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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규흥(증언자-김하진)
이름: 관리자
2016-12-13 14:51:38  |  조회: 1399


피랍인
생년월일: 1917년 4월 2일
출생지: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912번지
당시 주소: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912번지
피랍일: 1950년 겨울
피랍장소: 자택
직업: 가을(현 북포)초등학교 교사
직계/부양가족: 부인, 아들, 딸
외모/성격: 172cm 건강한 체형, 외모가 준수하고 온순한 성격


증언자
성명: 김하진(1943년생)
관계: 아들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지인 한 사람을 앞세운 무리들이 밤중에 들이닥쳐 피해자를 납치해감.
- 평상복을 입었으며, 수갑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백령도 경찰서로 연행해 2달 정도 갇혀있다 장연감옥으로 끌려감.
- 장연감옥에서 1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불에 타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음. 


“연행시기가 겨울 같아요. 왜냐하면 밤중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버님이 주무시다가 내의 차림으로 누구 찾느냐고 나가보셨는데 그 자리에서 그냥 잡혀갔으니까요. 어머니가 막 우시면서 옷이라도 입혀서 데려가라고 하니까 아버지 잡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 잠깐이면 되니까 그냥 가자.’ 이렇게 해서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직업 및 활동

<신의주 삼무학교에서 수학하고 수풍발전소에서 일을 하다 고향인 백령도로 돌아와 교편을 잡음>

문_ 아버님 출신 학교가 어디시죠?
답_ 신의주에 일본사람들이 세운 삼무학교라고 들었습니다. 졸업앨범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공부할 때 학교에서 앨범을 만든다고 그래서 참고하라고 줬다가 분실했어요. 삼무학교는 지금으로 말하면 대학과정인데요. 전기공학이라든지 수학과 같은 여러 학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앨범을 봤던 기억에 의하면 지금의 연세대나 고려대처럼 스포츠 팀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농구·축구·배구·스케이팅부 등 이런 서클들의 규모가 상당히 큰 학교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문_ 삼무학교에서 전공은 혹시 어떤 것을 하셨나요?
답_ 이공계 같아요. 수풍발전소에서 일을 하셨고 그 후에 백령도에 돌아와서 교사 일을 하셨습니다. 해방되자마자 내려오셨거든요. 제가 5살 때 기차타고 내려온 기억이 있어요. 저는 신의주에서 태어났고 5살 때 아버지 따라 내려온 거죠.

문_ 아버님이 다른 사회 활동은 안 하셨나요?
답_ 안 하셨어요. 하실 여유도 없었고요.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 들었는데 백령도에 학교가 네 개 정도 있었어요. 진촌이라는 데에 하나, 장천에 하나, 북포리에 하나, 사곶이라는 데에 하나가 있었는데 백령도가 조그마한 섬이니까 학생들이 많지 않잖아요. 아마 통합해서 책임을 맡아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인천 교육청에 자주 왔다갔다 하셨으니까요.


납북 경위

<백령도의 특성상 피난을 가지 못하고 집에 있다가 납치당함>

문_ 전쟁 나고 피난은 가셨나요?
답_ 피난은 백령도에 있는 산으로 갔었어요. 다른 데는 갈 수가 없잖아요. 그 때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타고 인천으로 가야 하는데 배가 있기는 있었지만 그 배가 인천까지 가려면 20시간 걸렸으니까요. 몇몇 동네 사람들과 산에 가서 소나무 같은 것으로 은신처 만들어서 한 3일 지내다가 내려왔어요.

문_ 언제 납치 되셨나요?
답_ 납치된 시기가 겨울 같아요. 왜냐하면 밤중에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아버님이 주무시다가 내의 차림으로 나가보셨다가 그 자리에서 그냥 잡혀 가셨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가 막 우시면서 ‘옷이라도 입혀서 데려가라.’고 그러셨고, 아버지 잡으러 왔던 사람들이 ‘아니다, 잠깐이면 되니까 그냥 가자.’ 이래서 그냥 그렇게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문_ 그 때 집에 같이 계셨죠?
답_ 네, 제가 그 모습을 봤습니다. 내의 차림으로 끌려가시는 것을 봤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울어서 그 소리에 깨어나 보니까 그런 상황이더라고요. 군인 복장 한 사람들은 아니고 그냥 평상복 입은 사람들이었는데, 말하자면 앞잡이들이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아시던 한 사람을 앞세워서 왔고, 나머지 두서너 사람은 아마 인민군이었는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수갑 같은 것은 안 채우고 잠깐이면 된다고 하고는 끌고 나갔는데, 그 이후로 바로 백령도 경찰서 감옥에 갇혀 계셨어요. 아마 한 두 달 쯤 거기 계셨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거의 매일 면회를 가셨어요. 저희 동네에서 그 진촌리 경찰서까지 30리 길이에요. 그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없으니까 걸어 다녀야 하는데, 아버님 잡수실 음식이며 옷가지며, 옷을 안 입고 가셨으니까요, 챙겨서 가신거죠. 그런데 챙겨 가지고 가셨던 것 그대로 도로 가지고 울면서 돌아오시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어떤 때는 저보고 ‘만약에 내가 늦으면 네가 밥을 좀 해라.’ 하시면서 밥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밥을 했습니다.


납치 이유

문_ 납북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답_ 다른 이유는 없는데. 농촌이니까 저희 집에 소 한 마리가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아버님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소를 끌고 집에서 가까운 인민군 부대 본부 맞은편에서 소를 몰면서 그 쪽을 쳐다본 일 밖에 없을 거예요. 그게 이유가 될 리는 없는 것 같고요. 당시에  한 4-5개월 교사들한테 월급을 안 줬다고 해요. 6월부터 인민군들이 쳐들어온 후 5~6개월 동안 월급을 주지 않으니까 교사들 생활이 어려울 것 아닙니까. 아버지가 그런 상황을 대표로 얘기했던 것 때문에 사상범으로 몬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납치 후 소식

<백령도 경찰서에서 2달 정도 갇혀 있다가 장연 감옥으로 이송됨. 그 이후 함께 수감된 100여명과 함께 불에 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됨>

문_ 경찰서에 두 달 정도 계셨다는 말씀이죠?
답_ 네, 경찰서 감옥에서요. 그 후에 황해도 장연읍으로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백령도에서 물 건너가면 장산곶, 거기에서 좀 더 들어가면 장연이라는 데가 있거든요. 거기로 끌려 가셨다고 어머니를 통해 들은 거죠.
거기가 읍 감옥이니까 면 단위에서 다 모아온 사람들이 100여 명 정도 있었다고 보는 거죠. 백령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 사상범으로 걸린 사람들을 모아놨다가, 우리 국군이 저 평양까지 북진했을 때가 있잖아요, 그 때 급하게 도망가야 하는데 잡아온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불 질러서 다 죽이고 간 거죠. 지금 거기 이북 땅이니까 가 볼수도 없고요. 아버지 시체도 찾지 못했고,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도 모르지요.

문_ 화재로 사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답_ 아버님이랑 같이 교사 생활 하시던 한 분이 아버지가 장연 감옥소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서 그곳에 가셨어요. 그 분이 직접 장연 감옥소에 가서 확인하고 와서 어머니한테 알려주신 거죠. 그래서 알게 된 거죠.

문_ 그게 언제였나요? 
답_ 그러니까, 한참 혼란기죠. 우리가 북진하고 막 중공군이 투입되었을 그 혼란기라고 생각이 되요.

문_ 그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답_ 확실히 돌아가신 거죠. 100명이 전부다 죽었다고 하니까. 100명 가운데 1명이 극적으로 탈출해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저희 아버지는 아니고 확실치도 않고요. 저희 아버님과 같이 일하시던 교사분이 직접 가서 듣고 확인하고 온 이야기이고 그 분이 아버님 시체를 확인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남은 가족의 생활

<집안에 토지가 좀 있었으며, 어머니가 이후 재혼을 하게 됨>

문_ 그 후 생활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답_ 농토가 조금 있으니까 그걸 경작하셨고. 그리고 북한에서 6·25때 피난 오신 분들이 많았잖아요. 백령도로 피난들을 많이 왔어요. 저희 집에도 피난 온 두 가정이 같이 살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우리 아버님보다 한 7-8살 젊으신데, 이 분이 저희 집 일을 도와주고 하시다가 저희 어머님하고 같이 사시게 되셨어요. 새 아버님이랑 사시게 되면서 아버님 이야기를 잘 안하셨죠. 안하시고 제가 커 가면서 제가 성년이 다 된 다음에 그런 말씀을 한번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북한에 끌려가셨었다.’ 이런 이야기를요. 그래서 알게 된 거죠.
새 아버지랑 살면서 군포 쪽에 나와서 살았는데, 그 때 저희가 새 아버지 호적으로 들어갔어요. 그렇게 되어 있던 호적을 제가 한 10년 전에 다시 원상복구 시켰습니다.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답_ 그런 것은 저는 모릅니다. 사실 저는 서울서 학교를 나오고 신학을 했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목회를 쭉 했고요.


정부에 바라는 말

<재정적 지원이 아닌 따뜻한 위로를 바람>

문_ 현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혹시 있으신가요?
답_ 아버지가 교사였으니까 공무원 신분이잖아요. 공무원으로 봉직을 하다가 납치당하셨기 때문에 국가의 어떤 보상이라기보다는,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무슨 대책 같은 것, 경제적인 대책도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는 그런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지가 오래 되었어요.
한 십오륙 년 전부터 백령도 들어가서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학교에서 흔적을 찾아보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그런데 그 흔적이 없는 거야. 교육청에 알아봐도 아무런 기록도 없고, 문교부 알아봐도 없고, 이게 뭐 공중에 떠 버렸어요. 그래서 무슨 근거가 있어야 가서 이야기를 할 텐데, 내가 아무리 ‘이런 분이 우리 아버지였고 교사를 했었다.’ 이런 주장을 한들 근거가 없잖아. 그러니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목회일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2001년부터는 해외에 나가서 일을 했거든요. 그렇게 사는데 바쁘다보니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이런 위원회를 만들어서 신청을 하게 된 거죠. 그렇지만 이보다 더 분명한 대책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과의 추억이 있으신가요?
답_ 어렸을 때 추억이 있죠. 제가 일찍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게 왜 그러냐면, 그때가 어려울 때잖아요. 그런데도 아버지 도시락에는 흰 쌀밥을 해서 생선 같은 것을 구워서 드린단 말이에요. 그걸 제가 알고는 그 도시락 나도 먹고 싶어서, 같이 아버님이랑 학교 가고 싶어서 일찍 학교에 가게 된 거예요. 열 살 때 초등학교 4학년이 됐는데, 점심시간 되면 아버지하고 뒷동산, 조그만 산이 학교 뒤에 있었거든요. 그 산에서 바위 위에 올라앉아 도시락 먹던 생각이 나요. 또 아버지가 ‘너는 이다음에 크면 미국유학 보내 주겠다.’ 그런 이야기도 하셨어요. 어렸을 때지만 그런 추억, 그리고 인천에 갔다 오시면 꼭 책을 사다주셨던 기억. 그리고 귤을 사다주시고, 사과도 사다주시고. 백령도는 그런 것이 없잖아요. 그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문_ 아버님이 만약 살아계신다면 하시고 싶은 말씀 좀 해주세요.
답_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너무 보고 싶다는 거죠. 그런데 어렸을 때는 몰랐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자꾸 되살아나더라고요. 이번에도 제2땅굴 가서 북한 땅 바라보면서 ‘아버지라고 한번 크게 불러보라.’고 그래서 ‘아버지!’하고 외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참 혼났어요. 눈물이 멎지를 않아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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