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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노성(증언자-김기정)
이름: 관리자
2016-12-13 16:26:47  |  조회: 1370



피랍인

생년월일: 1903년 11월 29일

출생지: 강원도

당시 주소: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번지 352호

피랍일: 1950년 8월 6일 아침

피랍장소: 자택

직업: 중앙청(군정청) 물가감찰부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3남 2녀

외모/성격: 온순·자상·꼼꼼한 성격


증언자

성명: 김기정 (1937년생)

관계: 딸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대한민국의 재정부의 물가감찰부장을 역임하던 중 피랍됨.

- 피랍인은 가족에 대한 걱정과 공무원으로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갖고 피난을 가지 않았음.

- 피랍인을 납치해 간 이후 2번 더 와서 피랍인을 데려오라며 가족을 협박함.


직업 및 활동

<일본 유학을 다녀온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이었으며, 슬하에 3남 2녀를 두고 있었음>

문_ 아버님 출신 학교와 직업을 말씀해 주세요.

답_ 서울에서 배재학당 나오신 다음에 동경 명치대학 법정대학으로 유학을 가셨죠. 유학 다녀오신 후에는 공직 생활을 하셨는데, 왜정 때니까 총독부에 계셨죠. 그리고 해방 후에는 군정청, 1948년 8월 15일 건국 이후에는 정부에서 물가감찰부장을 하셨어요. 공직자니까 충실하게 공직 생활만 하시고 다른 사회 활동은 안 하셨어요. 그러다가 48살에 납북되셨죠.

아버님에 대한 추억은 말도 못해요. 여름이면 어김없이 인천해수욕장에서 수영을 가르쳐 주셨고, 아버지와는 추억이 많죠. 그런 아버지를 잃어버렸으니 말로 다 형용을 못하죠.

문_ 당시 함께 사시던 가족은요?

가족은 오빠 한 명, 나, 남동생 한 명, 엄마, 아버지 그렇게 다섯 식구였어요. 원래는 3남 2녀인데 하나는 시집을 가고 큰 오빠는 군산 해양대학에 유학을 했어요.


납북 경위

< 50년 8월 6일 아침, 집에 들이 닥친 2명의 내무서원에 의해 끌려간 후 소식이 없음>

문_ 납북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답_ 50년 8월 6일 아침이었어요. 밥상을 받고 있는데 전혀 모르는 두 명의 사람들이 내무서에서 왔다면서 저희 아버지를 찾더라고요. ‘왜 데리고 가려느냐.’고 물어봤더니‘내무서에 가서 좀 알아볼 게 있으니까 잠깐이면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하셨어요. 그런데 옷을 갈아입으시면서 벌써 얼굴이 창백해지시더라고요. 아버지가 방에서 옷 갈아입으시는데 그 사람들이 딱 지키고 서 있었어요. 그리고는 아버지를 가운데에 세우고 양쪽에서 데리고 나가더라고요. 내가 대문 밖 큰길가까지 나갔었어요. 그러고서 인제 안보일 때까지 서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따라 가야지. 지금 내가 집에 가면 안 되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도‘에휴, 그 때 내가 그냥 따라 갈 걸…’이런 생각을 하고 후회를 해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대문 경찰서에 모두 끌려갔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전부 서대문 경찰서에 데려다 가두었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끌려간 사람들이 밤에 미아리 고개를 지나가는 광경을 본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새끼줄로 이렇게 엮어서 데려가더라.’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그렇게 가셨겠구나 생각을 하는 거지요. 아버지가 연세가 있고 학벌이 있으시니까 북에서도 탄광은 안 가실 것 같고, 심한 고생은 안 하실 것 같다고 위로의 말들을 사람들이 해 주더라고요.

문_ 8월이면 전쟁이 터지고 한 달이 넘은 상태였는데 왜 피난을 안 가셨지요?

답_ 아버지는 정직하게 사는 분이셨어요. 매일 라디오 듣고 정부만 의지하고 그러셨어요. 엄마도 불안하니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당신 몸을 좀 피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요. 날마다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시면‘내가 무슨 죄를 졌나. 대한민국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는 게 당연한 거지.’이러면서 괜찮을 거라고 그러시더라고. 가족을 놓고 어디로 잠깐 피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전혀 안하시더라고요.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으셨던 것 같아요.


납치 이유

<지인 윤씨가 밀고했을 것으로 추측. 납치 이후에도 2차례 피랍인을 데리러 집으로 찾아와서 위협을 가하였음>

문_ 아버님이 잡혀 갈만 한 이유가 있을까요?

답_ 윤씨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반동분자라고 신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됐어요. 윤씨는 늘 아버지가 가깝게 지내시던 분이었어요. 우리 집에도 놀러 오시고 하던 분인데 아버지 잡혀가시고는 한 번도 우리 집에 안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추측하는 거죠.


납치 후 소식

문_ 납치 후 소식은 있었나요?

답_ 아버님 소식은 통 몰랐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이미 납치 된 후에 다른 낯선 사람들이 두 번이나 왔었어요. 아버지 내놓으라면서 아버지 어디에 숨어있는지 대라는 거예요. 엄마한테만 위협을 하는 게 아니라, 내 가슴에도 총을 대고는 숨겨 놓은 아버지 내놓으라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이미 납치되셨잖아요. 그래서 내가 도리어‘내가 묻고 싶은 말을 당신들이 대신 하는 거냐, 우리 아버지 어디에 데려다 놨느냐.’하면서 반항을 하고 그랬어요.

문_ 아버님을 잡으러 총 세 번을 온 거잖아요. 왜 그렇게 자주 왔다고 생각하시죠?

답_ 그래서 우리 식구끼리 했던 이야기도 ‘자기네들끼리도 연락이 안 되나 보지. 그런데 왜 그렇게 서로 연락이 안 될까? 두 번씩이나 왜 그렇게 왔을까?’ 이런 의문을 가졌었죠.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윤씨가 밀고를 해서 아버지가 그 사람들 계획보다 일찍 납치되었구나.’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거죠.

문_ 납북자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신고 받을 때 마다 번번이 다 했어요. 신고는 다 했어요. 다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창동에 이사 온지가 13년 됐는데 작년에 도봉구에서 구청에다 신고하라고 그래요. 그래서 신고를 했더니 금년에, 그러니까 2013년에 이렇게 이미일 이사장님이 납북자 가족협의회 일을 추진해서 벌써부터 활동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된 거잖아요.


남은 가족의 생활

<집에 있던 옷가지를 팔아 식량을 구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풀을 뜯어 연명하였음>

문_ 아버님이 납치당하신 이후에 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답_ 아버지 납치 되던 날 바로 저희 엄마가 배낭에다가 은수저, 옷, 금반지 같은 것들을 싸서는 작은 오빠한테 주면서 밤에 잠도 안 재우고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 보내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세 식구로 줄은 거예요. 남동생하고 엄마하고 나만 남은 거예요. 엄마가 옷 한 벌 가지고 동대문 시장가서 팔아서 양식 사 오시면 그걸로 죽을 쑤어 먹고, 또 밖에 나가서 풀 같은 것도 뜯어다가 연명하고 그러고 살았어요.

문_ 전쟁 끝날 때 까지요?

답_ 아니죠. 언니 시댁이 충청남도 서천이에요. 1·4후퇴 때는 거기로 피난을 갔어요. 언니네 시댁에서 세 식구가 겨울을 났죠. 그리고 봄에는 부산에 가서 1학년으로 복학을 했어요. 그 후에 53년 10월 10일까지 본교로 등교를 하라고 그래서 서울로 돌아왔어요. 작은 오빠도 죽지 않고 살았고 통역 장교가 되어 있더라고요.

문_ 어머님이 아버지에 대해 뭐라 하셨나요?

답_ 그런 거 말로 다 못하죠. 엄마가 날마다 하던 말씀이 ‘얘, 내가 이북에 좀 가볼까?’ 그러세요. ‘엄마가 무슨 재주로 가?’ 그러면 ‘걸어서 가지 뭐. 늙은이 죽일라고?’이렇게 날마다 이북까지 걸어 가볼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리고 북한에다가 ‘못된 놈들 멀쩡한 사람 데려다가 생사도 모르게 해놓고.’하며 원망하셨어요. 한편 대한민국 정부도 너무 야속하다고 그러셨어요.


호적 정리

<2013년이 되어서야 호적정리를 했음>

문_ 호적 정리는 어떻게 하셨어요?

답_ 2012년도에 가정법원에서 뭐가 왔어요. 그래서 갔더니 ‘이렇게 백 살이 넘으신 분을 호적정리도 안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호적정리를 해야 한다.’면서 하라고 하기에 남동생과 같이 가서 했어요. 그런데 이게 1년 이상 걸릴 거라고 그래요. 결과적으로 올해 10월 경에 다 정리가 됐어요.

문_ 기분이 어떠셨어요?

답_ 기분이 그냥 묘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그랬어요. 이제는 영영 없어진 거고, 이제 흙으로 돌아가신 거고. 마음이 좀 울적했죠. 그래도 워낙에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동생은 그냥 무덤덤하더라고요.


연좌제 피해

<연좌제 피해는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으셨어요?

답_ 없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북한에 아무 말 못하는 정부에 대해 실망하는 마음이 있으며, 유해라도 찾아주기를 바람>

문_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답_ 정부가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합니까. 납치자에 대해서 일절 언급도 없고. 내가 시종일관 하는 말이 ‘이산가족은 만나게 해 주면서 왜 납치자 가족은 못 해주느냐.’고 그랬어요. 정부에서 좀 강경하게 대응해서 우리가 유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죽기 전에 꼭 유해로라도 만나고 싶고, 아버지가 언제까지 아버지가 사셨는지 그런 것도 좀 알고 싶고 그래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답_ ‘아버지! 얼마나 우리가 보고 싶으셨어요.’ 그런 거죠 뭐. 그리고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하고 여쭤보고 싶어요. 어떻게 사셨을까 궁금한데 100살이 넘으셨으니까 살아 계실 리도 만무하고, 그렇죠.

문_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같은 건 없으세요?

답_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저 우리 이사장님이 시작을 했고 우리가 잘 협조 할 테니까 계속 강경하게 대응해서 생사라도 알고 저네들한테서 잘못했다는 사과 좀 받고 싶어요. 사람이 양심이 있는데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단란한 가정을 다 망가뜨려놓고 잔인하게 파괴해 놓았으니 피해자들한테 사과를 해야죠. 우리는 당연히 사과를 받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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