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원정용(증언자-원정희)
이름: 관리자
2021-09-17 12:54:23  |  조회: 193
190427A 원 정 용 ( 元正容)

1908년 10월 19일
출생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당시 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743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10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상업(임업)
학력/경력: 경복고등학교/대한청년단 단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4녀
외모/성격: 자상하고 스마트

증언자
성명: 원정희(1938년생)
관계: 차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난을 나갔다가 강을 못 건너 국회의원 집에 피신해 있다가 가족들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잠시 길에 나
갔다가 누군가에 의해 지서로 연행됨.
• 대한청년단 관련 간부들도 붙잡혔는데 피랍자가 내가 다 책임진다고 하여 다 석방되었고 본인만 못 나옴.
• 대한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한 것이 원인이라 추정.

직업 및 활동
<산에서 나무를 키우고 목자재를 판매하는 삼판으로 일함.>
문_ 당시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대한청년단장으로 계시면서 삼판으로 계셨어요. 삼판은 목상이라고 지금은 산에서
나무 키워서 집 짓는 것 있잖아요. 건축하고 그런데 쓰는 그 나무를 기르는 일을 하신 거
예요. 옛날에는 삼판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납북 경위
<잠시 외출한 사이 양평군 마을에서 붙잡혀 감.>
문_ 피난은 가셨나요?
답_ 6·25사변 처음 나가지고는 피난 나가셨어요. 가족을 두고 다녀온다 하고 갔지. 같
이 피난을 나갔다가 그러니까 강을 못 건넌 거예요. 저기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강을 건
너야 되잖아요. 그래서 못 건넌다고 하다가. 어떻게 하다가 다시 들어오셨어요. 집으로
갈 사람은 집으로 가고 나를 따를 사람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뭐 거의 다 갔죠. 그러
니까 혼자 계시다가 가족들 때문에 우리 아버지도 들어오신 거지. 거기가 어디라더라.
용문에 변두리 어디… 옛날에 천세기라고 국회의원이 있었어요. 천세기. 그 집에 가서
머무르셨었어요.
그러니까 들어오시다가 거기서 좀 피신을 좀 하셨죠. 그러다가 너무 남의 집에서 오
래 있을 수도 없고, 가족들 때문에 들어오셨어요. 그때가 1·4후퇴 전이에요. 그러니까
6·25사변 나고 나가셨다가 1·4후퇴 그 전 중간에 들어오신 거죠.
문_ 어떻게 납북됐는지요?
답_ 여름이에요. 여름인데 아마 6~7월이나? 그랬는데, 집에 들어오셨다가 동네 입구
에 나가셨나 봐요. 아버지가 길에 나가셨는데, 여기 좀 나갔다 온다고 나가셨는데 길에
서 그냥 채 간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누가 채 갔는지도 몰라요. ‘단장님!’ 부르며 아주
반색을 하면서 단장님 거기 가셔서 말씀 드릴 게 있다고 그래 가지고 지서로 데려간 거
죠.
옛날에는 지서라 그랬어요. 거기 가셔서 우리 오빠 친구가 그 지서 바로 앞에 사는 사람
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인제 아버지가 붙잡혀 가셨다고 하니까는 거기 2층에 가서, 그
지서가 빤히 보이잖아요. 그래서 보니까 고문을 하는지 뭐 별 별 소리가 다 나고 그랬었
다고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그때 저희 가족이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살았어요. 내가 왠지는 모르겠는데 할아버지
집에서 나오니까 트럭이 하나 지나가더라고요. 지금으로 말하면 포터 같은 거예요. 포
터 큰 거.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는 나를 보셨을 거예요. 나는 못 봤어도.
차가 지나가는데 이렇게 얼핏 쳐다보니까 전부 하얀 한복 중의적삼들을 입고 밀짚모자
를 하나씩 다 썼더라고요. 한 차를 싣고 가는 거야. 나는 그게 뭔지 몰랐죠. 그 한 차 실
려 가는 사람들이 다 동네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뭐 대한청년단의 단장, 부단장 뭐 이런
사람들이요. 차가 지나갔는데 이렇게 보니까 사람들이 한 차 밀짚모자 쓰고 지나가 길래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버지가 그걸 타고 가셨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중에
얘길 들으니깐,거기 가서도 우리 아버지가 이 사람들 다 내보내라고 내가 책임을 다 진
다고 그래 가지고 부단장은 나왔어요. 부단장하고 훈련대장 그런 사람들은 다 나왔어.
다 나오고 우리 아버지만 그렇게 가셔가지고 못 나왔어요. 그 후로는 소식을 못 들었죠.
문_ 당시 동네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보도연맹이라고 그러던가? 그런 사람들이 잡혀가고, 누가 칼 찔려서 죽고 그러더라
고 6·25 나기 조금 전에 그러더니 6·25사변이 났다고. 피난을 갈려고 하다가 막 터져
서 못 나가서 거기서 있다가 여주에 선산 있는데 거기 사람들이 있어요. 거기로 피난을
나갔지 우리는. 아버지는 잡혀 가시고. 그래서 거기서 오래 있다가 한 1년은 있었나 봐.
그 이듬해 여름에 집으로 아무래도 가야 된다고 집으로.
그때는 6·25때 일 했던 사람들 다 잡혀갔어요. 누군지는 몰라도 그때 뭐 인공 때 일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을에 군인이 왔다갔겠지만 나는 못 봤어요.
보도연맹 사람들이 우리 집에다가 사무실을 차려서 우리 집에 있었다는 소리는 들었어
요. 우리 집이 방이 세 개 인데 앞에 뒤에 뜰이 있었고, 그냥 괜찮았었어요. 거기다가 차
려서 했다고 그러더라고. 우리 피난 간 사이에 집이 비어있으니까.

납치 이유
<대한청년단이어서 납치된 것으로 추정함.>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그건 모르죠 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왜 데려갔는지… 대한청년단이니까 데려갔
겠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납치 후 소식
<마을에서 붙잡힌 후 양평군 내무서에 감금되었고,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갔다고 전해 들
음.>
문_ 납치 후 아버님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우리 막내 작은아버지가 형님 찾으러 간다고 처음에는 양평군인데 거기다가 경찰서
에다 다 가둬놨었어요. 그랬다가 얼마 지나고 서울 서대문형무소로다가 또 이송을 했더
라고요. 작은아버지가 형님 찾으러 다닌다고 백방으로 쫓아 다녀도 몰라, 소식을 몰라
요. 뭐 알 수가 있어야지 그렇잖아요. 우리가 다 어리니까 누가 뭐 어떻게 할지도 모르
고 그랬었지. 또 양평에서 서울이 멀잖아요. 면회 같은 것도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어머
니는 마흔이고 아버지가 마흔셋이었으니까, 어머니가 아직 젊잖아요.
빨리 못 나오면 이 식구를 어떻게 하나 그 걱정만 하셨겠지. 어머니는 살림만 하신 분이
뭘 하셨겠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님이 홀로 바느질로 오남매를 키우며 생활함.>
문_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가족들이 다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어요. 우리 아버지는 붙잡혀 가셨으니까.
딸 넷하고 어머니하고 다 그리로 가고 오빠는 그때 그 만해도 카투사로, 피난을 나가다
가 대한청년단원들이 다 붙잡혔다더라고요. 누구한테 붙잡혔냐면 미군들한테. 미군들
한테 붙잡혔는데 눈이 오고 막 춥고 겨울이고 ·625되고 좀 있다가 겨울 됐잖아요.
춥고 그러니까 사람들 행색이 엉망이었겠지, 그런데 여기서 영어하는 사람 나오라고.
그때 우리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우리는 인민군이 아니고 청년단원들이다
해서 풀려났어요. 높은 사람이 우리 오빠를 보니까 똑똑하니까 데리고 갔대요.
누가 그러더라고. 지금 힘들고 그러니까 거기 가서 있으면 안전할 테니까 거기 가서 있
어라 그래서 저기 금화인가 어디인가 부대로 따라가서 거기 가서 있었어요. 우리 오빠
가. 식구들이 먹고 살게 없잖아요.
아버지가 안 계시면 오빠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셔가
지고 우리 남매를 다 키웠어요. 고생 많이 하셨어. 오빠가 거기서 월급타면 조금씩 모아
가지고 휴가 나오면 가지고 오고 그랬어요.
우리 어머니가 별의 별 바느질을 다 하셔가지고, 그 옛날에는 사람 죽으면 상여 나간다
고 그러잖아요. 그 상여에 꽃가마 그것도 다 만드셨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를 키우셨죠.
오빠는 거기 있다가 나와서 군대를 또 갔어요. 그때는 왜냐면 정식으로 군대 간 것이 아
니니까. 그래서 군대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을 하고, 보건복지부 옛날에는 보건사회부
라 그랬어요. 거기 장관 비서관으로 계셨죠. 그러다가 오빠도 40대에 미국으로 갔어요.
문_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해서 얘기 하셨던 것이 있나요?
답_ 뭘 얘기 하셔도 다른 건 얘기 안 하셔요.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눈물도 안 보
이셨던 분이야.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시더냐면 애들이랑 정신없이 살다가도 6·25때만
되면 가슴이 막 떨린다고 그러시더라고. 그건 연세를 많이 잡쉈어도 그랬어. 내가 아는
건 다 그거뿐이야.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아버지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셨나요?
답_ 오빠가 나중이래도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으니까, 그런 것 우리는 하지 말자 그래서
이산가족 찾기는 안 했어요. 그래도 제가 적십자사에는 신청을 했어요. 처음에는 우리
언니가 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언니가 하고 몇 년 전에 납북자 결정 받으라고 그래서 여
기 강북구청에다가 내가 했지.
문_ 정부에서 지원해 준 것이 있었나요?
답_ 정부의 도움 뭐 그런 것도 없고, 조사 나오는 것도 없었고. 그때는 나라도 살기가 어
렵고 그러니까. 도움은 한 군데 받은 데 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중학교 2학년 2학
기부터 등록금을 못 냈어요. 등록금을 못 냈는데, 우리 2학년 담임하시던 선생님이 계
셨거든요? 그분이 이학년 이학기, 삼학년 꺼 하고 전부 다 대주셔서 내가 졸업을 했지.
우리 아버지를 잘 아셨지 그 양반이. 아니까 그렇게 해주시지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해
주나.

호적 정리
<사망신고 처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호적 정리를 오빠가 어떻게 하셨겠죠. 나는 그걸 잘 모르겠는데, 우리가 원래 호적이
신설동이었어요. 그래서 성동구청인가 거기 가서 그걸 떼면 오빠가 미국에서 계실 때 아
버지 꺼 뭐 떼서 보내라고 해서, 내가 한 번 해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거길 보면 아버
지가 계시더라고. 거기도 납북으로 되어 있겠죠. 사망신고를 내가 안 했으니까 오빠가 그
걸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삿날도 모르고. 그래서 내가 어떤 스님한테
여쭈어 봤어요. 이렇게 납치 되셨는데 생사를 모르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
까. 산제사도 지내니까. 생일날을 해 가지고 제사를 지내라고 해 가지고, 그때부터 생신
날로다가 제사를 지내 드렸어요. 지내다가 오빠가 미국 가시면서 오빠가 또 지냈죠. 이제
오빠가 돌아가시고 제사도 못 드리고 다 늙고 그러니까 이제 성당 미사만 드려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그런 것은 난 없었어요. 왜냐면 정확하게 대한청년단 계시다가 납치된 것이 확실하
니까 우리는 그런 피해는 없었죠.

정부에 바라는 말
<후세들만이라도 전쟁 없이 잘 사는 것이 소원임.>
문_ 정부에게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지금 사실은 혼란스러워요. 나라가 하도 정신없이 저러니까 혼란스러워서, 다 산 인
생인데 뭘 더 바라겠어요? 내가 여태까지 정말 바라고 싶었었어도 해결이 안됐는데 더
이상 뭘 바라겠어요.
그저 나는 없더라도 후세에 애들이라도 정말 전쟁 없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그런 나
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린애들… 우리 후세한테 우리가 당한 그런 고통은 해주지 말아
야지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하늘나라에 가셨으면 거기서는 편안하게 계시기를 바람.>
문_ 아버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전하고 싶은 말은. 하늘 나라에 가셨으면 거기서는 편안하게 계셨으면 좋겠고. 또
뭐 지금까지 뭐 생존을 안 하셨으니까. 혹시 생존하셨더라도 얼마나 지금 북한이 얼마나
힘들어요. 그렇잖아요? 뭐 그런 사람들 더군다나 사상자를 제대로 대해 주겠어요? 그러
니까 사신 것 보다 돌아가신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나는.
원래가 몸이 약해서 위장이 안 좋으셔 가지고. 그게 제일 내가 마음 아픈 것이 그거 때문
에 얼마나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을까? 그 생각에 그렇게 내 마음이 맨날 아파. 아버
지가 다른 건 못 물려주셨는데 나를 그걸 물려주셨나 봐. 유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할 수
없지만은 내가 소화력이 안 좋아요. 그래서 밤낮 고생을 하거든. 나는 지금 안 좋으면
약이라도 사먹고 어디든지 가서 모든지 다 할 수 있지만 거기 가서 얼마나 고생을 애를
쓰시다가 가셨나 그게 내가 제일 마음이 아프다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10 납북자-조병욱(증언자-조병소)
관리자
21-09-23 160
209 납북자-윤재희(증언자-윤영자)
관리자
21-09-23 167
208 납북자-이종선(증언자-이오선)
관리자
21-09-23 133
207 납북자-이창두(증언자-이연자)
관리자
21-09-23 141
206 납북자-조규명 (증언자-조규만)
관리자
21-09-17 174
205 납북자-박동규(증언자-박명자)
관리자
21-09-17 158
204 납북자-고재경(증언자-고재철)
관리자
21-09-17 152
203 납북자-이원일(증언자-이홍자)
관리자
21-09-17 137
202 납북자-김광래(증언자-김귀래)
관리자
21-09-17 153
201 납북자-김동섭(증언자-김관희)
관리자
21-09-17 168
200 납북자-유영기(증언자-유방원)
관리자
21-09-17 138
199 납북자-원정용(증언자-원정희)
관리자
21-09-17 192
198 납북자-이재춘(증언자-이효선)
관리자
21-09-17 176
197 납북자-김평묵(증언자-김정임, 김정옥)
관리자
21-09-17 161
196 납북자-장석홍(증언자-장석태)
관리자
21-09-17 259
195 납북자-윤관중(증언자-윤석칠)
관리자
21-09-17 264
194 납북자-정중화(증언자-정연종)
관리자
21-09-17 150
193 납북자-이해일(증언자-이해궁)
관리자
21-09-16 153
192 납북자-김득필(증언자-김화철)
관리자
21-09-16 146
191 납북자-정헌각(증언자-정헌홍)
관리자
21-09-16 172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