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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조병욱(증언자-조병소)
이름: 관리자
2021-09-23 12:38:59  |  조회: 180
190527A 조 병 욱 ( 趙柄旭)

생년월일: 1933년 9월 23일
출생지: 양양군 현남면 후포매리 90번지
당시 주소: 양양군 현남면 후포매리 90번지
피랍일: 1950년 9월 말경
피랍장소: 작은외삼촌댁
직업: 중학생
직계/부양가족: 조부모, 부모, 누나, 남동생4명
외모/성격: 따뜻하고 친근한 기억이 있음.

증언자
성명: 조병소(1946년)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시골 동네에서 중학교를 보낼 만큼 똑똑한 편이었음.
• 당시 명륜중학교 2학년이었던 형님을 데려가는데, 어린아이를 데려가면 안된다고 말리는 어머니에게 인
민군이 삼일 만에 돌아온다고 하고 데려감. 어머니는 급하게 약간의 돈까지 쥐어주었다 함.
• 동네에서 여럿이 끌려갔지만 그 후 끌려간 그 누구도 소식이 없음.

직업 및 활동
<당시 명륜중학교 2학년인 학생이었음.>
문_ 피랍된 형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답_ 당시 형님은 명륜중학교라고 다녔다고 얘기를 어머니가 하는데, 내가 형님 납북이
되고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형이 공부하던 책을 집에서 봤거든. 집에
서. 그 당시에는 농촌이 뭐 보릿고개니까. 다 못 살았는데도 저희 아버님이 사 형제인데
도 학교를 다 보냈어요. 제일 큰형님이 중학교 처음 들어간 거예요. 둘째 형님, 그 다음
에 나. 내 동생까지 다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시켰어요. 그때 소 팔고 논밭까지 다 팔아
가면서도 공부를 다 시켜가지고 다 장성해서 내보냈죠. 내 친구들이 양양군에서 군수까
지 했는데, 그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면 우리 아버지보고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그렇게
어려운데도 그렇게 공부 가르치는 집은 너희 집뿐이라며 아버지를 칭찬하곤 했죠.
거기서 태어나서 쭉 살고 학교를 다녔어요. 강릉 쪽으로. 사십가구가 넘었어요. 사십호
면 작은 편이죠, 큰 편은 아니고. 냇물이 있고 물이 있어야 사니까. 거기가 한양 조씨 집
성촌이에요. 집성촌이니까 할아버지가 거기에 숙종 폐비사건 때 내려가서 거기서 후손
들 낳고 그렇게 산 지가 한 삼백삼십년. 마을이 보통 동네지만 상당히 깨어있는 그런 분
들이 있었어요. 공부도 많이 하시고. 연세대, 고려대도 많이 보낸 집안도 있고, 그때는
보성전문.

납북 경위
<인민군이 퇴각할 때 짐을 운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의 소년들을 데려감. 어머니가
사정하였으나 삼일 후 다시 돌아올 것이라 안심시킨 후 데려감.>
문_ 당시 마을 상황은 어떠했나요?
답_ 거기는 인민군이 와서 점령을 해서. 전부 다 집집마다 인민군들이 들어가 있으면서.
저희 집은 산 밑에 집이 있었고. 폭격이 안 떨어질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 건지. 하여
튼 연대장인가 이런 사람들이 와서 주둔을 했대요. 높은 사람이. 거기서 창고에서 보급
도 나가고 그러니까. 많은 군인들이 우리 집에 와서 물건도 타가고 쌀 같은 것도 타가
고. 우리 집 식구들을 다 알게 된 거예요.
문_ 형님이 어떻게 납북되셨나요?
답_ 그건 어머니한테 듣고, 수십 번 들은 거죠. 그런 거는 사실 기억은 잘 못 하구요. 인
민군 후퇴 때니까 가면서 며칠 내로 온다, 다시. 인민군들이 짐을 좀 싣고 가야 되니까
짐을 이고 가야 한다 그런 얘긴데, 아마 그게 한 사람씩 데려오라. 위의 사람의 지령이
있었지 않은가. 납북을 하라는 지시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분명히 그런 생각을 했을
거야 북한에서. 아버님 형제들 중에서도 납북되신 분이 계세요, 바로 동생이. 그분도 생
사를 모르고. 나한텐 작은아버지지. 납북 됐고.

납치 이유
<노역으로 동원한 것으로 추정됨.>
문_ 왜 끌려가셨을까요?
답_ 아군들이 있었다는 게 인민군들이 가고, 그 다음에 아군이 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때 아군들이 우리 집에 와서 주둔을 하고 있고. 그거까지 기억이 나요. 전혀 기억이
안나요. 북한군들이 가고 나서 우리 할머니가 뒷산에 가서 인민군들이 입던 오바를 가지
고 왔어요. 굴에서. 그 기억이 나. 그러니까 겨울이 맞지.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는 그냥
그 얘기뿐이 없어. 형님 끌려 갈 당시 얘기는 삼일이면 다시 온다 그리고 데려가면서 무
슨 짐을 지고 가는 걸. 실질적으로는 그 얘기밖에 몰라.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당시 마을에서 많이들 끌려갔나요?
답_ 많이 갔어요. 많이 갔다가 다 소식이 하나도 없죠. 한 열 명 이상 간 거로 알아요. 내
친구의 형님들 다 납북됐으니까. 다 짐꾼으로 가던지, 뭐 그렇게 됐지. 뭐 개중에는 삼
일 있다 온다고 그랬으니까 자진해서 따라간 사람도 있을 거예요. 소식을 모르니까 별
얘기 안 하죠. 지금 얘기는 돌아가셨으면 조카들이라도 있을 게 아니냐 그래서 이산가족
신청을 해놓고. 다 그런 식이예요. 다 전혀 없어요.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문_ 친구분들과 같이 끌려가신 형님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답_ 전혀 못 들었어요. 그런 얘기도 들을 수가 없지.

남은 가족의 생활
<아버지가 계속 농사를 지어 갑작스런 경제적 어려움은 덜하였음. 그러나 납북 이후에도
좌우익의 갈림으로 같은 동네 살면서도 서로 고발하고 피해를 많이 봄.>
문_ 형님이 동원 납북된 후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사셨는지요?
답_ 아버지 살아계실 때… 그 이후에 농사 계속 지었죠. 그리고 항상 아버님 어머님 다
내가 고등학교 가서도 그러고 만나기만 하면.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그 얘기는 항상 하셨어요. 그 다음에 살았으면 가서 살았으면 공부를 했으니까.
똑똑하고 했으니까 잘 지내지 않겠나 이런 얘기도 하셨고. 또 애들도 결혼해서 낳고 살
지 않겠나 워낙 어렸을 때 갔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아버지
는 그 이후에 농사 계속 지었죠. 그런데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 좌익으로 많이 몰려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아군들이 몰려와서 몽둥이로 두드려 패고 이런 얘기도 있었
고. 그러고 인민군들이 또 다시 들어와 가지고 붙들어 패고 뭐. 좌우익의 싸움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가고 나면 ‘너 좌익에 협조했지’, ‘너 우익에 협조했지.’ 때리고 또 서
로 고발하고 많은 피해를 보고 그랬죠. 많이 불목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었죠. 서로 얼굴
을 안 보고 일가친척이지만. 그래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제사도 같이 지내고 이랬어
요. 한 십년 이렇게 지나고 나서는, 뭐 그렇다고 서로 죽이고 이러진 않았으니까. 그런
사건은 없었으니까. 같이 산소에 제사도 지내러 다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아버님 가신지는 한 십오년 됐고. 어머님은 72년도에 돌아가셨고 내가 군대갔다 제대하
고. 작은형님은 독산동에서 잘 살고 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기관이나 관련기관에서 피해조사가 있었나요?
답_ 그런 거 전혀 없었어요.
문_ 납북 신고는 누가 했나요?
답_ 제가 직접 했죠. 그때도 납북이 되었다는 것을 보증을 서야 해. 두 명인가 세 명. 그
래서 그것도 친구들한테 부탁을 해서 됐는데 지금 생각하기에 납북자에 대한 것은 아직
북한에서 답변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납북자가 있긴 있거든. 없는 게 아니거든. 거기에
대해서도 국가에서 힘을 써줘야 되는데 납북자 얘기는 꺼내지도 못 하는 거 같아요. 뭔
가 지금 북한에 대한 정책도 개방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아. 가끔 무슨 6·25 납북자 어디
로 모여라. 문재인 정권을 욕을 하고, 반대파도 많을 텐데. 공식적으로는 안 되는 거지.
일단은 현재 정부에다 협조를 우리가 많이 한다. 이런 것이 비춰져야지 뭐 정부에서 협
조를 해 주지. 통일부에서든 적십자에서든 협조를 해 주지. 반대편이라고 하면 협조를
해 주겠어요? 예산지원도 해야 되는데 싸워야 될 거야. 싸워야 돼.

호적 정리
<제적처분 하였음.>
문_ 형님의 호적 정리는 어떻게 하셨어요?
답_ 제가 제적처분 했어요. 제가 월남 갈 때도 전혀 이런 신원 조회 하나도 문제가 없었
어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전혀 그런 거 없었어요. 연좌제는 하나도 걸린 적은 없었어요. 제가 월남에 가서 보
안 부대 근무를 했는데 거기서도 뭐 우린 아주 철저하게 신원조회를 하거든.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 문제의 공론화, 남북 회담을 통해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제도가 마
련되기를 바람.>
문_ 정부나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지금 현재 남북의 회담이 잘되어야 되는데. 지금 흐름이 김정은은 비핵화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트럼프하고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이… 그런 느낌이고. 그래서 남북 회담
이 잘 돼서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뭐 이산가족 이렇게 그냥 와서 보는 것보다도. 통일은
안 되어도 서로 자유 왕래할 수 있는 그런 제도가 생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건데. 근
데 서로 강성파가 있어서 안 되는 것 같애.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살아계신다면 보고 싶고, 돌아가셨다면 산소는 어디 있는지, 가능하다면 유골이라도 선
산에 모시고 싶음.>
문_ 형님한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혹시 살아계시면 상당히 연세가 많으실 텐데 그냥 보고 싶다는 얘기고. 만나면 이산
가족 만나서 하룻밤 이틀 밤 자고 그런 거고. 그냥 조카들이랑 어떻게 사셨고, 돌아 가
셨으면 산소나 어디에 있는지. 만약 살아계셨으면 더 좋겠지만, 돌아가셨으면 유골이라
도 선산에 묻어 놓고 제사 지낼 때도 같이 지내고. 뭐 저는 기독교라 절은 안하지만 그렇
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죠. 그리고 조카들한테도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산소도 여기 있
다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그렇게 워낙 폐쇄된 사회니까. 그래도 알 수 있을 텐데. 그래
도 그걸 그렇게 못하나? 내가 여기 직장생활을 월남 갔다 와서도 월남 가서 십오개월 이
상 근무를 하고 왔는데. 와 가지고서도 혹시 북한에서 오는 무슨 탈북자들 고향이 어디
냐 북한에 안가냐 하면 자기들도 언제 간다고 하는 거야 이제. 중국을 통해서 간다는 거
야. 중국 통해서 가면 내가 이렇게 써주는 거 확인해줄 수 있냐. 이런 얘기도 했어요. 가
족회에서 그런 걸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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