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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정순일(증언자-정용남)
이름: 관리자
2016-12-13 11:45:16  |  조회: 1446


피랍인
생년월일: 1917년 4월 21일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
당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피랍일: 1950년 7월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양복점 운영
학력/경력: 대한청년단 마포 지회 부단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4남매)
외모/성격: 165cm의 중키, 성품 온화, 불의를 못 참음


증언자
성명: 정용남(1943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이 나자 피랍자의 이복형제들이 피난을 가라 권유하였지만, 육군이 금방 올라와 조금만 숨어 있으면 된다고 해서 피난을 가지 않았음.
- 집의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어느 날, 동네 사람이 천장을 수색한 후 피해자를 납치해 감.


“막내 남동생은 전쟁 끝나고 새로 시집간 어머니 따라 미국에 갔는데, 걔는 유복자니까 아버지 얼굴도 모르지요. 그 때 모친이 막내 남동생을 임신했을 때 아버지가 잡혀갔었어요. 제 바로 밑에 남동생은, 군대 가서 사고로 전사했고요. 그래서 서울에는 저 혼자예요.
6·25때 넷을 다 데리고 생활할 수 없으니까… 여동생을 시집에다 맡겨놓은 모양이에요. 그런데 시집에서 인절미 떡을 잘못 먹다가 죽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뭐, 지금처럼 사람 목숨에 그렇게 신경을 쓰나요? 아파도 시골이라 병원도 못가고. 비극이었지요. 아버님 하나 납치됨으로써, 한 가정이 파괴되었지요.”


직업 및 활동

〈학교를 졸업하고 배운 양복 기술로 마포구 공덕동에서 양복점을 운영. 대한청년단 마포 지회 부단장을 열심히 하며 좌익과 투쟁 전개 중 전쟁을 맞음>

문_ 아버님께서는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답_ 아버님 출생지는 충청남도 청양인데요, 고등학교인지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에서 양복 기술을 습득한 후에 함경남도에 가서 양복점을 경영하다가 어머니를 만나셨답니다. 그러다가 1944년, 제가 한 살 때 마포로 남하하셔서 공덕동에서 양복점을 하셨습니다. 모친 말씀으로는 어버님이 대한 청년단 마포 지회의 부단장을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양복점 일은 잘 안하시고 좌익하고 싸우고 도망도 다니시고. 싸움 많이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김두한 선생 있잖아요, 그쪽 분들하고 같이 좌익에 맞서서 싸움을 많이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납북 경위

〈전쟁이 나자 피난을 가라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중 발각됨. 마포 형무소로 끌려간 이후로 소식이 없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요?
답_ 아버님 일가에 이복형제들 몇 분이 최근까지 살아계셨어요. 그분들 얘기를 들어 보면, 일가에서 피난을 가라고 권유를 했는데, 아버지가 ‘금방 다시 육군이 올라오니까 조금만 숨어있으면 된다.’고 하시면서 피난은 안 가셨죠. 제 기억으로는 저도 천장에 있는 다락방에 올라가서 숨어있었어요. 거기로 어머니가 밥도 올려다주시기도 했고. 내려와서 얼른 먹고 다시 올라가기도 했고요. 6·25나고 7월에 납치당했으니까, 한 2개월 동안은 거기에 쭉 있었죠. 어느 날 군복 입은 이북 군인들이 있잖아요,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인데 천장 다락에 숨어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와서 뒤지더라고요. 그 즉시 발각돼서 잡혀갔죠. 아침에 밥상 차려 놓고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끌고 가버리니까 진지도 못 드시고. 당시에 하얀 옷 입고 계셨던 것은 기억나는데, 아마 잠옷 같은 하얀 옷이겠죠. 아버님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그냥 손을 묶어서 끌고 갔죠.

문_ 숨어계시는 동안 누가 찾아오거나 협박을 한 게 있었나요?
답_ 찾아 왔죠. 찾아오기는 왔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요. 모친하고 언성을 높이고 싸웠던 그런 기억은 나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동네에서 반장 일인지를 보던 사람이라고 그래요.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아버지 어디에 갔느냐, 어디에 숨겨 놓았냐.’ 그런 걸 물어보는 것 같았어요. 어려서 확실한 기억은 안 나지만요.

문_ 군복을 입은 사람은 아니고요?
답_ 군복을 입은 사람은 바깥에 서 있었고요. 우리 알고 지내던 그 사람이 자주 들락날락했지요. 지금 생각하니까 저희를 감시한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들이닥치더니 그 사람이 딱 천장을 가리켰으니까요. 다른 두 사람이 들어와서 아버지 양쪽 손을 잡고, 끌고 나가서는 묶어서 끌고 갔는데 아버님이 뒤돌아보면서 뭐라고 얘기하셨어요. 그런데 그것은 잘 못 들었어요. 나이가 7살이었던 데다가 오래된 세월이라 기억이 확실하지 않고 어렴풋한 기억만 나요. 잡혀가실 때 뒤돌아보고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던 그 기억 밖에 안 나네요.

문_ 그 후에 어디로 끌려가셨지요?
답_ 마포 만리동 고개에 형무소가 있었어요. 마포 형무소라 그러더라고요. 마포에서 잡힌 사람들은 거기에서 다 죽였다는 그런 소문을 들었어요. 그래서 일가 몇 분하고 모친하고 거기에 가서 밤새도록 쌓여있는 시체들을 다 뒤져봤대요. 다 뒤져봤는데도 없더래요. 그 다음에 마포구 여의도에, 그때는 샛강이라 그랬어요. 어렸을 때 거기에서 수영도 하고 그랬는데, 거기에서 또 많이 죽었다고 해서 거기도 가서 뒤져봤대요. 다시 또 미아리 쪽에도 가보고 했대요. 하여튼 서울에서 잡혀간 사람 총살당하고 묻혔다는 데는 다 찾아가 봤대요. 그런데 한 군데에서도 아버지 시체를 못 찾았다 그러더라고요.


납치 후 소식

〈잡혀갔다가 도망쳐 나온 지인에 의하면, 납북자와 미아리 고개 방면으로 같이 끌려갔다고 함>

문_ 나중에라도 전해들은 소식이 없으셨나요?
답_ 한 사람이 잡혀가다 도망을 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 사람 이야기로는 같이 북쪽으로, 미아리, 내 생각에는 미아리 고개 같아요. 고개를 넘다가 무슨 총소리가 들려서 막 도망가고 그랬는데. 일부는 도망가고, 일부는 끌려갔다는 그런 얘기를 전해 들었고, 그 다음은 못 들었어요. 저희 모친 생각하기에 당시에 납치해간 사람들이 ‘죄 없으면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것이 거짓말이었다 이거야. ‘여기에서 우익 활동을 했으니까, 분명히 그쪽에서 볼 때는 악질로 봤을 거 아니냐? 북으로 가는 도중에 죽였을 것이다.’ 모친은 그렇게 생각한 거지요. 그런데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시체를 못 찾았으니까요. 그리고 아버님이 양복 기술이 있으시니까 ‘혹시 북으로 데려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소식이 없는 것 보니까,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남은 가족의 생활

〈생활이 어려웠던 어머니는 미국 사람과 결혼해 막내 아들만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으며, 증언자가 어려서부터 돈을 벌었음>

문_ 납치 후에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6·25전에는 괜찮았죠. 그 당시에 양복점이면 벌이가 좋았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양복을 해 입고 다녀서 동네에서 굉장히 귀여움을 받았다고 동네 친척들이 그러더라고요. 양복 기술이 있고 양복점을 운영했으니까 좋았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청년단 활동에 빠지셔서 돈도 못 벌고 그랬죠. 가게도, 집도 우리 소유라고 했었는데 나중에 다 뺏기고.
저희 4남매 중에 여동생이 6·25때 죽고, 아들 셋만 살아 있었는데, 모친이 삼십대 젊은 나이에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요? 이북에서 전문학교는 나왔다고 모친은 그러는데 그 당시에 기술이 여자들이 할 게 뭐가 있겠어요. 부친이 돈을 얼마나 남겼는지 모르지만, 무슨 팥죽 장사도 하고, 팥을 쑤어 가지고 팔다가 미군 부대에서 일을 하게 되었나 봐요. 거기에서 미국 사람을 만나서 그 미국사람하고 결혼해서는 미국으로 막내 동생 데리고 그냥 가 버리신 거죠. 그때 온 가족이 뿔뿔이 헤어진 거야. 막내 동생 데리고 미국으로 들어가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어.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 거지요. 저는 열세 살부터 혼자 자랐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열 네 살인가 다섯 살 때부터 일하고, 학교 다니면서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고생했지요. 그 당시에 아이가 버는 돈이 얼마 되겠어요? 그래서 죽어라 열심히 했지요.


호적 정리

〈증언자의 신원조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망으로 처리>

문_ 호적정리는 하셨나요?
답_ 제가 69년인가 68년도에 아버님을 돌아가신 걸로 미리 처리했어요. 동네 어른들 몇 사람이 보증을 서면 된다고 해서 일단 처리를 했어요.


연좌제 피해

〈군대에 있을 때와 레슬링 선수, 코치를 하던 시절에 해외로 출국할 때마다 신원조회를 엄격히 함>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제가 서울에 있는 수도경비사에서 군대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신원조회를 많이 받았어요. 또 레슬링을 했었어요. 그 당시에 운동 때문에 외국을 가려면 굉장히 신원조회를 까다롭게 했어요. 그래서 제가 69년인가 68년도에 아버님을 돌아가신 걸로 미리 처리했지요. 동네 어른들 몇 사람이 보증을 서면된다고 해서 일단 처리를 했어요. 그 다음부터 운동을 하면서, 코치감독 생활을 하면서 외국에 한 4~50회 정도 나갔는데 아버님이 사망 처리되니까 수월하더라고요. 그 전에는 신원조회도 까다롭게 했는데, 사망 처리된 후에는 피해본 것은 없어요. 주위 사람들을 보니까 신원조회 통과 못해서 외국에 못 나가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운동선수들 중에도 내일 모레 떠나야 되는데 연좌제 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려서 못 나가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는 미리 호적 정리를 했었죠.


정부에 바라는 말

<정부에서 납북 피해 문제에 대하여 북한에 적극적으로 생사확인을 요구하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대처하기를 바람>

문_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답_ 전에는 잘 몰랐는데 요새 나이 먹고 보니까, 여태까지 정권이 몇 번 바뀌었음에도 정부에서 북한 눈치 보느라 납치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해 거론을 못한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는 떳떳하게 따질 것은 따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 이상 뭐가 더 있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세요.
답_ 살아 계시다면 한 번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요. 북한에서라도 살아 계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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