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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오학규 (증언자-오명식)
이름: 관리자
2013-10-02 12:17:28  |  조회: 2747
첨부 : 65.080703A 오학규.rtf  
2008. 7. 3. 채록
080703A 오 학 규 (吳鶴奎)

피랍인
생년월일: 1914년 1월 25일생
출생지: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제일리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성북구 미아리 603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1일경
피랍장소: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이화피복주식회사
직업: 이화피복주식회사 감독/대한청년단장(지역)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매.
외모/성격: 큰 키에 오른쪽 눈이 약간 사시로 안경 착용, 쾌활하고 사교적

증언자
성명: 오명식(1940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인은 당시 대한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군복을 제조해서 국방부에 납품하는 회사를 동업자 노상기와 함께 경영하고 있었음.
- 가족과 함께 용인으로 피난을 갔다가 회사 상황이 궁금해 바로 상경, 회사에 가자마자 노상기 사장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로 연행됨. 9.28수복 직전 미아리 고개로 끌려가는 것을 동네 사람이 보고 먹을 것을 주고 옷을 갈아 입히려고 했지만 인민군이 막아서 할 수 없었다는 소식을 들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 확인 및 유골 송환

“피난간 다음날인가봐요. 아버님이 실질적인 이화피복주식회사의 주인이다 보니까 회사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그 길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셨는데 가시자마자 바로 체포되신 겁니다. 그 때가 7월 초, 7월 1, 2일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당시 사장이었던 노상기씨하고 같이 체포돼서 서대문형무소로 가서 3개월 동안 갇혀 있었어요. 그리고 9.28수복되니까 거기서 굵은 외동앗줄에 서울시민 6만 명 중에 내가 알기로 3만 명은 홍제동 고개로 넘어가고, 3만 명은 미아리 고개로 두 명씩 2인 종대로 해서 한 줄에 끌려서 갔다고 합니다. 미아리 고개에서 보니까 노상기씨하고 같이 묶여 있더래요. 미아리 고개에서 잠시 쉬는 과정에 (아버님이) 베적삼을 입고 가셨는데 석 달 동안 형무소 생활을 하다 보니까 옷이 아주 새까맣게 절어 있더래요. 그래서 옷을 갈아… (눈물)”

“그저 생사라도 알고, 만약에 돌아 가셨다면 유골이라도 송환했으면 하는 거고요. 물로 저쪽에서 말을 안 들어서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생사라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직업 및 활동

<군복을 제조해 국방부에 납품하는 이화피복주식회사 감독, 대한청년단장(지역)으로 활동>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돈암동에 있는 이화피복주식회사라고 군복을 제조해서 국방부에 납품하는 회사예요. 거기 감독으로 계셨습니다.

문_ 감독이면 직책이 어떻게 되나요?
답_ 실제는 (이화피복주식회사) 노상기 사장님과 동업자인데 직책을 감독이라고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_ 사업 외에 다른 활동도 하셨나요?
답_ 네,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셨다는데, 그게 성북구내인지 그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단장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납북 경위

<용인으로 가족 모두 피난을 갔다가 피랍인만 회사 상황이 궁금해 상경함. 7월 1일경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직장에서 동업자였던 노상기 사장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로 연행됨. 동네 사람이 미아리 고개로 끌려가던 피랍인을 보고 소식을 전해줌.>

문_ 전쟁 발발 당시 상황은?
답_ 네, 6월 25일에 전쟁이 났지만 28일쯤인가 될 거예요. 한강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데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어요. 군인들이 밀려와서 자기들이 먼저 건너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거기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둑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는데, 가다보니까 뚝섬이었나 봐요. 거기에 배 한 척이 그냥 비어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그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저희 백부님이 살고 계시는 용인 내사면 양지리까지 걸어서 피난을 갔습니다.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피난간 다음날인가봐요. 아버님이 실질적인 이화피복주식회사의 주인이다 보니까 회사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그 길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셨는데 가시자마자 바로 체포되신 겁니다. 그 때가 7월 초, 7월 1, 2일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문_ 올라가시고 바로 소식이 끊겼어요?
답_ 그럼요. 올라가시자마자 바로 회사에서 체포됐으니까.

문_ 함께 납치된 분이 계셨어요?
답_ 그 당시 사장이었던 노상기씨하고 같이 체포돼서 서대문형무소로 가서 3개월 동안 갇혀 있었어요. 그리고 9.28수복되니까 거기서 굵은 외동앗줄에 서울시민 6만 명 중에 내가 알기로 3만 명은 홍제동 고개로 넘어가고, 3만 명은 미아리 고개로 두 명씩 2인 종대로 해서 한 줄에 끌려서 갔다고 합니다. 미아리 고개에서 보니까 노상기씨하고 같이 묶여 있더래요. 미아리 고개에서 잠시 쉬는 과정에 (아버님이) 베적삼을 입고 가셨는데 석 달 동안 형무소 생활을 하다 보니까 옷이 아주 새까맣게 절어 있더래요. 그래서 옷을 갈아… (눈물)

문_ 그 얘기는 어떻게 들으셨어요?
답_ 동네 사람이 전해줘서 그대로 들었어요. 옷을 갈아입히려고 했더니 인민군들이 (눈물) 못 갈아입히게 하더래요. 그래서 갈아입히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문_ 당시 미아리 고개로 많은 분들이 함께 끌려갔다고 하던가요?
답_ 하도 길어서 하루 종일 봐도 끝이 없더래요. 근데 걸음들을 못 걸어서, 가다가 전부 그냥 비틀거리고 못 걸으면 채찍질 하고, 가다가 도저히 못 걸으면 풀어서 총으로 쏴서 길 옆 구렁텅이로 넣고 그랬대요.



○ 납치이유

<대한청년단장, 경영하던 회사가 국방부에 납품하는 군복을 제작하던 곳이라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납치한 것으로 추정함.>

답_ 우선은 대한청년단 단장이라는 거 하고, 이화피복주식회사가 군복을 제작해서 국방부에 납품을 했으니까 자기들한테는 이적행위라고 생각을 했겠죠. 알기로는 이화피복주식회사가 자기들한테 이용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그 공장을 찾아와서 그걸 이용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왔다가 그 사장하고 아버지, 두 분을 대한청년단 단장을 했던 것과 그 당시에 노상기씨는 3월 달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성북구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했었고, 이런 관계를 아니까 아마 자기들한테는 적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죠.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회사에서 잡혀갔기 때문에 그 이후론 소식을 전혀 모르죠. 그리고 9.28수복을 할 직전에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면서 두 분을 봤다는 그 얘기만 들었지, 전혀 그 이후로는 모르죠.

문_ 도중에 탈출한 사람의 소식은 없었나요?
답_ 그 소린 못 듣고, 철원 지방까지 가서 거기서 생매장을 많이 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걷지를 못하고 하니까 거기서 풀어서 큰 우물에 산사람을 거꾸로 집어넣어서 그냥 우물이 꽉 찰 정도로 그렇게 해서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그 소리 듣고 참 비통했죠.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어머님이 서대문형무소로 찾아가셨는데 면회가 전혀 안됐대요. 그러고 그만이죠. 어디다 하소연 할 데가 없더라고. 이게 뭐 그래도 소위 서울시민 6만 명이 거의 다, 요즘 말하는 유지이거나 그래도 지방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분들이라 그네들이 보기에 이용가치가 있어서 끌고 갔는지는 몰라도, 그런 분들이 끌려갔으면 정부에서도 뭔가 그분들의 생사라도 알 수 있게끔 대처를 해 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에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처가 장사일을 하며 갖은 고생으로 5남매를 키우며 생계유지>

답_ 우리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죠. 5남매를 기르느라 참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러시다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어요. 아버님하고 동갑이에요. 참 고생이 많으셨죠. 그래도 우리들이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참 큰일을 하셨어요.

문_ 어머님께서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답_ 별별 장사를 다 하셨어요. 5일장에 다니는 장돌뱅이서부터 안 한 것 없이 다 하셨어요. 그걸 하셔서 그래도 제가 고등학교도 마치고, 그렇게 고생을 하셨어요. 어머니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죠.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저희 어머님이 신고를 하신 것 같아요. 나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는데 그 때 자료가 좀 남아 있어서, 그래도 어머니가 그 당시에 신고해 놨다는 게 참 다행이네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전혀 없었죠.



○ 호적정리

<사망신고>

답_ 호적을 그냥 둘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63년도인가 그 당시에 할 수 없이 아버님 사망했다고 사망신고를 했어요. 왜냐면 호주상속도 있고, 학교 다니는 데에 하도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 어머님이 사망했다고 신고를 하셨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그런 적은 없어요. 이게 뭐 사상이 잘못된 것도 아닌 거고, 군복을 만들고 대한청년단 단장으로 일해서 그네들이 오히려 이기적으로 생각했을 정도니까, 연좌제로 고통 받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유골 송환>

답_ 국가에 납북자에 대한 것들을 제출해서 우리가 금전적으로 뭘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저 생사라도 알고, 만약에 돌아 가셨다면 유골이라도 송환했으면 하는 거고요. 물로 저쪽에서 말을 안 들어서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생사라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산가족상봉 할 때 왜 우리 납북자들을 넣지 못하는 겁니까. 엄연한 이산가족 아닙니까. 그럼 우리들도 생사를 알 수 있도록 조처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듣기로는 그네들이 납치인사가 한 사람도 없다고 그런다던데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서울 시민만 6만 명으로 알고 있어요.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겠습니까.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지, 살아 계시다면 빨리 남북통일이 되어서 만나 뵈어야 되겠지만, 만약에 돌아가셨더라도 혹시 북에 가족이 남아있을 듯도 한데, 그게 궁금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 가족이라도 있으면, 하루 빨리 만나야겠다는 이런 일념 하에 저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버님, 살아 계시다면 연세가 높으시니까 꼭 빨리 뵙고 싶고, 돌아가셨으면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이 곳 가족들은 물론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저의 주도 하에 동생들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만약에 아버님도 돌아 가셨으면 저승에서 만나셨겠지요. 나머지 식구들은 걱정 마시고, 그저 사셨으면 빨리 만나 뵙고, 돌아가셨으면 좋은 곳에서 편안히 영생하시기를 기대합니다.

문_ 아버님이 언제 많이 그립고 보고 싶으셨어요?
답_ 아버님이 특히 저를 많이 사랑하셨어요. 저희 형님이 있는데, 형님이 어려서부터 뇌막염을 앓아서 저능아로 컸어요. 누님이 있었고 그 다음에 전데, 아버님이 저를 끔찍이 사랑하셨어요. 제가 혜화초등학교 다니면서 방과 후에는 꼭 아버님 회사에 들러서 아버님이 사 주시는 주전부리 먹어 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를 들러서 집에 들어가는,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았죠.

나는 우리 아버지를 납치해 간 북한을 철천지원수(徹天之怨&#35726;)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근데 이 자리에서 필요 없는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요즘 사람들은 아니더라고요. 무슨 동족이니 어쩌니 하는데, 아니에요. 나는 내 죽는 날까지 원수지 이건 동족이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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