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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용석(증언자-박태흥)
이름: 관리자
2016-12-13 16:51:29  |  조회: 1369


피랍인

생년월일: 1895년 11월 20일

출생지: 충남 서산군 인지면

당시주소: 충남 서산군 인지면 성리

피랍일: 7월 초순 아침

피랍장소: 자택

직업: 공무원 (인지면 면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명

외모/성격: 검소하고 강직하였음


증언자

성명: 박태흥(1933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직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자는 공무원인 면장이었으며, 마을을 지키라는 군수의 지시에 따라 피난을 가지 않고 임무를 다하다가 7월 초에 납치되었음.

- 조사할게 있다며 찾아온 인민군에 의해 끌려갔으며 당시 집안에 있던 상당수의 재물도 함께 빼앗김.

- 아버지에 대한 평생의 그리움 때문에 증언자가 ‘아버지 마지막 가신 길’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함.


직업 및 활동

<당시 공무원으로 서산군 인지면 면장이었음>

문_ 피랍자의 당시 직업이 무엇이지요?

답_ 서산군 인지면 면장이었어요. 별정직 5급의 공무원이요.

문_ 피난을 가지 않은 이유가 뭐지요?

답_ 당시 서산 군수가“면장들은 멀리 가지 말고 임지에서 동향보고를 하루에 한 번씩 해라”하고 지시를 내렸어요. 피난 갈 기회는 많았는데, 부친이 강직하고 진솔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신 거지요.


납북 경위

<7월 초 다수의 인민군이 와서 집안의 재산을 압류하고 피랍자를 포승줄로 묶어 서산경찰서로 끌고 감>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죠?

답_ 6‧25나던 해 7월 초순경 낮에 인민군들이 공포탄을 쏘며 집에 들어왔어요. 식구들 나오라고 해서 전부 마당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만 포승줄로 묶더라고요. 이유는 밝히지 않고 그냥 조사할게 있으니까 가야 되겠다고 조용히 이야기하더라고. 그리고는 압송해서 서산읍까지 약 4km 넘는 거리를 도보로 데려가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뒤를 따라갔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가택 수색을 하고 마차에 식량, 돈, 가구, 비료 이런 것을 싣고 갔어요. 또 직인이나 금고 열쇠같은 아버지 물건을 압수해서 마차는 마차대로 가고 아버지하고 인민군은 별도로 작은 길을 따라서 서산읍까지 왔지요.

문_ 왜 같이 가셨어요?

답_ 아버지가 가시는데 안 따라 갈수가 있나요? 인민군 그 사람이 “학생은 오지 마라, 아버지 저녁에 집에 갈 거다.”이렇게 이야기하긴 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헤어져요? 그냥 서산 경찰서 정문까지 따라갔지요.

문_ 아버지 면회를 하셨나요?

답_ 제가 매일 경찰서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기다렸어요. 보초 서는 사람들 보고 면회 좀 하게 해 달라고 하니까 지금 조사 중이라서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사나흘 후부터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지금 없고 조사받으러 다른 데로 갔다.’고 해서 결국 면회를 못했죠.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 달간 계속 가 보았지만 애초부터 면회를 아예 할 수가 없었죠.


납치 이유

<집이 부유했고 직업이 면장이었기 때문에 반동분자로 몰린 것으로 추측>

문_ 피랍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_ 우리 집이 땅을 많이 소유한 지주 집안이고 아버지가 면장이라는 이유로 잡아갔을 거예요.

문_ 마을에 좌익들이 많았습니까?

답_ 우리 마을은 성리 1구인데 좌익이 없었어요. 그러나 성리 2구에는 좌익들이 몇 명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신고를 안했으면 인민군이 못 왔겠지요.

문_ 큰 형님은 그때 피해를 보셨나요?

답_ 인지면에 화수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에는 좌익이 많이 있었어요. 아버지 소식이 끊긴 후에 이번에는 형님이 반동분자라는 이유로 끌려가서 많이 맞았어요. 거의 반 죽게 된 사람을 데려와서 간신히 살렸어요.


납치 후 소식

<총살당했다는 소문 이외에는 전해지는 것이 없었으며, 시체 역시 찾지 못함>

문_ 납치 이후로는 아버님을 못 만나신 거예요?

답_ 못 봤지요. 그러다 학살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인민군들이 서산읍 소탐산 밑에서 반동분자를 전부 쏴 죽였다는 소문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그 산에 가 보셨는데, 한 두구가 아니고 짐승이 다 파먹고 부패한 시체 수십 구가 골짜기에 있었대요.

그런데 마침 아버지가 잡혀가실 때 입고 계셨던 옷이 어머니가 해 주신 중의적삼이라는 게 생각나신 거예요. 재봉틀이 아니라 손으로 바느질을 해서 만들었거든요. 어머니 손으로 만들었으니 보면 아시죠. 몸은 훼손되었으니 모르더라도 입은 옷으로는 찾지요. 그런데 못 찾고 돌아오셨어요. 그 이후에 어머니는 일주일 이상 밥을 못 드셨죠. 남의 시체 수십 구를 만졌으니 얼마나 냄새가 지독하고 끔찍했겠어요.

문_ 그게 언제지요?

답_ 아버지가 끌려가신 지 2주가 좀 넘었을 때니까 7월 20일 쯤 될 거예요. 추측컨대 조사를 다 끝내고 죽이지 않았나 싶어요.

문_ 당시에 잡혀 간 다른 사람들의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북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은 못 듣고‘어디론가 데려 가서 새벽에 죽였는데 죽은 사람이 한 20여 명이다.’라는 소문을 들었어요.

문_ 당시에 납북자 신고는 하셨나요?

답_ 하지 않았었어요. 납치당하신 후 바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2013년 6‧25전쟁납북자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를 해서 납북자 인정을 받았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은?

<증언자 역시 피랍될 뻔했지만 다행히 피난을 갔다가 서산 수복 이후 집으로 돌아옴. 그러나 생계 수단이 없어 가족이 상당히 어렵게 지냄>

문_ 아버님 납북 이후에 남은 가족은 위험하지 않았나요?

답_ 아버지가 잡혀간 후에 나까지 위험하다고 누군가가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집근처 산에 숨어 지내면서 밥 먹을때만 집에 왔다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에는 “어머니를 잡아갔으니 네가 가야 어머니를 내주겠다” 이렇게 연락이 왔대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동네분이 “어머니는 죽이지 않을 거지만 너는 죽일지 모르니까 가지 말라” 일러 주대요. 그래서 가지 않고 수복될 때까지 더 멀리 외갓집에 가서 피해있었어요.

문_ 수복 이후에는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이후에는 식구들끼리 모여 살았어요. 그런데 인민군들이 집안 재산을 전부 가져가서 생활이 어려웠어요. 또 6‧25 나던 해는 가물었고, 모를 심은 다음에 전쟁이 나는 바람에 논 관리를 못했지요. 논 한마지기에 쌀 두 가마씩 해서 바꿔먹었어요. 그러다보니 논 30마지기가 금세 없어졌어요. 

 

호적 정리

<정리함>

문_ 아버님 호적 정리는 하셨어요?

답_ 돌아가셨다고 생각해서 7월 4일에 돌아가신 걸로 호적정리를 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으셨어요?

답_ 그런 것은 없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공무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다 피랍된 것에 대한 명예회복 및 예우>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답_ 지금 와서 제가 돈을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의 서산 시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아버지에 대한 예우를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버님은 공직에 계시고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피난도 안가셨다가 납치를 당했잖아요. 그래서 아버지 같은 분들을 위한 위령탑 등의 조형물을 만들거나 추모제를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내가 나이가 먹으니까 더 간절해요. 제가 오죽하면 사부곡을 썼겠습니까?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께 전할 말이 있으신가요?

답_ 아버지! 제 나이 80이 넘었지만 지금도 무척이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아버지보다 더 똑똑한 사람 되라.’ 하시던 말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식은 물론 손자까지도 아버지 말씀을 전승하고 있습니다. 또 아버지가 ‘죄 지은 것 없으니까 돌아올 거다.’라고 하셔서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막걸리를 한잔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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