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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유명복 (증언자-유규숙)
이름: 관리자
2013-09-26 10:28:02  |  조회: 2973
2008. 7. 2. 채록
080702B 유 명 복 (劉明福)

피랍인
생년월일: 1921년 6월 15일생
출생지: 황해도 평산군 문무면
당시 주소: 인천시 주안동 477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10일경
피랍장소: 인천 영종도(처가) 가는 길
직업: 안양경찰서 지소장
학력/경력: 경찰학교 5기생
직계/부양가족: 배우자(임신중), 자녀 1녀
외모/성격: 외모가 출중하고 온순한 편

증언자
성명: 유규숙(1950년생)
관계: 차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경찰 간부였던 피랍인은 1950년 7월 10일경 출산을 앞둔 아내를 보기 위해 처가로 가던 길에 지방 좌익이던 친구에 의해 인천 경동으로 연행됨.
- 인천 경동 병원자리에서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피랍인을 피랍인의 어머니가 목격함. 피랍인의 남동생도 의용군으로 잡혀간 후 피랍인의 부모님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납북자 문제를 정부에서 시급한 사안으로 여기고 하루 속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

“출산일이 가까워져서 어머니한테 가시다가 지방 좌익, 내무서원이 큰 트럭에 사람을 싣고 가면서 세웠대요. 그리고 한 사람이 내려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러면서 아버지를 차에 태웠대요. 그걸 본 사람이 우리집에 와서 얘기를 해줬어요. 그 태운 사람이 아버지 친구래요. 지방 좌익이었는데 그래도 아는 척하고 차를 세워서 악수를 청하니까 아버지도 했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는 그 차에 태우고 간 거에요. 그렇게 납치된 건데, 그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우리 할머니가 인천 경동에 큰 병원자리로 가니까 아버지가 여러 사람하고 같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 나오더래요. 그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에요. 눈이 마주쳤는데 할머니한테 “아유 더워” 그렇게 말한 게 마지막 말이더래요.”

“제 어려서 기억에 할머니는 매일같이 우셨어요.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 돌아 가셨는데, 가슴앓이 병을 앓으셔서 뜨거운, 큰 자갈돌을 항상 불에 데워서 가슴에다 지지고 계셨어요. 견디지 못하셔 가지고. 가슴앓이 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약 지어 드시면 그렇게 우셨어요. 특히 나를 붙잡고 그렇게 우셨죠. (눈물) 할아버지도 뒤이어 돌아가셔서 저희들은 고모 손에 컸어요.”


○ 직업 및 활동

<안양경찰서 지소장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에서 전쟁 발발>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경찰에 근무하시면서, 동인천경찰서, 답동경찰서, 학익경찰서를 거쳐서 안양경찰서 지소장으로 발령이 났고, 기다리고 계시던 중 6·25가 났어요.

문_ 고향이 황해도인데 언제 남하하셨나요?
답_ 할아버지 때에 내려오셨어요. 아버지가 거기서 태어나시고, 이쪽으로 내려 오신거죠. 우리 할아버지가 직장 관계로 나오셨대요. 세무서에 다녔기 때문에.

문_ 할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답_ 그야말로 지주였다고 해요. 황해도에 홍문집이라고 해서, 우리는 먼저 나왔지만 우리 할아버지 친척들이 거기서 좌익들에게 고통을 많이 당하고 피난을 왔어요. 그 쪽에서 우리 조상들이 지주 노릇을 했다고 해요.



○ 납북 경위

<피랍인은 다른 가족과 함께 인천 소래로 피난을 가 있다가 출산을 앞두고 영종도 처가로 피난을 보낸 피랍인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가던 길에 지방 좌익이던 친구에 의해 연행됨. 피랍인이 인천 경동의 병원자리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피랍인의 어머니가 찾아가서 포승줄에 묶여 나오는 피랍인을 마지막으로 목격함.>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답_ 아버지가 경찰에 근무 하시면서 안양경찰서장으로 발령이 나고, 기다리고 있는 중에 6·25가 났어요. 우리 어머니는 그 때 저를 임신하고, 제 생일이 8월 3일이니까 거의 만삭이셨겠지요. 그래서 인천 영종도에 외갓집이 있는데 그 쪽으로 피난을 보내고,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다른 가족들은 인천 소래로 피난을 시키셨대요. 그러고 출산일이 가까워져서 어머니한테 가시다가 지방 좌익, 내무서원이 큰 트럭에 사람을 싣고 가면서 세웠대요. 그리고 한 사람이 내려서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러면서 아버지를 차에 태웠대요. 그걸 본 사람이 우리집에 와서 얘기를 해줬어요. 그 태운 사람이 아버지 친구래요. 지방 좌익이었는데 그래도 아는 척하고 차를 세워서 악수를 청하니까 아버지도 했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는 그 차에 태우고 간 거에요. 그렇게 납치된 건데, 그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우리 할머니가 인천 경동에 큰 병원자리로 가니까 아버지가 여러 사람하고 같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 나오더래요. 그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에요. 눈이 마주쳤는데 할머니한테 “아유 더워” 그렇게 말한 게 마지막 말이더래요.

문_ 그 때가 언제인가요?
답_ 납치되신 날이 7월 10일로 알고 있어요.



○ 납치이유

<경찰 간부>

답_ 경찰이라 위험하니까 피하고 피해서 갔는데도, 그냥 어떻게 잡혔나봐요. 아는 사람이니까.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전혀 없었고요. 우리 고모가 지소에 가서 가끔 고모 나름대로 행패를 부리셨대요, 내 동생 찾아내라고. 너희들은 살고 왜 내 동생만 납치를 당했냐고. 내 동생 찾아내라고 여러 번 그렇게 가서 행패를 부리셨다고 하더라고요. 울고불고 그랬겠죠. (눈물) 근데 아무런 조치도 없고, 답도 없고, 그러고는 다들 살기 바쁘니까.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 뿐만 아니라 남동생도 의용군으로 끌려가서 피랍인의 부모님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함. 배우자는 재가하고 두 자녀는 피랍인의 누이가 양육>

답_ 제 어려서 기억에 할머니는 매일같이 우셨어요.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 돌아 가셨는데, 가슴앓이 병을 앓으셔서 뜨거운, 큰 자갈돌을 항상 불에 데워서 가슴에다 지지고 계셨어요. 견디지 못하셔 가지고. 가슴앓이 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도 약 지어 드시면 그렇게 우셨어요. 특히 나를 붙잡고 그렇게 우셨죠. (눈물) 할아버지도 뒤이어 돌아가셔서 저희들은 고모 손에 컸어요. 어머니는 재가하시고.

문_ 아버지 형제들은 어떠셨어요?
답_ 형제가 많았는데 어려서 죽고 고모 셋에 아버지하고 삼촌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삼촌도 의용군으로 붙잡혀 갔어요. 얘기만 들었는데, 그렇게 아들들만 붙들려 가고 나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병들어 돌아 가셨죠.



○ 정부의 노력

<없음>



○ 호적정리

<사망신고>

답_ 제사도 안 지내고 호적정리를 안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재가 하시고, 상속집이 하나 있었어요. 상속 문제 때문에, 행방불명되면 상속이 안 된다고 해서 1975년에 사망신고를 했어요. 그리고 그 때부터 언니가 제사를 지냈어요.



○ 연좌제 피해

<없음>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납북자 문제를 정부에서 시급한 사안으로 여기고 하루 속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

답_ 이제 내가 6.25전쟁 납북자 2세고, 지금 우리 딸, 아들이 3세고, 아들, 딸들이 자식을 낳아서 이제 4세가 되었어요. 납북자의 4세가 태어난 거에요. 근데도 이 일을 처리를 못 해주고, 이렇게 방관한다는 거 자체가, 이게 민주주의 국가이고 자유주의인지 난 참 의심스러워요. 일본이나 미국 같은 데에서도 납북자에 대해서 그렇게 끈질기게 보호를 해 주고, 그렇게 열심히 국가로서 책임을 다 하려고 하는데, 당사자인 이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있는데도 그렇게 관심 밖의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게 너무 섭섭해요. 지나간 10년은 좌파 정권이라고 내가 생각을 하더라도, 이 정권에서는 이 문제를 빨리 풀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세대가 다 가기 전에, 그 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생사확인을 하고, 가족들하고 비록 세월이 다 흘러서 변한 얼굴이라도 자식들 한 번 좀 봤으면 좋겠고, 정말 가슴 아픈 건 말할 수 없어요. 국가가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것보다도 철저하게 이북에 항의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 쪽으로 계속을 지원을 해 주고, 비료니 쌀이니 다 지원을 하면서 왜 정작 우리가 요구해야 할 건 이렇게 방관을 하는지, 정부, 국회에선 뭘 하고 있는지. 다른 것보다도 이 문제는 시급한 것 같아요. 세대가 지나면 이게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명예회복이라도 해드릴까 하고 올해 초에 찾아가서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어요. 그랬는데 모든 기록이 다 있잖아요. 기록이 다 있는데, 거기서 답변이 오기를, 6.25 때 아버지 명단이 다 불 타 없어졌다는 거에요. 불 타 없어져서 찾을 수가 없대요. 그래서 내무부에도, 인천 경기도경에도 연락을 해 봤어요. 그래도 옛날 경찰 직원이니까 찾아 달라고 했더니, 거기도 기록이 다 불 타 없어졌다면서 행정소송을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 소송도 국가를 상대로 개인이 하기는 그렇고, 불 타 없어진 건 전쟁 당시에 신원 보호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이해하겠어요. 그렇지만 국가에서 그렇게 불 태워 없어진 걸 개인한테 아무런 보상이라든가 개인적인 명예회복을 안 해준다면, 가족들이나 납치돼서 돌아가셨을지 살아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들한테는 너무 억울하고 스물여덟이면 참 어린 나이인데, 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는 게 자식으로서 너무 가슴 아파요. 그래서 이제라도 명예회복을 하려고 신청을 한 거에요. 근데 이렇게 국가로부터 묵살 당한 게 너무 억울하고요. 지금 제주도 4·3사태니, 6.25 때 사상범들, 그런 사람도 이북으로 보내고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충성하다가 납치당해 돌아가신 분들을 이렇게 외면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가슴 아프죠.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아버지, 제가 자식을 낳고 이제 할머니가 됐어요. 어려선 막연하게 아버지를 그리워했는데, 이젠 아버지 인생이 너무도 불쌍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자체가 아버지께 죄송스러워요. 만약에 살아 계시다면 몸 관리 잘 하시고, 건강을 잘 유지하셔서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릴게요.

문_ 유복녀이신데 아버님의 빈자리를 언제 많이 느끼셨는지?
답_ 아버지도 나를 못 보고, 나도 아버지를 못 본 상태니까, 다른 것보다도 막연히 그리운 거죠. 정이 든 건 아니고, 막연히 그리웠어요.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최근에 와서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 전까지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언니하고 내가 불행하게 컸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내일 모레 환갑이 되고 보니까 아버지가 너무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되신 게,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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