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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윤석보 (증언자-유차현)
이름: 관리자
2013-09-17 13:00:18  |  조회: 2155
2007. 11. 14. 채록
071114B 윤 석 보 (尹錫輔)

피랍인
생년월일: 1922년 7월 8일생
출생지: 전북 익산
당시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피랍일: 1950년 6월말(6.25전쟁 발발 직후)
피랍장소: 미정
직업: 경찰전문학교 근무
학력/경력: 고려대학교/고교 교사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임신 중), 자녀 1녀
외모 및 성격: 마른 체구에 성격은 좀 급한 편

증언자
성명: 유차현(1925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 성격: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 6.25전쟁 발발 직후 경찰전문학교에 근무하던 피랍인은 미처 피신하지 못한 상황에서 동사무소에 근무하던 누군가의 밀고로 납치됨.
- 피랍인이 잡혀있던 곳에서 만난 돈암동에 산다는 한 여성을 통해 피랍인의 쪽지를 전해 받고 납북 사실을 알게 된 후 소식은 알 수 없음.
- 6.25전쟁 때 피랍인의 형제 등 가족 중 다수가 학살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유해 송환


" 친정어머니한테 돈암동에 산다는 어떤 여자가 와서 우리 영감 잡혀간 데를 갔더니 우리 영감이 신문지 조각에다가 뭘 하나 써줬대요. 큰일났다고 빨리 좀 어떻게 구해달라고. 그 쪽지를 갖고 그 여자가 온 거에요. 자기 남편도 납치해 당했다고 하면서."

“세월이 약이라고 세월이 지나니까 이렇게 됐지. 살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오래 사니까. 아이고, 지겨워. 남편하고 몇 년 살지도 않고 그렇게 되니까 잘해준 생각만 나지. 오래 살아야 싸우고 어쩌고 하지, 싸워본 일도 없고, 서로 그냥… 아이고, 지겨워요. 산거 생각하면. 아이고, 오래도 살았다 싶어. 안 살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애들이 있어서 산거지.”


○ 직업 및 활동

<경찰전문학교 근무>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경찰전문학교에 있었어요.

문_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던 것인지?
답_ 결혼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1, 2년 했었나봐요. 경찰도 몇 년 안 했어요.



○ 납북 경위

<전쟁 발발 직후 임신 중이었던 피랍인의 배우자와 자녀는 친척집으로 피난을 가고, 직장인 경찰전문학교로 가 있던 피랍인은 피랍인의 장모를 만나기 위해 자택에 들름. 이를 본 동사무소 일을 보던 자의 밀고로 피랍된 것으로 추정. 이후 피랍인이 잡혀 있던 곳에서 피랍인을 만난 한 여성이 찾아와 전해 준 피랍인의 다급한 쪽지를 통해 납북 사실을 알게 됨.>

문_ 전쟁 발발 당시 상황은?
답_ 집이 크고 하니까 정원에 우물이 좋았어요. 지하수가.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많이 퍼다 먹었어요. 그러더니 6&#8226;25가 나니까 다 공산당이야. 전부 다 갖고 갔어. 인민군들이 오고, 동네놈들이 와서 다 갖고 갔어. 그 집에 있지를 못하니까 피난을 갔죠. 애기만 데리고. (남편하고는) 떨어져 있었던거죠.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나는 아이 데리고 친척집으로 피난 가고 우리 영감은 경찰전문학교로 가서 있었어요. 그런데 시골에 계시던 친정어머니가 내가 임신이라 몸이 힘드니까 성북동 우리집에 와 계셨어요. 그래서 남편이 저희 친정어머니 뵈러 집에 잠깐 들렀는데 동사무소 심부름하는 놈이 밀고해서 끌려갔나봐요. 동에서 심부름하던 놈이 경찰이라고 가르쳐 준 모양이에요. 나는 못 보고, 우리는 성북동 살다가 계동 친척집으로 피난 가 있었으니까.

문_ 그 때가 언제쯤인가요?
답_ 6월, 전쟁 일어나고 바로, 전쟁 소식을 듣고 피난을 갔죠. 인민군이 집에 드나들면서 있는 것도 갖고 가고. 다른 집보다 집이 크고 잘 살았어요.

문_ 성북동 자택에서 납치되신 것인지?
답_ 성북동 집 근처라고 하더라고요. 정확한 얘기는 잘 모르겠어요. 친정어머니한테 돈암동에 산다는 어떤 여자가 와서 우리 영감 잡혀간 데를 갔더니 우리 영감이 신문지 조각에다가 뭘 하나 써줬대요. 큰일났다고 빨리 좀 어떻게 구해달라고. 그 쪽지를 갖고 그 여자가 온 거에요. 자기 남편도 납치해 당했다고 하면서. 그래서 우리도 알았어요.

문_ 찾아가 보셨어요?
답_ 못 찾아갔죠. 어디를 찾아가요. 어디 가 있는 줄 알고 찾아가겠어요.



○ 납치이유

<경찰 고위직>

답_ 경찰이니까, 경찰 가족들 다 죽인다고 했으니까.



○ 납치 후 소식

<전혀 알 수 없음>

문_ (돈암동 여성) 이후에 남편의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없었나요?
답_ 전혀, 전혀 몰라요. 한번도…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어디를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어디 가서 만나요.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문_ 주변에 납치된 다른 분 소식은?
답_ 동네 사람 하나가 납치됐다가 도망 왔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가 봤거든요. 근데 그 사람이 굉장히 건장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끌려갔다 왔는지 볼 수가 없겠더라고. 얼마나 말랐던지 다 죽게 생겼어. 동네 사람 하나가 그런 사람이 있어서 가 본 기억이 나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지방 유지였던 친정의 도움으로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생활함.>

답_ 친정이 좀 잘 살아서 친정 도움으로 (살았죠).

문_ 친척들 가운데 전쟁 중에 다른 어려움은 없었는지?
답_ 6&#8226;25때 우리 시댁으로는 많이 죽었어요. 우리 시댁이 전북 익산이라고, 그때만 해도 상놈, 양반 할 때인데 양반이다 해서 권세를 좀 누렸나봐요. 그래서 그 상놈들이 이북놈하고 합세해서 대창으로 그렇게 죽였다 하더라고. 시골에서 우리 큰 시아주버님도 높은 자리하고, 둘째는 조합장하고, 셋째는 면장 했는데, 6&#8226;25 때 다 학살 당했어요. 그래서 우리 시댁은 6&#8226;25 나고 다 망했어요. 과부, 어린애나 남아 있을까, 6.25 때 다 죽었어요. 6&#8226;25라고 하면 아주 지겨워요. 우리는 공산당이라고 하면 아주 몸서리가 나는 사람들이야.

문_ 친정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답_ 많이 속상해하셨죠. 어머니가 또 같이 있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죽을 때까지 눈을 못 감고 죽었지. 돌아가실 때도 우리 세 식구가 안 가니까 눈을 못 감았는데, 우리 세 식구가 다 오니 그 때서야 고개 돌리고 숨이 끊어졌잖어. 나 때문에 우리 어머니 골병 든 건 말로 못했어요. 이 사위를 제일로 알았거든.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내가 계동 가서 있을 적에 계동 친척집에 고등학생이 하나 있었어요. 그 고등학생이 신고를 했나봐요. 백병원이 계동에 있었거든요. 백병원 의사도 납북됐잖아요. 거기에 사무실을 해 놓고 거기다 신고를 한 것 같아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없었어요.



○ 호적정리

<사망정리>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우리 시댁도 다 그러고 해서 그런 건 전혀 없죠.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유해 송환>

답_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어떻게 이산가족은 저렇게 만나고 하는데 납북자는 저 놈들이 말도 안 꺼내고 있잖아. 정치하는 놈들이 저런데 뭐. 정부에서도 납북자들 어떻게, 죽었지만 뼈라도 챙길 그게 있어야 좋겠지만, 저렇게 무관심한데 어떤 놈들이 그렇게 하겠어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뭔 말을 해요. 죽었지, 살았겠어요. 아이고, 단 하루라도 만나봤으면 좋겠어. 단 한 시간만이라도.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눈물로 세월을 보냈지 뭐. 뼈도 못 추스르잖아. 폭격으로 죽었는지. 뼈도 못 찾을 거야.
애들은 전혀, 혼자서 한 마음고생이란 건 말도 못해요.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이러고 살아있지. 남편하고는 서로 그립다가 좋게만 살아서. 누구 거지들이 짐 지고 다니는 거 보면 부러워요. 부부간에 그렇게…….

문_ 못 다한 말씀이 더 있으신지?
답_ 세월이 약이라고 세월이 지나니까 이렇게 됐지. 살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오래 사니까. 아이고, 지겨워. 남편하고 몇 년 살지도 않고 그렇게 되니까 잘해준 생각만 나지. 오래 살아야 싸우고 어쩌고 하지, 싸워본 일도 없고, 서로 그냥… 아이고, 지겨워요. 산거 생각하면. 아이고, 오래도 살았다 싶어. 안 살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애들이 있어서 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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