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김기정 (증언자-김재조)
이름: 관리자
2013-09-26 10:24:56  |  조회: 2699
2008. 4. 3. 채록
080403A 김 기 정 (金箕貞)

피랍인
생년월일: 1896년 2월 18일생
출생지: 충남 보령군 청소면
당시 주소: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40-9
피랍일: 1950년 8월말 또는 9월초
피랍장소: 자택
직업: 대한탄연 상무
학력/경력: 일본 와세다대학교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매
외모/성격: 큰 눈에 머리숱이 적고 곧은 성격

증언자
성명: 김재조(1941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군수를 역임했다 2대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며 대한탄연 상무로 재직 중이던 피랍인은 피난 후 가족이 걱정되어 집으로 잠시 돌아온 사이 좌익의 밀고로 자택에서 내무서원에 의해 연행됨.
- 고위 공직자였던 피랍인을 활용하기 위해 납북한 것으로 추정되며, 연좌제로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생존자들에 대한 조속한 송환, 남북 대화시 납북자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

“그 사람이 완전히 빨갱이더라구요. 나중에 수복되고 나서 알고 보니까 우리뿐이 아니고 한 50명을 그렇게 했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에 (아버님이) 식사하고 빨리 피하시게 하려 하는데 이 반장이 대문을 꽝꽝하고 두들겨요. 그래서 문을 여니까 반장이 탁 들어오는 거예요. 총을 들이대면서 ‘어디 있냐? 어저께 들어오는 것 봤는데 어디 있냐?’ 했어요. 아버님은 형세가 이미 기운 것을 아셨기 때문에 식사하시다 말고 피할 겨를도 없이 ‘내가 죄 지은 게 없으니 얘기하면 바로 나올 거다’고 말씀하고 나가신 게……. 그게 끝이야.”

“그 사람들이 고위 관직에 있던 사람들은 무조건 데려간 거에요. 고위 공직자를 모셔간 것 같아요. 명단을 보니까 성북구 돈암동 쪽에서 많이 납치를 당하셨더라고요. 그쪽 집들이 다 괜찮아요. 지금 말하자면 부촌이고 고위직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돈암동 쪽으로 명단을 보니 많이 납치를 당했어요. 주위에서 한 50명을 그렇게 했더군요. 성북구 쪽에서 납치를 많이 당했더라고요..”






○ 직업 및 활동

<충남 지역에서 군수로 있다가 2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사임하고 6.25전쟁 당시에는 대한탄연 상무로 잠시 근무>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대한탄연 상무로 계셨어요.

문_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던 것인지?
답_ 그 전에는 관직에 계셨는데 충남 예산, 부여, 강진, 홍선 쪽 군수로 계시다가 2대 국회의원에 나오시려고 그만두셨어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셔서 잠시 쉬시며 대한탄연인가에 상무로 잠깐 나가계시는 동안에 6.25가 났죠. 일제 때 동기 분들이 추천하셔서 잠시 계셨던 것 같아요.



○ 납북 경위

<충남 서산으로 출장을 가 있던 피랍인은 서울에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8월 말경 서울로 올라왔고 이를 주시하고 있던 반장의 밀고로 새벽 5시경 총을 들고 자택으로 찾아온 내무서원에 의해 연행됨>

문_ 전쟁 발발 당시 상황은?
답_ 그때 아버님이 출장 가 계셨거든요. 그래서 집에는 어머니, 나, 동생 셋이 있었는데 6.25 직후에 돈암동 미아리 고개에서 포성이 울리며 국군들이 막 올라갔었죠. 그러고서 하루 이틀 지나고 포성이 가까워지니까 피난을 간다는 것이 을지로 3가, 지금의 세운상가쯤 될 거예요. 형님이 계셨기 때문에 거기로 피난을 간 거지요. 하루 지나니까 벌써 세상이 바뀌어 있었어요. 서울 뺏긴 게 6.25 나고 3, 4일 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그 당시 바로 그 상황이에요. 아버지는 지방에 출장 가 계셨고, 한참 후에 8월쯤 서울 식구들이 다 죽었다는 소문이 자꾸 들리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올라오신 거지요. 그때는 어머니, 나, 동생 이렇게 있었죠.

문_ 한강 이남으로 피난을 못 가셨어요?
답_ 피난을 못 갔죠. 그때는 국군들이 미아리 고개로 넘어가서 이긴다 이긴다 그랬잖아요. 그 이후에는 피난을 갈 여유가 없었지요. 피난을 간 것이 을지로 3가, 형님 댁으로 갔어요. 거기밖에 못 간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벌써 세상이 바뀌어 있었고, 그래서 피난을 못 갔어요. 형님 댁에 있다가 다시 집으로 왔지요.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아버님이 서산 홍성에 일 때문에 출장 가셨었는데 거기에서 듣기를, 서울 식구들이 다 죽었다고 하니까 급히 오신 거예요. 그게 아마 8월 초쯤 될 거예요. 변장을 하고 오셨어요. 신변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신 거지요. 옆집에 반장이 있었어요. 그 집이 빨갱이였던 거예요... (눈물)

문_ 밀고를 당한 건가요?
답_ 그렇죠. 아버지가 나가서 열흘 만에 들어오시고 일주일 만에 들어오시며 피해 다니셨는데, 반장이 아래윗집에 있으니까 그 내용을 잘 알잖아요. 밤중에 아버지가 오셨는데 그걸 반장이 본 거라. 그러더니 그 다음 날 아침에 내무서에서 왔다며 문을 두들기는데 열어보니까 반장이 앞장서고 그 뒤에 내무서원이 총을 들이대고 서 있는 거예요. 그때가 아마 새벽 5시, 그러니까 그 전에 들어와서 주무시고 새벽같이 밥을 드시고 피하러 나가시려고 하던 중인데...... (눈물) 그 사람이 완전히 빨갱이더라구요. 나중에 수복되고 나서 알고 보니까 우리뿐이 아니고 한 50명을 그렇게 했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에 (아버님이) 식사하고 빨리 피하시려 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대문을 꽝꽝하고 두들겨요. 그래서 문을 여니까 반장이 탁 들어오는 거예요. 총을 들이대면서 ‘어디 있냐? 어저께 들어오는 것 봤는데 어디 있냐?’ 했어요. 아버님은 형세가 이미 기운 것을 아셨기 때문에 식사하시다 말고 피할 겨를도 없이 ‘내가 죄 지은 게 없으니 얘기하면 바로 나올 거다’ 고 말씀하고 나가신 게……. 그게 끝이야. (눈물)

문_ 납치 과정에서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나요?
답_ 내무서 사람들은 총을 세 명인가 들고 왔어요. 한 명은 앞에서 권총 차고 뒤에 둘이 총을 차고. 따발총이라고 하나. 그 총을 들고 위협하는데, 반장이 앞장서고. 아버지는 자기가 죄 지은 게 없으니 돌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그 때가 8월 말, 9월 초일 거예요.



○ 납치이유

<군수직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고위 관직 모셔가기 성격을 띤 납북으로 추정>

답_ 그 사람들이 고위 관직에 있던 사람들은 무조건 데려간 거에요. 고위 공직자를 모셔간 것 같아요. 명단을 보니까 성북구 돈암동 쪽에서 많이 납치를 당하셨더라고요. 그쪽 집들이 다 괜찮아요. 지금 말하자면 부촌이고 고위직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돈암동 쪽으로 명단을 보니 많이 납치를 당했어요. 주위에서 한 50명을 그렇게 했더군요. 성북구 쪽에서 납치를 많이 당했더라고요.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못 들었어요. 우리가 돈암동 살 때 거기가 돈암초등학교 후문이니까 지대가 높아서 성북경찰서, 미아리 경찰서가 보이거든요. 이렇게 다 보이는데 여기 가도 없고 저기 가도 없고……. 그놈들이 왔다고 알려주겠습니까.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6.25때 내무서가 양쪽에 있었다고 했잖아요. 9.28수복된 후에 거기서 미아리고개가 빤히 보이는데 미아리 고개에 작은 소나무가 있었어요. 거기에 반공호가 있었어요. 이놈들이 얼마나 악랄하냐면 거기에 세워 놓고 그냥 쏴 죽이는 거예요. 시체가 세 겹 네 겹이에요. 일어나면 또 쏴서 죽이고 또 죽이고…...(눈물) 그래서 시체를 찾으려고 다 시체를 드러내요. 그때가 8, 9월이니 얼마나 덥고 시체가 부패했겠어요. 형체를 봐서는 못 찾아요. 집에서 입고 나간 옷으로 다 하나씩 확인했어요. 어머니가 다 들춰보고 시체를 다 확인하고. 미아리 고개에서 그렇게 학살하고 이놈들이 도주할 때 정릉 아리랑 고개 쪽으로 해서 북한산 쪽으로도 끌고 갔어요. 그놈들이 퇴각할 때니까. 거기도 마찬가지에요. 데리고 가다가 못 가면 그냥 세워놓고 쏴 죽이는 거예요. 그렇게 시체가 세 겹 네 겹 즐비할 정도니까. 미아리 고개, 정릉 쪽에 어디 시체 있다고 소문만 들리면 가는 거예요. 가서 확인해보고 그런데 없어요. 미아리나 정릉 쪽에서 학살을 당하셨다면 눈에 띄었겠지만 또 가다가 그랬는지도 모르고.(눈물) 그래서 지금도 미아리 고개를 보면 아주 기분이 안 좋아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가장이 갑자기 피랍되고 많았던 재산은 찾지 못해 대부분 잃고 피랍인의 배우자가 밭일도 하고 바느질품을 팔아 자녀들을 양육>

답_ 가장이 그렇게 납치 당하셨으니까 생계도 막막했고 어머님이 생계를 유지하신 거지요. 바느질 품 팔아서 학교 보내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는 우리들이 벌어서 들어가고 그랬지요.
경제적인 피해도 있었는데 아버지 재산이 광산도 했고 땅도 많이 있었을 텐데 하나도 못 찾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뭐 어디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지요.

문_ 형님도 피신해 계셨나요?
답_ 그때 형님이 대한청년단 일을 보셨거든요. 그러니까 피해 다닐 수밖에. 그러니까 형님은 나타나실 수가 없었지요.

문_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답_ 많이 힘드셨죠. 어머님이 밭일도 하고 그러셨어요.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그렇죠. 그때 전쟁 직후인가 대한적십자사에서 신청을 받은 게 있어요. 그래서 신청을 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고. 그 다음에 납북자들 생사 확인한다고 해서 이북에 보낸 것도 있을 거예요 아마. 그때도 신청을 했는데 생사불명이라고 나왔거든요. 예전에 대한적십자사에서 납북된 사람들 신청을 받고 그 다음에 생사확인한다고 국제적십자산가 거기를 통해서 전쟁 직후에 한번 확인한 적이 있었을 거예요. 그것도 다 신청을 했지요. 그런데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없었어요.



○ 호적정리

<사망처리>

답_ 형님이 계실 때 정리해야 되겠다고 해서 형님 살아계실 때 아버님 산소도 만들고 호적정리를 했지요. 호적정리 한지가 한 10년, 15년 될 거예요.



○ 연좌제 피해

<신원조회로 군에서 부대 배정 받을 때 제한이 있었음>

답_ 나는 아니고 형님의 아들들, 그 조카들이 그랬고, 큰 아버지 쪽 조카들까지 방첩대, 지금은 보안부대인지 거기 가려다 밀리고. 그 부대 갔는데 신원조회 하면 그게 나오거든. 그러면 거기 배치 못 받고. 감시는 모르겠어요.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생존자들에 대한 조속한 송환, 남북 대화시 납북자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

답_ 납북자 가족들의 원한 (눈물) 그 원통한 마음을 누가 알겠어요. 정부에서 하루 빨리라도 대책을 강구해야 될 것 같아요. 지금 이런 사람들이 조선일보 책자를 보니까 8만 명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다 나같은 사람들이잖아요. 정부에서 하는 게 뭐 있어요. 정부에서 한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이북에다 퍼다 주지 말고 이런 어려운 것,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북은 왜 갖다 퍼줍니까. 나는 그거 절대 반대입니다. 이쪽에는 해주는 것 아무 것도 없고, 뭐 잘한 게 있다고 갖다 퍼줍니까.

문_ 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은?
답_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고, 주면 받을 건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납북자에 대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떠들어도 그 사람들 만나면 대화도 하지 않을 거에요. 이번 정부에서는 할 것 같은데 두고 봐야겠지요. 그 사람들은 줘도 한이 없어요. 줄건 주고 채찍과 당근을 들고 생존자가 있으면 빨리 데리고 오고. 물론 납북된 사람이 전쟁 중뿐 아니라 전쟁 후에도 많지요. 아직 살아계시다면 전쟁 중에 납북된 분들을 모두 빨리 데리고 와야 됩니다.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살아 계시다면 빨리 뵙고 싶고, 제일 하고 싶은 게 달려가서 아버지 품에 안기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아버지 품에 한 번 안겨봤으면 좋겠어. 고생하시면서 돌아가셨겠지만 참 보고 싶지요. 뭐라고 말하겠어요. (눈물) 나이가 있으시니까 이제 돌아가신 걸로 알고…… 만날 때가 있겠지요. 어머니가 저희들 키우느라고 고생도 많으셨는데 아버님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하고 동생하고 키우느라고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버지 저승에 계시더라도 어머니 잘 해주시고, 저도 결혼해서 애들 넷 있고 동생도 애들 낳아서 잘 키우고 있습니다. 아버지, 늘 보고 싶은데 정말 뵐 수가 없어서 한이 됩니다. 제일 부르고 싶은 게 아버지,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그때 나이가 어렸으니까 아무 것도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후회가 더해지는 게 사실 아닙니까. 그냥 보내드렸으니까…….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눈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0 납북자-정세헌(증언자-홍영희)
관리자
16-12-13 1752
129 납북자-서승근(증언자-서정식)
관리자
16-12-13 1653
128 납북자-정순일(증언자-정용남)
관리자
16-12-13 1764
127 납북자-장우섭(증언자-장광혜)
관리자
16-12-13 1662
126 납북자-김진수(증언자-김희덕)
관리자
16-12-13 1813
125 납북자-박현명(증언자-박승증)
관리자
16-12-13 2131
124 납북자-이선재 (증언자-이정숙)
관리자
16-12-13 2277
123 납북자-구자옥 (증언자-황규필,황성기)
관리자
13-10-02 3845
122 납북자-오규석 (증언자-오명석)
관리자
13-10-02 2716
121 납북자-오혜옥 (증언자-오명석)
관리자
13-10-02 2778
120 납북자-김희련 (증언자-김종현)
관리자
13-10-02 2852
119 납북자-노흥열 (증언자-노인배)
관리자
13-10-02 2934
118 납북자-김형배 (증언자-김종무)
관리자
13-10-02 3055
117 납북자-오학규 (증언자-오명식)
관리자
13-10-02 3012
116 납북자-유명복 (증언자-유규숙)
관리자
13-09-26 3072
115 납북자-이기룡 (증언자-이순녀)
관리자
13-09-26 2900
114 납북자-소갑열 (증언자-소차열)
관리자
13-09-26 2624
113 납북자-한치진 (증언자-한영숙)
관리자
13-09-26 2802
112 납북자-김기정 (증언자-김재조)
관리자
13-09-26 2698
111 납북자-정희양 (증언자-정화양)
관리자
13-09-26 287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