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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상학(증언자-박상준)
이름: 관리자
2016-12-13 12:10:53  |  조회: 1439


피랍인

생년월일: 1907년

출생지: 강원도 통천군

당시 주소: 서울 서대문구 정동 21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피랍장소: 자택

직업: 신문기자 (현대일보 정치부장)

학력/경력: 와세다 대학교 영문과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5남 2녀)

   

증언자

성명: 박상준(1944년생)

관계: 4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1950년 7월 자택에서 군복을 입은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강제 연행을 당함.

- 서대문 형무소에서 비슷한 사람을 피랍인의 부인이 목격한 것이 마지막 소식임.


직업 및 활동

〈피랍인은 신문기자였으며 당시 이승만 정부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음>

문_ 아버님 직업이 무엇이셨죠?

답_ 글쎄요, 그거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평화신문으로 알고 있어요. 근데 평화신문이라는 게 없어졌잖아요? 일선에서는 서울신문이라는 소리도 있고 그러니까 내가 지금 정확하게 모르겠고, 그냥 기자라는 것만 알지 (현대일보 정치 부장이었던 것으로 확인됨).

문_ 다른 사회활동은 안하셨나요? 대한청년단이라든지요.

답_ 그거는 큰 형님이 했어요. 그리고 아버님이 무슨 사회활동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범주에서는 기자생활하면서 정치활동을 직접이라고 해야 하나 간접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 활동을 한 것만은 알고 있어요.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박 선생 들어오라고, 박 선생 자리는 있으니까 아무 염려 말고 이야기 하라는 거야. 그때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랬어요. “지금 이 혼란기에는, 난 못 하겠습니다. 사회가 좀 안정된 다음에 그때 같이 합시다.” 이러신 거죠.


납북 경위

〈50년 7월 중 가족이 보는 앞에서 다수의 인민군에 의해 끌려간 후 소식 없음>

문_ 납북된 상황을 지금 직접 보신건가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답_ 네. 우리가 살던 집이 원래 일본인 건물이거든요. 건물이 상당히 컸었어요. 그 건물에 조국현이라는 애랑 시우라는 애가 있었는데 같이 덕수 국민학교에 다녔었죠. 2층에서 우리가 놀았어요. 정확한 시간대는 모르겠지만 두세 시 쯤 되었을 거예요. 한낮인데 “우당탕!”하는 거예요. 문을 발로 걷어찼는지 문이 “꽈당!”하고 열리더라고 갑자기. 그래서 우리는 놀다가 놀래가지고 쳐다볼 것 아닙니까? 갑자기 그 문으로 인민괴뢰군들이 쏟아져서 들어오더라고.

문_ 네, 군복 입은 사람들이 말이지요?

답_ 네. 그렇죠. 총 들고, 그때 총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그걸 들고 앞에 오니까 아휴,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국군 철모가 아니고, 인민군들 쓰는 그 작업모를 썼어요. 앞에는 빨간 별 붙이고, 그 군복은 누리끼리하고, 빨간 견장을 붙였어요. 그리고 검을 쥐고 막 쏟아져 들어오니까 우리는 놀라서 숨을 거 아닙니까? 그 소리에 아버님이 나오셨더라고. 그리고 뭐라고 그러셨는데 기억이 안나요.

그 중에 한 사람이 저희 아버지더러, 아무개를 찾는데, 아무개 맞으시냐고 그래요. 아버지가 ‘내가 맞다’라고 하시니까 ‘같이 좀 가시자’고 그러더라고요. 그쪽에서 가자고 하니까 따라가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왜 대낮에 와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그러느냐고 하셨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막 입으로는 욕을 하고 주먹다짐까지 하면서 위협을 하더라고요. 무서워서 이제 아무도 섣불리 못 나서잖아요. 아버님이 “그럼 갑시다.” 하니까 어머니가 평소에 하시던 대로 모자를 드리더라고. 그리고 모시옷 반팔에 모시옷 반바지 입으셨고. 우리가 이층에서 내려다 봤죠. 큰길로 갔다가, 그 다음에 신문로로 올라가는 줄 알았더니 신문로로 안가고 법원 쪽으로 내려가더라고요. 앞에 총대 맨 한 명 뒤에서도 권총을 또 두 사람이 들고서 쫓아갔으니 완전히 포위한거죠. 그래서 내가 “아버지 어디가?” 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니까, 나를 쳐다보고 모자를 벗으면서 “나 저기 잠깐 갔다 올게.” 그러시더라고. 그게 마지막이에요.


납치 이유

<부족한 인재를 충원하기 위한 북한의 계획과 고향 친구의 밀고가 맞물려 납치된 것이라 추측>

문_ 아버님이 납치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답_ 첫째로는 함경도당에서 이용하기 위해서 사람을 잡아간 게 아니겠나, 두 번째는 고향 친구 중 한 명이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버지 이름을 공산군한테 밀고 한 것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 고향 친구가 아버지 밀고하고 자기는 빠져 나왔어요. 1·4 후퇴 때 피난 갔다가 53년도에 돌아와서 보니, 그 사람이 미아리 근처 돈암동인가에 산다는 소문을 듣게 돼서 어머니가 찾아 갔어요. 그런데 그 넓은 데 가서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찾겠어요? 못 찾죠.


납치 후 소식

〈납치자의 부인이 서대문 형무소 내부에까지 들어갔지만 피랍자를 만나지 못했음>

문_ 아버님이 끌려가시고 나서 찾아보려는 노력을 가족들이 하셨나요?

답_ 많이 했죠. 그러고 나서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거예요. 여성동맹으로 활동했던 여자 분한테 어머니가 ‘남편 좀 찾아봐야겠는데 어떻게 찾아볼 방도가 없겠느냐?’하고 물어보셨대요. 그러니까 그 여자 분은 ‘아무리 여기가 못된 사회라고 할지라도 인정은 다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알아봐 주겠다고 그러더래요. 그러더니 며칠 뒤에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것 같더라. 거기에서 한번 찾아봐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즉시 서대문 형무소로 찾아 갔대요. 그런데 안 들여 보내주더래요. 사실 끌려온 사람이 한 두 사람이겠어요? 그런 사람 없다면서 내치더래요. 사정사정 했는데도 안받아주더래요. 나중에는 육두문자 써 가면서 위협을 하기에 할 수 없이 쫓겨 나와서 그 여자 분한테 다시 얘기를 하니까 ‘혹시 돈 좀 쓸 수 있겠냐.’고 그러더래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 판국에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지. ‘돈 말고 현물도 뭐 없느냐.’고 하기에, 어머니가 패물을 그 여자 분한테 줬답니다. 그걸 받아가고 며칠 후에 그 여자 분이 ‘서대문 형무소 아무개를 찾아가서 이야기 해 보라.’고 어머니한테 알려 주더래요. 어머니는 다음날 서대문 형무소에 가서 아무개를 찾았대요. 그러니까 어머니를 들여보내 주더래요. 그러고는 ‘당신이 여성동맹에서 보내서 온 사람이냐?’고 확인을 하더래요. 그 사람의 안내를 받으면서 온 감방을 다 뒤져 봤는데 아버지는 없더래요. 1,2,3층 다 뒤지고도 없어서 지하로 들어가니까 퀴퀴하고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났대요. 그래도 당시에는 사람 찾는 것에 집중하느라 두렵지도 않고 냄새에도 신경 안 쓰이더래요.

어느 감방에 들어가니까 중범죄자들만 모여 있는 곳인가 본데, 간수가 앞에 지키고 서서 접근을 못하게 하더래요. 그래서 어머니 안내해 주던 사람이 사정을 설명하고 책임자 좀 연결시켜달라고 했더니, 안쪽에 뭐라고 소리를 치면서 책임자를 불러 주더래요. 그 책임자가 나오길래 ‘면회 좀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여기는 안된다.’고 했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박 아무개 여기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좀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들어가 보더니 좀 있다가 나오지도 않고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러더래요.

그 말 듣고서 우리 어머니가 ‘그럼 좀 보자, 사람이 여기까지 왔는데 왜 못 보게 하느냐?’고 몸부림치면서 말씀하셨대요. 그러니까 간수가 위협을 하면서 안 된다고 막았대요. 어머니 안내해 주던 사람도 어머니를 거들어서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좀 보여주시라. 크게 잘못될 것은 없지 않겠느냐?’고 말을 했대요. 그런데 그 간수가 ‘여기는 일반인을 비롯해서 누구도 접근을 못 하는 곳이다.’라고 하면서 나가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가 마침 벽 위쪽에 감방 창문이 있는 걸 보셨대요. 그 창문으로 보니까 캄캄한 감방 한가운데에 침대가 놓여있더래요. 그 침대에 누워 있는 게 꼭 아버님 같더라는 거예요. ‘저기에 누워 있는 게 내 남편 아니냐.’고 막 소리를 지르니까 간수가 육두문자 써가면서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러느냐, 죽고 싶냐.’고 몰아붙이더래요. 그렇게 나오니까 안내원도 어머니한테 나가자고 해서 결국 끌려 나오다시피 나오셨대요. 그게 마지막이죠. 그 이후로는 전혀 모르죠.


남은 가족의 생활

〈아버지가 이미 정치보위부에 의해 피랍된 것을 알지 못한 내무서원들에 의해 어머니가 끌려가 고문을 당함.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함>

문_ 어머님이 혹시 생존해 계신가요?

답_ 어머님은 66년도에 돌아가셨는데 연세가 쉰여섯, 일곱쯤 되셨어요. 내가 군에 있을 때였죠. 아버지 납치돼 간 이후로 어머니가 고문당하고 나서는 겨울철 같은 때 애를 많이 먹었죠.

문_ 어머님이 고문을 당하셨어요?

답_ 아버님이 피랍되고 난 후에 한 1개월 정도 되었을 때니까 8월 한여름이었죠. 한밤중에 어머니가 끌려가셨는데, 아버님은 정치보위부에서 나와서 잡아간 거고,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정원에서 잡아간 거죠. 어머니는 당시 내무서에서 잡아간 거고, 지금으로 치자면 경찰서죠. 이 두 부서에서 정보 공유가 안 됐나 봐요. 그러니까 정치보위부에서 아버지를 이미 잡아갔다는 걸 모르고 내무서에서 아버지 잡으러 또 나온 거야. 우리 집 가택수색을 하고는 ‘베개는 10개 있는데 사람은 9명밖에 없다’면서 아버지 어디에 숨겼느냐고 어머니를 또 잡아다가 고문한 거예요.

하여튼 잡혀가신 지 하루 지나고 오후 네 다섯 시쯤 됐을 거예요. 그 때 여러 사람들이 나를 막 불러요. 저는 그때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으니 완전 철부지였죠. 그 사람들이 ‘야! 네 형 좀 데려와라!’고 그래요. 그런데 형님들이 잡혀갈까봐 숨어서 없었어요.

큰 형님들이 없으니까 큰 누이, 제 바로 위에 형, 저 이렇게 셋이서 나가봤더니 어머니가 축 늘어져가지고 거의 죽다시피 돼서 업혀 오시는 거예요. 저희가 힘이 없으니까 가마니를 얻어가지고 거기에다 어머니를 눕혀서 반은 끌고 반은 들고 이런 식으로 집에 왔어요. 신문로 사거리에서 저희 집까지는 500m정도 됐어요. 힘들게 끌고 와서 큰누이가 어머니 고문당한 옷 벗기고 씻기고 했어요.

그 때 여성동맹에 있던 마음 착한 여자 분이 오셔서 어머니한테 고생하셨다고, 그래도 죽지 않은 게 어디냐면서 위로를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한 이틀을 집에서 쉬시고는 또 일을 하러 나가셨죠.

문_ 어머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드셨지요?

답_ 당시 상황을 ‘경제적’이란 사치스러운 단어로 표현 못하죠. 지금의 꽃제비들 있잖아요. 그거 연상하시면 돼요. 보통 2,3일 굶는 건 다반사고. 군부대에서 버리는 음식들이 있어요. 여름철에는 두부가 잘 쉬잖아요. 그래서 그걸 기름에 살짝 튀겨요. 튀긴 게 또 쉬어요. 그럼 그걸 내다 버려요. 그 내다버린 걸 몰래 주워서 흙만 털어내고 먹었어요. 사람이 배가 고프면 살인은 빼고 별 짓을 다해요. 도둑질까지 해요. 내가 하도 배가 고프니까 남의 집에 들어가서 밥도 훔쳐 먹어봤어요. 지금 이 자리니까 그런 얘기도 하지요.

드라마에서 보면 포탄 줍는 애들 나오잖아요. 내가 꼭 그랬어요. 사격장 같은데 미리 가서 숨어 있다가 보면 끝났다고 깃발을 흔듭니다. 그럼 뛰어 나가요. 아직 총알이 핑핑 날아다녀서 자칫하면 총알 맞아 죽어요. 그래도 남보다 먼저 뛰어가서 총알 한 개라도 먼저 주우려고 사정없이 뛰어나가죠. 그 총알들 갖다 팔면 하루 이틀은 연명하거든요.

요즘 분들은 이해를 못 하시겠지만, ‘밥을 늘여 먹는다.’라고 하죠. 밥을 해서 죽처럼 만들어 놔요. 그럼 하루 먹을 분량으로 이삼 일을 더 먹을 수 있어요. 그것도 안 되면 국수를 사다가 조금 삶아가지고 된장국에다가 끓이는데, 그걸 불어터지도록 끓여요. 하루 종일 그거 몇 젓가락 먹는 거예요.


연좌제 피해

〈공무원 시험은 물론 군대에서도 연좌제 문제로 감시를 많이 받았으며 연좌제로 인해 부대마저 옮겨야 했음>

문_ 연좌제 피해가 어떤 게 있으셨나요?

답_ 공무원 시험 보면 신원조회 들어가잖아요. 그럴 때 나오는 거예요. 군에서도 그랬어요. 내가 1965년 1월 29일에 입대했는데, 연대 정보과에 배치 받고 근무하니까 치안본부에서 신원조회를 하더라고요. 그 후에 인사과에서 박 상병 좀 와보라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시느냐고 물어보니까 박 상병 개인 신상 문제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올라가봤더니 서류를 하나 주면서 ‘이거 박 상병 앞으로 온 거니까 누가 뜯어보면 안 된다.’고 그래요. 그 문서 수발계에서 인수인계 받고 또 도장 찍고 가져와서 보니까, 저희 사돈집까지 조사를 했더라고요. 그래도 어떡해요? 그걸 첨부해서 결제를 올리니까 그 자리에서 그냥 인사과로 연락해서 저를 소총부대로 보내더라고요.

또 휴가 나와서는 어머니도 돌아가셨으니까 내가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큰 누이네 가보면 누이가 그러는 거예요.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느냐.’고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경찰서에서 수시로 나와서 확인하고 가고 그런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소리하느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확인을 하느냐, 누나 보다시피 지금 군 생활 잘하고 있는 데 무슨 소리하느냐.’고 그러니까 ‘다 네 아버지 때문에 그러는 거다.’라고 그래요. 그게 얼마나 가슴이 아파요. 그런 연좌제가 없어진 게 얼마 안돼요.


정부에 바라는 말

〈아버님이 납치된 결정적인 사유가 된 인도교 폭파 사건 등에 대한 과거사 정리를 다시 하기를 바람>

문_ 대한민국 정부에 바라는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답_ 글쎄요. 과거사 정리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 바라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단 아버지 생사확인을 해야 되지 않겠어요? 또 이승만 대통령이 왜 그런 식으로 했는지 그것 좀 규명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요. 물론 그 사람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겠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했는지, 왜 한강 인도교를 폭파시켰는지. 당시에 채병덕 씨는 전사했는데 책임자라고 결론 냈잖아요. 사실 채병덕 씨 잘못만도 아닐 텐데요. 그 당시 국방장관이 신성모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다 떵떵거리고 잘 살아요. 이런 게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거죠. 이런 잘못된 거 진상규명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_ 연좌제 피해에 대해서도 국가에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신가요?

답_ 글쎄요.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무슨 보상을 바라겠습니까?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내 나라고, 내 나라의 국민 아닙니까? 국민으로서 나는 국가에 한다고 했습니다. 납세 잘 했고, 국방의 의무도 이수했고. 내가 할 건 다했어요. 엄밀하게 따져서, 국가에서는 나한테 뭘 해줬습니까? 그러면서 연좌제나 걸어요? 그건 말이 안 되지요. 잘못된 게 참 많아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지금쯤이면 돌아가셨겠지만, 아버님께 남기고 싶은 말씀 한 마디 해 주시겠어요?

답_ 아버지! 벌써 60년이 지났죠. 반 백 년이 지났습니다. 부디 꼭 살아 계셔서 한 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끌려가실 때 내가 왜 못 쫓아갔는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한스럽습니다. 아버지, 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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