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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채록

납북자-김원립 (증언자-김광오)
이름: 관리자
2013-09-17 12:14:56  |  조회: 2202
2007. 9. 13. 채록
070913A 김 원 립 (金元立)

피랍인
생년월일: 1920년 10월 1일생
출생지: 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창내리 78번지
당시 주소: 상동
피랍일: 1950년 8월 5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대한청년단(지부) 감찰부장
학력/경력: 안중중학교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남매
외모/성격: 신장 167cm의 활달하고 쾌활한 성격

증언자
성명: 김광오(1942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농사일을 하면서 대한청년단 감찰부장으로 활동했던 피랍인은 좌익들의 표적이 되었고
1950년 8월 5일경 장총을 든 인민군이 자택으로 찾아와 연행해감.
- 아들을 잃은 피랍인의 아버지는 이후 정신이상으로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들은 남은 재산으로 어렵게 생활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명예 회복


“대한청년단 오성면 감찰부장으로 계셨어요. 매일 지서에 나가서 빨갱이들을 잡아들여서 정부 수립될 때까지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대한청년단이 지서에 나온 사람들과 협조해 모든 일을 돌보곤 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야, 내 동생이 거기 그런 위치에 있으니까 신경쓰지 말아라. 자수해라." 그래서 일단 자수를 했어요. 자수를 하고 그 이후에 매제하고 둘이 밀 타작을 했어요. 밀 타작을 한 나머지를 재타작을 하는데 8월 5일 더울 때 서너 시쯤 됐는데 보위부 애들인가, 지방 빨갱이 두 사람이 우리집에 왔어요. 한 사람은 우리집 문 앞에서 아버지를 찾았고, 뒷판자문으로 보니까 인민군이 쓰던 장총을 들고 뒤에 논에서 기다리더라고.”


○ 직업 및 활동

<농사일을 하면서 대한청년단 감찰부장으로 활동>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안중중학교를 졸업하시고 장가드신 이후에 농사일을 하셨어요.

문_ 다른 활동들도 하셨어요?
답_ 대한청년단 오성면 감찰부장으로 계셨어요. 매일 지서에 나가서 빨갱이들을 잡아들여서 정부 수립될 때까지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대한청년단이 지서에 나온 사람들과 협조해 모든 일을 돌보곤 했어요.



○ 납북 경위

<1950년 8월 5일경 장총을 든 인민군이 자택으로 찾아와 연행해 감, 피랍인의 아버지에게 동생뻘 되는 서병찬, 당시 경기도 지부 위원장과의 친분관계를 믿고 순순히 따라갔으나 그 날 저녁 바로 다른 곳으로 이송되어 소식을 알 수 없게 됨>

답_ 1950년 6월 27일 즈음 고모부님께서 이승만 박사를 경호하는 경무대 경찰로 있었어요.
그런데 27일 아침 10시쯤 칼빈 소총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왔어요. 소총을 가지고 집으로 와서 (다른 가족들이)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고모부님을 그때 처음 봤어요. 그때 할아버지는 토지개혁 되는 바람에 땅을 조금 나라에 헌납하고(빼앗기고) 땅을 일부 정리해서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양조장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 4형제들만 일꾼을 들여서 집에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들, 딸들은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계셨어요. 그러다가 6.25가 났다고 해서 아버지는 피난 갈 준비를 했어요. 미숫가루를 준비해서 그 이튿날 아산만으로 떠났어요. 아산만이 아버지 외갓집이야. 아산만에 일주일동안 피난을 가 있었어요. 그런데 6.25때가 지금처럼 농사일이 모를 심거나 그럴 때인데 모도 못 심고 가셨기 때문에, 집이 걱정이 되어서 일주일 만에 썰물일 때 갯바닥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할아버지한테 (누가?) ‘형님, 형님’하고 그러니까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야, 내 동생이 거기 그런 위치에 있으니까 신경쓰지 말아라. 자수해라." 그래서 일단 자수를 했어요. 자수를 하고 그 이후에 매제하고 둘이 밀타작을 했어요. 밀 타작을 한 나머지를 재타작을 하는데 8월 5일 더울 때 서너 시쯤 됐는데 보위부 애들인가, 지방 빨갱이 두 사람이 우리집에 왔어요. 한 사람은 우리집 문 앞에서 아버지를 찾았고 뒷 판자문으로 보니까 인민군이 쓰던 장총을 들고 뒤에 논에서 기다리더라고. 왜냐하면 그 당시 수성리에 아버지 동료로 있던 진영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잡으러 왔다가 그 사람이 판자문을 통해 논으로 해서 도망을 갔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도망갈 줄 알고 뒷판자문에서 총을 들고 기다린 거예요. 그러고 한 놈은 들어와서 아버지를 찾았고.

그 당시 수성리에 서병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골수 빨갱이었어요.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할아버지께 용돈을 받아쓰던 사람이예요. 서병찬은경기도 지부 위원장이예요. 동생이라는 사람이 경기도 지부 위원장이니까 할아버지는 아버지께 염려 말라고 해서 아버지는 태연히 목욕하고 옷을 입고 따라간 거예요.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에 할아버지를 따라서 우리 동네에서 한 3킬로 되는 수성리에 따라갔더니 벌써 아버지는 납치된 날 저녁에 이송이 되어버렸어요. 면 소재지에 묶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날로 소식이 없는 거죠.



○ 납치이유

<대한청년단 감찰부장으로 활동하며 좌익 검거에 앞장서서 역할을 했음.>

답_ 대한청년단 감찰부장으로 있으면서 빨갱이들을 잡았어요. 8.15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 정권이 들어서면서 빨갱이들이 소란을 부리니까 거기에 대한 대처를 우리 아버지가 대한청년단을 이끌고 하셨어요. 빨갱이한테는 대한청년단이 경찰보다 더한 적이야. 그래 가지고 일단 남한으로 밀고 내려오자마자 대한청년단부터 잡아들였어요. 1차적으로 잡아들인 게 대한청년단이예요. 그래서 그렇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납치 후 소식

<알 수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교통편도 전화시설도 없고, (소식을) 몰라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남은 재산이 있어 근근이 생활함, 아버님이 납치되고 할아버지는 정신이상으로 돌아가심.>

답_ 농사지어서 애들 학교 보내고 근근이 살았죠. 다행히 논이 한 2만평 있었어요. 직접 농사짓던 땅이 있어 작은 아버지도 대학까지 다니고,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부를 마쳤습니다. 나도 국민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덕수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를 다녔어요.

문_ 가족들은 어떠셨어요?
답_ 그런 이후에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잃은 이후에 정신이상이 되었어요. 교통이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연락을 못했어요. 당시 할아버지 땅이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할아버지 정신 이상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 납치되고 그 땅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적십자사에 신고했어요. 구청에도 했고. 납북자 신고를 했는데 힘이 없더라고. 작년에 하고 4, 5년 전에도 했어요. 납북사건 있은 직후에 한 건 아니고 내가 서울로 와서 나중에 신문에 보고 했지.



○ 호적정리

<사망신고>

답_ 집안이 폐가가 되다시피 하니까 땅 문제가 있었어요. 내가 사업을 했는데 땅을 팔 때 상속을 받아야 되겠더라고. 그래서 아버지를 실종신고를 못하고 사망처리를 했어요. 그게 62년도인지 63년도에 했어요. 할아버지는 1958년 음력 5월 18일에 정신이상으로 돌아가셨어요.

○ 연좌제 피해

<요시찰 대상으로 감시를 받음>

답_ 내가 군대를 가서 경비학교 정보과에 있었어요. 정보과에 들어갈 때도 신원조회할 때 조금 문제가 있더라고. 일단 통과가 돼서 복무를 마치고 1965년 12월 13일에 제대했는데 집에 와서 2년 동안 있다 보니까 경찰들과 가까이 지냈어요. 근데 경찰들이 나한테 일절 얘기를 안 하다가 어느 날 술자리를 같이 하는데 강순경이라는 사람이 우리집 내력을 알더라고. 메모지를 꺼내더니 “요시찰 대상이다.” 그래요. 6&#8228;25때 납북된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요시찰 대상이라는 게 무슨 얘기냐 하면, 다시 간첩으로 넘어와서 문제가 될까봐 요시찰 대상이라는 거야.
그러면 1950년도에 6.25가 났는데 한 20여 년 동안 나와 우리 집안에 대해 요시찰 대상으로 되어 있었다는 거야. 이게 분통이 터지는 일이더라고. 막말로 대한청년단이 국가 건립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국가유공자와 마찬가지인데 이 사람들이 공산당이 돼서 간첩으로 넘어올까봐 요시찰 대상으로 했다는 게 진짜 기분 나쁘더라고. 내가 그래서 강순경을 술 먹고 때리고 난리 났었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그걸로 인해 6.25때 피해를 본 우리 집안이 요시찰 대상이라니, 내가 그런 얘기도 했습니다.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명예 회복>

답_ 지금이라도 생사확인을 해주고, 애국자가 독립운동가만 애국자가 아니예요. 6.25때 대한청년단에 있으면서 국가의 기틀을 잡기 위해 일익을 담당했던 분들이 애국자예요. 그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피해를 봤다면, 이북에 그렇게 납치당하고, 공산당 빨갱이들이 대한청년단 사람들을 원수로 봤어요. 그렇게 납치해 죽였다면 애국자예요. 애국자의 대우를 해주고 이 나라의 정통성을 살리라 이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해줘야 돼요.
나는 아버지를 6.25때 납치당하고 이 나라 이 정권들이 무모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걸 보고 분통이 터져서 얘기하면, 그네들은 어떻게 자랐냐 하면 그런 것들을 모르고 자랐단 말이야. 그리고 보리밥, 보리죽을 몰라. 우리 세대는 6.25이후에 5.16 군사혁명 이후에 피땀 흘려서 이 나라를 만들어냈어. 그래서 오늘날 경제대국을 만든 우리야.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은?
답_ 우리 아버님이 세상을 잘못 태어나서 억울하게 납치를 당하시고 이런 일을 겪었는데 이것은 아들인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6.25 납북당한 사람들이나 이산가족을 이해해줘야 해요. 그 사람들이 이런 시기에 태어나서 문제가 이루어졌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이야기예요. 가슴 아픈 일이예요. 대한민국에서 앞으로의 정권에서는 이건 분명히 해야 돼요. 대한청년단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무엇을 했고 어떻게 이 나라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것이 나와줘야 돼요. 야인시대를 보면 민간인들이 총을 쏘면서 그렇게 빨갱이들하고 싸웠어요. 그렇게 해서 이 나라 정권이 수립된 거야. 노무현이나 젊은이들이 아느냐고. 옛날에 이루어진 일을 파헤쳐서 그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고 이해를 못 시킨다면 이 나라의 화합은 절대로 안 돼. 한 나라가 경제 발전이 되고 우뚝 서려면 우선 화합을 해야 돼. 화합을 못 시키는 정부는 말살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내가 큰아들로 우리 집안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업한다고 다 털어 먹은 게 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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