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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정준모 (증언자-정진호)
이름: 관리자
2013-09-26 10:19:04  |  조회: 2730
2007. 11. 30. 채록
071130A 정 준 모 (鄭駿模)

피랍인
생년월일: 1905년 12월 3일생
출생지: 서울시 종로구 권노동
당시 주소: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90-10
피랍일: 1950년 7월 15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동국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학력/경력: 경성제국대학 영문학부/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 4녀
외모/성격: 깐깐하고 엄한 편

증언자
성명: 정진호(1929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경성제국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하고 동국대 영문학부 교수로 재직, 해방 후 문교부에서 3, 4년 근무 후 다시 동국대로 돌아가 교수로 재직 중에 자택으로 찾아 온 동국대 학생들과 인민군에 의해 연행됨.
- 미 군정시 문교부 고등교육국장으로 재직하여 국립서울대학안(국대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켜 이를 극렬히 반대해온 좌익세력에 의해 피랍된 것으로 봄.
- 국립도서관에 수감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인의 도움으로 면회는 했으나 이후 상황은 알 수 없었으나 나중에「北韓總鑑 45-68」에서 피랍인에 대해 의주에서 탄광으로 끌려가 사망한 기록이 발견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없음>


“서울시 국립도서관에 납치된 사람들을 전부 집결시켜 놨거든요. 어머니가 면회를 가서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 인민위원장이 이북의 서울시장이죠, 그 인민위원장이 우리하고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면회가 됐죠. (중략) 아버지 친구니까 어머니가 얘기해서 특별히 면회를 했고 석방해달라고 부탁도 했는데 안 된대요. 밤낮 집에 와서 술들 먹고 놀고 하던 친구들인데 다 교수들, 그때 고려대, 연희대학 교수들이 다 친구들 아니에요. 근데 사상적으로 다르니까 6.25사변 나기 전에는 밤낮 집에 와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그렇게 딱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석방은커녕 모른척하고 더…….”

“가끔 여러 사람들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김일성대학 영어교수를 하고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정부에 영어 관계, 영문학부 나오셨으니까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하고, 그런데 잡지책(「北韓總鑑 45-68」)을 보니까 의주에서 탄광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사망했다고 나와 있으니까 그게 제일 확실하지 않나 생각하는거죠.”



○ 직업 및 활동

<경성제국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하고 동국대 영문학부 교수로 재직, 해방 후 문교부에 3, 4년 근무 후 다시 동국대로 복직>

답_ 6.25 직전에는 문교부에 계속 계시다가 동국대로 다시 돌아왔어요. 원래 일제시대에 동국대를 혜화전문대라고 했었어요. 19년 동안 교수를 하셨는데 해방되어서 바로 문교부로 가서 일을 하시고 다시 동국대로 돌아왔는데 6.25사변이 나서 납치되게 됐죠. 평생을 동국대 교수를 하신거예요.

문_ 다른 정치적인 활동이나 사회 활동을 하신 것은 없는지?
답_ 그런건 한 일이 없고요. 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경성제국대학 영문학부 졸업하시고 그 시대에는 동국대를 중앙불교전문이라고 했어요. 중앙불교전문이 혜화전문이 되고 혜화전문이 동국대가 됐어요. 근데 아버지가 불교신자예요. 대학을 나오시자마자 불교계통인 동국대로 교편 잡으러 들어가신거예요. 종교관계로 그렇게 한거죠.



○ 납북 경위

<1950년 7월 15일경 완장을 찬 동국대 학생들과 총을 든 인민군들이 자택으로 찾아와 피랍인을 연행, 국립도서관에 수용된 것을 확인하고 당시 피랍인과 친구지간이었던 인민위원장의 도움으로 면회는 가능했으나 석방은 불가했음>

문_ 피랍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답_ 부산 피난 갔다 올라와 집에 와서 알게 된거죠.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학교에 나가서 강의할 준비를 하시려고 서재에서 책을 보고 계시는데 동국대 학생들이 완장을 차고 인민군들이 총 들고 따라와서 연행해 갔대요. (국립)도서관에 납치된 사람들을 다 수용했는데 (아버지도) 도서관에 납치되어 있었대요. 어머니가 면회를 갔대요.

문_ 전쟁 발발하고 피신을 못하셨나요?
답_ 우리 아버님은 주변이 없었던 사람이죠. 주변이 없어서 능동적으로 그런 생각을 못하고 내가 뭐 잘못한게 있느냐 하고 앉아서 내일 강의 준비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딱하죠. 우리만 돼도 눈치 보고 도망가고 그랬을 텐데 옛날 사람들이 뭘 알아요. 책이나 보고 앉아서 내일 강의준비나 하고 그런거죠.
우익이고 좌익이고 우리 아버지는 그런게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할 때 (아버님) 친구들 중에는 좌익이 많았어요. 또 우익 친구들도 많았고. 그 때는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좌익 친구들이 많았어요. 전부다 제국대학 나온 사람들, 경도제국대학, 경성제국대학에서 철학 공부하고 경제 공부하던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일제시대에 그런게 표시가 됐나요. 그냥 그렇게...(살았던거죠).

문_ 완장을 찬 학생들이 집으로 왔을 때 상황이 어땠나요?
답_ 그땐 잘 몰랐는데 내가 동생들한테 그랬어요. “너희들 뭐 있는거라도 붙잡고 온 놈들 다 때려눕혀서 아버지 도망가게 하지 않고 왜 그렇게 잡혀가게 놔뒀느냐.” 그랬는데, 인민군이 총 들고 따라왔더래요. 그랬으면 동생들까지 잡혀갔지, 무서워서 다들 숨었다고 하더라고요.

문_ 국립도서관으로 끌려 가신건가요?
답_ 서울시 국립도서관에 납치된 사람들을 전부 집결시켜 놨거든요. 어머니가 면회를 가서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 인민위원장이 이북의 서울시장이죠. 그 인민위원장이 우리하고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면회가 됐죠. 그 때 인민위원장(서울시장)이 윤행중씨라고 고려대 교수하신 분이예요. 유망한 경제학자죠. 일본 경도제국대학을 나오셨는데 윤행중씨, 신남철씨 모두 우리나라 유명한 교수들이예요. 다 사상들이 그래서 이북으로 갔죠. 그 사람들이 서울시장으로 내려왔어요. 아버지 친구니까 어머니가 얘기해서 특별히 면회를 했고 석방해달라고 부탁도 했는데 안 된대요. 밤낮 집에 와서 술들 먹고 놀고 하던 친구들인데 다 교수들, 그 때 고려대, 연희대학 교수들이 다 친구들 아니에요. 근데 사상적으로 다르니까 6.25사변 나기 전에는 밤낮 집에 와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그렇게 딱 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석방은 커녕 모른척하고 더…….

문_ 그 때가 언제인가요?
답_ 날짜는 모르겠는데 대개 6.25전쟁 시작되고 열흘 정도 지나서 그렇게 된거 같아요.

문_ 친척들 가운데 잡혀간 사람들이 있나요?
답_ 위당 정인보라고 우리나라 최고의 국학자죠. 정부 최고고관이고 유명한 국학자니까. 친할아버지는 아니고 아버지하고 당숙인데 나는 꼬마 때 거기 가서 얘기나 듣고……. 나도 (피난 가서) 부산에 있어서 자세히는 몰라요. 할아버지댁이 회현동인데 나는 스무살 이전에 아버지 따라서 몇 번 가고 그랬지. 거기서 어떻게 납치되고 그런걸 자세히 얘기 듣지는 못했고 할머니는 좀 있다 돌아가시고 내 아저씨뻘의 아들들은 경찰서장도 하고 박물관장도 하고 재산관리청에서도 있고 해서 서로 얘기만 들었지 자세히는 몰라요.



○ 납치 이유

<전직 (군정시) 문교부 고등교육국장으로 재직시 국대안(국립서울대학안)을 발의하여 통과, 국립서울대학이 통합됨, 이를 극히 반대해온 좌익세력에 의해 피랍된 것으로 봄>

답_ (피랍인이) 문교부에 가서 3, 4년 계시는 동안에 국립서울대학안이라는게 국대안이라고 있었어요. 한국에 있는 전문대학을 모두 합해서 국립서울대학을 만들었어요. 그 국대안이라는게 있어 가지고 그때 그게 발의가 돼서 국립서울대학이 됐는데, 그걸 좌익들이 모두 반대를 했거든요. 그래서 좌익들한테 잡혀간 원인이 그 국대안을 초안한 사람이 아버지였단 말이에요. 고등교육국장이니까 고등교육국장실에서 발의가 돼서, 차관이 오천식씨라고 계셨고 그 때 장관이 유옥겸씨라고 계셨는데, 직접 책임자니까 좌익에 의해서 그렇게 돼서 납치가 된거예요.



○ 납치 후 소식

<잡지책「北韓總鑑 45-68」에서 피랍인에 대한 기록 발견 (의주에서 탄광으로 끌려가서 사망)>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가끔 여러 사람들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김일성대학 영어교수를 하고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정부에 영어 관계, 영문학부 나오셨으니까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하고. 그런데 잡지책(「北韓總鑑 45-68」)을 보니까 의주에서 탄광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사망했다고 나와 있으니까 그게 제일 확실하지 않나 생각하는거죠.

문_ 아버님 지인들 가운데 납치된 분들이 계셨나요?
답_ 납치된 분들이 많았어요. 자진 월북한 사람들도 많고, 자진 월북한 사람들은 다들 벼슬하고 했는데 박근형씨 계열이라 그런지 나중에 다 처형됐어요. 책을 보니까 김일성한테 다 처형됐더군요. 남한파, 남한에서 올라간 좌익들은 이용할대로 하고 처형한 거예요.

문_ 당시 서울에 인민위원장으로 계셨던 그 분의 소식은?
답_ 그 분도 죽었대요. 이북에 자진해서 넘어가서 김일성한테 임명 받아서 서울시장으로 왔어요. 만날 집에서 놀고 옛날에 그랬으니까, 엄마가 술상보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석방시켜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친구도 소용없어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당시 스무 살이었던 장남이 어렵게 생계를 꾸려감>

답_ 굉장히 힘들었죠.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요. 누구 원조하는 사람 하나도 없고, 재산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섭섭한게 아버지가 동국대에 한 20년, 대학 나오자마자 거기서 교수생활을 했는데 동국대에서 한마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어요. 치사하게 어떻다고 얘기하기도 싫고 좀 섭섭하더라고요.

문_ 가장의 역할을 하시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답_ 나도 20년 동안 공무원 생활하는데 참 후회를 많이 했죠. 내가 애들 가르치고 먹여 살리려면 돈이 필요한데 공무원이라는게 돈이랑 관련이 없는 거잖아요. 시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공무원으로 들어왔으니, 잘못 들어왔다, 그래 가지고 한 10년쯤 공무원을 하다가 이제부터는 방향을 바꿔 사업을 해야겠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한거예요. 근데 자본이 있나, 집안에 내력이 있나, 돈이 있나, 경험이 있나, 아무것도 없을 때에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부터 10년을 집중해서 뭘 했더니, 10년 공부가 뭐가 이루어지대요. 재무부에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뭘 했는데 백만불 수출했어요. 공무원 생활하면서 낮에는 공무원이고 밤에는 집에 들어가서 일하고 또 아침에는 출근하고, 그러고는 사표를 내고 회사를 만들었어요. 아버지 계실 때보다 더 이 집안을 제대로 해놓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있어요.

문_ 아버님 생각 많이 나시죠?
답_ 아버지는 부잣집에 장가가서 행복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납치되어서 그 고생을……. 어디 수용소에서 가족 생각은 얼마나 했겠어요. 그 추운데 먹지도 못하고 가족들은 다 죽었을 거라 생각했을 거예요. 스무살 촌놈이 어떻게 해롱거리고 공부도 안하고 놀러만 다니고, 말도 안 듣던 놈이 어떻게 가족들을 이끌고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며 돌아가셨을 거라. 그 생각을 하니까 이제 나를 희생하고 내가 아버지가 남겨놓은 것을 아버지 계실 때보다 더 잘해야겠구나, 아직은 모자라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7남매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문_ 어머님은 어떠셨어요?
답_ 어머니는 나한테 죄 지은 사람 같은 그런 행동, 즉 자식이지만 내가 너무 자식한테 큰 짐을 지운다는 그런 생각이 있으셔서 그냥 내 눈치를 보고 날 제대로 보지를 못해요, 미안하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형이라고 맨 먼저 낳았다는 죄로 저걸 다 먹여 살리고 다 입히고 학교 보내야 하고 쟤가 무슨 죄인가. 그때 나도 엄마가 볼 때는 꼬마 아니었겠어요. 그때 스무 살밖에 안됐으니까.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적십자사에서 신고하라고 해서 했죠. 납치된거 신고하면 무슨 좋은일이나 있을까 하고 하긴 했는데 그게 처음의 기대지 점점 아무 소용이 없고 기대해 볼 만한 게 아니다 그렇게 된거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납치된걸 누구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고 참 아픔이죠.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성장해서 산업국가로 들어서고 겨우 먹고 살게 됐는데, 그 전에는 국가 재정이 납치된 사람들의 유가족을 돌볼 재정이 없었거든요. 세계 최빈국에서 겨우 성장해서 먹고 살게 됐다 뿐이지 그 과정에 여유가 있어서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들을 어떻게 돌봐줬겠어요. 그건 우리가 당사자이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죠.



○ 호적정리

<미정리>

답_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 아버지 돌아오실 지도 모른다, 언제든 돌아오실지 모른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하는게 시간이 이렇게 갔네요.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호적정리를 일찍 해 놓으면 내가 아버지를 빨리 잊어버리자는 생각이 반영된게 아닌가 그런 죄스러운 생각이 있고, 하여간 언제든지 할 수 있는거니까 놔두자, 놔두자 하던 것이 지금까지 정리를 못하고 있어요. 내가 세상 떠나기 전에는 해야죠. 또 호적법이 이상하게 돼가지고 또 이제 뭐…….



○ 연좌제 피해

<조사는 있었으나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음>

답_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재무부에 들어가고 했죠. 오래 했는데 더러 피해를 봤어요. 예를 들어 홍콩에서 무슨 편지가 날아왔는데 내 이름으로 온게 있어요. 근데 그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데 나보다 먼저 경찰 외사과에서 나를 호출을 해요. 내가 사상적으로 잘못을 하는건가 했는데 나중에 해명이 됐죠. 이상한 그런게 있더군요. 아무 근거가 없으니까 피해는 안 봤어요. 다 해명이 되고...



○ 정부에 바라는 말

<정부에 희망이 없음>

답_ 조금 안된 얘기지만 이 정부에는 희망이 없어요. 이미일 회장이 안됐고, 협력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애쓰고 계시는데 특별한 것이 없을 것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납북자가 한두 사람이어야지, 십만이 되는데. 거기에 무슨 혜택이라든가 특별 고려라든가 이런 것은 이런 엉뚱한 짓을 그만두기 전에는 안돼요. 엉뚱한 짓이 뭐냐면, 오히려 국가에 해를 끼친 사람이 애국자로 둔갑하는, 그런 엉뚱한 짓을 하고 있잖아요. 그 돈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국가 재정이, 이제 이 문제는 한 시대의 아픔으로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뭐……. 아버님을 모셔놓고 때 되면 떡국 끓여놓고 하지만 그 때는 그냥 엉엉 우는거지 말이 안 나와요. 죄인... 아버지, 죄인 절 받으세요. 말이 안 이어지는 거죠. 이런 죄인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죄가 많으니까 아버지를 납북시켰지.
아버님께는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천하 죄인입니다. 그거밖에 할 말이 없고. 나는 아버님이 남겨주신 가족한테 하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게 많습니다. 그냥 죄스럽습니다. 그거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를 그동안 잘 못 모신거에 대해서 아주 죄스러워요. 그냥 그런대로 모셨다 하면 안 되는거죠. 특별히 모셔야 하는데, 그냥 그런대로 모셨다, 그렇게 결론을 짓고 싶은데 그게 큰 잘못이죠. 철이 들고 난 다음에 왜 그랬을까, 아버지 안 계시고 혼자되신 어머니를 좀 더 많이 이해해드리고 아주 천상으로 모시는 것 같이 모시지 못하고 보내드린 게 마음이 걸려서……. 아휴(깊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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