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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기룡 (증언자-이순녀)
이름: 관리자
2013-09-26 10:27:23  |  조회: 2875
2008. 7. 2. 채록
080702A 이 기 룡 (李起龍)

피랍인
생년월일: 1911년 1월 27일생
출생지: 강원도 정선읍
당시 주소: 강원도 정선읍
피랍일: 1950년 7월 18일경
피랍장소: 강원도 덕송리 이절
직업: 대한청년단 총무
학력/경력: 강원도 정선초등학교/공직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2녀
외모/성격: 176cm의 키에 안경 착용, 깔끔한 편

증언자
성명: 이순녀(1934년생)
관계: 장녀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1950년 7월 18일경, 강원도 정선 지역 대한청년단 총무로 활동했던 피랍인은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의 밀고로 가족과 함께 피난 가 있던 곳에서 무장한 18명 가량의 인민군들에게 의해 연행됨.
-정선 내무서에서 고초를 겪고 묶여서 끌려가는 것을 피랍인의 딸이 직접 목격함. 이후 춘천으로 넘겨졌다는 사실까지 확인.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납북자 유골 송환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상해줄 것

“강에 고기 잡으러 갔다니까 인민군들이 강을 건너가는 거에요. 얼마 안 있으니 우리 아버지하고, 이동우 선생이라고, 두 분을 배에 태우고, 배도 못 건너는 걸 강제로 총을 들이 대니. 나는 우리 아버지 입은 모습을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하얀 노타이 셔츠에 흑색 양복바지를 입으시고, 안경에 도로우찌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뭐 그렇게 붙들려 가시니 풀이 하나도 없으시죠. 우리 오빠는 그제서야 인민군들 보고 내가 우리 아버지 대신에 다 할테니까 우리 아버지 좀 데리고 가지 말라, 우리 아버지는 보다시피 이렇게 몸이 약하셔서 요양하는 중이라고 그러는데 필요 없대요. 그리고는 점심도 못 잡수셨는데 끌고 간 거에요.”

“이제 내가 우리 아버지 본다고 잡혀가신 그 길목에서 가마니를 깔아 놓고 참외를 한 30개를 사 놓고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3일 만에 둘씩 묶어서, 수갑인지 철사인지 지금 기억이 안 나요. 그렇게 묶어서 끌고 가는데, 제일 뒤에 (아버님이) 따라가셔. 그래서 내가 “아버지!” 하고 불러서 이렇게 휙 돌아보시는데 완전히 얼굴이 이 책상 같아요. 노랗게 떴어요. 얼굴이 부은 것 같은데, 대답을 하시질 않더라고. 내 이름도 안 부르시고. 그게 나도 마지막이에요.”


○ 직업 및 활동

<대한청년단 총무>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나는 어려서 잘 모르고 들어서 알지만 아버지는 그 전에는 공직에 계셨다가 그 후에 사진하시는 건 봤어요. 사진을 많이 하셨고, 그 후에 사진을 그만 두시고 영단이라는 데도 다니셨어요. 영단이라는 게 돈 관계, 그럴 땐 은행이라는 게 없었잖아요. 그리고 그 후에는 그림도 그리시고, 한청(대한청년단)에 다니셨는데, 한청에 다니실 때 돈 같은 걸 가져오신 건 모르겠어요. 돈은 안 받은 것 같아요. 거기가 아마도 지금 좌익이니 우익이니 할 때, 우익이 한청이고 좌익이 빨갱이들 아니에요. 그럴 때 거기 총무로 계셨어요. 거기 회장님은 홍태식씨라고 그 분이 같은 동창이에요. 강원도 정선국민학교 12회 졸업생이세요. 강원도 정선읍 봉양리 12회 졸업생이죠.



○ 납북 경위

<1950년 7월 18일경 인민군 18명 가량과 함께 동네 사람 둘이 피랍인의 가족이 피난 가 있던 곳을 찾아와 피랍인을 총으로 위협하여 연행해 감. 정선의 내무서에서 고초를 겪고 묶여서 끌려가는 것을 피랍인의 딸이 마지막으로 봄. 이후 춘천으로 넘겨졌다는 사실까지 확인함.>

문_ 피난을 가셨어요?
답_ 피난을 갔어야 했는데, 우리 어머님이 그때 정선읍에서 한 100리 길을 어디 가셨었어요. 그래서 6.25가 나고 괴뢰군들이 밀려올 때, 피난민들이 다 가는데 우리는 못 가고 있다가 우리 어머니 만나서 가려니까 이미 늦은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 북실리라는 곳과 저 강릉 쪽에서 밀물 밀리듯 인민군들이 막 밀려온 거예요. 우리는 급한 마음에 덕성리라는 데가 시골인데 거기 오솔길을 따라서 배로 강을 두 개나 건너야 ‘이절’이라는 데를 가요. 아주 거기가 외딴 곳이에요. 거기에 방을 하나 얻어서 가 있었어요.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피난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을 몇 명 만났는데 한 사람은 김영기라고 그 사람도 ‘물금’이라는 곳으로 피난을 와 있었어요. 그 사람하고 기서 아들, 이영식이라고 하는 사람 둘이서 붙들고 간 거에요. 인민군 열여덟하고 같이. 그 사람들이 일러서 그런 거에요. 그 사람들 옷이 국방색, 우리나라 군복보다 색깔이 좀 연하고 추해 보이는, 그런 옷을 입고 천으로 만든 모자들을 쓰고 오더라고요. 인민군 복장이 그렇겠죠. 그 사람들이 막 오길래 난 일어서서 이렇게 바라보는데, 우리 오빠가 나서서 (아버지) 삼척 갔다고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알아듣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열, 스무 명이 온 집안을 휘저어요. 그리고 나를 처음에 보더니 “넌 누구냐?”고 해서 내가 “피난 와 있는데요.”, 그러니까 “너네 아버지 어디 가셨냐?”고 해서, “삼척 가셨는데요.”, 그래서 “언제 가셨는데?” 그러더라고요. 그건 알 수 없다고, 내가 기억을 못 하겠다고 그러고선 우리 오빠하고 말이 어긋날까봐, (나는) 여기다 앉히고, 우리 오빠는 저쪽에다가 떨어뜨려놓고선 자꾸 심문을 하는 거에요. 그러던 중에 주인집 장가간 아들이 들어왔는데 “이 집 피난 온 사람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까, “아침 먹고 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던데요.”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깐 이것들이 눈에다가 불을 키면서 오라지게 있는 대로 때리는 거에요.

강에 고기 잡으러 갔다니까 인민군들이 강을 건너가는 거에요. 얼마 안 있으니 우리 아버지하고, 이동우 선생이라고, 두 분을 배에 태우고, 배도 못 건너는 걸 강제로 총을 들이 대니. 나는 우리 아버지 입은 모습을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하얀 노타이 셔츠에 흑색 양복바지를 입으시고, 안경에 도로우찌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뭐 그렇게 붙들려 가시니 풀이 하나도 없으시죠. 우리 오빠는 그제서야 인민군들 보고 내가 우리 아버지 대신에 다 할테니까 우리 아버지 좀 데리고 가지 말라, 우리 아버지는 보다시피 이렇게 몸이 약하셔서 요양하는 중이라고 그러는데 필요 없대요. 그리고는 점심도 못 잡수셨는데 끌고 간 거에요. 배를 타고 ‘다래’라는 데를. 우리 오빠가 삼 일만에 거길 갔는데, 이미 반공호로 끌고 가서 자꾸 고문을 한대요. 그리고는 정선의 인민군 내무서로 끌려 가서 고문을 당하고, 고춧가루를 물에 타 가지고 코에 들이 부었대요. 그 소리를 전해 듣고 우리 어머니는 실신해서 일어나시지도 못 하시고.

그 때가 7월이에요. 우리가 피난 가서 20일 만에 붙들리셨으니까, 7월 18일경이에요. 그래서 이제 내가 우리 아버지 본다고 잡혀가신 그 길목에서 가마니를 깔아 놓고 참외를 한 30개를 사 놓고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3일 만에 둘씩 묶어서, 수갑인지 철사인지 지금 기억이 안 나요. 그렇게 묶어서 끌고 가는데, 제일 뒤에 (아버님이) 따라가셔. 그래서 내가 “아버지!” 하고 불러서 이렇게 휙 돌아보시는데 완전히 얼굴이 이 책상 같아요. 노랗게 떴어요. 얼굴이 부은 것 같은데, 대답을 하시질 않더라고. 내 이름도 안 부르시고. 그게 나도 마지막이에요.



○ 납치이유

<대한청년단 활동>

답_ 납북 당하셨을 즈음에 우리 아버님이 한청(대한청년단)에 적을 두셨으니까.



○ 납치 후 소식

<춘천까지 같이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람을 통해 춘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었던 것을 확인했으나 이후는 학살되었는지 알 수 없음>

답_ 춘천까지 같이 끌려갔다가 되돌아 온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한청에다가 소주 한 상자 보낸 죄로 끌려갔는데, 그 사람은 그때 형이 약하다고 해서 되돌려 보내고, 우리 아버지는 유치장에다가 바로 집어넣었어요. 감옥에 집어넣고서는 음력 팔월 열 나흗날에, 음력으로 팔월 열 나흗날이 인민군들이 정선읍에서 후퇴한 날이에요. 근데 우리는 그걸 좋아했죠. 혹시나 풀려 나오시나 했는데, 뭐 보지도 못했어요. 학살시킨 게지. 거의 다 살아 돌아오시지 못하니까, 다 거기서 어떻게 처형 당한 거죠.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알아봐도 하나도 알아내지를 못했나 봐요. 우리 오라버니가 춘천 살았는데 알아내지도 못하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나 봐요. 그러니까 어느 외딴 곳에 그러고 가다가 학살을 당했는지 그걸 알 수가 없어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배우자가 서울에서 기성복을 떼어 강원도 정선에서 잡곡과 물물교환을 하며 생계 유지>

답_ 우리 어머님이 힘들었지요. 우리 오빠는 그 당시 고등학생이고, 나는 중학생이고, 우리 여동생은 국민학생이고 그런데 계속 가르치긴 해야 되겠고. 강원도에서 이제 서울로 와서는 기성복 떼 가지고, 시골에 다니면서 판매를 하면 현금이 안 나와요. 그래서 뭘 하냐면 곡식을 걷어요. 곡식이래야, 강원도 정선은 쌀이 많은 곳이 아니에요. 논이 별로 없고 잡곡이 많이 나는데, 잡곡이 지금은 값이 비싸지만 옛날엔 값도 없어요. 그걸 잡곡하고 맞바꿔서 그걸 갖고는 또 그 머리에다 이시고, 그 몇 십 리 길을 걸으시고, 고생 말도 못하게 하셨죠, 우리 어머니. 그래도 그걸 가지고 연명하셨어요. 어머니 고생하신 건 말도 못해요. 나는 뭐 학교 다니면서 부엌데기에 밥해 먹는다고 지각은 판판이 하고. 학교가면 벌 받는다고, 지각하면 벌 받고. 옛날에는 지각을 하면 여학생들은 겨울철에 맨발로 운동장 뛰고, 남학생들은 웃통 벗고 교단에 이렇게 엎드려가지고 물 양동이로 퍼 붓고 그랬는데 그런 걸 어렵게 생각은 안 하고, 어머니가 고생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죠. 돌아가신 지가 지금은 7년, 8년 되었어요.



○ 정부의 노력

<없음>



○ 호적정리

<없음>

답_ 호적정리는 사망신고도 못 내고 계속 있었지요. 그냥 계속 방치되어 있다가 우리 어머님 때문에, 어머님이 하도 원하시니까 제사라도 지내야 되겠다고 하는데, 그래도 제사 안 지냈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지금 그냥 같이 (제사) 지내고 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 유골 송환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상해줄 것>

답_ 지금이나마 납치된 가족들의 유골을 찾아주면 더 할말 없고, 어떻게 힘써서 찾아주면 너무 좋겠어요. 그래도 58년이나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찾았으면. 그게 내 소원이고, 하다못해 지방에서 좌익으로 활동한 사람들, 그 유골이 한 곳에 밀집돼 있어서 그 학살시킨 것도 찾는다고 아우성인데, 왜 이렇게 놔두나 싶은 게, 이걸 좀 제발 해결을 해 달라고. 전쟁이 끝나는 것은 그래도 유가족들한테 뭔가를 보상이라도 해주고, 그래야 전쟁이 끝나는 거지. 만약에 남북이 통일이 되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악에 차서 지금도 남아있는 거에요. 그게 우리 세대, 이 시대가 가면, 후손들이야, '아, 할아버님들이 이렇게 가셨구나.' 하지만, 우리는 직접, 제 부모가, 아버님이 이래 가셨는데,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잖아요. 우리 정부에서도 이런 마음을 아시고 좀 참작하셔서 우리의 이 억울함을 좀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님, 생각할수록 아버님이 보고 싶고, 억울하게 가신 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님, 지금이라도 편안한 곳에 영원히 안치될 수 있도록 찾게 해 주십시오. 아버님, 아버님! 너무 보고 싶습니다. 우리 형제들 지금 다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아버님, 꿈에라도 어디 계시는지 좀 알려 주십시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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