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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흥실 (증언자-김현태)
이름: 관리자
2013-09-17 12:57:45  |  조회: 2180
2007. 11. 12. 채록
071112A 김 흥 실 (金興實)

피랍인
생년월일: 1908년 5월 10일생
출생지: 강화군 불은면 삼성리 335번지
당시 주소: 상동
피랍일: 1950년 7월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대한청년단 면단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매
외모/성격: 성품이 좋고, 활동적인 편

증언자
성명: 김현태(1928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 발발 직후 7월경, 농사일을 하며 대동청년단 면단장을 하던 피랍인은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면 인민위원회에서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나간 후 돌아오지 못함.
- 9.29수복 후에 연천쪽으로 끌려갔다는 주변의 전언을 통해 북송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후 소식은 알 수 없음.
- 피랍인의 장남도 의혈대 활동으로 밀고를 당해 끌려가 고초를 겪었으나 풀려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유해 송환과 납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



“6.25사변이 나고 7월경에 그 동네에 배인수라고 하는 사람이 면 인민위원회에서 좀 오라고 한다고 해서 같이 가서는 영 못 뵌 거죠.”

“9.28 수복 때 내가 청년운동을 했거든요. 나도 붙잡혀 가서 죽을 뻔했어요. 우리집에서는 야단이 났지. 아버지 납치되고 장손이 잡혀가고, 우리 늙으신 할아버지가 동네 위원장한테 가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 직업 및 활동

<농업, 대동청년단 면단장>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기독교인이셨고, 대동청년단이라고 후에 변경돼서 대한청년단으로 됐는데 거기 면단장이셨어요. 면 위원도 되시고, 의장도 하셨어요. 생업으로는 농사일을 하셨어요.



○ 납북 경위

<6.25전쟁이 나고 7월경, 피랍인은 같은 동네에 사는 배인수로부터 면 인민위원회에서 찾는다는 전갈을 전해 받고 나선 후 돌아오지 못함.>

문_ 피난을 못 가셨어요?
답_ 못 갔죠. 그 때만 해도 교통이 나빴고 배를 타야 하는데, 지금은 다리가 있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해 피난을 못 갔어요.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6.25전쟁이 나고 7월경에 그 동네에 배인수라고 하는 사람이 면 인민위원회에서 좀 오라고 한다고 해서 같이 가서는 영 못 뵌 거죠.

문_ 그 과정에서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답_ 위협은 없었어요. 그 사람들이 와서 상당히 호의적으로 해서 붙들려 갔으니까, 다른 생각은 못했죠.

문_ 이후에 면에서 다른 기별이 있었나요?
답_ 없었어요. 내무서, 그러니까 경찰서에서 조사를 했겠지. 내무서에 갇혀 있다가 서울로 간거죠.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갔다고 하더라고요. 내무서에 유도장이 큰데 거기 갇혀 있다가 (그렇게 된거죠).

문_ 내무서에 얼마 동안 있었는지?
답_ 거기서 한 달 반쯤 있다가 서울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납치이유

<대동청년단 단장이면서 경찰서 내 반공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었고, 기독교인으로 동네에서는 부유한 편에 속했음.>

문_ 동네에 다른 분들도 그렇게 끌려갔나요?
답_ 우리 동네에서는 잡혀 간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문_ 그런데 왜 아버님이 끌려가신 건지?
답_ 동네에서 잘 사는 편에 속했어요. 기독교인이고, 이장도 봤고 청년단 단장에다 경찰서에서는 반공위원회에도 관계가 돼 있었어요.



○ 납치 후 소식

<끌려갔다는 내무서에 찾아갔으나 면회가 안됐고, 서울로 이송, 수감되어 9.28수복 전에 연천 쪽으로 끌려갔다고 추정할 뿐, 이후 소식을 알 수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9.28수복 바로 전으로 짐작하고 있어요. 서울 어디에 갇혀있었는지는 몰라도 서대문 형무소가 있었으니까 9.28수복이 되고 나서 (형무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다 끌고 갔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연천 쪽으로 해서 갔다는 얘기를 들었죠.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찾아보려고 해도 면회도 안 되고, 사식을 드리려고 해도 사식도 안 받고. 면에 파출소 같은 곳이 그 사람들 말로는 분주소거든요. 지금의 경찰서죠. 거기로 데려갔다고 해서 갔는데 면회도 안 되니까...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장남도 의혈대 활동으로 밀고를 당해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 풀려남. 재산을 몰수당하며 경제적 피해는 있었지만 당시 유지였던 할아버지가 집안을 꾸려가 농사를 지으며 생계유지>

답_ 9.28수복 때 내가 청년운동을 했거든요. 나도 붙잡혀 가서 죽을 뻔했어요. 우리집에서는 야단이 났지. 아버지 납치되고, 장손이 잡혀가고, 우리 늙으신 할아버지가 동네 위원장한테 가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의혈대라고 하는 운동을 했거든요. 불은면에 내려갔는데, 그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일시 후퇴했기 때문에 결국은 정보원들도 빨갱이들인지 내가 거기 나왔던 걸 알아가지고, 내가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다시 가는데 그때 뒤에서 쫓아와서 총 가지고 손들라고 해서 붙잡힌 거지. 근데 그때 내 주머니에는 의혈대 조직관계가 있어서 붙잡히면 그 사람들까지 붙잡히게 됐거든. 마침 비행기가 아주 낮게 와서 가시덤불로 숨어서 땅 속에 숨겨뒀기 때문에 나 하나만 붙잡혀 갔지. 날 보고 전적으로 그런 운동을 했으니까 다 대라 하기에, 그런 거 없다고, 아무것도 한 거 없다고 하니까 막 고문을 하고, 몇 번 졸도했다가 다시 물 끼얹어서 살리고 했어요. 나중에 두 달 정도를 기어 다녔어요.

문_ 어떻게 풀려나셨어요?
답_ 정치보위부에서 종교조사를 한 거야.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했더니 가져온 노트에다 긁적긁적하더라고. 그리고 한 사흘 만에 날 또 불러내더라고. 나는 죽이려나 보다 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맘이 편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니까 얼굴이 환하더래요. 산업조합 창고 지하실에 잡혀있었는데 솔직하게 그런 얘기를 하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인민공화국을 위해서 일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보내더라고. 거기에 강화군수도 잡혀있었는데 그 잡혀 있었던 다른 분들은 양산면 인화리라고 하는 곳으로 끌고 가서 다 죽였다고 하더라고. 창고에 갇혀 있던 사람이 2,300명 정도 됐었어요.

문_ 친척들 중에 납치 위협을 받은 분이 또 계신가요?
답_ 작은 아버님이 안양대 총장을 하셨어요. 그 때 당시에는 군정청에 다니셨는데 피난을 우리집으로 오셨어. 교회 마루 속에 숨었다가 위험하니까 며칠 만에 다시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시고 그랬죠.

문_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답_ 다 몰수당하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농촌에서 살았으니까 다시 봄 되면 모내고 농사짓고, 우리가 배급도 했어요. 지방에서 유지로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집안을 꾸려가셨죠.

문_ 어머님은 어떠셨어요?
답_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는데 (정부에서) 사망 신고하라고 해서 그 소리를 들으시면서 놀래신거야. 심장병이 걸리셔서 그걸로 인해 돌아가셨어. 세브란스 병원에 6개월 동안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는데 소용이 없고...



○ 정부의 노력

<납북과 관련하여 정부의 관심이나 지원은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신고하라고 해서 했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몇 해 있다가 사망 처리하라고 하고, 우리는 크리스천이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돌아오기만 바란 거지. 어머님은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시고. 내가 그 때 나이가 23살이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악하게 살지 않았으니까 무슨 일이 있겠냐 안심했지 뭐. 다른 도움은 없었고 6.25 참전 용사로 지원받고 있어요.



○ 호적정리

<미정리>



○ 연좌제 피해

<없음>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유해 송환과 납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

답_ 바라기는 유해라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인데 우리 정부가 정부가 아니에요. 그때 납북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유공자들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고 국회에서도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어요.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는 없어. 일본사람들은 몇 사람 안 되는데도 납치된 사람들 찾는다고 난리들인데 이 나라는 너무나도 무심해.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님께서 납치되신 이후에 아버지를 뵙고 싶은 마음도 있고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국가적인 환경이 그렇지를 못해서 한 번도 뵙지를 못하고, 내 자신이 팔십이나 되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 살아생전에 아버지 유해라도 찾아서 이제 모셨으면 하는 마음이 지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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