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박영화 (증언자-박성태)
이름: 관리자
2013-09-17 12:58:44  |  조회: 2166
2007. 11. 12. 채록
071112B 박 영 화 (朴泳和)

피랍인
생년월일: 1896년 6월 6일생
출생지: 충북 충주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피랍일: 1950년 9월 초순
피랍장소: 무학여고 근처
직업: 이시영 부통령 비서실장
학력/경력: 일본 구마자와 대학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매
외모/성격: 온순하고 가정에 충실한 편

증언자
성명: 박성태(1939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6.25전쟁 당시 이시영 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피랍인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부통령과 연락을 취하느라 다른 곳에 피신해 있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납치된 후 소식을 알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납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

“이시영 부통령께서 피신 안가시고 당신은 여기 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비서실장이니까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다급해지면서 부통령은 피신했고 아버지는 못했고. 부통령댁에 아버지는 가 계셨는데 피신을 안 하고 계시니까 비서실장이신 아버지도 같이 있었다가 다급해지니까 부통령은 피신해 갔는데 연락이 안 돼서 아버지는 피신을 못 갔죠.”

“혹시나 해서 수복되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어디 형무소나 어디에서 돌아가셨는지 좀 돌아다녀봤어. 그랬는데 단서도 없고 아무것도 못 찾았지. 서대문형무소다 뭐다 몇 군데 돌아다녀봤어. 혹시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데 전혀 못 찾았지.”




○ 직업 및 활동

<이시영 부통령 비서실장>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이시영 부통령 비서실장.

문_ 다른 애국 활동도 하셨나요?
답_ 이시영 부통령을 모시고 있으면서 상해다 중국 쪽으로 다니며 독립 운동한 걸로 알고 있어.



○ 납북 경위

<이시영 부통령과 연락을 닿느라 다른 곳에 피신해 있던 중에 밀고를 당해 납치됨. 시기는 9월 초로 추정됨.>

문_ 전쟁 발발하고 피난을 못 가셨어요?
답_ 나는 가족과 헤어져서 피난 갔고 아버지는 부통령하고 연락을 닿느라 다른 곳에 피신해 계시다가 납북되셨어요. 부통령 모시느라 지방에 같이 피난 가지 못하고 계셨어요.

문_ 피신하라는 얘기가 있었을 텐데요.
답_ 이시영 부통령께서 피신을 하지 않으시고 당신은 여기 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비서실장이시니까 그대로 남아 있었던거죠. 아버지도 부통령댁에서 피신을 안 하고 계시다가 상황이 다급해지면서 부통령은 피신하셨는데 연락이 안 돼서 아버지는 피신을 못하셨어요. 그 때가 기억은 희미한데 9월 초일 거에요.

문_ 납치될 당시 아버님은 부통력댁에 계셨나요?
답_ 집에 왔다 갔다 했지만 주로 무교동에 있는 부통령 댁에 있었죠.

문_ 은신하고 계실 때에도 지하활동을 하셨나 봅니다.
답_ 그런거 같아요. 걔네들한테 협조하지 않고 지하운동을 하다가 일종의 배신자에게 밀고 당해서 납치당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부통령을 모시고 그 쪽(무교동)에서 피신하고 있었는데 부통령이 막 피신해 가시고 아버지는 미처 다른 일로 못 가신 것 같아. 그러다가 누군가가 밀고를 해서 아버지가 잡히신 것 같아요.



○ 납치이유

<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지위>



○ 납치 후 소식

<수복 후에 피랍인의 흔적을 찾아 서대문형무소 등 여러 곳을 다녔지만 흔적은 찾지 못했고, 누군가가 서대문에서 피랍인을 업고 나갔다는 소식을 들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소식이 없어. 시국이 안정된 상태에서 잡혀갔다면 부통령 비서실장직에 계셨으니까 그렇게 함부로 당하진 않았겠지만, 그 당시가 요란할 때라, 9.28수복 전후니까 가면서 처형 당하셨는지 모르지. 피랍 이후의 소식은 전혀 몰라요.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혹시나 해서 수복되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어디에서 돌아가셨는지 좀 돌아다녀봤어. 그랬는데 단서도 없고 아무것도 못 찾았지.. 혹시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서대문형무소다 뭐다 몇 군데 돌아다녀봤는데 전혀 못 찾았지. 그런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서대문에서 아버지를 업고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확한 건 아니죠. 이리저리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면서 서대문형무소도 가보고 그랬던거죠.



○ 남은 가족의 생활은?

<교직에 있는 동생들의 도움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생활함.>

답_ 사는 거야 다들 어려웠으니까. 그 당시 누이동생들이 교사여서 그런대로 살았지. 나는 6.25전쟁 나서 피난 갔다 오고 군에 입대했었지. 우리가 서울중학교 뒷문 쪽에 지금의 서대문인 신문로에서 살았었는데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어. 친어머니는 그 전에 돌아가셨고.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누이 동생이 했을 거예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특별한 혜택 없었어.



○ 호적정리

<사망신고>

답_ 자연사로 처리했어. 상당기간 시간이 지난 다음에.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없었어. 난 나대로 군에 들어갔고 연좌제 피해는 없었어.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납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

답_ 세월이 오래되고 해서 지금이야 살아계시지도 않겠지만, 당시에 좀더 적극적으로 생사확인을 할 수 있도록 활동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정부에서 그런 조치가 미흡했어. 지금이라도 납북된 사람들에 대해서 북쪽과 협조해서 자세히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가족들도 어떤 상황에 놓여서 그랬다는걸 알 수 있지. 이건 납북된 이후의 소식은 일절 모르니까.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전하는 말도 살아계시다고 해야 얘기를 하는 건데, 지금 연세로 보나 납북되지 않았다 해도 살아계시질 않지. 다른 거 없어요. 고생 많이 하신 것 다 잊고 편안하게 계셨으면 하는게 바람이지. 자기 의사에 반해서 붙잡혀 간 거니까 여러 가지 많은 고통을 당했겠지. 당시 부통령 비서실장을 했으니까 아무리 이북 쪽이라 해도 홀대는 못했겠지. 그래도 자기 의사에 반해서 강압적으로 당해 간 거니까 고생은 많았을 거예요. 지금 바램이라면 마음 편안하게 편히 계셨으면 하는 게 소원이지.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10 납북자-권태술 (증언자-권영환)
관리자
13-09-26 2433
109 납북자-이병덕 (증언자-이병학)
관리자
13-09-26 1995
108 납북자-백범기 (증언자-백완현)
관리자
13-09-26 2907
107 납북자-정준모 (증언자-정진호)
관리자
13-09-26 2557
106 납북자-김기원 (증언자-김기조)
관리자
13-09-26 2743
105 납북자-곽명선 (증언자-곽재덕)
관리자
13-09-26 2634
104 납북자-송두석 (증언자-송인순)
관리자
13-09-17 2570
103 납북자-최무성 (증언자-최석기)
관리자
13-09-17 2192
102 납북자-이채덕 (증언자-이의훈)
관리자
13-09-17 2636
101 납북자-윤석보 (증언자-유차현)
관리자
13-09-17 2181
100 납북자-김순건 (증언자-김무근)
관리자
13-09-17 2084
99 납북자-박영화 (증언자-박성태)
관리자
13-09-17 2165
98 납북자-김흥실 (증언자-김현태)
관리자
13-09-17 2033
97 납북자-박수길 (증언자-박무남)
관리자
13-09-17 2177
96 납북자-민효식 (증언자-민병언)
관리자
13-09-17 2101
95 납북자-김정대 (증언자-김은호)
관리자
13-09-17 2332
94 납북자-이인현 (증언자-이원목)
관리자
13-09-17 2205
93 납북자-김기복 (증언자-김광일)
관리자
13-09-17 1982
92 납북자-이의근 (증언자-이창근)
관리자
13-09-17 1970
91 납북자-김하준 (증언자-김하겸)
관리자
13-09-17 208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