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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한치진 (증언자-한영숙)
이름: 관리자
2013-09-26 10:26:10  |  조회: 2502
2008. 6. 30. 채록
080630A 한 치 진 (韓稚振)

피랍인
생년월일: 1901년 5월 25일생
출생지: 평안남도 용강군
당시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동 304-1
피랍일: 1950년 8월 16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철학박사
학력/경력: 미 남가주대 철학박사/서울대 교수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남 2녀
외모/성격: 큰 키에 온화한 성격

증언자
성명: 한영숙(1947년생)
관계: 차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철학박사였던 피랍인은 해방 이전에는 일제 치하에서 여러 번 옥고를 치르면서도 교단에서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애썼으며, 해방 이후에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민주주의 해설을 하며 5편의 책을 집필하는 등 여러 분야의 저술 활동을 통해 학문의 발달에 이바지함.
- 전쟁 발발 후 피신해 있던 피랍인은 8월 16일 저녁, 아들의 돌을 맞아 가족과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귀가한 사이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 의해 연행됨.
-피랍인의 부인이 납치가족회를 창설해 10여 년 동안 납북자 송환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으나 성과 없이 활동이 중단되고 이후 모두 미국으로 이민.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無


“저희 집에 친척들이 120여명 정도 함께 살았어요. 그 친척 중에 서울대 다니고 그러던 사람들이 다 공산당이 된 거예요. 그러면서 집도 없이 우리 집에 얹혀사는 게 마음에 원한이 됐는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나 봐요. 이제 그런 사람이 앞장을 섰다고 해요. 저희 고모님이 경찰서로 수소문해서 다니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만났대요. 그래서 고모님이 "우리 동생같이 책만 보고 그렇게 착한 사람을 왜 데리고 가냐? 너희 공산당도 다 법이 있고, 사람이라는 것은 악하거나 죄가 있어야 잡아가지. 어떻게 이런 사람을 잡아 가냐?" 그랬더니 "그런 사람을 안 잡아가면 누굴 잡아갑니까?" 그러더래요. 그게 끝이에요.”

“남편을 잃고 혼자 자식들하고 집안을 유지해야 되는, 정말 날벼락을 맞은 거잖아요. 근데 우리가 지금 생각하기에 전쟁을 치르고 나라에서 수복하고서 53년까지 왔잖아요. 그러면 1, 2년 동안에 나라나 UN이나 알았을 것 같아요. 끌려간 사람들이 이북에서 못 온다는 것을, 이건(납북자 송환)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아요. 정치가들이 왜 그걸 몰랐겠어요. 상식적으로, 자기네 직업이 정치하는 건데, 우리에게 그걸 속인 것 같아요. 속였는지 오도한 건지, 솔직한 정보를 주지 않아서 판단력을 없게 한 거예요. 왜냐하면 10년을 그렇게 목숨을 걸고 그 많은 재산을 다 소비하면서 그걸 쫓아다녔어요. 우리 어머니가 납치가족회를 10년 동안 이끈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어요. 우리는 나라가 사기였다고, 우리를 오도했다고 생각해요.“




○ 직업 및 활동

<미 남가주대 철학박사, 유학 중에는 많은 글을 국내외 지면에 실으며 애국활동을 했고 귀국 후에는 일제 치하에서 감시와 옥고를 치르면서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본에서 공부하며 책 집필,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국내에서 해방 전까지 많은 고초를 겪음. 해방 후에는 공보부 고문을 지내면서 민주주의 해설 라디오 방송을 하고 민주주의에 관한 5편의 책 저술, 그 외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저술 활동을 했으며 1947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문_ 아버님이 유명한 철학박사이신데 아버님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답_ 아버님이 미국 남가주대,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가 모교예요. 미국에 7년 동안 계시면서 글도 많이 쓰셨어요. 신민일보, 국민회 신문을 비롯해서 Rocky Student Bulletin같은 곳에 글을 쓰셨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일제치하에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감리교 신학교에 1년인가 계셨어요.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으셨는데 경찰서와 감옥을 왔다 갔다 하셨어요. 십여 년을 그렇게 지내셨는데 하루아침에 일본 사람이 와서 "미국 유학생은 다 직업이 없다." 이러면 쫓겨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일본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수시로 형사가 교실에 와서 감시를 하고 그래서 날씨가 조금만 좋으면 학생들한테 야외에서 수업하자고 이삼십 명 밖에 안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아버님이 한국 역사를 가르치시며 잊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시고 하셨대요. 그리고 또 감옥에 가시고, 그런 일이 수차례 있었다고 해요. 제자들이 그 증인이에요. 1937년에 결국 이화여대에서 쫓겨나시고 일본으로 가서 1년 동안 와세다대에서 일본어를 배우시며 두 권의 책을 쓰셨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버님이 요시찰인(要視察人)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와서 조사하고 집 수색하고 그랬어요. 일본 순경들이 집에 한번 왔다 가면 어머님은 일어나질 못했대요. 너무 긴장해서 소변이 아래로 흘렀다고 해요. 그러다가 해방이 된 거에요. 미군정 때에는 아버님이 한국을 미국이나 세계로 알려야겠다고 해서 당시 공보부, 지금의 문화부 고문으로 계셨어요. 그러면서 거기 후원으로 약 3년 동안 방송국에서 민주주의 해설을 했어요. 그 후에 그 내용이 책으로 다섯 권 나왔어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공산주의와는 100% 다르죠. 그래서 납치가 된 거예요.

문_ 전쟁 당시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시며 책을 집필하셨나요?
답_ 서울대에서 강의도 하면서 그 라디오 방송하는 것을 책으로, 그리고 교과서로 만들었는데 베스트셀러였어요.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이 꼭 봐야 되는 필독서였죠.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은 이북에서 봤을 때 납치대상으로 0순위였을 거예요.



○ 납북 경위

<해방 후에도 나라가 불안정하여 고향인 이북에서 많은 친척들이 남하해 피랍인의 집에 거주, 120여명의 친척과 함께 지내게 됨. 전쟁 발발 후 피랍인의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피신했으나 아들의 돌을 앞두고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잠깐 귀가했을 때 감시하고 있던 이들에 의해 연행됨. 피랍인은 친척들 가운데 공산사상을 가진 이들에 의한 밀고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추정함.>

문_ 전쟁 발발하고 아버님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셨나요?
답_ 그전에 아셨던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 1945년에 해방되고 1950년까지 5년이 있었잖아요. 그 동안 한국이 그렇게 안정이 안됐었나봐요. 특히 군정이 끝나고 나서도 나라가 안정이 안되고 혼란기였나봐요. 지금 사직터널 위로 수천 평이 저희 집이었는데 우리 오빠들이 보면 대문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대요. 일주일 내지 보름 동안 이북에서 넘어온 거예요.

문_ 그런 상황에서 왜 피난을 못 가셨나요?
답_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절대로 서울은 안 뺏긴다고, 그걸 믿었어요. 그 때가 일요일이라 부모님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갔는데, 집이 높은 곳에 있어서 중앙청이 내려다보였어요. 그런데 중앙청에 이북 국기가 올랐대요. 그땐 다 늦은 거죠. 그리고서 아버지께서 피신을 하셨나 봐요. 아들들은 집 안에 마루를 잘라 땅을 파서 숨기고 아버님은 다른 곳에 피신해 있었는데 내 동생 돌이라고 8월 16일에 같이 저녁 먹으려고 오셨다가 잡혀가셨어요. 저녁 식사 중에 몰래 들어왔는데 주위에서 그걸 다 보고 있었겠죠.

문_ 누군가 밀고를 했나요?
답_ 저희 집에 친척들이 120여명 정도 함께 살았어요. 그 친척 중에 서울대 다니고 그러던 사람들이 다 공산당이 된 거예요. 그러면서 집도 없이 우리 집에 얹혀사는 게 마음에 원한이 됐는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나 봐요. 그래가지고 이제 그런 사람이 앞장을 섰다고 해요. 저희 고모님이 경찰서로 수소문해서 다니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만났대요. 그래서 고모님이 "우리 동생같이 책만 보고 그렇게 착한 사람을 왜 데리고 가냐? 너희 공산당도 다 법이 있고, 사람이라는 것은 악하거나 죄가 있어야 잡아가지. 어떻게 이런 사람을 잡아 가냐?" 그랬더니 "그런 사람을 안 잡아가면 누굴 잡아갑니까?" 그러더래요. 그게 끝이에요.

문_ 당시 아버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몇 명 정도 됐나요?
답_ 그거는 모르고 그냥 가자고, 조사할 것이 있다고 그래서 갔는데 다 아는 사람들이었나봐요.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공산당이 되어버렸는지. 아니, 그전에도 공산당이었는데 감췄는지도 모르죠. 그건 모르지만 우리가 이북에서 온 사람들은 불쌍하니까 와서, 어떤 사람은 몇 주일 있고 어떤 사람은 몇 달 있고, 조금 안정이 되면 직업을 구해주거나 있을 곳을 구해줘서 보내고, 그러면 계속 이북에서 오고 그랬는데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을 도와주고 그렇게 한 것이 거꾸로 된 거에요. 그런 사람들 중에 공산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 납치이유

<해방 이후 민주주의 해설 방송을 하며 관련 책들을 집필, 책이 출판되면서 베스트셀러로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힘. 증언자에 따르면 이러한 활동이 이유가 되었다고 봄.>



○ 납치 후 소식

<전혀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우리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된 거에요. 그러니까 그때 8월 16일에 잡혀가고 그때부턴 소식을 전혀 모르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서대문 형무소를 그렇게 자주 들락날락하시다가 8월 17일에 나왔었어요. 해방이 15일에 됐는데, 16, 17일에 문을 열었나 봐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안 나오더래요. 끝까지 가서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깜깜해져도 안 나와서 어떻게 된 건가 하고 거기 지키는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저기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서 나오지를 못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가보니까 완전히 쓰러져 있어서 들것을 구해서 제자들하고 가서 모셔왔대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16일, 17일 한번은 해방됐을 때 나오시고, 1950년 8월 16일 잡혀가셔서 17일에 다시 형무소로 들어간 거잖아요. 물론 5년 후지만, 그 날짜가 그렇게 엄청난 비극이에요.

문_ 아버님이 끌려가시고 어머니께서 찾으려고 수소문을 해보셨나요?
답_ 우리 어머니 같은 성격에 온 세상을 다 뒤지고도 남았을 분이에요. 그리고 경험이 얼마나 많아요. 일제 치하에 아버님이 끌려가면 여기 경찰서, 저기 경찰서를 다니시며 말도 못하게 다니신 분이라 '잡혀갔군.' 하고서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빨리 어떻게 되신 것 같아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부인이 전쟁 직후부터 납치가족회를 10여 년간 이끌며 납북자 송환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노력했으나 성과 없이 가족회 활동이 중단됨. 부산에서 피난 중에 장남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이어서 자녀들을 모두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 보냈으며 이후 남은 가족들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됨.>

답_ 천만 다행으로 우리 어머니가 전쟁 중에도 우리 큰오빠를 미국에 보냈어요. 그렇게 1, 2년 안에 위로 셋을 보냈어요. 그때는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다니는 건 상상도 못할 때인데 우리가 다 죽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우리 큰 오빠 보낼 때는 이제 이게 마지막이다, 네가 그래도 핏줄은 이어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대요. 그래서 열여덟 살, 우리 오빠가 그때 3월에 경기고등학교 나오고 바로 전쟁을 치르고 갔어요. 그 이후의 과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문_ 아버님 납치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답_ 부산에서는 다 굶을 뻔했죠. 2년 반인가 3년 동안 어느 창고에서 살았대요. 나라도 혼란스럽고 피난 간 사람이 부산에 다 몰렸기 때문에 장소도 없었고 그랬나 봐요. 그래서 창고의 한쪽에 방을 내서 있었어요. 그렇게 살다가 서울에 와서는 사직동 집이 있어서 거기서 지냈죠.

문_ 어머님이 전쟁 직후부터 납치가족회를 이끄셨는데 어떠셨어요?
답_ 남편을 잃고 혼자 자식들하고 집안을 유지해야 되는, 정말 날벼락을 맞은 거잖아요. 근데 우리가 지금 생각하기에 전쟁을 치르고 나라에서 수복하고서 53년까지 왔잖아요. 그러면 1, 2년 동안에 나라나 UN이나 알았을 것 같아요. 끌려간 사람들이 이북에서 못 온다는 것을, 이건(납북자 송환)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아요. 정치가들이 왜 그걸 몰랐겠어요. 상식적으로, 자기네 직업이 정치하는 건데, 우리에게 그걸 속인 것 같아요. 속였는지 오도한 건지, 솔직한 정보를 주지 않아서 판단력을 없게 한 거예요. 왜냐하면 10년을 그렇게 목숨을 걸고 그 많은 재산을 다 소비하면서 그걸 쫓아다녔어요. 우리 어머니가 납치가족회를 10년 동안 이끈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어요. 우리는 나라가 사기였다고, 우리를 오도했다고 생각해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 호적정리

<행방불명에서 사망으로 자동 정리>

답_ 행방불명으로 되어 있었는데 한국 법에는 5년이 지나면 사망으로 된대요. 그래서 우리가 재산 같은 것을 다 상속, 정리를 할 수가 있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답_ 우리는 전혀 없어요. 우리는 너무 알려졌기 때문에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우리 아버지보고 윌북을 했다거나 이북 사상이 있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가 없죠. 아버님은 민주주의 해설을 한 사람인데, 그렇잖아요.



○ 정부에 바라는 말

<없음>

답_ 우리 집안사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국 정부는 뭐하냐고 그래요. 지금은 한국이 잘산다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뭐하냐고 이렇게 나와요. 그러니까 다른 가족들은 잊어버리라고 그래요. 저도 이 문제는 아무 발전이 없는 것이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노력했지만 얻은 게 없잖아요. 한국에 바라면 뭐하겠어요.

한국에서 나쁜 소식이 들리면 우리 어머니는 90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찾은 나라인데 독립 운동, 우리 아버지 심문 당하고 일본 헌병한테 끌려 다니면서 찾은 나라인데 바보 같이 그러느냐. 그런데 한국정부에 대해 우리 집안에서 3세대, 4세대가 그런 것 생각하겠어요? 우리 생각에 한국 정부가 지금 잃어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전쟁 때는 그렇다고 해도 수복되고 서울에 정부가 섰는데도 왜 이 납치가족을 개인이 쫓아다니고 개인의 재산을 탕진하면서 그것을 실현하려고 해야 하는지, 우리는 상상을 못해요. 그래서 우리 오빠들은 한국에 대해서 고국이고 핏줄이라는 마음이 거의 없어요.

문_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답_ 이제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리는 것, 제가 지금 결심하고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미국뿐만 아니라 가능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이런 문제는 역사적으로 남아야 돼요.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저에게는 옛날 일이고 제가 세 살 때 당한 일이라, 또 외국에서 살면서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일 년에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나?’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적이 있는지, 잊은 적이 더 많고 생각 안 한 적이 더 많죠.



○ 피랍인 한치진의 약력

1921년 6월 중국 난징 금릉학교 졸업
1928년 6월 미국 남가주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철학박사
1931년 2월 철학연구사 설립
1933년 9월 이화여자 전문학교(이화여자대학교) 교원 취임
1938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 1년 일본어 연수 - 현지에서 책 출판
1945년 8월 17일 서대문 형무소 출감
1947년 6월 국립 서울대학교 교수
1950년 8월 6.25전쟁 중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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