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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평묵(증언자-김정임, 김정옥)
이름: 관리자
2021-09-17 12:49:13  |  조회: 142
190420A 김 평 묵 ( 金平默)

생년월일: 1901년 10월 24일
출생지: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244번지
당시 주소: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244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19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산업조합 이사장, 길상면장
학력/경력: 와세다 대학/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을 함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남 2녀
외모/성격: 곧고 엄한 성격

증언자
성명: 김정임(1944년생), 김정옥(1947년생)
관계: 장녀, 차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로 장흥면장하다가 6·25전쟁이 나자 집에 오지도 않고 급히 부면장과 함께
피난을 갔음.
• 집도 걱정되고 검문검색이 심해 더 이상 다니기도 어렵고 아무 준비 없이 맨몸으로 다니기가 어려워 귀가
하여 화장실에 갔는데 바로 내무서원이 들이닥쳐 인수인계를 위해 모시고 가겠다고 하여 간 후 돌아 오
지 못함.
• 그 후 이부자리 가져와라, 갈아입을 옷 가져와라 하고 연락이 와서 어머니가 보내 드렸는데 하루는 강화
읍으로 간다고 해서 강화읍까지 가서 나룻배 타고 묶여서 건너가는 것을 목격하였음.

직업 및 활동
<강화읍으로 내려 와 산업조합 이사장을 하다 길상면으로 이동하여 길상면장을 하였음.>
문_ 아버님은 당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나요?
답_ (김정임) 아버지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다니셨어요. 다니시다가 일제시대 때 나오셔
서 졸업까지 하셨는지는 몰라요. 오셔서 서울에 집이 있었는데 젊었을 때니까 독립운동
도 하셨어요.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자꾸 놋쇠 가져와라 뭐 가져와라 하고, 전쟁 물자를
집에서 거둬들이라고 하니까 이게 싫으셔서 강화도로 내려가신 거예요.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처음엔 강화읍으로 가셨대요. 산업조합 이사장을 하셨다는데 지금 내가 생각해
보면 은행과 비슷한 기관이었나 봐요. 대한청년단이나 그런 건 안 하셨어요.

납북 경위
<부면장과 함께 피난을 가셨다가 돌아온 뒤, 인수인계를 위해 모시고 가겠다고 찾아오신
분들과 함께 가신 후 돌아오지 못하였음.>
문_ 어떻게 납북되셨나요?
답_ (김정임) 와세다 대학을 다녔으면 인텔리잖아요. 거기서도 또 놋쇠 가져와라 뭐 가
져와라 하니까 이게 싫어서 다시 읍에서 한 십리 떨어진 길상면으로 가신 거에요. 거기
서도 면장을 하라 해서 할 수 없이 길상면장을 하셨대요. 4대, 5대까지 아마 하셨을 거
예요. 길상면에서 한 십 리 떨어진 장흥리에 사시면서 출퇴근을 하신 거죠.
6·25 때는 어떻게 됐냐하면 너무 급박한 상황에 집에까지 오실 수가 없으니 아버지가
부면장하고 두 분이 피난을 가신 걸로 들었어요. 그렇게 두 분이 다니시다가 며칠 후에
아버지가 돌아오셨대요. 왜냐하면 집도 걱정이 되고, 검문검색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
다니기도 어렵고, 혼자 몸에 다니시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고 하시더래요. 맨몸으로 가
셨으니까요. 부면장은 안 오셨는데 우리 아버지만 돌아오신 거예요. 그런데 지켜보고
있었는지, 화장실에 가 계셨는데 내무서원들이 찾아와서 ‘면장님 돌아오셨죠? 인수인계
를 위해서 저희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뭐라 그래요? 인수인계
해달라는데. 그래서 면으로 가신 거예요.
그 다음에 돌아오시질 않고, 이부자리 가져와라, 갈아입을 옷 가져와라 하고 연락이 와
서 며칠을 계속 보내드렸대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강화읍으로 가신다고 해서 우리 어머
니가 이십 리 떨어진 강화읍까지 가셨대요. 그때는 강화읍의 내무서에 붙잡혀 계신 거
죠. 매일 왔다 갔다 하셨는데 어느 날 가보니까 안 계신 거예요. 옛날에는 거기 다리가
없었고 나룻배 타고 강화도를 건넜잖아요. 누가 거기로 가시는 것을 봤다 그래서 가보니
까 동여매가지고 붙잡혀 가시는 것을 딱 본거죠. 나룻배를 타고 가시더래요. 그게 마지
막이에요, 우리 어머니하고는. 그때 김포에 오촌 아저씨랑 친척들이 살고 계셨어요. 납
북된 분들이 줄줄이 오신다고 하니까 그분들이 나와서 보신 거지. 그런데 거기 우리 아
버지가 계신 거예요. 다리가 아프신지 구두를 벗어서 손에 들고 맨발로 가시더라는 거
야. 그걸 보고서 형님하고 쫓아가려고 하니까 오지 말라고 손짓을 하더래요. 와서 이로
울 게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모른 척하고 가라고. 그래서 쫓아가다가 그냥 멀뚱히 서서
가시는 것만 봤다 그러더라고. 그게 마지막이에요. 듣는 얘기에 의하면 인민군들이 쫓
겨 올라가는 때에 모시고 간 거래요. 그래서 일설에 의하면 가다가 북한군들이 그냥 자
기들도 가기 어려운데 이 사람들까지 끌고 가기가 어려우니까 중간에서 어떻게 했다는
소리도 있고 여러 가지 말이 많았는데, 모르죠.
문_ 당시 마을 분위기는 어땠나요?
답_ (김정임) 얘기를 들어보면 빨갱이가 점령할 때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한명도 안
와요. 올 수가 없어.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오지 말라 그러고. 하다못해 우리 작은집도
옆에 있는데 못 와. 그러면 우리는 우리 식구만 있는 거죠. 동네사람들도 우리가 미워서
라기보다는 무서우니까 눈치 보는 거지. 그랬다가 남한 해병대가 오면 우리 어머니한테
와서 살려 달라 그러고 했어요. 그러다 또 빨갱이 오면 우리 집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고
그런 상황이었죠. 둘째 오빠가 인천 상륙 작전할 때 주역은 아니지만 참여를 했다고 그
러더라고요. 그러니까 빨갱이들이 그런 소식을 들은 거 같아요.
어느 날은 밤중에 막 문을 두드려요. 옛날에 촛불밖에 없잖아요. 호롱불하고. 근데 막
두드리면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겁이 나요. 당시에 안동 김 씨들이 빨갱이에 대항하는
일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안동 김 씨 씨를 말린다고, 밤중에 와서 구두 신은 채로
안동 김 씨 남자들 어디 갔냐고 우리 안방, 건넌방까지 다 뒤지고 다니고 그랬어요. 그
러고 나면 우리 어머니는 맥이 탁 풀려서 주저앉아 문도 못 잠그죠. 우리도 정신이 하나
도 없죠. 한참 그러고 있다가 나가서 문 잠그고 오고했던 생각이 나요. 또 기억나는 것
은, 빨갱이들이 우리 집 일꾼들한테도 와서 교육받으라고 한데요. 일꾼 중에 서 씨는 ‘저
보고도 나오라는데 어떡해요?’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일단은 나가라’ 해서 나갔다 오고
했어요.

납치 이유
<인텔리이고 공무원이어서 납치했을 것으로 추정함.>
문_ 왜 납치되셨다고 생각하세요?
답_ 당시 면장을 하시고 계셨고 지식인이어서 붙잡아 가지 않았나 생각해요.

납치 후 소식
<김포에 사는 친척들이 끌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버지를 봤다고 함.>
문_ 납치 후 아버님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김정임) 오촌 아저씨가 김포 누산리 쪽에 사셨는데 아버지가 끌려가시는 걸 봤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발이 아파서 구두를 신지 않고 손에 들고 끌려 가셨대요. 김포에 사시
는 오촌 아저씨나 다른 친척 분들은 다 돌아가셨어요. 그 사람들의 아들들도 다 우리보
다 나이도 위고 죽은 사람도 있고. 지금 너무 늦은 거예요. 전에 집안 경조사 때 그 아저
씨들을 만나면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얘기를 하는 거야.

남은 가족의 생활
<서울로 올라와서 어머니는 고모님의 도움을 받아 장사를 함.>
문_ 남은 가족은 어떻게 지냈나요?
답_ (김정임) 저희 말고 오빠들은 서울에 살았었어요. 아버지가 납북되시고 저희도 서울
로 올라왔죠. 나는 한 열 살 때인가 오고 얘는 바로 그 다음다음 해인가 오고요. 우리 고
모님이 또 서울에 계셨어요. 일단은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먹고
살아야 되니까 고모님이 어머니를 서울로 오라 그랬어요. 고모님이 서울에서 장사를 하
고 계셨는데 어머니가 아무 것도 모르니까 장사를 가르치신 거예요.
(김정옥) 처음에는 엄마랑 저랑 독일제 미싱을 사다가 삯바느질을 했어요. 그러다가 나
중에는 엄마가 포목상을 차리셨고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에서 도와준 것은 있었나요?
답_ (김정임) 한 번도 없어요. 그런 거.
(김정옥) 도움은 무슨. 어떻게 사는지 쳐다도 안 보고. 죽는지 사는지 스스로 해결하느
라고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데요.

호적 정리
<사망신고 되어 있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김정옥) 사망으로 되어 있던데. 누군가 정리를 한 거 같아요. 큰오빠가 했을 거예
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김정임) 그런 건 몰라요.

정부에 바라는 말
<경제적인 도움보다는 명예 회복을 바람.>
문_ 정부나 대한민국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김정임) 글쎄요.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잖아요. 지금에 와서 경제적인 도움이
나 이런 것보다는 납치되신 분들 명예라도 회복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자
료들을 잘 보관해서 길이 길이 남을 수 있게 뭘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기념관도 저기서
멈춰있는 상태잖아요.
(김정옥) 가족의 피눈물 나는 고생을 70이 넘어가지고, 지금 어디서 보상을 받아요. 내
새끼들 기르면서도 불명예스러운 일을 안 가지려고 얘기를 안 하고 길렀잖아요. 할아버
지가 왜 없어. 이걸 어떻게 얘기를 해줘야 되냐고. 그렇게 아닌 척 하고 기르려니까. 우
리 엄마가 학교에 진짜 많이 쫓아다녔어요. 애비 없는 자식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저도
할아버지에 대해서 얘기 나오면 노코멘트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납북자 가족 신고하라
고 해서 제가 제일 먼저 신청하러 갔더니 명단에 있다고 확인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바람
은 뭐 5·18 유공자들, 나라를 위해서 몸 바친 사람들도 있지만, 우린 돈 한 푼도 안 받
고. 클 때는 돈이 엄청 필요했는데 줬어도 그때 줬어야죠.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어머니
가 자수성가했지.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저 하늘에 계시더라도 어머님 만나서 잘 위로하고 사셨으면 좋겠음.>
문_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김정임) 가셔서 고생이나 안 하셨는지, 그나마 인재라고 대우라도 받으셨는지… 근
데 바라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 없이 사셨으면 하는 거죠. 뭐 지금 물
어볼 수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는 거니까 답답하죠. 이미 저 세상 가셨으면 어린 자식
두고 가셔서 굉장히 마음에 부담이 컸을 거예요. 얘들이 어떻게 자라나, 또 막말로 우리
어머니가 젊었으니까 자식들 버리고 재가라도 했으면 얘네들이 어떻게 됐을까, 당신은
거기서 오만 생각 다하셨을 거 아니에요. 근데 엄마가 열심히 살아서 남부럽지 않게 우
리를 잘 키워주셨죠. 어머니는 남편 없이 외롭게는 사셨어요. 그런 거로 보면 불행해요.
여자로서의 삶은 불행했지만 자식한테는 보답을 받고 가셨어요. 젊어서는 좀 고생을 하
셨지만 나이 드셔서는 걱정 없이 잘 사시다가 구십 넘어서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아버
지는 저 하늘에 계시더라도 돌아가신 어머니 만나서 지난 얘기라도 하셨으면…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생이별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자식들 잘 키워준 우리 어머
니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 하실 거고, 우리 어머니는 붙잡혀 가셔서 고생이나 안 하셨나,
뭐 서로 이렇게 위로하고 저 하늘에서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바랄게 뭐 있어요.
그거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나는 지금 아버지 돌아가신 날짜를 몰라서 용화선원에다가
위패만 모셔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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