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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동규(증언자-박명자)
이름: 관리자
2021-09-17 15:05:40  |  조회: 174
190522B 박 동 규 ( 朴東奎)

생년월일: 1922년 5월 11일
출생지: 충북 진천군 진천읍 가산리 571
당시 주소: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피랍일: 1950년 8월 20일
피랍장소: 충북 진천군 부친의 고모댁
직업: 대한청년단
학력/경력: 한문에 능통함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녀
외모/성격: 얌전한 성격

증언자
성명: 박명자(1947년생)
관계: 장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진천에 있는 아버지의 고모네 집 마루 밑에 피신 중 누군가가 밀고하여 인민군 우두머리가 고모부를 연행
하여 죽기 전까지 패서 어쩔 수 없이 발설하여 잡혀 감.
• 그 동네에서 잡혀 간 12명이 진천군 이월초등학교에 모두 집합. 아내가 찾아가서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 함.

직업 및 활동
<대한청년단 활동.>
문_ 피랍인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나도 아버지가 뭔 일을 했는지 모르는데, 찾아보니까 한국 청년단 단원이더라고요. 할아버지가 한문 글방을 하셔서 아버지도 한문에 능통하셨어요. 그래서 책이 아주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피난 온 사람들이 다 불로 땠다는 거예요. 땔감으로. 남아있는 거라고는 별로 없을 정도로. 엄마는 나 데리고 외갓집으로 피신 가 있었고, 그 동안에 다 아주 풍비박산이 된 거죠. 나머지 유품도 없고, 무식꾼이었으면 안 잡혀갔을 텐데.
문_ 아버님의 가족은 어떻게 되셨나요?
답_ 우리 아버지가 형제가 네 명인데, 우리 아버지는 양자를 왔대요, 이쪽 집으로. 강원도에서 친부모의 둘째 아들인데, 이쪽 집에 아들이 없으니까 양자를 보낸 거예요. 열두 살 때. 양자로 와가지고 가산리 진천군에서 살고 있다가 이월면으로 이사를 한 거지요. 진천군은 마찬가진데, 동네만 바뀐거죠. 그랬다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두 분 다 한문 글방 선생님이셨어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도 한문에 능통했다는 거예요.
문_ 양자로 막내로 입양되신 건가요?
답_ 우리 친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우리하고 같이 진천군에 살다가 나중에 강원도로 들어갔다던데, 나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있다는 것도 중학교 2학년 때 알았어요. 그니까 달랑 엄마하고 나하고만 사는 줄 알고 친척이 있는지도 몰랐었죠.
문_ 그럼 입양 오셔서 진천군에서 사시던 분이 강원도에 가시면서 양자로 한 분 주시고 가신 거고, 아버님은 여기서 쭉 자라셨나요?
답_ 그렇죠, 결혼까지 한 거죠. 우리 엄마하고. 여기 양자집에 할아버지가 박광화 씨라고, 아주 유명한 한문 글방 선생님이셨대요. 그래서 아버지도 한문글을 배운 거죠.

납북 경위
<아버지의 고모집에 숨어 있었는데, 고모부를 협박하고 고문해서 어디 있는지 알려줬고, 밤에 끌려갔다고 들음. 밀고한 사람이 있었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나요?
답_ 여름이라던데, 아버지 고모 집에 숨어 있었대요. 마루 뜯고서 고모부가 숨겨놨는데, 그쪽 사람(빨갱이) 우두머리가 우리 고모부를 데려가서 취재소에서 죽기 직전까지 패가지고, 어디다 감췄냐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서는 할 수 없이 끌려가게 된 거래요.
문_ 본인 집에 있으면 발각되기 쉬우니 고모님네로 피신하신건가요?
답_ 고모네가 같은 이웃에 살았어요. 한 동네에. 그러니까 앞잡이 되는 사람이 밀고를 한 거예요. 그래서 가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안 가려고 숨었다가 밀고한 사람 때문에 끌려가게 된 거예요. 진천군 이월초등학교에다가 다 모집을 했대요.

납치 이유
<대한청년단 활동,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납치됨.>
문_ 왜 납치 되셨을까요?
답_ 그 공산당 우두머리가 우리 동네에서 위원장으로 있었대요. 그때 당시 엄마 얘기로는, 그 사람이 머리에 먹물 든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은 다 붙들어 갔다는 거예요.

납치 후 소식
<열두명이 끌려가다가 한 명이 탈출하여 돌아 옴. 다리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밤중에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고 함. 당시 아버지도 함께 있었다고 들었음.>
문_ 그 후 들은 소식은 없었는지요?
답_ 엄마가 내 동생을 가졌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이월초등학교까지 찾아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공산당 앞잡이들이 못 만나게 해 가지고서 되돌아온 게 끝이래요.
동네 사람 누군가가 이월초등학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거기 사람들이 만나게 해주겠어요? 안 만나게 해주지. 그래서 그게 끝인거예요. 어머니는 그렇게 88세까지 아버지 기다리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끌려가실 때 할머니, 할아버지 제삿날을 적어서 모자 속에 넣고 가셨다고 들었어요.
문_ 평상시에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답_ 자세한 얘기도 뭐 그때 내가 세 살이었는데 얘기할 게 뭐가 있어. 자기네들도 한 3년 4년 결혼생활하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아버지가 그랬다는 거예요. 석 달만 있으면 올 수도 있을 거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석 달이 지금 얼마에요? 그냥 한 많은 세상 살다 가신 거죠.
굉장히 뭐랄까… 얌전하고 한문글만 하시고 ‘네 아버지가 무식꾼이었으면, 안 붙들려갔을 거다.’ 그랬죠. 그 당시 배운 거 없는 사람은 안 붙들어갔다는 거예요. 그 동네에서 12명이 다 글 읽는 사람만 뽑아서 잡아갔다는 거예요. 뭐 그런 소리만 하시죠.
문_ 외모나 성격에 대해 아시나요?
답_ 사진 딱 요만한 아주 조그만 민증사진이 있었는데, 그걸 어머니가 확대해서 본 적이 있는데. 아빠가 나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기억이 안나요. 세 살인데 아무 기억이 안 나지.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와 함께 가산리 외갓집으로 피난을 감. 논이 있을 때는 쌀 조금 받아서 먹고 살고, 이후 논을 팔고 친정에서 도움을 받고,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함.>
문_ 납치 후에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_ 아버지가 논이 아홉 마지기가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한문글방을 하시니까 논이 아홉 마지기가 있었는데 물이 잘 안 들어오는 가뭄 들면 못 심는 그래서 엄마가 할 수 없으니까 논을 팔은 거예요. 논을 팔았는데 친정에서도 사촌 오빠가 빚으로 달라해서 주고, 밭 좀 있었고 딱히 경제활동은 할 수가 없었으니 그냥 장려쌀 받아가지고 산 거지요. 사는 게 힘들죠. 뭐 이고 다니면서 파는 것(보따리장사)도 하고 그렇게 살았죠.
그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시험이 있었어요. 그때 대학교는 엄마가 진천에는 대학이 없으니까 여자는 멀리 가면 안 된다고 해서… 대학을 안 보냈었어요 나를. 그래서 서울로 와 가지고 취직을 하려고 그래서 신설동에서 교환 시험을 봤어요. 그때는 시외 전화국에 시험을 봐서 들어갔어요. 시험을 봤는데 거기서 신원조회가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겁먹었지. 아버지가 납북되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잘 되어서 그때부터 마음 놨죠. 그래서 7년 동안 다녔어요.
2000년도쯤인가? 적십자사에 상봉하는 거 신청했었어요. 내가 했었는데 연락도 한번 안 오고 그러니까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언젠가 적십자사에서 의견을 묻는 전화가 와서 엄마를 바꿔줬지. 엄마가 하지 말라고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얘기했어요. 생사도 모르고, 그쪽에서 우리를 찾아야지, 우리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찾냐고. 엄마 얘기는 그거지. 아버지가 계신다면 우리를 찾아야지, 우리가 찾으면 어떻게 찾느냐? 포기한다고 해서 그래서 안 한 거예요. 적십자사에 십년 이상 신청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근데 뭐 그런 전화만 오지 뭐 하나 실용적인 건 없는 걸.

정부의 노력
<모름.>
문_ 적십자사나 아니면 정부의 조사가 있었나요?
답_ 그런 건 모르고요.

호적 정리
<청주 지방 법원에서 어머님이 실종신고 함.>
문_ 호적 정리는 언제쯤 하셨어요?
답_ 제가 중학교 때 같은데요, 기록에는 있는 데 기억을 못하는 거예요. 엄마가 했으니까 내가 알게 뭐예요. 청주 지방 법원에서 한 거 같았는데 실종신고 재판인가 뭐.
엄마가 내가 고등학교 나와 가지고 취업하려니까, 그쪽으로 끌려가서 뭐 저기 할까봐 그런 기록을 못 봤으니까, 아버지를 실종신고를 해놓은 거예요.

연좌제 피해
<교사시험을 보려했으나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음.>
문_ 연좌제를 겪으셨나요?
답_ 내가 취업하려니까는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있었어요. 뭐 아빠가 끌려간 걸로 돼 있는지 모르고 초등학교 교사 시험보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은 안된다는 등, 북으로 끌려간 사람은 안 된다는 등. 그때는 시외 전화국에 시험을 봐서 들어갔어요. 시험을 봤는데 거기서 신원조회가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겁먹었지. 아버지가 그랬다니까. 그랬더니 제대로 잘 돼서 그때부터 마음 놨죠. 그래서 납북된 건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북으로 저기해서 안되는 걸로 생각했죠.

정부에 바라는 말
<현재는 명예회복이 이렇게 된 것만 해도 고맙다.>
문_ 정부나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현재는 명예회복이 이렇게 된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는데요, 나중에 통일이 된다고 하면 유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고, 그것이 바람이죠… 명예회복 된 것만 해도 아버지한테 할 일을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_ 명예회복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답_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가 이북으로 이념 때문에 간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자진해서 간 걸로. 어렸을 적에, 그럴 때마다 가슴 아팠죠. 보니까는 청년단에서 일도 하시고 계셨고, 그러니까 자부심은 느끼는 거죠. 그런 사상이 아니라는 것만 해도. 아빠보다 엄마가 더 불쌍하죠. 평생을 남편을 그리다 가셨으니 불쌍한 거죠.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나서 말 못해.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계시다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음.>
문_ 아버님한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아버님이 계시다면야,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고… 엄마가 평생 동안 기다렸다 가셨다는 거랑 나는 뭐 얼굴을 모르니까 아빠 소리 한번 못 해 본 거죠. 엄마가 안 됐어서 평생 기다리다가 가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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