 내가 아들 둘이 있는데, 하나는 죽고, 큰 아들이 있는데 며느리가 들어오고 괄시가 심해서 양로원으로 갔어요. 양로원에서도 잡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도와주시는 분들이 불쌍히 여겨서 지금 사는 여기(시설)로 데려다 줬어요. 처음엔 다른 사람들도 살았는데, 창살 없는 감옥 같다고 다 나가고 나 혼자 외롭고 춥게 사는 거예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피해가족 보상>

답_ 정부에 바라는 건 생사를 확인하든지 빨리 데려오든지 해야지 저렇게 놔두면 어떡할 거야. 그리고 또 이름이 장원식인데 (서류에는) 장의형으로 돼 있으니 와도 난 보상도 못 받게 생겼어.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평소에 남편 생각나지 않으세요?
답_ 어제 밤에도 꿈에 보였어요. 요즘 특히 꿈에 보여요. 밥 한 그릇이 있는데 반은 먹었고, 반은 남아 있었어. 그런데 사람은 없어. 이내 어디선가 (남편이) 들어 오더니 '남은 것을 먹어야 겠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왜 드시다 말고 나가셨어요?' 하니까 '이제 먹어야지' 이러더라고. 생시나 똑같아. 한 번인가는 내 옆에 드러누워 있어. 그 꿈을 꾸고는 나를 데려가나 보다 했어요. 속상해서 말도 못해.

문_ 하고 싶은 말?
답_ 만나면 왜 이렇게 나 고생시켰느냐고 하겠지. 내가 너무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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