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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서승근(증언자-서정식)
이름: 관리자
2016-12-13 11:50:19  |  조회: 1377



피랍인
생년월일: 1907년 3월 25일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군 가약곡면 육곡리
당시 주소: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86번지 대법원 관사
피랍일: 1950년 7월초
피랍장소: 대법원 행정처로 추정(직장, 출근 후 행방불명)
직업: 대법원 행정처 경리과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매
외모/성격: 신장 160cm 정도, 눈이 인자한 인상이고 얌전한 성격


증언자
성명: 서정식(1935년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대법원 행정처 경리과장으로 일하고 있던 피랍인은, 7월 초에 조사할게 있다며 집으로 찾아 온 두 사람을 따라 차를 타고 나간 후에 소식이 끊김. 
- 정치보위부 건물이 된 시립도서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함.
- 납북자의 형님 역시 피랍됨.   
 

“전쟁을 하다가, 서로 대항을 하다가 잡혀갔거나, 또 전쟁에 반대하는 불리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많은 사람들 잡아가고 또 더군다나 아무것도 알려주지도 않아요.
그게 끔찍하다고. 개인의 가정생활이나 인격 같은 건 완전히 무시하는 거라고. 지금 젊은 사람들도 알아야 되요. 그게 제일 끔찍한 일이에요. 그래가지고 그 사회는 살기가 싫더라고 1.4 후퇴 때 피난한 거, 왜 이렇게 도망가겠습니까? 그 중에선 군인 가족이라 도망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싫어서 온 겁니다. 그 원인이 뭔가 학자들도 알아야 되요. 소설가도 알고 정치가들도 알아야 되는데 그거 아는 사람이 너무 없는 것 같아. 그냥 겉핥기만 하는 것 같아.”


직업 및 활동

<피랍인은 당시에 대법원 행정처 경리과장으로 재직하였으며 다른 사회활동은 하지 않았음>

문_ 아버지께서는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답_ 처음에는 미쯔비시 상사의 비료 대리점 사업을 하셨는데, 그게 잘 안 돼서 고향에 가서 좀 계시다가, 초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셨다가 떨어졌어요. 그랬다가 대법원 행정처 경리과장으로, 말하자면 특채같이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 대법원 행정처 경리과장이라는 것은 사법부의 모든 경제를 전부 집행했던 것 같아요. 예산도 짜서 국회에서 이야기하고, 재정적인 것은 다 관리했던 것 같아요. 곧 총무국장이라는 편제가 생겨서 국장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6·25가 터지는 바람에 과장상태에서 피난 못가고 납북되었습니다.

문_ 경리과장 이외에 다른 활동, 사회단체 활동 같은 것은 하신 게 있으세요?
답_ 거의 없습니다.


납북 경위

〈처음 집에서 끌려간 후에 돌아왔으나, 며칠 후 두 사람에 의해 다시 끌려 나간 후에는 돌아오지 못함>

문_ 아버님이 납치되셨을 때, 그때 상황 기억나시는 대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답_ 진짜 빨갱이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 포위해갖고 현관 앞에 줄 세워 무릎 꿇려 놓고 다 죽이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들이 김일성 노래인지 뭔지를 해보라는데 그런 노래를 어떻게 알아. 대여섯 명이 들어오기에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그냥 우리 아버지만 데리고 나가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한 가지 이상한 게, 머리 깎는 데 쓰는 물건이 없어졌더라고. 재봉틀도 없어지고.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이 진짜 빨갱이였는지는 사실 정확치 않아요. 그리고 아버지는 그 다음 날 29일에 돌아왔습니다.    

문- 아버님이 납북되신 날짜는 언제인가요?
답_ 그 이후로 이삼일 후 같아요. 그 사이에는 그저 불안하게 도망도 못가고 있었어요. 그것도 우리 아버지 성격하고 관련이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도망을 갔겠지. 그런데 식구 놔두고 갈 수 있었다면 그랬겠지만, 그런 결단을 못 내린 것 같아요.

문- 그 다음에 왔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답_ 그건 머리 깎은 것 보니까 형무소에서 자기네들이 왔다 그러는데. 처음에 끌려갔다 와가지고 아버지가 도망을 못 갔어요. 벌벌 떨기만 했어요. 도망 갈 대책도 없고 세상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그러고 있는데, 두 명이 집에 왔어요.

문- 집으로 왔을 때 목격하신 분이 있으세요?
답_ 식구들이 다 있었죠. 그런데 차타고 나가는 것도 못 봤어요. 그냥 간 것만 알고 있어요.



납치 이유

<대법원 행정처 경리과장으로 일하고 있던 피랍인은 당시 사법부의 재정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음>
 
문- 아버님을 납치 해 간 사람들은 누구였죠?
답_ 그건 모르죠. 절대 안 가르쳐 줍니다. 말도 못 붙이게 해요. 말을 많이 하지도 않고 그냥 저희 아버지더러 잠깐 보자고 하면서 아주 신사적으로 끌고 가는 거예요. 질문할게 있다든지 잠깐 조사할게 있다든지 이런 식인 거죠. 위협도 안하고 데리고 가서는 전부 조사했겠지. 대부분 재산 이런 것 다 조사했겠죠. 재정관리 하던 사람이고 공무원이고 하니까 끌고 간 거지.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아버님이 끌려가신 후에 어떻게 되셨지요?
답_ 끌려가셔서는 직장으로 그 두 사람이랑 같이 갔다가 거기에서 사라졌다고 하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언제 돌아오시려나, 백방으로 알아봤지요. 친척 중에 좌익, 사회주의자 사상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좀 있어요. 그래서 찾아가서 물어봤는데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나중에 조선호텔 앞에 국립도서관이 있었는데 거기가 정치보위부로 사용 됐잖아요. 거기에 아버지가 계시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러더라고. 그런데 면회 같은 건 전혀 안되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문- 그럼 어머님이 납북자 신고를 하셨나요?
답_ 어머니가 했어요. 그땐 뭐 어디서 죽은 사람이 100명이 나왔다더라 하면 우리 어머니가 다 쫓아다니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막 돌아 다녔어요. 얘기도 듣고 수도 없이 듣고 그랬죠.

문- 그렇게 수소문했는데도 들은 소식은 없으시고요?
답_ 없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거의 다 없었을 거예요. 가정이 하루아침에다 무너지고 다 죽게 되었는데 얼마나 절박하게 찾았겠어요. 그런데도 소식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끌려갔다가 중간에 탈출해 나온 분들한테 수소문해서 좀 듣기도 했지만, 저희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소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간절히 기다렸는데 없었고. 그 당시 우리 큰 외삼촌이 동아일보에서 일했어요. 고대국씨라고 거기 편집국장, 사장, 회장까지 하고 그랬던 분이에요. 근데 그 양반한테 우리 아버지가 매부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봐 줬는데도 결국 못 알아내더라고.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남은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친척 집에서 살게 됨>

문- 어머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자녀분들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답_ 말도 못하죠. 아무래도 친척집에 있으니까, 친척집이 잘 살아도 밥을 얻어먹기가 눈치 보이지 않습니까? 자기네 식구도 난리 통에 건사하기 어려운데 얼마나 귀찮은 존재 입니까? 그래서 나는 그래도 공장에서 일하면 밥은 주겠지, 그래서 학교도 이과 기술 계통으로 들어가서 연구소에서 일했어요. 지금도 그걸로 일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이런 게 이제 한이 맺힌 거지요. 그래도 (친척 분들이) 고마운 사람들이지. 당시 내가 젊었을 때였는데 참아야지 어떡해요.

문- 어떻게 지내신거예요?
답_ 나는 외삼촌댁에 있었고, 큰아버지도 납치당하셨으니까 동생은 작은 아버지 댁에 있었고, 내 누이는 이모 집에 있었고 그랬죠. 나보다 더 고생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정말 끔찍하게 고생했어요. 그래서 참는 건 아주 소질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해봐서요.

문- 그 때 정부로부터 지원이 있었나요?
답_ 전혀 없어요. 그게 좀 섭섭합니다. 정부도 전시에 그런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때 구호물자나 양쌀도 배급하고 하는데, 그냥 일반 피난민은 또 그냥 나눠주는데 우리를 좀 배려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죠. 그리고 나중에 하다못해 데모하다 잡혀간 사람, 뭐 한사람 그런 사람들도 다 도와주던데, 내 친구들은 다 지금 뭐 보상받고 있는데 납북자 가족한테는 일체 없어요. 이런 피해자들로서는 아마 유일할 거예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 연좌제 피해는 없으셨어요?
답_ 딱히 없어요. 학교 다니는 과정에서 입학을 안 시켜주거나 이런 건 못 느꼈고.


정부에 바라는 말

〈상처를 잊고 좌우의 갈등이 사라지게 해야 함>

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답_ 정부에 좀 불만이 있어요. 내가 그 입장이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겠지만, 우리 역사가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 고향 시골에서는 좀 잘 살았다고 해서 끌고 가 때려죽이고, 거기서 묶어서 끌어가고 그런 일이 있어요. 좌익 사상자들도 6·25 이전에 잡아다 막 취조도 하고 그랬겠지. 그런데 그 후손들이 아직도 서로 적입니다. 고향 모임이 있는데 따로 따로 모이고 절대로 서로 안 만나요. 곧 죽어도 서로 안 봐요. 이런 것을 해소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그대로, 우리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해서 후손들이 제대로 알고 살아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 아버님께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답_ 우리 아버지는 물론 돌아가셨겠지만, 거기로 끌려가서 다행히 결혼을 하셨다면 참 고마울 텐데. 물론 좋지 않은 사회지만 그래도 사랑해주는 대상이 있고 사랑 받을 대상이 있고 그러면 훨씬 나았을 것 아니에요. 지금 우리 아버지가 안 계셔도 그 후사들 만나면 잘해 줄 용의가 있어요. 그런 뜻에서 우리 아버지를 생각해서 은인처럼 대우해 줄 용의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아버지를 제일로 존경하고 지금도 제일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정말 바보소리 들을 정도로 나쁜 짓을 전혀 안 하셨어요. 그런데도 그 고생을 했습니다. 원수지고 산 사람도 없었는데. 억울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할 수 없지요,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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