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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진수(증언자-김희덕)
이름: 관리자
2016-12-13 11:27:04  |  조회: 1713


피랍인
생년월일: 1902년 7월 17일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군
당시 주소: 서울 서대문구 평동 13번지 14호
피랍일: 1950년 8월 초순
피랍장소: 미상
직업: YMCA 체육코치
직계/부양가족: 부인, 자녀 3남 2녀


증언자
성명: 김희덕(1930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자 김진수는 YMCA에서 체육코치 활동을 하였으며, 서북청년단 단장을 맡고 있었음.
- 피랍자가 연행되는 과정을 목격한 가족이나 지인이 없어 납치일, 납치장소 등이 미상.
- 서대문형무소에 피랍자와 함께 수감되고 강제 북송되던 사람이 홀로 탈출에 성공하여 피랍자의 사정을 가족에게 알려 어느 정도 사정이 밝혀짐.   


“서대문구 천연동 살 때야. 알고 보니 나랑 우리 형님의 국민학교 동창생 이놈들이 빨갱이들이더라고. 그 놈들에 의해서 납치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후로 그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 사는지도 잘 몰라. 그게 답답해.”

“묶인 채 여럿이 끌려가다가 그냥 땅바닥에 쓰러지니 다른 사람들도 못가잖아. 그러니 총을 가진 빨갱이 놈들이 ‘일어나, 일어나!’ 막 하다가 못 일어나니 풀어놓고 총을 막 쐈다 이거야. 근데 용케 총을 안 맞은 모양이야. 눈을 뜨니 밤중이라 그냥 엉금엉금 기어가지고 어느 골짜기 시골집에 가서 나 살려달라고 해서 겨우 돌아왔대요. 아버지는 그대로 끌려가시고.”


직업 및 활동

문_ 아버님 직업이 무엇이었나요?
답_ YMCA 기독교 청년회관 있잖아요. 거기에서 몇 십 년 동안 코치로 근무하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거기 2층 큰 운동장에서 농구, 복싱 하시고 기계체조도 하고 그러셨어요.

문_ 다른 사회 활동도 하셨나요?
답_ 6‧25전에 서대문구 천연동 90번지를 중심으로 서북청년단을 조직해서 단장을 하셨어요.


납북 경위

<납치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없어 아무도 납치 상황을 몰랐지만, 서대문 형무소에 함께 수감되었던 사람에 의해 피랍 사실이 밝혀짐>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요?
답_ 우리 가족들은 못 봤어요. 이웃들 중에도 본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어떻게 끌려가셨는지 몰라요.

문_ 그러면 아버님 소식은 어떻게 아셨죠?
답_ 서대문 형무소에 아버지와 함께 수감되어 있던 사람이 탈출해서 어머니께 소식을 알려주었어요. 그 분에 의하면 처음에 아버지가 정치보위부로 쓰이던 을지로 입구 국립 도서관으로 납치를 당하셨대요. 그 다음에는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납치 이유

<피랍자의 장남, 차남 동창생 중에 좌익이 있었으며, 그들의 밀고로 서북청년단 활동이 밝혀져 피랍되었다고 추측함>

문_ 납치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_ 알고 보니까 동네에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동창생과 우리 형님의 국민학교 동창생 중에 빨갱이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에 의해서 납치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동네 서북청년단 단장이니까 그 친구들이 밀고한 것 같아요.
 
납치 후 소식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9․28 서울 수복 얼마 전에 북송되었음>

문_ 앞에서 언급하신, 아버님과 같이 수감되어 있었다는 사람은 어떻게 탈출했지요?
답_ 8월 중순 즈음부터 서대문 형무소에 계속 있다가 9‧28 수복 얼마 전 어느 날 밤 12시가 넘었는데 형무소 앞 영천 전차 종점에서 수십 명의 인사들을 서로 밧줄로 묶어 전차에 모두 태운 후, 돈암동 전철 종점까지 끌고 갔대요.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묶인 채로 북쪽으로 끌려갔대요. 아버님도 함께 끌려갔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묶인 채 끌려갔는데, 한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지니까 같이 묶여있는 다른 사람들 모두 멈춰서잖아. 그러니 총 가진 사람들이 “일어나, 일어나!”라고 막 소리치는데도 못 일어나니까 총을 막 쐈다는 거야. 그런데 그 분은 용케 총을 안 맞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끌려가고 혼자 남게 됐을 때, 엉금엉금 기어서 어느 골짜기 시골집에 가서 살려달라고 했대요. 그리고는 무사히 돌아온 거죠. 

문_ 그 분이 어떻게 아버님을 아시고 찾아왔지요?
답_ 아버지와 같이 서대문 형무소에 같이 있을 때,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풀려나게 되면 가족들한테 대신 알려주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직접 어머니한테 찾아와서 알려줬대요.

문_ 어머님이 아버님 찾으려고 노력 많이 하셨겠네요?
답_ 납치되어 끌려가셨다는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겠어요? 평양까지 끌려가셨는지, 중간에 어떻게 희생이 되셨는지 아무도 몰라요. 어머니 혼자 우시고, 말도 못할 정도였지요.


남은 가족의 생활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형제들은 군에 입대하기도 하였음>

문_ 남은 가족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어머님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 형님도 그만 9․28 수복 이전에 의용군으로 끌려갔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국군한테 포로로 잡혔나 봐요. 그래서 거제 포로수용소에 갔다가 거기에서 이승만 대통령 덕분에 풀려났어요. 그게 1952년도 쯤 되는데 형은 거기에서 풀려난 후 다시 육군에 입대했다고. 그러고선 그 당시 계급으로 이등 상사로 제대했어요. 저는 2년 2개월인가 근무하고 1953년에 일등병으로 제대했어요.
장녀이자 동생인 희숙이는 전쟁 나기 직전까지 한국은행 본점 출납계에서 근무하다가 전쟁 때문에 출근을 못했어요. 그 후 1․4 후퇴 때는 피난 가서 서대전에서 두 세 달인가 대전역 부근 한국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다가 수복 후에 다시 서울에 올라왔어요. 저는 전자 계통에 기술이 있어서 금화소리사라는 곳에서 삼십 여 년을 일하고, 나중에는 충정로에서 전파사를 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에 대해 기억나는 것 있으세요?
답_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 저도 팔십이 넘었으니 도저히 모르겠어요. 아버지 얼굴만은 선명하게 기억나지만, 이제는 연세가 대략 110세 정도 될 터인데 살아 계시리라는 희망도 없고 그러니 할 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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