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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오혜옥 (증언자-오명석)
이름: 관리자
2013-10-02 12:21:19  |  조회: 2728
첨부 : 69.080814A 오혜옥.rtf  
2008. 8. 14. 채록
080814A 오 혜 옥 (吳惠玉)

피랍인
생년월일: 1928년 10월 28일생
출생지: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279번지
당시 주소: 상동
피랍일: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피랍장소: 경전병원
직업: 경성전기주식회사(현 한국전력) 전차과
직계/부양가족: 어머니, 6남매
외모/성격: 활달하고 추진력도 강한 편

증언자
성명: 오명석(1939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 당시 경성전기 전차과에서 근무하며 우익단체 활동도 함께 했던 피랍인은 전쟁이 발발할 당시 손을 다쳐 병원에 입원 중이었음. 입원해 있던 중에 직장 내 남로당과 관계된 이들에 의해 전쟁 발발 직후 끌려가 소식을 알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유해 송환, 위령비 건립, 특별법 제정을 통한 피랍인 및 그 가족에 대한 명예 회복



“그때 손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경성전기에 다니던 분이 자주 우리집에 와서 얘기를 전해줬어요. 전쟁 상황도 알려주고, 상황이 어떻다는 얘기들을. 근데 우리 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없어졌으니까 어떻게 된 건가 했더니 지금 동대문 내무서에 끌려가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려줘서 우리가 알게 됐어요.”

“후에 들은 얘긴데 우리 아버님이 1947년도 음력으로 7월 스무 사흗날 돌아가셨는데, 옛날에 상여가 나가면 상여 앞에서 종 치면서 회심곡 부르는 거 있죠. 그때 그걸 부르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경성전기에서 남로당 총책임자라는 것을 나중에 들었어요. 근데 그분이 우리 누님을 굉장히 좋아했던 모양이에요. 근데 우리 누님은 벌써 일반 군인하고 약혼을 한 상태였죠. 그래서 그 사람이 밀고를 했거나 경성전기 남로당 조직에 의해서 끌려간 거죠. 후에 북한에서 도망을 못 가고 잡혀서 사형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직업 및 활동

<경성전기 전차과에 근무하면서 마포구에 사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 마우회(우익단체로 추정) 회장으로 활동>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경성전기 전차과에 있었어요.

문_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셨나요?
답_ 네, 한국전력에 직원들이 각 부별로 해서 마포구에 사니까 마우회 회장 한다는 것만 들었어요. 마우회 회장한다는 게 어떤 조직단체인줄은 모르지만 그게 아마 우익단체인걸로 기억해요.



○ 납북 경위

<전쟁 전에 손을 다쳐 경전병원에 입원해 있던 피랍인은 전쟁 발발 후 곧바로 병원에서 끌려감. 직장 내 남로당 총책임자에 의해 잡혀간 것으로 추정>

문_ 전쟁 발발하고 바로 피난을 가셨어요?
답_ 피난 못 갔어요. 피난 나가려고 준비 했는데 한강에 벌써 인민군들이 있어서 우리가 좌익 애들에게 감시 대상이 되니까 한강을 건너려다가 못 건넜어요. 한강 다리는 이미 끊겼으니까 마포 쪽에서 배를 타고 가려는데 배를 구할 수 없고 벌써 인민군이 마포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있으니 갈수가 없었죠. 잡혀 갈까봐 못 건너고 돌아왔죠.

문_ 왜 좌익 세력의 감시의 대상이었나요?
답_ 지주계급이니까. 지금은 토지개혁을 해서 다 없어졌지만 그때는 700섬지기를 했다고 하니까. 굉장한 부농의 집이었죠. 그래서 감시가 심했어요.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그때 손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경성전기에 다니던 분이 자주 우리집에 와서 얘기를 전해줬어요. 전쟁 상황도 알려주고, 상황이 어떻다는 얘기들을. 근데 우리 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없어졌으니까 어떻게 된 건가 했더니 지금 동대문 내무서에 끌려가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려줘서 우리가 알게 됐어요.

문_ 밀고를 당한 것인지?
답_ 그건 후에 들은 얘긴데 우리 아버님이 1947년도 음력으로 7월 스무 사흗날 돌아가셨는데, 옛날에 상여가 나가면 상여 앞에서 종 치면서 회심곡 부르는 거 있죠. 그때 그걸 부르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경성전기에서 남로당 총책임자라는 것을 나중에 들었어요. 근데 그분이 우리 누님을 굉장히 좋아했던 모양이에요. 근데 우리 누님은 벌써 일반 군인하고 약혼을 한 상태였죠. 그래서 그 사람이 밀고를 했거나 경성전기 남로당 조직에 의해서 끌려간 거죠. 후에 북한에서 도망을 못 가고 잡혀서 사형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문_ 끌려갔을 때가 언제인가요?
답_ 경전병원에서 끌려가신 거니까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전쟁 나고 바로 끌려간 것 같아요. 우리 가족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해서 인민군이 내려오니까 6월 28일인가 29일에 병원에 갔는데 (누님이) 병원에 없었으니까. 벌써 인민군이 남침하자마자 끌고 간 걸로 보는거죠.



○ 납치이유

<우익단체 활동>

답_ 좌익에 있던 사람한테 협조를 안 해주고 (누님은) 우익단체에서 일하던 사람이니까 거기에 불만을 갖고 끌고 간 걸로 알고 있어요.



○ 납치 후 소식

<9.28수복 전에 동대문 내무서로 면회를 갔으나 면회가 안 됐고, 수복 후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끌려가고 아무도 없었음. 동대문 내무서 위, 산에서 사람들을 많이 총살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수많은 시신들 가운데 피랍인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함>

문_ 끌려간 내무서로 면회를 가셨어요?
답_ 9.28수복 직전까지도 우리 어머니하고 저하고 9월 20일경에 면회를 신청하러 갔는데 그때도 동대문 내무서에 갇혀있었거든요. 그 상황을 알고 있어서 면회 신청을 했는데도 안 되니까 보지를 못했죠. 그런데 그 당시까지도 동대문 내무서에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죠.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주변에 아는 분들, 좌익에 있던 사람들인데 옛날에 우리 집에서 신세지고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한테 최대한 (면회가 되도록) 해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좋은 세상 되는데 협조해주면 되지 뭘 그러냐는 소리를 하는 걸 어린 나이에 어머니 따라 다니면서 들은 일이 있어요.

문_ 이후에 들려온 소식은 없는지?
답_ 없어요. 9.28수복 되고서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게 우리 어머니하고 저하고 동대문 내무서가 이미 아군에 접수됐으니까 유치장이고 뭐 다 오픈된 상태라 갔는데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그때 서울대학병원 자리가 원래 산이었어요. 거기에서 사람들을 많이 총살시켰다는 말이 있었어요. 동대문 경찰서죠. 그때는 내무서인데 거기에 올라가면 서울대학병원 자리가 나오니까 거기까지 갔어요. 거기에 시체가 수없이 많은데 시신을 다 팔 수 없어서 대충 발가락 나온 걸로 긁어 찾아 봤지만, 못 찾았죠. 거기까지 가서 봐도 없었죠. 그러니깐 여기서는 죽은 게 아니고 끌려간 걸로 보는 거죠. 시신이 발견 안됐으니까.



○ 남은 가족의 생활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냄>

문_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생활은 어떠셨어요?
답_ 토지개혁이 되면서 10년 동안의 돈이 한꺼번에 나왔어요. 우리가 700섬지기를 했는데 해방되고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김포 통진에 가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곳이 있었거든. 쌀 빻는 정미소가 2개가 있었어요. 그거를 1949년 토지개혁 되면서 1950년도부터 10년 동안 분할해서 돈을 줬어요. 또 김포 통진에 우리 먹을 만큼의 쌀을 하도록 몇 마지기가 있어서 매년 올라오고. 그리고 서울역 앞에 가면 할아버지가 하던 고무공장이 있었어. 지금 농심 본사 자리가 우리 공장 자리였는데 거기 세를 놨으니까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었죠. 돈에 대해서 구애를 안 받았으니까. 재산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이 학교도 다니고 다 했어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대한적십자사에 신고를 했죠. 회사에서도 다 조사해서 신고한 것도 내가 알고 있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없었죠.

문_ 직장이나 주변의 도움이 있었나요?
답_ 1956년도인가, 누님이 있었던 경성전기에서 6.25 때 전사한 사람이나 납북당한 사람들 가족을 위로해준 때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 돈 2만원하고 광목 두 필을 직장에서 위로로 받은 적이 있어요.



○ 호적정리

<미정리>

답_ 정리를 안 했어요 우리 어머님께서 1976년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밥을 떠 놓고 (눈물) 호적정리하지 말라고 해서 안했죠.



○ 연좌제 피해

<없음>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유해 송환, 위령비 건립, 특별법 제정을 통한 피랍인 및 그 가족에 대한 명예 회복>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누님에 대한 추억은?
답_ 누님하고는 기억이 많은 것이 누님이 전차과에 있을 때니까, 옛날에 초등학교 다녔을 때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어요. 오전반을 하면 일찍 끝나잖아요. 그러면 누님 도시락을 가지고서 마포 공덕동 로타리, 지금의 서울대학교 동창회 건물자리가 전차 정류장인데 거기로 도시락을 가지고 가서 전해주고 여기까지 오는데 일부러 전차를 타고 와요. 무료죠. 그 당시 서울에서는 학교 다니면서 전차 타는 게 제일 재미있었거든요. 그걸 타고 쭉 오면 애들이 부러워하죠. 그런 게 추억에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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