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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수길 (증언자-박무남)
이름: 관리자
2013-09-17 12:56:47  |  조회: 2074
2007. 11. 9. 채록
071109A 박 수 길 (朴壽吉)

피랍인
생년월일: 1921년 9월 18일생
출생지: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
당시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38-1호
피랍일: 1950년 6.25전쟁 중
피랍장소: 자택
직업: 국정교과서 인쇄공장 기술자, 대한청년단 감찰부 차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1녀
외모/성격: 건장한 체격에 주먹이 세고 활달한 성격

증언자
성명: 박무남(1943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국정교과서 인쇄공장 기술자이면서 대한청년단 감찰부 차장으로 반공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피랍인은 6.25전쟁 발발 후 정확한 일자는 기억할 수 없지만 오후 2시경 자택으로 찾아 온 내무서원 또는 지방 좌익에 의해 성북 경찰서로 연행됨.
- 피랍인의 배우자가 직접 미아리 고개로 끌려가는 것까지 목격했으나, 이후 소식을 알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집으로 찾아와서 데려간 거예요. 오후 2시경에 와서 “갑시다.” 하고 데려간 거예요. 지금 말하자면 성북 경찰서예요. 거기서 조사를 하고 어머니가 쫓아가서 미아리 고개로 전체가 끌려갈 때 확인을 하신 거죠. 그 다음은 모르는 거죠.”

“가족 때문에 피신을 안 한 양반이니까. 주위에서 피신해라 도망가라 했는데 ‘나는 가족 두고 못 간다.’ 그러다가 끌려가신 거죠. 아버님이 대단하시죠, 가족 생각하시는 것이. 가족들 껴안고 있으려다가 그렇게 되신 거예요. 피신을 했어야 했는데 가족 때문에 피신을 못하신 거예요.”




○ 직업 및 활동

<국정교과서 인쇄공장 기술자, 성북구 대한청년단 감찰부 차장>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국정교과서 인쇄공장 기술자로 계셨어요. 성북구에서는 대한청년단 감찰부 차장이셨는데 그래서 납치되신 것 같아요.



○ 납북 경위

<가족들을 지키느라 피신을 하지 않고 남아있던 피랍인은 자택으로 찾아온 내무서원 또는 빨갱이들에 의해 성북경찰서로 연행됨. 피랍인의 배우자가 쫓아가 미아리 고개로 끌려가는 것을 확인함.>

문_ 전쟁 당시 주변 상황은?
답_ 그 당시에는 인민군이 후퇴할 때, 우리 성북동 산울에서 정릉으로 다 넘어갔어요. 그건 다 봤죠. 인민군이 우리 옆으로 와서 부상자 다 버리고 가니까 부상자들이 물 좀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부엌문 두드리고, 어머니 혼자 계시는데 무서워서 지서에 신고해서 데려간 적도 있고 그래요.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집으로 찾아와서 데려간 거예요. 오후 2시경에 와서 “갑시다.” 하고 데려간 거예요. 지금 말하면 성북경찰서예요. 거기서 조사를 하고 어머니가 쫓아가서 미아리 고개로 전체가 끌려갈 때 확인을 하셨어요. 그 다음은 모르는 거죠. 우리 생각하기에는 아버님이 운동하시고 성격이 괄괄하신 분이라 돌아가신 걸로 생각해요. 안 돌아가셨으면 지금까지 연락을 안 하실 분이 아니에요.

문_ 왜 피난을 가지 않으셨는지?
답_ 주위에서 계속 피하라고 했는데 우리 아버님이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가족 두고 못 간다.” 하시며 피하질 않고 계시다가 납북되신 거예요. 가족 생각하시는 것이 대단하셨죠. 가족들 껴안고 있으려다가 그렇게 되신 거예요. 피신을 했어야 했는데 가족 때문에.



○ 납치이유

<대한청년단 감찰부 차장으로 반공활동을 활발히 했음.>

답_ 대한청년단은 철저한 반공이잖아요. 감찰부 차장을 했으니 어떻게 안 데려가요. 성북동에서는 최고 알아주는 스타였거든요. 성북동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이라 운동을 많이 하시고 힘도 좋고 부하들이 비서 모양으로 따라 다닐 정도로 성북동에서는 아버님이 굉장하셨어요. 그러니까 납북되신 거죠.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거기서 끌려가신 이후로는 모르는 거예요. 하나도 들은 거 없어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가장이 피랍된 후 전쟁 중에 피랍인의 차남을 제외한 막내 아들과 딸까지 사고와 질병으로 사망.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 어렵게 생활하다 피랍인의 배우자가 피랍인의 전 직장이었던 국정교과서 인쇄소에 자리를 얻어 근무하게 됨.>

답_ 아버님께서 벌어서 먹고 살았는데 그 이후로는 말할 수 없는거죠. 3남매인데 구루마 끌고 피난을 갈 정도니 말도 못하는 거죠. 고생은 말도 못했어요. 형은 아버지 계실 때 이미 사망했고, 남동생은 6.25 나서 케로부대에 가서 폭탄 장난하다가 터져서 즉사했어요. 그리고 막내 여동생은 피난 중에 홍역으로 죽고, 할머니가 재혼을 하셔서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어머니 계시고, 형제관계는 나만 남았죠.

문_ 주변에서 도움이 있었나요?
답_ 아버님이 직장에서 괜찮으셨거든요. 대방동에 국정교과서 인쇄소, 초등학교 교과서를 다 만들었어요. 아버님 그렇게 되시고 어머님이 아버님 대신 국정교과서에 들어가서 일 하셨죠.

문_ 어머님 건강은 어떠세요?
답_ 1923년생이니까 85세인데, 건강하게 계세요.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어머니가 지금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기억을 못하시는데, 당시 다 신고를 했을 거예요. 저는 지금 정확하게 모르지만.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없어요. 지금까지 하나도 없어요.



○ 호적정리

<미정리>

답_ 그냥 뒀어요. 그대로 살려놨어요. 아버님이 호주이고 호적을 죽이지 않았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신게 확인이 안됐기 때문에 아버님 호적은 그대로 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아버님 때문에 어려움 당한 건 없었어요. 제가 군대 제대하고 대한통운 서울지점, 평택농장에서 일하고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했는데, 취직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고요. 아버님 호적이 그대로 그냥 살아있으니까. 납북자라고 되어 있지 않고 그대로 호주로 두고 있어서인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답_ 생사확인이 제일 문제죠.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데 생사확인만 좀 해주면...(눈물) 그게 제일 소원이죠. 돌아가셨다고 생각해요. 아버님이 그냥 계실 분이 아니에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눈물) 아버지, 정말 보고 싶습니다. 한번만 봤으면 좋겠어요. 할 말이 없네요.

문_ 아버님이 언제 많이 보고 싶으셨어요?
답_ 말도 못해요. (눈물) 평생을 가슴에 안고서... 아버지 계실 때 형이 죽고, 제가 차남인데 장남이 된거죠. 그 그리움이라는 건 말도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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