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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소갑열 (증언자-소차열)
이름: 관리자
2013-09-26 10:26:48  |  조회: 2550
2008. 7. 1. 채록
080701A 소 갑 열 (蘇甲烈)

피랍인
생년월일: 1933년 1월생
출생지: 충북 청주시 수동 338번지
당시 주소: 개성
피랍일: 1950년 8월 28일경
피랍장소: 북아현동 노상
직업: 학생
학력/경력: 송도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직계/부양가족: 부모님, 6남매
외모/성격: 명랑하고 활발한 편

증언자
성명: 소차열(1930년생)
관계: 누나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피랍인은 좌익 학생들에게 싸여 위험에 빠진 교장선생님을 구해준 연유로 이들에게 붙잡혀 감. 이후 철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편지로 알려옴. 북한 의용군으로 차출되어 간 것으로 추정.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나는 저만큼 떨어져 앉아 있는데 우리 동생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나를 보고 ‘누나!’ 그러고 와서는 막 붙잡고 울더라고. 그러더니 어떻게 여길 왔냐고 해요. 그래서 ‘네가 붙잡혀 왔다고 그래서 왔지.’ 그랬더니 막 울다가 눈물을 닦고는 ‘누나 두 달만, 석 달만 훈련 받으면 다시 보내준다고 하니까 석 달만 고생하고 올께.’ 그래요. 그렇게 순진해요. 석 달 훈련시키고 뭘 보내주겠어요, 그걸. 나도 순진했지, ‘그럼, 잘 갔다 와라.’ 그러면서 보냈는데, 그 담에 엿새 지나서 내가 근무하던 광희국민학교로 편지가 왔다고 여선생 하나가 그 편지를 들고 왔더라고. 그런데‘철원에서 훈련받고 있다. 그 이튿날 새벽 4시에 떠나서 철원에 도착해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편지가 오고 나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요.”

“다 남자예요. 여자는 없어. 그렇게 군인으로 내 보내려고 계획적으로 남자들만 붙잡아 갔어. 그런데 새벽 4시에 끌려가면서 철이 좀 있는 사람들은 다 도망갔대요. 그때 우리 친구 오빠도 붙잡혀 가서 거기서 봤는데 도망 와서 지금까지도 잘 살아. 그런데 내 동생은 도망가는 것도 모르고 순진해 가지고…... 반동으로 붙잡혀 온 사람들은 악질들이라고 제일 앞에다가 이 손을 밧줄로 묶어 가지고 쭉 연결해서 붙잡아 가서 도망갈 수도 없어요. 그렇게 하고 끌고 갔어.”






○ 직업 및 활동

<송도중학교 학생>



○ 납북 경위

<피랍인의 어머니와 누나가 살고 있던 북아현동 근처에서 끌려가 일신국민학교에 감금됨. 두세 달 훈련 후 풀려날 것이라는 인민군의 말을 듣고 의용군으로 차출되어 감. 철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담은 편지를 받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동생은 개성에 있고 어머니와 나는 서울에 있었는데, 6.25사변이 나니까 서울에 쌀이 없는 줄 알고 쌀 닷 말을 자전거에다 싣고 왔더라고요. 온 김에 모교에 좀 가보겠다고 조양중학교를 갔어요. 가니까 마침 빨갱이 아이들 대여섯 명이 교장이 악질이라 죽여야 한다며 총살을 시키려고 막 총을 가지고 겨누고 있더래요. 그래서 내동생이 가서 “내가 학생회장 했으니까 교장 총살은 내가 시킬테니 니들은 나가있어라.” 이렇게 다 내보내놓고서 문을 잠그고 교장선생님에게 빨리 저쪽 문으로 도망가라고 하고는 한 5분쯤 지나서 저도 같이 그 문으로 도망을 왔어요. 그 철딱서니 없는 게 도망을 갔으면 바로 개성으로 가든지 해야지 (아현동으로 온 거예요.) 동생이 조양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다니다가 개성의 송도중학교로 갔거든요. 숨었어야 했는데, 설마 애들이 아현동 집을 알까 하고 와서는 이튿날 그 옆방 학생하고 같이 목욕 갔다 온다고 수건을 목에 걸고 가다가 길에서 붙잡혔대요. 그 놈들이 골목마다 지키고 있더래.

문_ 그렇게 해서 끌려간 곳이 어디였어요?
답_ 그 자리에서 잡혀가지고 막 맞으면서 일신국민학교로 끌려갔대요. 같이 목욕 가던 옆방 학생이 와서 지금 일신국민학교에 있으니 빨리 가보라고 해서 내가 갔어요. 거기에 교실이 한 100개 정도 있었어요. 그중 첫 번째 교실에는 제일 악질들만-그네들이 말하는 악질이지-거기 붙잡혀 있었는데 총을 들고 못 들어가게 감시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얘는 거기서 울다가 잠이 들어 자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내가 “소갑열이 있냐!” 막 소리를 질렀는데 못 들었나봐. 그래 가지고 100개 교실을 다 둘러봐도 없으니까 지쳐서 이렇게 앉아있는데 의사가 오더니 어떻게 왔냐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 동생 만나보러 왔다고 그랬더니 자기 편지를 써줄테니까 전해주면 동생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의사는 편지를 쓰고 있고 나는 저만큼 떨어져 앉아 있는데 우리 동생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나를 보고 “누나!” 그러고 와서는 막 붙잡고 울더라고. 그러더니 어떻게 여길 왔냐고 해요. 그래서 “네가 붙잡혀 왔다고 그래서 왔지.” 그랬더니 막 울다가 눈물을 닦고는 “누나 두 달만, 석 달만 훈련 받으면 다시 보내준다고 하니까 석 달만 고생하고 올께.” 그래요. 그렇게 순진해요. 석 달 훈련시키고 뭘 보내주겠어요, 그걸. 나도 순진했지. “그럼, 잘 갔다 와라.” 그러면서 보냈는데, 그 담에 엿새 지나서 내가 근무하던 광희국민학교로 편지가 왔다고 여선생 하나가 그 편지를 들고 왔더라고. 그런데 ‘철원에서 훈련받고 있다. 그 이튿날 새벽 4시에 떠나서 철원에 도착해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편지가 오고 나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요.

문_ 편지를 받아 본 게 언제인가요?
답_ 걔가 8월 28일경에 그렇게 붙잡혀 갔는데, 9월 초순경에 학교로 편지가 왔어요. 잡혀간 지 한 일주일쯤 있다가.

문_ 일신국민학교에서 동생을 만났을 때 모습이 어땠어요?
답_ 울고 뭐 얼굴이 뻘겋고 따귀 맞아가지고 볼이 다 붓고 그랬더라고, 그 학생들한테 맞아가지고…... 옷은 그때가 여름이니까 체육복을 입고 있다가 목욕 간다고 간 그대로 붙잡혔지. 그래서 날 보고 바지 하나 사 가지고 9시 전까지 오라고 그래서 9시쯤 돼서 가보니까 벌써 없더라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새벽 4시에 다 데리고 떠났다고 하더라고.

문_ 당시 학교에 들어갈 때 통제는 없었나요?
답_ 그 빨갱이,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어떻게 왔냐고 하기에 내가 그때 교사였으니까 학교 대표로 왔다고 거짓말을 했지, 우리 동생 만나볼 욕심에. 그러니까 들여보내 주더라고. 의사가 네 명 정도 있었는데, 두 사람은 붙잡혀 온 사람들 같더라고.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 편지를 전해주면 동생도 만나게 해줄테니까 편지 좀 전해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 다 쓰기 전에 우리 동생을 만나가지고 그냥 왔지. 아현동 집에서 그 학교까지 가는데 열두 번인가, 한 두 정거장 가서 공습경보가 내리면 가서 숨어야 되고, 이렇게 하면서 한 두세 시간 걸려서 거길 갔어요. 그렇게 그때 치열했다고.

문_ 일신국민학교에 끌려와 있던 사람들이 주로 남자였어요?
답_ 남자지. 다 남자예요. 여자는 없어. 그렇게 군인으로 내 보내려고 계획적으로 남자들만 붙잡아 갔어. 그런데 새벽 4시에 끌려가면서 철이 좀 있는 사람들은 다 도망갔대요. 그때 우리 친구 오빠도 붙잡혀 가서 거기서 봤는데 도망 와서 지금까지도 잘 살아. 그런데 내동생은 도망가는 것도 모르고 순진해 가지고…... 반동으로 붙잡혀 온 사람들은 악질들이라고 제일 앞에다가 이 손을 밧줄로 묶어 가지고 쭉 연결해서 붙잡아 가서 도망갈 수도 없어요. 그렇게 하고 끌고 갔어.



○ 납치이유

<전쟁 중에 군 병력 충원을 위해 차출된 것으로 추정>

답_ 8월 한 28일경이야. 그리고 9.28에 수복 됐잖아요. 그러니까 전쟁이 제일 치열할 때 동생이 붙잡혀 간 거야. 총 쏘는 것만 배워가지고 파견을 시켜서 거기서(철원에서) 죽은 것 같아요. 부상 입어가지고 울면서 강가로 실려가는 꿈을 내가 꿨거든요. 그러고 나서는 내가 일어나서 우리 어머니께 말했더니, 우리 어머니도 그런 꿈을 꿨다고 그러더라고요.



○ 납치 후 소식

<피랍인이 보낸 편지를 보고 3개월 훈련 받고 돌아올 것이라고 가족들은 믿고 있었으나 이후 소식을 알 수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전쟁터에 그 총 쏘는 것만 배워가지고 철원으로 내 보내서 총받이로 죽었는지, 그 후에는 일절 소식이 없어요. 봤다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어떻게 된 영문을 모르겠어.

문_ 동생분은 3개월 훈련만 받으면 집으로 보내준다고 믿었군요?
답_ 그럼. 삼 개월 훈련 받으면 서울에 보내줄 테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가서 훈련만 받고 오면 된다고. 순진한 게 그걸 곧이 듣고 “누나, 3개월만 고생하면 다시 보내준다는데 뭐 훈련 받다가 죽겠냐.” 그러면서 그냥 그렇게 끌려갔죠. 그 후에 길에서 교장선생님 부인을 만났는데 동생 오면 꼭 교장선생님 만나러 오라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교장선생님 죽을 걸 살려놓고 동생이 대신 끌려간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갑열아, 갑열아” 그러면서 막 울고 돌아 가셨어요. 못 보고 돌아가셔서……

문_ 찾으려는 노력은?
답_ 어디 가서 찾겠어요, 이북오도청에서 이산가족 찾는다고 해서 그것 보고 내가 이북오도청에 가서 등록을 하고 그 후에 거기서 뭐 해오라 해서 그거 하고, 녹음도 했어요. 영상으로 만든 건 이북으로 보냈다고 했는데, 그러고 나서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니까 진짜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으면 얘가 성격으로 봐서 이렇게 무심히 있을 아이가 아니에요. 살아 있으면 뭘 통해서라도 꼭 연락을 했을 거야. 방송을 했든지 무슨 연락이 있었겠지.



○ 남은 가족의 생활은?

<부모님과 동생들은 대구로 피난 가고 교사였던 피랍인의 누나는 부산으로 가서 월급과 쌀 배급을 받아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으나, 피랍인의 부모님이 눈을 감기 전까지도 피랍인을 찾으며 괴로워하셨음>

문_ 1.4후퇴 때는 어디로 가셨어요?
답_ 부모님하고 동생들은 대구로 피난을 갔어요. 나는 학교 선생이니까, 부산에다가 등록을 해야만 월급을 준다고 해서 거기 갔더니 거기서 월급도 주고 쌀배급도 해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부산으로 피난갔었지.

문_ 부모님은 어떠셨어요?
답_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엉엉 울면서 갑열이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죽는다고 울면서 돌아가신 게 눈에 선해요. 부모님 가슴에 못 박아놓고 그랬지, 우리 동생이.

문_ 이북오도청을 통해서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셨나봐요?
답_ 그 이북오도청에서 이산가족찾기 하는데 등록하라고 해서 거기 가서 내가 등록도 했어요. 거기에서 촬영을 해서 이북에 보냈다고 하는데, 진짜 보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그 후에 아무 소식이 없어요.



○ 정부의 노력

<없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그때 신고하라는 얘기도 없었고 못 했어요. 무슨 신고를 하는지 모르지.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도움이 있었나요?
답_ 도움은 무슨 도움을 받아요. 도움 받은 거 하나도 없고, 소식만 알았으면 좋겠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 호적정리

<미정리>

답_ 호적정리는 그냥 있어요.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답_ 이북에서는 사람을 납치해서 그렇게 만들어 놨으면 그 사람이 죽었으면 죽었다, 살았으면 살았다, 그 소식이라도 전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그것도 안 해주고 그냥 자진해서 온 것처럼 하고. 같은 동포끼리 그럴 수가 있냐고요. 죽었다고 그러면 아주 체념이나 하지. 자꾸 이산가족들 만나고 텔레비전에서 그런 것들 나올 적마다 나도 한 번 가서 우리 동생 찾아봐야 할텐데 하며, 가슴 한 켠에 응어리가 져가지고. 맛있는 걸 먹어도 맛도 없고, 좋은 걸 봐도 좋지가 않고, 꽃을 봐도 아름답지가 않고 가슴이 이렇게 맨날 슬퍼서 눈물이 나요, 자꾸만. 무슨 죄가 있다고. 원한이 맺혀서 응어리가 져 있다고.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갑열아, 네가 여기에 살면서 학교를 다녔으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 되어서 나라에 큰 공을 세웠겠냐. 밥이나 제대로 먹었는지, 굶어서 죽었는지, 장가는 가서 자식들은 있는지. 있다면 그 자식들이라도 한 번 보고 싶구나. 어머니가 울면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네 이름을 부르면서 돌아가셨을 때는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나라의 비운이고, 비극인지 모르겠다, 정말. 왜 그렇게 불행할 때 네가 태어나서 불행한 삶을 살다가 억울하게 죽었는지. 이 원한을 어디에다 갚고 누구한테 그 원망을 해야 하며, 어디 가서 보상을 받아야 할지. 이북하고 이남이 적군도 아닌데, 같은 동포끼리 이런 비극을…… 그리고 네가 그 교장 살리고 대신 죽었다고 생각 하니까... 하다못해 네가 죽었다면 그런 훌륭한 학생이 있었다는 거, 학교에다가 네 비라도 세워서 그렇게 모범이 되는 학생이 교장선생님, 학교를 위해 이렇게 희생되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다. (눈물)

네가 살았으면 얼마나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박사가 되었을지. 하다못해 뭐라도 연구해서 훌륭하게 나라에 공을 세웠을 인물인데 그렇게 값없이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하고 원통하고. 누나는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널 한 번이라도 보고 죽어야 내 원한이 풀리겠다. 갑열아, 네가 살아있으면 방송국에 나와서라도 연락 좀 하고. 누굴 통해서라도 연락을 좀 했으면 좋겠다. 한번이라도, 음성이라도 듣고 죽었으면 원한이 없겠다. 내 나이가 80이 다 되어가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너 한 번 보고 죽어야지 내가 눈을 감고 죽을 것 같다.

문_ 동생 생각이 언제 많이 나셨어요?
답_ 비슷한 사람 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혹시나 우리 동생이 아닌가 하고. 지하철이고, 지하철 계단에 내려온다든지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 보면, 우리 동생이 혹시 발 부상이나 동상 입어서 저렇게 거지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얼굴을 이렇게 봐요. 그래서 내가 천 원짜리 하나 꼭 주고 다닌다고. 우리 동생이 혹시나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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