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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순건 (증언자-김무근)
이름: 관리자
2013-09-17 12:59:27  |  조회: 2066
2007. 11. 14. 채록
071114A 김 순 건 (金淳鍵)

피랍인
생년월일: 1910년 6월 4일생
출생지: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
당시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273-12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7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경찰 관련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매
외모/성격: 180cm 신장에 미남형

증언자
성명: 김무근(1945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평안남도 출신의 피랍인은 북측의 부르주아 색출 작업을 피해 1945년 해방후 남하.
- 경찰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피랍인은 6.25전쟁 발발 후 8월 초경 자택으로 찾아 온 내무서원에 의해 강제 연행된 이후 소식을 알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의 제안과 활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가족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것

“이북이 공산치하로 되고 그 쪽에서 하는 모든 게 공산치하에 들어가다 보니까 부르주아 색출 작업을 해서 그걸 피해서 내려왔죠.”

“전쟁을 피해서 무작정 대구까지 피난을 갔는데, 그때 생활은 비참하지. 전쟁의 비참함이라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어. 그때 어렸을 때 신문도 팔아야 되고 그러면서 근근이 먹고 살았지. 어머니는 광주리에다 물건 받아다 팔고, 나는 신문도 팔고 형도 신문 팔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연명했지.”
















○ 직업 및 활동

<경찰 계통에 있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경찰 계통에 계신 걸로 알고 있고 그 쪽에 계시다가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하신다고 들은 것 같아요.

문_ 아버님은 언제 남하하셨어요?
답_ 1945년도 해방된 해에 바로 내려오셨죠.

문_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됐나요?
답_ 이북이 공산치하로 되고 그 쪽에서 하는 모든 게 공산치하에 들어가다 보니까 부르주아 색출 작업을 피해서 내려왔죠.



○ 납북 경위

<9.28수복되기 전인 8월 초경 자택으로 찾아 온 내무서원에 의해 강제 연행됨.>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내무서원들이 집에 찾아와서 강제 납치가 됐지.

문_ 자세한 납북 경위에 대한 이야기는?
답_ 어머님이 곁에 계셨는데 나는 들어도 오래돼서 기억이 없고, 모르겠어요.

문_ 언제 납북이 되셨는지?
답_ 8월 7일이라고 당시 신고를 해놓은 걸 봤어요.



○ 납치이유

<고향에서 학교를 세우는 등 부르주아로 분류되어 반공으로 숙청되는 것을 피해 남하.>

답_ 이북 공산주의자들이 얘기하는 부르주아란 말이지. 이북에서 학교도 세우고 반공적인 사상을 가지고 일을 하니까 공산주의 정권에서 봤을 때는 돈 있고 반공이다, 부르주아다 해서 처형을 한다든지 잡을 거 아니야. 그걸 피해서 해방되자마자 바로 내려왔지. 그런 것들 때문에 이북에서 우리는 살 수가 없잖아. 살기 위해서는 남한으로 내려와야 될 거 아니야. 납북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그 이후에는 소식을 모르죠. 소식을 알 수가 없지.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찾으려는 노력을 했는데 그 당시에 우리 사돈쪽에 최두선씨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했을 때야. 그 쪽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해도 거의 확인할 수가 없었어. 그 후로 정전되고 우리 어머니가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지.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대구에서 3년 동안 피난생활을 하면서 피랍인의 배우자는 광주리로 물건을 받아다 팔고, 두 아들은 신문팔이를 하면서 근근이 생활함. 정전이 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 삯바느질과 물건 판매로 생계유지함.>

답_ 전쟁을 피해서 무작정 대구까지 피난을 갔는데, 그때 생활은 비참하지. 전쟁의 비참함이라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어. 그때 어렸을 때 신문도 팔아야 되고 그러면서 근근이 먹고 살았지. 어머니는 광주리에다 물건 받아다 팔고, 나는 신문도 팔고 형도 신문 팔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연명했지.

문_ 그 후에 다시 서울로 가셨나요?
답_ 내가 여섯 살 때 6.25가 났으니까 여섯 살부터 아홉 살까지는 대구에 살았지. 그리고 (서울로 와서)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그렇게 다니다가 우리 어머니가 삯바느질도 하고 물건도 팔고 해서 생활해 나갔지.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신고를 하라고 해서 적십자사를 통해서 했어.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그런거 없었어요.



○ 호적정리

<미정리>

답_ 호적은 정리가 안 돼 있지. 아직도 살아있는 상태로 되어 있어. 세월도 지났고 나이도 있고 하니까 정리를 해야지.



○ 연좌제 피해

<1975년까지는 출국을 위해 신원조회 시 어려움이 있었음>

답_ 내가 젊었을 때 1975년도까지만 해도 해외 나갈 때 신원조회를 하면 심했지. 납북된 가족들이 해외 나가려고 신원조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



○ 정부에 바라는 말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의 제안과 활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가족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것>

답_ 납북자 가족에 대해서 정부에서 이때까지 보여준 게 하나도 없잖아. 남북정상회담 할 때 납북자에 대한 이야기도 못하고 아부만 하는 입장인데. 이런 협회에서 뭘 한다고 해도 통일부나 정부의 입장에서 받아주는 사항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아. 여기서 노력하는 거 십분의 일이라도 정부에서 받아주고 어떻게 하겠다는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데, 하나도 안 보여주고 있잖아. 납북자 가족이라든지 협회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항상 실망만 하고 있는 상태잖아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지께서 이북에 살아 계시다면 언젠가 통일이 되어 건강하게 만나서 서로 얘기할 시간을 주셨으면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기 있는 자식들 생각하면서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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