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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무성 (증언자-최석기)
이름: 관리자
2013-09-17 13:06:51  |  조회: 2173
2007. 11. 16. 채록
071116A 최 무 성 (崔茂成)

피랍인
생년월일: 1906년 10월 19일생
출생지: 서울 서린동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피랍일: 1950년 7월 2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상업
학력/경력: 서당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 3녀
외모/성격 : 약간 작은 키에 활달한 성격

증언자
성명: 최석기(1935년생)
관계: 자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시장에서 청과물 장사를 하며 동네 자유당 간부로 활동했던 피랍인은 자택으로 찾아온 정치보위부 직원 다섯 명에 의해 연행되어 당시 국립도서관에 수용되었다가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된 후 소식을 알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소식 탐지


“7월 2일 밤에 붙잡혀 가셨어요. 내가 듣기로는 밤에 보위부 직원들 다섯 명이 집으로 와서 연행해 간 것밖에 모르거든요. 그리고서 을지로에 있던 국립도서관에 수용했다가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된 걸로 알고 있어요.”

“행상도 하고 별거 다했어요. 아버지가 장사를 열심히 하셔서 괜찮았는데, (어머니는) 고생 모르다가 그런 일 하셔서 고생 많이 했어요.”







○ 직업 및 활동

<시장에서 청과물 장사를 하시며 동네 자유당 활동>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당주동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주로 채소, 과일 그런 것들.

문_ 다른 사회 활동도 하셨나요?
답_ 잘은 모르지만, 자유당때 이승만 대통령 생일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다 초청받아서 경희루에 가시곤 했어요. 아마 자유당 동네 간부였던거 같아요. 임명장이 있는 걸 봤거든요.



○ 납북 경위

<1950년 7월 2일 밤, 자택으로 보위부 직원 다섯 명이 찾아와 연행해감, 국립도서관에 수용되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후 소식을 알 수 없음.>

문_ 전쟁 발발하고 피난을 가셨어요?
답_ 1차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는 나는 없었고, (다른 가족들은) 아무도 피난을 못 갔어요. 2차 때, 수복 후 1.4후퇴때는 대구로 피난을 갔죠. 나는 6.25전쟁 전까지는 중학교 다녔었고 6.25전쟁 나면서는 의용군으로 뽑아간다고 하니까 피난 가 있었어. 양평으로 해서 여주, 이천으로 막 돌아다녔다고.

문_ 2차 피난갈 때 피랍인도 함께 가셨어요?
답_ 그때는 납치당해서 이미 안 계실 때죠. 7월.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7월 2일 밤에 붙잡혀 가셨어요. 작은 누이가 아는데 지금 작은 누이가 없어요. 내가 듣기로는 밤에 보위부 직원들 다섯 명이 집으로 와서 연행해 간 것밖에 모르거든요. 그리고서 을지로에 있던 국립도서관에 수용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걸로 알고 있어요.



○ 납치 이유

<피랍인에게 ‘모리배’라는 얘기를 하곤 했음.>

답_ 내가 듣기로는 ‘모리배’라는 얘기를 했어요. 장사 많이 해서 돈 많이 갖고 있으면서 풀어내지 않고 거둬들이기만 하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없었어요. 제사도 그 날(7월 2일)로 해서 지내고 있어요.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죠. 1.4후퇴로 바로 피난을 가서 수소문할 수가 없었죠.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배우자가 행상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함. 이후 건강 악화로 61년에 사망.>

문_ 생계유지는 어떻게 하셨나요?
답_ 행상도 하고 별거 다했어요. 아버지가 장사를 열심히 하셔서 괜찮았는데, (어머니는) 고생 모르다가 그런 일 하셔서 고생 많이 했어요. 1963년부터는 직장 생활하면서 먹고 살았죠.

문_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답_ 6.25전쟁 이후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심장병을 얻어 61년도에 돌아가셨어요. 5남 3녀인데 4남은 모두 죽었어요. 아들은 나만 남고 젊었을 때 모두 죽었죠. 대구에서 고생 많이 했어요.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적십자사에서 공지가 있어서 1953년인가 1954년에 서울적십자사에 신고를 했어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아무것도 없었어요.



○ 호적정리

<실종 처리>

답_ 작년에 실종자로 처리했어요.



○ 연좌제 피해

<조사는 있었으나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음.>

답_ 피해는 없었는데 한번 내가 (공무원 시절) 천안에 내려갔는데 정보부에서 조사가 왔었어. 63년도에, 납치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밑에 둘째 아이가 군대 있을 적에 통신학교 졸업생인데 그때도 납치자 가족이라고 해서 좀 피해를 봤어요. 큰 피해는 없었어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소식 탐지>

답_ 기대하는건 없고 무슨 소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게 제일 큰 바램이거든요. 호적정리도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변호사를 써서 실종으로 신고를 했는데 다른 기대하는 건 없어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살아계시면 102살인데, 어렵네. 뭐라고 해야 되려나. 그건 참 어려운 얘긴데. 우리 아버지 참 좋았었는데, 이것도 몰랐어요. 저번에 우연찮게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눌러보니까 나오더라고요. 명단을 뽑아보고서 전화를 걸어서 여기 있다기에 왔어요.

아버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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