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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성봉 (증언자-이태찬)
이름: 관리자
2013-09-17 12:07:09  |  조회: 2046
2007. 1. 29. 채록
070129B 이 성 봉 (李聖鳳)

피랍인
생년월일: 1904년 6월 18일생
출생지: 평북 박천군 용계면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 147-3
피랍일: 1950년 7월 10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소아과 의사
학력/경력: 경성의전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8남매
외모/성격: 중키에 피부가 희고 말이 없는 편임.

증언자
성명: 이태찬(1931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1950년 7월 10일경 집으로 찾아 온 정치보위부원 2~3명에 의해 연행됨. 이후 집을 점거하고 가구를 봉인하고 시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들어와 건너방에 거주.
- 피랍인은 저명한 소아과 의사로 서울 계동에 병원을 개업중이었고, 남한에 거주하는 평북 박천군민 회장..
- 공산권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북한총람(함재덕 저)에 기재된 6․25전쟁 납북인사들의 북한에서의 근황을 보면, 1952년초 평양소련적십자사 외과의사로 봉직하다가 1959년 초에 리보건소 의사로 전락하신 것으로 밝혀져 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6.25 나고 집에 계셨는데, 7월쯤에 사복한 사람이 둘인가 셋이 집으로 와서 데려갔는데, 군인이 아니니 우리는 정치보위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 그 사람들이 집을 봉해놨어. 안방이고 사랑채고. 그리고 우리한테는 방 하나만 내 주고.”

“이성봉 소아과병원을 하셨어요. 소아과에서는 손꼽히는 몇 사람 중 하나셨지. 환자가 많았지. 그 다음엔 남하한 고향사람들과 박천군민회도 조직하시고, 박천군민회장도 하셨어.
기록에는 한민당 재정부장을 하셨다고 나왔는데, 이건 뭐 병원에만 있던 분이셨는데,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아.”



○ 직업 및 활동

<소아과 의사, 박천군민회장 外>

문_ 고향이 평북인데 언제 남하하셨는지?
답_ 해방 전 대학 때부터 와 계셨지. 서울의전에서 의학박사학위 받았으니까.

문_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던 것인지?
답_ 이성봉 소아과 병원을 하셨어요. 소아과에서는 손꼽히는 몇 사람 중 하나셨지. 환자가 많았지. 그 다음엔 남하한 고향사람들과 박천군민회도 조직하시고, 박천군민회장도 하셨어.
기록에는 한민당 재정부장을 하셨다고 나왔는데, 이건 뭐 병원에만 있던 분이셨는데,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아.



○ 납북 경위

<1950년 7월 10일경 집으로 찾아 온 정치보위부원 2~3명에 의해 연행됨, 이후 집을 점거하고 가구를 봉인하고 시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들어와 건넌방에 거주, 가족들은 뒤채로 쫓겨감>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6.25나고 집에 계셨는데, 7월쯤에 사복한 사람이 둘인가 셋이 집으로 와서 데려갔는데, 군인이 아니니 우리는 정치보위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 그 사람들이 집을 봉해놨어. 안방이고 사랑채고. 그리고 우리한테는 방 하나만 내 주고. 그리고는 시에 있는 사람이 건넌방으로 오더니 접수해서 출퇴근 하더라고. 우리는 뒤채에서 살고.

문_ 뭐라고 하면서 데려가던가요?
답_ 우리도 그 땐 의용군으로 잡혀갈까 봐 숨어있었을 때인데, 자세히 보진 못했고. 별안간 와서 모시고 갔어.

문_ 납치 피해 외의 피해는?
답_ 안방을 막아서 출입을 못하게 했어. 차압할 때 봉하는 것처럼. 그리고 건넌방에는 서울시청에 근무한다는 사람이 와 있었고. 우리는 뒤채랑 병원 꼭대기 다락방 같은 곳에 숨어있었지. 의용군에 끌려갈 나이였기 때문에.

문_ 가족들의 찾으려는 노력은?
답_ 당시 우리 병원에서 납치인 모임이 있었어. 그래서 당시 젊은 사람들이 평양까지 찾으러 갔었어. 병원을 사무실로 해서, 납치된 가족들이 서로들 궁금하니까 모여서 의논하고 납치명부 가지고 갔었지. 당시 백인제씨가 죽었다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 그것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문_ 다른 가족들의 납치 피해는?
답_ 큰 매부도 끌려갔거든. 최일준이가 그래. 서울대에 있었는데, 서울대 사람 전부 끌고 갔어. 의사, 간호사 전부 데려갔어.



○ 납치이유

<국내에서 손꼽히는 소아과 의학박사로 이용 가치가 있었고, 특별히 정치적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평북박천 군민회장이었으므로 남한에서 북한출신자들이 소재파악을 하고 있었음.>

답_ 정치적인 일을 하신 것도 없고, 그전 박천군민회장 하신 게 걸리면 걸릴까? 군민회장을 했으니 이북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을 병원을 연락처로 하고 오곤 했거든. 병원이 찾기가 쉽잖아. 또, 민주당에 나영균씨라고 있는데 그 분하고 친하셨어. 그래서 그 분하고 무슨 정당 발기인을 했다던가 하는 데 그것도 정확히는 잘 몰라.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전혀 못 들었지. 작은 아버지가 전기 기술자로 이북에 계셨거든. 거기서 김일성이가 대우를 해 줬지. 그 나이에 전기 기술자가 별로 없었거든. 그래서 수평댐 책임자로, 과장으로 있다가 해방 후에 다른 사람들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김일성이가 들어오면서 작은 아버지는 평양에 전기 책임자로 있었지. 나중에 미국 시민권자인 사촌형이 북한에 들어가 작은 아버지를 만나봤는데 (아버지 납북과 관련된 소식은) 아무 것도 모르시더래. 만일 작은 아버지가 아셨다면 찾아봤을 텐데.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배우자와 8남매가 병원을 세를 주어 생활함>

답_ 병원이 있고 했으니 생활은 했지 뭐. 병원 세 주고.

문_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아버지 많이 보고 싶어 하셨나요?
답_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우리한테야 표현 안하셨어. 혼자만 그러셨지 뭐.

문_ 돌아가셨을 때 뭐라고 하시진 았았는지?
답_ 치매가 있으셨어.



○ 정부의 노력

<없었음>



○ 호적정리

<정리됨>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그런 걸 우리가 당할 이유가 있나 뭐. 이건 납치인데.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 바랄 게 뭐 있어. 이제 다 끝난 건데. 세월이 얼만데.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지와의 남은 기억은?
답_ 아버지는 별로 말씀이 없으셨어. 까다롭지도 않으셨고.

문_ 아버지가 많이 그립지는 않으신지?
답_ 가끔 있었지 뭐. 납치된 날짜로 제사 지내고 있어. 좀 오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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