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서인석 (증언자-서혜원,서계원)
이름: 관리자
2013-09-17 11:56:28  |  조회: 2520
2006. 12. 4. 채록
061204A 서 인 석 (徐仁錫)

피랍인
생년월일: 1905년 5월 9일
출생지: 서울 종로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상도동
피랍일: 1950년 7월 14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서울공고 교감
학력/경력: 중앙고, 동경제대 상과 졸업/
직계/부양가족: 부, 배우자, 자녀 2남 5녀
외모/성격: 귀공자 타입, 곧은 성격. 여기에 마침표 넣는 것도 넣을 건지 통일 필요합니다.


증언자
성명: 1.서혜원(1931년생) 2.서계원(1950년생)
관계: 1.딸 2.아들
증언 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서울공고교 교감이던 피랍인은의 가족이 걱정되어 차마 피난하지 못하고 자택에 거주하던 중 전쟁 전에 좌익사상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교사선생들의 압박으로 학교로 나감, 그러던 중 학교에서 동료 교사선생들과 서대문문 형무소로 연행됨.
- 이후 피랍인과 함께 납치, 철원까지 갔다가 도망 온 사람이 소식을 전해 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갑신정변을 일으키셨던 서광범이에요.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와 함께 약관 20세 때 우리나라를 개혁해 보려고 했었죠. 그 분이 나중에 미국 건너가시고 하면서는 돌아와서 법무 대신도 하시고, 문무 대신도 하고 그랬죠. 그러니 당시 고종황제 때 하사받은 땅도 많았고, 아버님은 부유한 집안에서 크셨죠. 그러다가 아버지가 납북되시고 나서하시니 집안이 몰락한 거죠.”

“물론 저희 같은 사건의 당사자들은 북한에 대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대립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포용 정책을 써서 길을 열어 주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신에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자꾸만 거론을 해야죠. 주는 것만큼 조금씩 조금씩 받아내야죠. 한꺼번에 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구요. 제일 좋은 게 빨리 남북관계가 잘 돼서 왕래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버지 행적이라도 추적해 볼 수 있겠죠.게.”

○ 직업 및 활동

<동경제대를 졸업하고 서울공고교 교감 역임으로 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서혜원) 서울공고 교감으로 계시면서, 2년짜리 초급 대학의 총무과장을 하셨어요. 학장이 없이 서울공고 박 모 교장이 학과장을 하시고, 아버지가 총무과장을 겸하셨던 거지. 동경상대를 나오셨으니까 사실 그 양반은 딴 데로 빠져야 되는데, 은행에 가시려다 혈압 관계로 못 가셨어. 그래서 일제하에 장진인가 광산에 잠깐 가 있다가 오셔서 친구들이 학교 쪽에 계시니 동덕 학교도 잠깐 가 계시고. 거기서 박장열씨라는 분이 서울 공고 교장을 하게 되시니 아버지는 상대 출신이면서도 공고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시면서 교감직을 하셨던 거지.

답_(서계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상공부장관 해달라고 저희 집에 찾아와서 비서도 보내고 하셨는데, 저희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학계에 계시겠다고 하셨대요. 아버지가 약주를 좋아하셨고, 납북 당시만 해도 나이가 마흔 다섯이 넘으니 건강이 그렇게 좋진 않으셨대요. 그래서 아직 생사확인은 안됐지만, 아마 일찍 돌아가시지진 않았나 싶어요.

문_ 가정 형편은?
답_(서계원)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갑신정변을 일으키셨던 서광범이에요.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와 함께 약관 20세 때 우리나라를 개혁해 보려고 했었죠. 그 분이 나중에 미국 건너가시고 하면서는 돌아와서 법무 대신도 하시고, 문무 대신도 하고 그랬죠. 그러니 당시 고종황제 때 하사받은 땅도 많았고, 아버님은 부유한 집안에서 크셨죠. 그러다가 아버지가 납북되시고 나서 하시니 집안이 몰락한 거죠.



○ 납북 경위

<서울공교 교감이던 피랍인은의 가족이 걱정되어 차마 피난하지 못하고 자택에 거주하던 중, 전쟁 전에 좌익사상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교사선생들의 압박으로 학교로 나감., 그러던 중 학교에서 동료 교사선생들과 서대문 형무소로 연행됨>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서혜원) 그러다 6.25가 났는데, 처음엔 한강 다리가 있으니 안전하다고 한 거지. (당시 피랍인이 다니던 서울공고는 한강 이남에 있음.) 여기서 절대 후퇴한다는 말을 안 했거든. 그랬는데 우리나라에서 일방적으로 한강다리를 끊었잖아. 그러니 서울(한강 이북)에 사는 학생들은 집에 가지도 못하고 학교에 모여 있다가, 인민군들이 내려오니까 후퇴를 시작한 거지. 우린 그 때 상도동 살 때 인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만삭이고, 할아버지도 계시고, 큰 처녀가 셋 씩 있으니 걱정이 되셔서 일단 집으로 오신 거야. 당시 우린 이름 있는 고관 집이었기 때문에 시골에 친척이 없어서 피난 갈 곳도 없던 때였어. 그렇게 우선 집에 오셨다가 다시 학교로 다시 가려고 하니까 이미 인민군들이 벌써 넘어오는 거야. 아버지가 급히 학교에 가봤지만, 학교에 모여 있던 일행들은 학생들하고 차로 다 같이 내려가고 이미 아무도 없어. 아버지만 잠깐 집에 오셨다가 낙오가 되신 거지.
그런데 며칠 있으니 학교 선생 몇 분이 집으로 왔더라고. 전쟁 전에 그 학교가 모스코바라 불릴 정도로 공산주의를 가진 선생들이 많아서 서대문 형무소 같은데 잡혀가고 그랬어. 우리 주변에도 경찰이라고 그러던 애도 하나 잡혀 들어가고. (수감 돼 있다가) 6.25사변이 터지니까 이 사람들이 형무소에서 다들 나온 거야. 그래서 아버지 같은 학교 간부들 집을 찾아다녔나 봐.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학교로 매일 나오래. 그 때 부터 학교에 나가셨지. 아버지는 워낙 공산주의 그런 거 질색하고 그랬거든. 그러니 하루 이틀 무사해도 계속 조마조마하지. 사흘 째 되던 날 오시더니 훈육주임인가 하는 분이 잡혀갔다고 그러시더라고. 그리고 거기 공군 소위로 졸업했던 교련 선생님들이 잡혀갔다 그러고. 그러더니 닷새 되던 날 인가부터 아버지도 집에 안 들어오시더라고.

답_(서계원) 제가 들은 내용으로는 집에 내무서원들이 들이닥쳐서 학교로 끌고 갔다가, 다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했다가 곧바로 북으로 끌고 갔대요. 그 때 학교에서 교직원들 30-40명도 전부 트럭에 실려 서대문 형무소로 갔대요. 젊은 선생들 중에는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서 도망쳐 나온 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무서원이 집으로 와서 아버지를 데리고 학교로 가서 선생님들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로 간 거죠.



○ 납치 후 소식

<피랍인과 함께 납치, 철원까지 갔다가 도망 온 사람이 소식을 전해 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서혜원) 시간이 흐르고 9월이 다 되니, 우리 언니 시댁에서 사람을 보냈더라고. 시골로 내려오라고. 그래서 그 댁에 가서 건넌방에서 우리 식구가 피난을 했어. 그러다 (임신 중이던) 어머니가 애기 낳을 때가 되니 9월 20일경에 집으로 돌아온 거야. 그랬는데 서울공고에서 와 보라고 기별이 왔더라고. 젊은 교련 선생 둘이 잡혀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거야. 처음 잡혀가서는 지금 국립도서관 자리에서 50명씩, 60명씩, 그러니까 모두 인테리급들을 수용을 하더니, 나중에 분리를 해서 서대문형무소에 열 몇 사람씩 데려다 넣더래. 얼마 있다가 밤새도록 우루루 쾅하고 함포 사격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9월 13일 정도부터는 호명을 해서 뒷마당으로 끌어내더래. 그리고 일행을 한꺼번에 엮어서 가는 거지. 거기서 아버지를 봤는데 걸음을 잘 못 걸으시더래. 철원까지 아버지하고 같이 갔었대. 그 사람들은 그 와중에 폭격을 하고 막 쏘고 하니 서로 풀어주고 하면서 논두렁 같은데 숨어서 죽은 듯이 있다가 남으로 남으로 도망 온 거야. 어떤 사람은 '그 양반 너무 힘들어해서 끝까지 못 갔을 거다'라고도 하고. '끝까지 가기만 갔으면 (아버지는) 학자시고 하니 그놈들이 이용하려고 살렸을 거다'라고도 해. 그 소리가 마지막이야. 그 이후엔 소식이 없어.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배우자가 가장의 납치 이후, 있던 재산을 팔아 고생하며 자녀를 기름>

답_ 갑자기 집의 가장이 납북 당했으니, 대가족이 생계가 어려울 정도고, 경황이 없었죠. 그래도 부자가 망하면 3년은 간다고 전답 같은 거 팔고, 심지어는 고종 황제한테 받은 하사품도 팔고 하면서 산 거죠. 어머니는 혼자 갑자기 남편 잃고 7남매 키우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죠. 있는 거 팔아가면서 바느질도 하시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자식들은 전부 독학한 거죠.

문_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답_(서계원) 1974년에 돌아가셨어요.

문_ 어머님이 평소 아버님 말씀은 많이 하셨나요?
답_(서계원) 말씀보다도 우리를 엄하게 키우셨어요. 할아버지도 계시고 대가족을 수발해야 하니까 경황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서혜원) 할아버지가 수복되고 가서 하셨나 봐.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서혜원) 그런 게 어딨딨어? 아무암 것도 없고,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시다 돌아가셨지. 난 정부한테 속상한 게 그래도 납북자 신고를 했으면, 이전 대통령 때부터라도 교류의 기회를 맞았으면 이쪽에서도 조금이라도 힘을 써야지. (힘을) 안 쓰고 뭐했는지 모르겠어. 지금도 이산가족이다 하면서 가족이랑 그 친척들까지 만나게 해 주면서 국군포로, 납북자는 왜 만날 수 없는지. 내가 우리 작은 아버지에게 들은 소리인데, 사촌이 군에 갔는데, 걔가 키가 크고 좀 잘생겼어. 그런데 알고 보니 큰아버지가 납북자라고 조사를 받고, 조금 어려움이 있었나 보더라고. 그런 게 모두 모순인 거 같아. 납북자가 무슨 스파이야 뭐야?



○ 호적정리

<사망 처리함>

답_(서계원) 사망으로 돼 있어요. 그래서 납치돼 가신 날로 제사도 지내고.
지금은 천주교식으로 드리고 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었음>

답_(서계원) 그런 건 없었어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서계원) 지금 정부는 잘하고 있다고 봐요. 물론 저희 같은 사건 당사자들은 북한에 대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대립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포용 정책을 써서 길을 열어 주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신에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자꾸만 거론을 해야죠. 주는 것만큼 조금씩 조금씩 받아내야죠. 한꺼번에 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구요. 제일 좋은 게 빨리 남북관계가 잘 돼서 왕래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버지 행적이라도 추적해 볼 수 있게. 제가 한동안 기대했던 게, 6.29 공동선언이 시작되고 이산가족이 왔다 갔다 할 때, 북한에서 남쪽 가족을 찾는다고 했던 사람들 명단을 보니, 아버님 학교의 제자들이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에 그 사람들은 일부 좌익들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끌려갔을 수도 있고. 의용군이었을 수도 있고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야여튼 그 사람들이 아버지가 재직했던 학교의 학생들이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어요. 또 브로커를 통해서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고.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셨죠?
답_(서혜원) 그 때야 보고 싶고 말고 말할 수 없지. 생사만 알아도 좋겠다 싶고. 그렇지만 세월이 약이지 뭐. 당시엔 소식을 애절히 기다렸지만, 여태 소식도 들을 길도 없잖아. 모두 체념하고 단념했지. 정부가 빨리 그걸 좀 알아 봐 주고 하면 좋을 텐데. 어느 정부고 그걸 힘써 주는 정부 하나도 없었어. 지금 후세들도 만나보고 영상 어쩌고 해도, 그 때 납북자들 나오는 거 하나도 없대. 피난민들 가지고 야단이지, 끌려간 납북자에 관해서는 도통 힘을 안 써. 그게 불만이야.

문_ 가족에게 하고픈 말?
답_(서혜원) 돌아가셨겠지만 양지바른 데라도 정말 모셔졌는지, 그 사람들이 그냥 짐승의 밥이 되게 뒀는지, 워낙 야만적인 사람들이니 수용소 같은데 끌고 가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게 한 건 아닌지 늘 걱정되고 그렇지.

답_(서계원)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어지고 눈물이 납니다.
갑자기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떠나셨을 때 얼마나 고통이 심하셨는지요? 저희 가족들은 지금 다 성장해서 잘 사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이제 이 세상엔 안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부디 마음맘 편안히하니 생각하시고, 두 눈 평안히해 감으세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0 납북자-강기형,강의형,강선형 (증언자-박옥랑, 강성형)
관리자
13-09-17 2399
89 납북자-김주현 (증언자-이병숙,김택성)
관리자
13-09-17 2124
88 납북자-김명혁 (증언자-김원형)
관리자
13-09-17 2368
87 납북자-지금순 (증언자-지이만)
관리자
13-09-17 2069
86 납북자-김원립 (증언자-김광오)
관리자
13-09-17 2199
85 납북자-최상렬 (증언자-최명숙)
관리자
13-09-17 1958
84 납북자-이근택 (증언자-이춘근)
관리자
13-09-17 2106
83 납북자-홍종필 (증언자-홍순구)
관리자
13-09-17 2169
82 납북자-안태희 (증언자-안선복)
관리자
13-09-17 1885
81 납북자-김각선 (증언자-김인선)
관리자
13-09-17 2239
80 납북자-이광수 (증언자-이정화)
관리자
13-09-17 2174
79 납북자-이득년 (증언자-이희돈)
관리자
13-09-17 2607
78 납북자-이성봉 (증언자-이태찬)
관리자
13-09-17 2046
77 납북자-임숙기 (증언자-임운기)
관리자
13-09-17 1967
76 납북자-윤희병 (증언자-윤신중)
관리자
13-09-17 1920
75 납북자-장명선 (증언자-박선자)
관리자
13-09-17 2143
74 납북자-장원식 (증언자-김용섭)
관리자
13-09-17 2298
73 납북자-이형호 (증언자-이준모)
관리자
13-09-17 2182
72 납북자-서인석 (증언자-서혜원,서계원)
관리자
13-09-17 2519
71 납북자-강재원 (증언자-최정목,강선종)
관리자
13-09-17 2197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