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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노흥열 (증언자-노인배)
이름: 관리자
2013-10-02 12:19:26  |  조회: 2473
첨부 : 67.080708A 노흥열.rtf  
2008. 7. 8. 채록
080708A 노 흥 열(盧興烈)

피랍인
생년월일: 1903년 7월 2일생
출생지: 고양군 연희면(현 신촌)
당시 주소: 서울 중구 다동 157번지
피랍일: 1950년 7월경
피랍장소: 경기도 여주
직업: 재무부 인사과장
학력/경력: 연희전문학교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매
외모/성격: 보통 키에 마른 편, 성실하고 온순한 성격

증언자
성명: 노인배(1934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재무부 인사과장을 지낸 피랍인은 경기도 여주로 피난을 가 있던 중 함께 있던 사람이 발각되면서 미처 멀리 몸을 숨기지 못해 끌려감.
- 내무서와 정치보위부를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었으며 인민군 고위간부였던 친구의 도움으로 피랍인 배우자가 피랍인을 면회함. 고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풀려나지 못하고 북으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
- 전쟁 당시 17세였던 피랍인의 차남도 전쟁 중에 의용군으로 차출되어 끌려 갔으나 가까스로 도망쳐 나옴.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유해 송환, 피랍인 명예회복


“아버님이 피신을 하셨지만 멀리는 못 가셨어. 그 사람은 산을 넘어가지고 부산까지 갔고 아버님은 콩밭에 그냥 숨으셨대. 콩밭에 있으니 꿩이 머리만 숨기고 꼬랑지가 나오니 안 보이겠어. 그렇게 잡히셨지. 그 사람은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살아가지고 나중에 왔더라고. 그 사람이 죄인이야. 그 사람이 태극기만 안 가져갔으면 괜찮은 건데 태극기를 가지고 배를 건너다가 불심검문을 당해 걸려가지고 고문 끝에 자기 있는 곳을 가르쳐 준거지. 그렇게 끌려가서 광주 어디 내무서에 있다가 바로 정치보위부로, 거기서 며칠 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가신 거지.”

“워낙 많은 인원이 납북을 당해서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하겠냐마는 독립군이나 하다못해 광주사태 같은 상황도 국가 유공자라고 인정을 해주잖아요. 특히 이렇게 고위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 납북을 당했다고 했을 시에는 한 번 더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거죠. 고기 잡다가 간 것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리고 어디에서 처형을 당했거나 자연사 했거나 하는 기록이 있을텐데 기일이나 유골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소원이겠지.”



○ 직업 및 활동

<당시 김도연 재무부 장관 시절 인사과장으로 근무>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초대 정부 수립되고, 김도연씨가 장관으로 계실 적에 인사과장을 하셨지.

문_ 다른 사회 활동도 하셨는지?
답_ 공직에 쭉 계셨어요.



○ 전쟁 당시 상황

<당시 17세였던 피랍인의 차남은 의용군에 차출되어 일신국민학교에 강제 소집되었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옴.>

문_ 전쟁이 나고 피난을 갔었나요?
답_ 피난을 못 가고 나는 의용군으로 잡혀갔었지.

문_ 당시 상황은?
답_ 밤에 잠을 자는데 잘 아는 동네 반장이 나와 보라고 해서 얼떨결에 나갔는데 동(동사무소)에 가자고 해서 동사무소로 가니까 거기에 벌써 주민들이 많이 나와 있더라고. 나는 열일곱 살이니까 군대 안 갈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열일곱 살이면 충분하다고 일신국민학교로 데리고 가더라고. 남산 밑에 일신국민학교라고 있었거든. 다동 157번지에 살고 있었으니까 거기에서 남산이 가까워요. 거기에서 동네사람들하고 같은 소대에 있으면서 매일 밤이면 잠자는 데 깨워가지고 심사라고 하나, 정신분석 같은걸 해. 테이블이 쫙 있으면, 거기 인민군들 한 십여 명이 각자 앉아있어요. 알고 보니까 빨치산 부대라고 하더라고. 거기서 일대일로 접견을 해요.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냐고 묻는데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면 잘 끌고 간다고 그래서 국민학교를 나왔다고 그랬지. 왜 안 갔느냐고 해서 돈 없어 못 갔다고 했더니 “평양에 가면 돈 없어도 공부시켜 줄테니까 가자우.” 그러더라고. 어린 마음에 싫다고 안 간다고 그랬더니 나중에 반동 불순분자로 찍혔어. 우리 소대 내에서 네 명이 찍혔는데, 반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인배야, 너 큰일났다.” “왜요?” 그랬더니, “너 반동분자로 찍혔어. 너 많이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난다.” 그러더라고.

한 십여 일 있다가, 식사 당번이 됐어요. 우리 내무반 밥을 다 담아주는 거지. 그리고 한 쪽에 불치병 환자들이 있었어요. 의무실에서 체크를 했다가 이 사람들은 이북으로 끌고 가는 도중에 다 죽을 것 같으니까 다 내보내라는 지령이 있었던 모양이야. 우리가 밥을 주는 바로 그 옆이 의무실인데, 거기서 딱 악수를 하고 내보내더라고 한 명씩. 우리 반장이 “인배야, 저기 줄 서면 나갈 수 있으니까 빨리 서라.” 그래서 식사당번 하다 말고 거기 섰지. 아픈척하고 있으니까 빨치산이야 뭐 알아, 이쪽에서 줄 서서 왔는지 알고, 동무, 수고한다고, 가라고 그렇게 인사하고 나와 가지고 도망을 와서 집에 왔죠.

문_ 반장은 처음에 의용군 차출인지 모르셨군요.
답_ 잘 모르지. 동에서 오라고 하니까 무조건 간 거지. 일단 가니까 도망갈 수도 없고 그냥 끌려가는 거지. 의용군 간다고 하면 누가 가겠어? “동에 잠깐 가자”, “오라고 하니까 가보자” 해서들 가보니까 의용군 강제 소집이지.



○ 납북 경위

<경기도 여주에 피난을 가 있던 피랍인은 함께 있던 다른 사람이 발각되면서 미처 멀리 몸을 숨기지 못하고 억울하게 연행됨. 내무서와 정치보위부를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었으며 인민군 고위간부였던 친구의 도움으로 피랍인의 배우자가 면회는 가능했으나 풀려나지는 못함.>

문_ 피난을 가셨나요?
답_ 네, 6월 25일 밤에, 그러니까 새벽녘에 피난을 가셨는데 7월 며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국립도서관 자리가 정치보위부였는데, 거기로 잡혀가셨어. 동네에 우리 형님 친구가 빨갱이야. 말하자면 학교 다닐 때부터 좌익계지. 그래서 그 사람 도움으로 빼내려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어. 한 이틀 거기 계시다가 서대문형무소로 가셨다 그래. 서대문형무소에 어머니님이 한복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 갖다 드렸지.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동네 여관 하는 집의 처가가 경기도 여주인데 자기네 홍간가 하는 그 가족들이 사는 동네여서 안전하다 그래서 거기로 가신 거지. 그런데 거기에 우리 아버님뿐만 아니라 여관에 장기투숙하고 있던 다른 사람도 동행을 한 거야. 그 사람이 정치 브로커인지는 몰라도 연락책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광나루에서 불심검문을 당했는데 몸에 태극기를 가지고 있었대. 고문을 해서 “이걸 어디로 가져가느냐.” 하니까 여주에 가져간다고, 우리 아버지가 시킨 건 아니고 자기네들끼리 아지트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내무서원들이 그 동네로 온다고 해서 아버님이 피신을 하셨지만 멀리는 못 가셨어. 그 사람은 산을 넘어가지고 부산까지 갔고 아버님은 콩밭에 그냥 숨으셨대. 콩밭에 있으니 꿩이 머리만 숨기고 꼬랑지가 나오니 안 보이겠어. 그렇게 잡히셨지. 그 사람은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살아가지고 나중에 왔더라고. 그 사람이 죄인이야. 그 사람이 태극기만 안 가져갔으면 괜찮은 건데 태극기를 가지고 배를 건너다가 불심검문을 당해 걸려가지고 고문 끝에 자기 있는 곳을 가르쳐 준거지. 그렇게 끌려가서 광주 어디 내무서에 있다가 바로 정치보위부로, 거기서 며칠 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가신 거지.

문_ 납치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답_ 도망갔던 사람을 통해서도 듣고, 좌익 쪽 고위 간부로 있던 형 친구되는 사람이 서대문에 계신걸 알고 손을 썼는데 되지는 않았고 서대문형무소로 갔다는 소식은 알았지. 그래서 부랴부랴 어머니가 옷을 해가지고 서대문형무소에 갖다 드렸지.

문_ 면회가 가능했나요?
답_ 그럼, 어머니는 만나셨지. “애들 잘 부탁한다.” 그러고 가셨대.



○ 납치이유

<고위 공무원>

답_ 고위 공무원을 했다는 것 때문에 납치당한거지. 억울하지...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못 들었지. 한 번도 못 들었지.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찾을 방법이 없지.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배우자가 국수, 팥죽장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교육함>

답_ 집에서 국수장수, 팥죽장수 하는데 가사를 도왔지. 어머니께서 하셨으니까 그걸로 학비를 충당한 거지.

문_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답_ 어머니께서 별의별 장사를 다하셔서 우리 5남매를 대학까지 다 보내셨지. 어머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형님이 적십자사에 신고를 했더라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직접적으로 원조를 해주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 호적정리

<미정리>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피해는 없고 내가 공무원으로 들어갈 적에 납북자 가족이라고 해서 문제가 생겼는데 여기서 월북을 한 게 아니라 강제로 잡혀간, 납치 당해간 거라고 해서 공무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유해 송환, 피랍인 명예 회복>

답_ 글쎄 워낙 많은 인원이 납북을 당해서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하겠냐마는 독립군이나 하다못해 광주사태 같은 상황도 국가 유공자라고 인정을 해주잖아요. 특히 이렇게 고위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 납북을 당했다고 했을 시에는 한 번 더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거죠. 고기 잡다가 간 것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리고 어디에서 처형을 당했거나 자연사 했거나 하는 기록이 있을텐데 기일이나 유골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소원이겠지.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님 죄송합니다. 찾아 뵙지 못하고 임진각에 가서 아버님 아버님 여러번 불러도 봤습니다.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 것으로 알고 우리도 가족 다 같이 아버님의 그 큰 뜻을 받들어 성실하게 잘 살 것을 맹세하면서 몇 년 후에 찾아가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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