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정중화(증언자-정연종)
이름: 관리자
2021-09-17 12:42:35  |  조회: 170
190415B 정 중 화 ( 鄭重和)

생년월일: 1919년 4월 21일
출생지: 경기도 안산군 사사동 10번지
당시 주소: 경기도 안산군 사사동 10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6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약종상, 방앗간
학력/경력: 영등포 철도고등학교 / 대한청년단 단장
직계/부양가족: 부, 배우자, 자녀 2남 1녀
외모/성격: 적극적인 편

증언자
성명: 정연종(1942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납북자의 부친이 지역유지로 재산이 많았으며 지방 좌익들이 무장하고 집으로 찾아와 숨이 찬 지병 때문
에 납북자는 피신하지 못하고 끌려감.
• 반월면소재지 앞 건물에 가두고 쌀 세가마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납북자의 부친이 우리 아들이 뭘 잘못했
느냐고 주지 않아 있다가 여러 명이 수원으로 밧줄에 묶여서 끌려가는 것을 목격하였음.
• 외할아버지가 납북자를 찾으러 수원교도소, 마포형무소, 서대문형무소를 가 보았지만 끌려간 후 소식 없
음.

직업 및 활동
<부친이 재력가로 납북자는 가을에 발동기로 이집 저집 방아 찧는 일을 했고 대한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함.>
문_ 납북자의 출생지와 관계를 말씀해주세요.
답_ 저희 아버님 되시지요. 사사동 10번지. (현재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10번
지) 제가 여기서 계속 살았지. 어디로 이사도 안 가고.
문_ 아버님의 직업이나 사회적 활동이 있으셨나요?
답_ 할아버지가 돈이 많으셔서 계속해서 한 일은 별로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약종상이셨고
동네 은행처럼 재력가였어요. 저도 그걸 나중에 알았어요. 우리 아버지는 무엇을 하셨는가
하면 그 당시에 가을이면 발동기가 있어요. 그걸 가지고 이 집 앞에서 방아 찧고 그런 걸 봤거
든요. 이 집에 가서 찧고, 저 집에 가서 찧고. 우리 집에서 제일 오래 찧었어요. 아버지는 영
등포 철도고등학교를 나오신 것 같아요. 옛날에 그 본오동에 사리 그쪽으로다가 거기 해변이
있는데, 거기 빨갱이들이 많다 그렇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본오동에 우리 아버지처럼 똑
같이 끌려간 사람이 하나 있어요. 그분한테서 아버지가 청년단에서 활동한 걸 들었어요.

납북 경위
<무더운 여름 날 빨갱이들이 총을 메고 집으로 와서 끌고 가는 것을 목격했고 인근 반월
면 소재지 앞 건물에 감금한 후 쌀 세 가마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주지 않아 수원으로 이송
되는 것을 증언자가 목격하였음.>
문_ 어떻게 납북됐는지요?
답_ 이 동네에서는 딱 아버지 한 분이지. 무더운 여름 날 대청마루였었는데, 지방 빨갱
이들이 저 쪽에서 저 샘막 고개에서 총 세 방 빵빵 쏘고서는 와 가지고서 아버지가 그 당
시에 어디로만 도망이라도 갔으면 되는 건데… 그걸. 또 숨이 찬 지병이 있었어요. 여기
서 이제 빨갱이들이 끌고 나가는 걸 제가 봤어요. 반월서, 반월 면소재지 앞에 일본 애
들이 지어놓은 건물이 있었어요. 거기에 인제 가둬 놓은 거죠. 여기서 끌려가 가지고 그
면소재지 앞 감방에 엄마가 사식을 거기다가 넣어주셨어요. 거기서 쌀 세 가마를 내놓
아라. 내가 이제 나중에서 동네 사람들한테 들었어요. 쌀 세 가마를 내 놓아라 이러니
까 우리 아들이 뭘 잘못했느냐 이거지. 그때 그 양반, 상놈 하던 시절 이니까… 우리 애
들이 뭘 잘못 했느냐 이거지. 그래서 쌀을 쌓아두고서도 안 줬단 말이에요. 얼마쯤 있었
는지, 수원으로 넘어 간다 그래 가지고서 내가 여기서 뛰어 넘어가 주리골 큰길에서 보
니까 쭉 끌려가더라고. 밧줄에 매가지고서는. 한 두 명이 아니었어요. 거기에서 봤죠 내
가. 아버지랑 다른 사람들이 쭉 밧줄을 매 가지고선 끌려가고 있었어요. 여러 명이지.
한 열댓 명 되더라고. 그게 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문_ 납북되기 전에 마을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글쎄, 그 전에는 평화로웠죠. 아버지랑 잘 어울려 다니는 동네 분이 죽었어요. 정◯
진이라는 사람이. 아버지랑 참 친하셨어요. 인민군은 못 보고, 미군들하고 중공군들.
중공군들은… 저 옛날에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어요. 그 눈이 왔는데, 저기 저 칠보산하
고 그 수리산하고 격전이 붙었어요.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어디서 듣고 오셔가지고 ‘불
켜지 말아라.’ 그러고 벽에다가 이불로 전부 다 가려놨어요. 그 왜냐하면 총알이 날아오
다가 이불 맞으면 더 들어오지 말라고. 그때부터는 외할아버지가 여기 오셔가지고서는
재산 관리를 하셨어요. 친할아버지도 그때 계셨어요. 그런데 가장 믿을 만한 분이 외할
아버지라 관리를 해주셨어요.

납치 이유
<동네유지의 아들이며 청년단 활동하는 젊은이라 끌고 간 것으로 추측함.>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할아버지는 약종상이셨고 동네 은행처럼 재력가였어요. 나중에서 주위 사람들이 ‘너
희 아버지는 대한청년단 단장이었다’고 얘기를 해줬죠.

납치 후 소식
<반월에서 수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 이후 행방은 알 수 없음.>
문_ 아버님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수원으로 밧줄에 여러 명을 묶어서 끌고 가는데 주리골로 달려가 끌려가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못 봤어요. 유일하게 같이 살던 외할아버지가 수원으로 넘어 간다 그래
서 서울의 마포형무소까지 찾아가 보고, 뭐 서대문형무소도 가보고 그랬는데 소식 전혀
알 수 없었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친할아버지가 가진 재산이 많았으므로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음. 친할아버지가 외할아버
지와 함께 일 하며 재산을 관리함.>
문_ 남은 가족은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_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찾으러 많이 다니셨어요.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찾아가는 걸
멈추셨고요. 글쎄, 저는 그냥 그래도 옛날에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고, 그래
도 보리밥은 안 먹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다니다가 3학년쯤 다니는데 그때 뭐가 잘못 되
가지고서는 내가 못 댕겼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찾으려는 노력은 하셨나요?
답_ 이산가족 신청도 안 했어요. 그냥 전부 다 도둑놈 같았다니까요. 오죽했으면 외할아
버지한테 재산 관리를 시키셨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자식들을 못 믿으셨어요. 그래서 인
제 우리가 회복되고 나서 할아버지를 여기서 모시고 있었는데, 하도 도둑놈이 들어와 가
지고 그냥 풍비박산을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나이가 먹다 보니까 모르는 놈은
도둑질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할아버지가 찾으러 다니시지도 않으시고 아버지 얘
기도 안하시니까 외할아버지가 찾으러 다니셨어요. 수원교도소도 가고, 서울 마포교도소
도 있고. 거기도 가시고 그러셨어요.
문_ 정부에서 도와준 것은 있나요?
답_ 그런 건 없었죠.

호적 정리
<그대로 두었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아뇨. 그대로 있어요. 살아있는 그대로.

연좌제 피해
<같은 지역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므로 피해를 느낀 적이 없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없었어요. 딱히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거든요. 계속 거기서 농사짓고 살아서 그런 건
몰랐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너무 빠르게 성장하여 폐단도 있음.>
문_ 정부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그 바라는 점이 내가 생각할 적에 농사짓고 있기 때문에… 바라고 싶은 게 뭐라고 할
까요? 우리나라가 너무 빨리 됐어요. 너무 빨리 된 걸로 알고 있어. 왜? 시집 장가들을
안 가잖아요. 뭐 하러 가냐 그 얘기에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아버지만 납북되지 않고 계셨어도 내가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함.>
문_ 아버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하고 싶은 얘기는 글쎄, 아버지가 있었다면 저도 농사를 안 지었다고 봐야죠. 그리
고 집안이 이제 완전히 풍비박산이 됐어요. 그리고 제가 군대를 늦게 갔어요. 안 갈라
고, 안 갈라고, 그러다가 간신히 그렇게 하는 바람에 서른 살에 제대 했어요. 글쎄 아버
지한테 뭐라고 한 번 얘기를 해볼까? 제 위로 누이가 하나 있었어요. 누이가 시집갔지.
그 시집 잘못 가는 바람에, 그래도 누이는 서울 유학까지 갔다 왔지.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10 납북자-조병욱(증언자-조병소)
관리자
21-09-23 179
209 납북자-윤재희(증언자-윤영자)
관리자
21-09-23 191
208 납북자-이종선(증언자-이오선)
관리자
21-09-23 151
207 납북자-이창두(증언자-이연자)
관리자
21-09-23 159
206 납북자-조규명 (증언자-조규만)
관리자
21-09-17 203
205 납북자-박동규(증언자-박명자)
관리자
21-09-17 173
204 납북자-고재경(증언자-고재철)
관리자
21-09-17 177
203 납북자-이원일(증언자-이홍자)
관리자
21-09-17 154
202 납북자-김광래(증언자-김귀래)
관리자
21-09-17 174
201 납북자-김동섭(증언자-김관희)
관리자
21-09-17 188
200 납북자-유영기(증언자-유방원)
관리자
21-09-17 154
199 납북자-원정용(증언자-원정희)
관리자
21-09-17 211
198 납북자-이재춘(증언자-이효선)
관리자
21-09-17 200
197 납북자-김평묵(증언자-김정임, 김정옥)
관리자
21-09-17 186
196 납북자-장석홍(증언자-장석태)
관리자
21-09-17 278
195 납북자-윤관중(증언자-윤석칠)
관리자
21-09-17 327
194 납북자-정중화(증언자-정연종)
관리자
21-09-17 169
193 납북자-이해일(증언자-이해궁)
관리자
21-09-16 175
192 납북자-김득필(증언자-김화철)
관리자
21-09-16 162
191 납북자-정헌각(증언자-정헌홍)
관리자
21-09-16 194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