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관리자
2013-09-17 12:56:07 | 조회: 2561
071108A 민 효 식 (閔孝植)
피랍인
생년월일: 1918년 2월 20일생
출생지: 서울
당시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상도동 175번지
피랍일: 1950년 7월경
피랍장소: 자택 근처
직업: 농업, 대한청년단, 통장
학력/경력: 선린상고
직계/부양가족: 배우자(임신중), 자녀 1남 2녀
외모/성격: 활동적인 성격
증언자
성명: 민병언(1948년생)
관계: 자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대한청년단원과 통장으로 활동했던 피랍인은 7월경 내무서원에 의해 피랍된 이후 소식이 두절되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관련법 제정 촉구
“7월경 우리들은 급하니까 먼저 가라고 하고, 아버지는 2차로, 어차피 피난을 가려면 맨 몸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쌀이라도 한줌 가져가듯이, 그 짐들을 소에다 양 쪽에 지고 가려고 집안에 있는 것들을 소에다 실었는데, 못 가게 쏴서 소가 죽었다는 얘길 들었어요. 내무서원이 총을 쐈는지 누구인지는 몰라도 소에다 먹을 것이라든가 귀중품을 갖고 피난가려고 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얘기는 들었지만 저희가 눈으로 보지는 못했고요. 그리고 아버지는 납치당했다고 들었어요.”
○ 직업 및 활동
<농업, 대한청년단, 통장>
○ 납북 경위
<1950년 7월경 가족을 먼저 피난 보내고 이어서 귀중품과 먹을 것을 소에 싣고 피난을 가려다 내무서원으로 추정되는 이의 총에 소가 죽고 피랍인은 연행된 것으로 추정함.>
문_ 납북 경위는?
답_ 7월경 우리들은 급하니까 먼저 가라고 하고, 아버지는 2차로, 어차피 피난을 가려면 맨 몸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쌀이라도 한줌 가져가듯이 그 짐들을 소에다 양 쪽에 지고 가려고 집안에 있는 것들을 소에다 실었는데, 못 가게 쏴서 소가 죽었다는 얘길 들었어요. 내무서원이 총을 쐈는지 누구인지는 몰라도 소에다 먹을 것이라든가 귀중품을 갖고 피난 가려고 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납치당하신거죠. 내무서원이 아버지를 납치해 간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디로 끌려갔는지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으니까 잘 모르겠어요.
문_ 납치 소식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답_ 피난 갔다가 나중에 돌아왔을 때 주위 사람들이 전부 얘기해줘서 내무서원이 데리고 간걸 알았죠.
○ 납치 이유
<대한청년단 단장과 통장직을 맡고 있었음.>
○ 납치 후 소식
<없음>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당시 1남 2녀와 임신 중이었던 피랍인의 아내는 서울여상 출신으로 일과 시집살이를 함께 하며 대가족을 돌봄, 72세까지 보험 일을 하며 자녀를 양육하고 가족의 생계를 꾸려감.>
답_ 저희 아버지는 선린상고 출신이고 어머니는 서울여상 출신이예요. 어머니는 국민은행 전신인 중앙무진인가 한국무진이라는 곳에 다녔었고,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농사 일을 하셔도 조금씩 돈을 모아 좀 더 편하게 지냈을텐데, 별안간 아버지가 없어지면서 어머니가 밥도 해 먹여야 되지만 돈도 벌어야 했고, 그 대가족들을 다 먹여 살려야 되니까 세수할 시간도 없었죠. 집에 들어가면 부엌에 들어가 있어야 되고 밥 날라야 되고, 그 상황은 말도 못해요. 저는 외아들이라 먹고 싶은게 있으면 떼를 쓰고 그랬어요.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저를 호되게 가르쳐서 빗자루로 많이 맞았어요. 아무리 어리지만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할머니는 외손주니까 제 편이예요. 어머니가 똥지게를 진 것도 기억이 나요. 그 무거운 똥지게를 지고 다니는데 어느 누가 도와준 사람이 없었어요. 작은 아버지는 나이가 어렸고 저희들은 흙장난할 때니까, 저희 어머니가 고생한 건 다 말할 수가 없어요.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나중에는 삼성생명에서 보험 일을 하셨는데, 제가 25년 표창 받으시는 것까지 봤어요. 72세까지 그 일을 하셨죠.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어요?
답_ 어머니가 직접 신고를 했어요. 신고를 하라고 해서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문_ 정부나 사회의 도움은 없었나요?
답_ 전혀 없었어요.
○ 호적정리
<사망으로 신고함.>
답_ 문제가 좀 있는 걸로 얘기를 듣고 어머니가 사망신고로 결단을 내리시고 호적정리를 한 걸로 알고 있어요. 1954년도였을 거에요. 우리들 자라는데 문제점이 많다고 해서 그 당시에 호적정리를 했어요.
○ 연좌제 피해
<사망으로 호적정리 후에는 없었으나 이전에는 감시가 있었음.>
답_ 호적정리를 해서 그런 건 없었어요. 만약 안 했다면 피해가 갔겠죠. 그 전에도 감시가 있어서 저희가 계속 그런 것들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정리를 했죠.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과 관련법 제정 촉구>
답_ 어느 단체들은 생사확인도 하고 여러 가지 하는데 뭐가 민감한 상황인지는 몰라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도리어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하는데, 저희 쪽도 도와주거나 지원해주는 등, 법 제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되어 있으니까 해줘야지, 북한 눈치 보듯이 한다는게 안타까워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글쎄, 나이를 먹어서 울어본 적이 없어요. 글썽이기는 해도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어요. 운동을 오래 하고 또 가르치면서 운동을 잘 하기 위해서 혹독하게 했지만 울어본 적이 없어요. 성격이 아버지 성격을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사실 기억을 만들어서, 그건 못하겠어요.
문_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있으신지?
답_ 한번도 없죠. 어디 가서 누구한테 따돌림을 당해도 니들은 아버지가 있고 하는 얘기도 안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은 아버지가 있어서 좋고 나는 없어서 나쁘다는 생각은 했을지 몰라도, 그걸 크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건 어머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도 담겨 있는 거죠. 남의 가정 같이 잘 먹여야 된다는 것, 그게 또 대물림이 돼서 자식들한테 그렇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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