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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윤재희(증언자-윤영자)
이름: 관리자
2021-09-23 12:35:46  |  조회: 270
190525A 윤 재 희 ( 尹在熙)

생년월일: 1916년 12월 17일
출생지: 충청남도 당진
당시 주소: 동인시 백암면 양준리
피랍일: 1950년 7월 3일
피랍장소: 작은외삼촌댁
직업: 용인 애국청년 단장, 율리교회 설립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2녀, 남동생
외모/성격: 아주 잘 생김 / 사랑이 많음

증언자
성명: 윤영자(1941년생)
관계: 장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용인에서 살며 농토를 많이 소유, 이범석 장군이 이끌던 애국청년 단장으로 활동.
• 피랍인이 피신을 하였으나 동네 사람을 고문하여 숨어있는 장소에서 곧바로 데려간 것으로 추측됨.
• 당시 마을에서 교회를 세워 선교할 만큼 기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던 피랍인 윤재희와 서두
석 목사가 끌려가 소식이 없음.

직업 및 활동
<당시 증언자가 어려 납북된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지 못함. 율리부락에 살
며 농사도 짓고, 용인 전체 애국 청년 단장으로 활동. 율리교회 설립, 설교 활동하였음.>
문_ 당시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아버지는 뭐… 저희가 괜찮게 살았나 봐요. 그래서 단체 활동만 하신 거 같아요. 농
사가 많았었으니까. 용인 전체 애국 청년 단장을 하셨대요. 이범석 장군이 하시던.
문_ 어떤 다른 활동을 하셨나요?
답_ 율리부락에서 양준리라는 이웃 동네로 이사를 왔어요. 외가 동네예요. 양준리가.
율리는 아버지의 외가 동네고. 양준리는 나의 외가. 원래 아버지 고향은 충청남도 당진
이고. 당진에서 출생하셔서 율리부락으로 오셔서 학교 다니시고, 결혼하시고, 저를 낳
고 외가로 온 거죠. 애기가 자꾸 죽으니까 저 하나 살리려고. 거기서 아버지가 교회도
세우셨어요, 율리부락에. 거기서 설교도 하시고 근데 애기가 자꾸 죽으니까 거기서 백
일기도도 하시고 저를 낳으셨대요. 여덟 중에서 제가 하나 살은 거예요. 그리고 남자애
하나 양자 들어온 애고. 작은아버지가 낳아서 바친. 이번에 교장 정년 했어요.
문_ 당시 같이 살던 가족들은 어떻게 되시나요?
답_ 어머니, 아버지, 저. 그리고 막내애기. 작은아버지가 있었어요. 열 살 위인 작은아
버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88세에. 양준리에 외가들은 다 계셨죠. 작은외삼촌, 외
삼촌. 집안들이 다 계셨죠. 작은아버지가 증인이셨지. 그리고 제가 어머니한테도 얘기
를 많이 듣기도 했고.

납북 경위
<작은외삼촌 댁에 피신해 있었는데 완장을 찬 두 명이 집안 일꾼을 폭행하여 거처를 알아
내어서 데려갔음.>
문_ 당시 동네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우리만 교회를 다녔어요. 근데 다 불교. 같이 이웃에서. 우리 집이 제일 잘 살았던
것 같아. 그때는 자전거 있는 집도 없었는데 우리 집은 있었고, 하모니카, 나팔, 유성
기, 재봉틀 등 없는 게 없었어 기억에. 그래서 그 동네에서 시집가려면 우리 집에 와서
이불 꿰매고 그런 기억이 있어요. 납북 당하던 날이 7월 3일. 그건 작은아버지가 아시
더라고. 6·25나고 나서 열흘 됐나? 그때 막 쳐들어왔지.
문_ 아버지가 어떻게 납북되셨나요?
답_ 아버지가 6·25가 났는데 작은외삼촌네 다락방에 가서 숨은 기억이 나요. 근데 저희
집에서 일하시던 아줌마 두 분이 있었는데, 이 두 분을 빨갱이들이 붙잡아간 거야, 파출
소로. 주인 어디 갔냐 근데 그 아줌마들은 몰랐대요. 작은외삼촌네 집에 숨은 것을. 그
래서 이틀인가 삼일 파출소에서 자고 풀려 나왔어요. 와서 이제 마루 끝에서 우시던 그
기억이 나요. 내가 모르는 걸 어떻게 말하느냐고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잘했다고 그때만
해도 쌀밥 먹는 집 없었어요. 근데 우리 집에 오면 밥을 주고 그랬었어요. 그랬더니 한
3일 있더니만 농사 짓는 아저씨를 붙잡아 간 거야. 붙잡아 갔다가 우리 헛간에 묶어놓고
막 때리더라고. 이상한 사람들이야. 지금 생각하니까 빨갱이 같애. 하루 종일 심심하면
두드려 패고 그랬더니 그 일꾼이 얘기를 한 거야. 작은외삼촌 집 다락방에 가보라고. 그
래서 붙잡혔어 우리 아버지가. (울음 터짐) 그 얘기만 안 했으면 고생을 안 했을 거예요,
아마. 그 다음엔 모르죠, 전혀. 우리 교회의 목사님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면장, 우리 아
버지 또 친한 분이 여덟 분인가 그래요. 그 다른 학교 교장들. 그 중에서 우리 아버지하
고 목사님만 붙들어 간 거예요. 서두석 목사님이 명단에 있을 거예요. 거기 신청되어 있
을 거예요, 아마.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백암파출소에 갔다가 용인형무소에 갔다가 수
원까지 간 것만 알아요. 면회하고 왔다고. 그 이상은 모르죠. 그 다음에는 돌아가셨는지
어쨌는지 몇 백 명 됐다고 그러더라고. 다 잡아 넣은 게. 그래서 그냥 이북으로 붙들어
갔다. 그거만 아는 거죠.
문_ 맞는 것을 보았는지요?
답_ 네, 맞다가 견딜 수 없으니까 얘기한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그분이 우리 집에서
농사짓는 분이었거든. 그 다음에는 제가 아버지 소식을 모르는 거예요. 거기가 외가 동
네니까. 엄마하고 아마 십촌 간 친척 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너무 미워하고 그러
니까 딴 데로 이사 간 것 같아. 그 동네에서 못 살고. 아줌마들은 말을 안 했으니까 끝까
지. 지금도 그 쪽 애들하고는 유대가 돼. 근데 그 일하던 친척은 어디 가서 사는지 몰라.
문_ 때리던 사람들의 복장은 어떠했나요?
답_ 그냥 아무렇게나 입고 와서. 그냥 공산당이라니까 모르지. 완장차고 다녔지. 완장
을 찼으니까 때릴 수가 있었지. 근데 두 사람이었던 게 기억나. 교대 교대로 때리고 하
여튼 우리가 볼 때 무서운 사람이다. 어렸을 때니까 무섭더라고. 교대로 때리고 막 소리
지르고 그랬던 기억뿐이. 무서우니까 자꾸 방으로 숨고 그것밖에 모르죠.

납치 이유
<나라 위해서 일한 사람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간 것으로 추측됨. 이웃 동네의 목사, 면장
도 납치되었음.>
문_ 아버지를 찾았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답_ 나라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은 다 잡아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목사님이고, 우리
는 기독교가정이니까. 백암성결교회 목사님하고, 우리 아버지는 율리교회 세웠거든요.
지금도 있어요. 대개 종교인들 정치인들은 다 붙들어 간 것 같아. 기억나는 건 목사님하
고, 우리 아버지하고 면장인지 누구인지 그렇게만 기억나요. 우리 동네에서는 우리 아
버지. 백암 동네에서는 서두석 목사님. 백봉리라고 있어요, 거기는 면장님. 애들도 알
고 자손들도 만났었어요. 거긴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으니까 더 잘 알거야. 아버님이
끌려가시는 것을 못 봤죠. 제가. 그 다음에는 아버지를 못 본 거예요. 근데 이제 기억이
나기로는 아버지가 ‘내가 작은외삼촌 집 다락방에 숨을 테니까’ 그런 기억은 나요. 제가
어렸을 때 불리기를 연오인데, 우리 엄마한테 ‘연오를 잘 길러라. 얘가 똑똑한 애니까 얘
를 잘 기르면 당신이 효도를 받을 거다. 내가 행여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고 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시고 간 그 기억이 나요. (눈물 흘리시며) 그때부터 하모니카
를 배운 거에요. 아버지가 하모니카를 잘 불었거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를 잘 길러
라, 자꾸 애가 죽으니까.

납치 후 소식
<어머니가 수원에 있는 형무소로 찾아 갔으나 그 후의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음.>
문_ 감금된 형무소를 찾아가셨다고요?
답_ 어머니가 그 얘기를 안 하시더라고. 그냥 갔다 오셨다고. 혼자만 우시는지 어쩌는
지. 제가 너무 어리니까 저한텐 얘기할 것이 없죠. 근데 아마 외삼촌한테는 얘기한 것
같아. 자기 오빠한테는. 그 이상은 제가 모르죠. 엄마가 너무 외로워하고 괴로워하고 그
러니까 나는 공부를 잘 해야 되겠다. 그 생각으로 버틴 거예요. 당시 면회가 안 되니까
여러 번 가신 것 같아요. 수원에 가는 게 몇 시간 걸렸었어요. 대단히 어려운 길을 가신
거지 촌사람들이 서울에 오는 게 몇 시간은 걸렸으니까. 지금은 한 시간이면 가지만. 모
르겠어요, 만났는지는. 그 얘기는 잘 못 들었어요. 내가 어리니까 아버지 고거만 들었지
그 이상은 소식을 몰라요. 내가 너무 어리니까 말 안 해주셨겠지.
문_ 주변에 살아 돌아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었는지요?
답_ 없어요. 목사님하고 우리 아버지만 가신 거예요. 원망하는 거지. 그래도 먼 친척인
데. ‘걔가 말만 안 했으면 죽이진 않았을 거 아니냐. 말만 안했으면 살았을 것 아니냐.’
그 원망만 들었어요. 계속. 근데 지금 어디 가서 사는지도 몰라.

남은 가족의 생활
<외가 동네였기 때문에 큰외삼촌을 비롯한 외가 친척들이 많이 도와주었음.>
문_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고 나서는 어떠했나요?
답_ 어머니는 매일 울다시피 하셨죠. 믿음이 있으니까 기도하시면서. 오빠가 있고 남동
생이 있으니까 외가라. 큰외삼촌이 잘 사셨어요. 그런대로 잘 사셨죠. 외가 동네니까 외
갓집들이 많이 우리 엄마를 도와주셨지. 내가 공부를 잘했어요. 제가 중학교 때 이제 시
를 써서 넣은 게 이 대북방송에 들어가고 KBS 방송에 들어가고. ‘보고 싶은 이 마음 꽃
이 되어 꽃 중에도 가장 이쁜 진달래가 되어서 아버님 계신 곳에 고이 피어 드렸으면, 보
고 싶은 이 마음 새가 되어 새 중에도 가장 예쁜 꾀꼬리가 되어서 아버님 계신 곳에 고이
울어 보았으면’ 이게 조선일보에 크게 났었어요. 이걸 대북방송에서 하고, 학교 다닐 적
에 그 구봉산이라고 하는데, 해방되고 나서부터 간첩들이 아주 많이 살았다고 해서 그런
데 가서 웅변을 한 내가 여러 번 대통령 장관상을 탔어요. 그래서 중학교에서도 상을 타
고 고등학교에서도 수십개를 탔을 거에요 아마. 그리고 나서 연세대학교를 들어가서 공
무원시험을 봐서 23대1에 되어가지고 공보부로 발령이 나서 변웅전, 전기재, 다 우리
아나운서 동기에요. 이제 아나운서 교육을 다 받고 우리들 때에는 TV가 없었어요. 그래
서 방송국 있는 데로만 발령을 내. 그래서 인천시청으로 발령을 받았지. 거기 극동방송
국이 있었다고 거기서 십년간 앵커를 했지 내가. 그러고서 이제 와서 우리 집 양반이 거
기서 결혼해가지고 이 양반이 과학교육원 원장으로 오는 바람에 사표를 내고 여기 와서
인제 있는데, 애경에 장회장이 놀지 말고 인더스트리얼 전국 총판을 해라. 그래서 스물
한가지 판권을 가지고 사십년 됐어요. 그래서 이제 정년을 하고 우리가 특허를 내서, 지
금 정부기관, 호텔, 우유업체, 대학교, 섬유업체 등에만 납품하는 인더스트리얼 업체에
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 하고 있어요. 아버지의 전 재산을 제가 작은아버지도 드리고
양자 들어온 동생도 주고, 저 하나도 안 가져 왔어요. 땅 열마지기 구백평 육백평 다 줬
어요. 그거 뭐 하러 가져와요. 저 욕심이 없어요. 다 드렸어요. 끔찍하게 하셨어. 저한
테. 우리 집에는 과일나무가 많았어요. 첫 열매는 언제나 큰애 저를 주시고. 작은아버지
가 돌아가신지 열흘 되셨나?
문_ 납북되고 나서 이산가족 찾기는 했는지요?
답_ 모르죠. 전혀 정신없이 살다 보니까. 인제 작은아버지가 저걸 해놨길래, 자식이 있
잖아. 그러니까 작은아버지가 그래라 그래서 얘기했더니 이쪽으로 옮겨줬어요. 이름도
적어놨는데 담당자… 저는 중학교 졸업하고 밖으로 나와 가지고 엄마하고 헤어져 살아
서. 그리고 나서 저는 계속 외지에 와서 살았잖아요. 고향에 안 있고. 방학 때나 가는 거
죠. 그러니까 잘 모르죠. 작은아버지하고 작은어머니하고 엄마하고 사시고. 난 용인에
서 용인여자고등학교 다녔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기관의 조사나 도움이 있었는지요?
답_ 그런 거 없었어요. 우리는 없었고. 제가 공무원 생활하면서부터는 많은 혜택을 받았
지. 그래도. 돼지 기르라고 뭐도 구청에서 주고 그랬지. 아버지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
어. 근자에 납북사건, 납북사건해서 2017년도에 (납북자 결정서) 받은 거예요. 그전에
는 몰랐지 우리가. 작은아버지가 해라 그래서 한 거야.
호적 정리

<작은아버지가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작은아버지께서 다 하셨더라고. 그 동네에 우리가 다 시집가고 작은아버지 혼자 사
니까 작은아버지가 다 해드린 거야.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저는 오히려 혜택이 많았죠. 납북자는 중앙정보부에 물건을 쉽게 넣을 수 있었어요.
납북자는 애국자의 가정으로 쉽게 넣을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넣을 적에는 사상을 조사
해요. 아버지 사촌까지 조사해요. 외가까지 조사해요. 애국자의 가정이냐 반동자의 가
정이냐. 그거 조사 와요. 그래서 제가 한 30년 됐어요. 저는 애국자의 가정으로 평이 나
있어 가지고 조사만 딱 오면 신용으로 하면 백퍼센트였어요. 어디서든지. 왜냐하면 저
희 아버지의 외가가 외삼촌 되는 분이 이대통령 주치의를 했어요. 연대 의대 나오셔가지
고. 정기석 박사님이 우리 할머니하고 사촌간이지. 저희는 공직자가 많아요. 저희 집안
에는. 그래서 조사가 나오면 그냥 무사통과였어요. (웃음) 그런 거 없어요. 왜 피해가 많
지? 오히려 그거 때문에 저는… 제가 참 나름대로 대단히 날렸어요 하여튼.

정부에 바라는 말
<후손들에게 훌륭하신 부모님이 계시다는 자랑스러움을 남겨주기를 바람. 필요로 한다면
본인이 활동을 통해서 기여를 하고 싶음.>
문_ 정부나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시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완전히 포기죠. 지금 연세가 몇인데. 백 살이 넘어서 사셨겠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
이죠. 후진들에게도 용기를 가지고 훌륭하신 부모님이 계시다 이런 자랑스러움을 남겨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는 거기에 만약에 필요로 한다면, 제가 활동을 하고싶고
기여하고 싶을 뿐이에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아버지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아버지한테 배운대로 생활해왔음.>
문_ 아버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저는 참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신 거 같은 기억만 나요.
아주 좋은 기억만 나고. 그래서 내가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욕
심에 엄청 울었어요. 지금까지도 아버지한테 배운 거. ‘아홉시 반에 자라. 네시에 일어
나라.’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요. 그래서 성경 부르고 찬송하고 그 생활을 꼭 해요. 지금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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