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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득필(증언자-김화철)
이름: 관리자
2021-09-16 15:16:05  |  조회: 147
190412A 김 득 필 ( 金得弼)
생년월일: 1926년 5월 25일
출생지: 함경북도 청진시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3가
피랍일: 1950년 여름
피랍장소: 종로 3가
직업: 상업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명
외모/성격: 자상한 편

증언자
성명: 김화철(1937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납북자 김득필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부모 형제들과 같이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직전 월남 후
1948년 결혼. 종로 3가 인근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음. 가게 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연행 납북됨.
• 큰형님은 납북, 둘째 형님은 국군으로 전사하였음.
• 큰형님 유복녀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왕래가 끊겼고,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연락할 방법이 없음.

직업 및 활동
<큰형님은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종로 3가에 분가하여 살며 장사를 함.>
문_ 전쟁 전 후 어떻게 지내오셨나요?
답_ 여섯 식구가 해방 전에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 나고 남쪽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 와
가지고 있었던 곳이 현재는 서울역 남대문이에요. 그 옆에 임시 수용소가 있었어요. 이
북에서 온 사람들이 거기서 대기를 하는 식으로 있다가. 그래 가지고 우리는 돈이 좀 있
어 창신동(종로 6가)에 집을 사 가지고 지냈어요. 48년에 형님이 결혼식을 하고 50년에
납북이 됐죠. 그리고 우리 형 하나도 군대 갔고. 작은형하고 나하고 우리 여동생하고 어
머니 아버지만 그렇게 살았죠.
문_ 큰형님의 직업이나 사회적 활동은 어떻게 되나요?
답_ 큰형님은 결혼을 하시고 종로 3가 인근에서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셨어요. 결혼식 하
고 그 다음에는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모르죠. 무슨 장사하는지도 모르고. 결혼하고 따로
살림을 하셨고, (당시에는) 자녀는 없었는데 납북 되신 후 51년도에 조카가 태어났어요.
문_ 큰형님의 성격은 어떠셨나요?
답_ 제가 폐가 안 좋아 아파가지고 창신동에 같이 살 때에 큰형님이 을지로 중앙의료원
에 자전거로 매번 데리고 간 기억이 있어요. 아침마다 거기 가서 치료 받고, 거기 가서.
납북 경위
<집에서 점심 식사 후 나오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인민군에게 붙잡혀 감.>
문_ 어떻게 납치됐는지요?
답_ 그때가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식사하고 나오다가 거기서 인민군한테 잡혀갔
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형수가 얘기를 해 가지고 알았죠. 납북이 되었을 때는 형님이 종
로 3가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어요. 가게 뒤에다가 방을 잡아가지고 형수님하고 살림을
했는데, 식사하고 나오다가 누가 신고를 해 가지고 형님이 거기서 납북이 된 거죠.납북
되는 건 못 봤죠. 그때 우리가 떨어져 살았으니까 모르죠.
문_ 피난은 가셨는지요?
답_ 나하고 여동생, 엄마하고는 있고요. 그러고 인제 형들은, 둘째 형은 군대에 있고 큰
“그때 식사하고 나오다가 거기서 인민군한테 잡혀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형수가
얘기를 해 가지고 알았죠. 납북이 되었을 때는 형님이 종로 3가에서 가게를 하고 있
었어요. 가게 뒤에다가 방을 잡아가지고 형수님하고 살림을 했는데, 식사하고 나오다
가 누가 신고를 해 가지고 형님이 거기서 납북이 된 거죠.”
“우리는 그걸 몰라 가지고 그냥 시체라도 찾으려고 많이 찾으러 다녔어요. 종로 4가
거기 청계천이 있어요. 그 옆에 지하에 개천가에서 돌아가신 분도 많고, 청계천이고
어디고 맨날 다니다가 못 찾아가지고, 그런데 누가 납북된 것을 알려줬어요. 잡혀갔다
고. 그래 가지고 이제 잡혀간 것을 알게 됐어요.”
형님은 납북되고 했으니까요. 그 셋째 형님하고 아버지하고만 피난 가신 걸로 알고 있
어요. 그때가 1.4후퇴 땐가 6·25인가 나는 몰라. 한번은 가셨어요. 한 번은 같이 살고.
셋째 형이랑 아버지가 피난가시는 걸 봤어요. 보따리 싸서 가니까 물어볼 수 밖에요. 피
난 갔다고 해서 알았죠. 그때 내가 국민학교 땐가 우리도 갔어요. 피난 갈려고 하다가.
그때 종로 6가 살적이죠. 살 적에 피난 갈라고 종로 3가까지 갔었어요. 청계천 거기까
지 갔다가. 내가 국민학교 때도 힘이 있어가지고 쌀 한 말을 이었어요. 그런데 하여간
더 못 가겠더라고요. 아버지보고 내가 더 못 가겠다고 그랬더니 야 그래, 죽어도 여기서
죽자 해서 다시 집으로 와 가지고 여기서 있었죠.

납치 이유
<동네에 사는 누군가가 밀고해서 끌려감.>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아버지가 얘기하더라고. 동네에 사는 사람 중 누군가 형님을
지목했대요. 그래서 식사하는데 누가 찔러서 형님이 식사하고 나오다가 인민군한테 끌
려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납치 후 소식
<전혀 알 수 없음.>
문_ 납북 후에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가족들이 찾으려고 많이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뭘 알
수가 없었죠. 그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인민군이 잡아갔다. 그 다음부터 소식이 없는 거
죠. 우리는 그걸 몰라 가지고 그냥 시체라도 찾으려고 많이 찾으러 다녔어요. 종로 4가
거기 청계천이 있어요. 그 옆에 지하에 개천가에서 돌아가신 분도 많고, 청계천이고 (어
디고) 맨날 다니다가 못 찾아가지고, 그런데 누가 납북된 것을 알려줬어요. 잡혀갔다고.
그래 가지고 이제 잡혀간 것을 알게 됐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가족은 시체라도 찾으러 서울 일대를 돌아다녔으나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큰형
님의 납북 후 형수는 홀로 아이를 출산하고 재가함.>
문_ 남은 가족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답_ 거기다 둘째 형이 군대 가서 전사되었으니까. 큰형님 그렇지, 작은형님 그렇지, 그
러니까 맨날 우시는 거지 아침마다. 60년대 초반에 딸하나 낳고 여동생도 연탄가스 중
독으로 사망하는 슬픈 일을 겪었어요. (그래도) 형수님이 가끔 집에 왔었죠. 그래서 얼
굴을 알아요.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호적에서) 빼달라 그래 가지고. 또 너무 혼자 살
기… 젊은 사람이 혼자 살기가 어려우니까 간다 그랬나 봐요. 빼달라고 원하는대로 해주
었는데 나중에 조카를 낳았다는 거를 알았지요. 그때가 언제냐면 조카아이가 결혼한다
고 그래서 알게 됐죠. 결혼식에 내가 갔었어요. 당시에 아버지는 시계 장사를 하시다가
셋째 형한테 물려주셨어요. 그 후에 조카가 결혼하고 이후에 어머니가 환갑하시고 81년
도에 돌아가시고, 그 다음에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작년에는 셋째 형
님이 돌아가셨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1956년 대한적십자사에 실향사민신고서를 아버지가 접수한 사실을 가족회에서 알
게 됐어요.
문_ 정부에서 지원해 준 것은 있나요?
답_ 아무것도 없어요.

호적 정리
<1998년도 3월에 셋째 형이 사망신고 함.>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1998년도 3월에 사망으로다가 신고 했죠. 셋째 형이 신고를 했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그 얘기만 들었지 그런 걸 나는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러니까 군대를 가고 나서도, 성
인이 되고 나서도 형이 납북되었으니까 누가 와서 물어본다던가, 행적을 물어 본다던가
이런 거는 전혀 없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같은 대한민국에 사는데도 연락이 끊어진 조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움.>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저 이산가족도 가서 찾잖아요. 이북에 가서 만나잖아요. 그런
데 여기 대한민국에 있는데도 조카를 못 찾는 게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조카를 찾
고 싶은데 말이죠. 멀리 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있는데도 못 찾는다는 것이 그
게 원망스럽죠. 동생이 그것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 했느냐 싶어서. 조카를 제대로 건사
를 하지 못하고. 둘째 형도 결혼도 안하고 돌아가셨거든요. 셋째 형만 있고 그러니까 이
제 원망스럽죠. 비밀 보장이라는 게 필요한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큰형님의 딸을 못 찾
는다는 것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죠.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형님은 돌아가셨겠지만 만일 조카를 찾지 못한다면 동생으로서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는 것에 미안함.>
문_ 형님께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글쎄, 납북돼도 혹시라도 살아 계시다면 다행이지만. 연세가 많으시니까 돌아가셨
겠죠.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돌아간 것보다 그 납북 됐지만, 조카를 찾아야 되는데 찾을
길이 없거든요. 전에 아버지 팔순 때 그때 애가 왔었어요. 와 가지고 봤고, 그 다음부터
연락이 없었죠. 연락이 없다가, 내가 칠순 때 찾을 길이 없어 가지고 어디 물어보니까
경찰서 민원실에 가서 물어보라고 해서 가서 했더니 마침 조카도 나를 찾는다고 해서 어
렵게 또 한 번 만났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연락했더니 핸드폰 번호가 바뀌는 바람에 연
락이 두절됐어요. 그 다음에 내가 또 경찰 쪽에 연락을 했더니 이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있어서 찾을 길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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