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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채록

납북자-장현옥(증언자-장순례)
이름: 관리자
2016-12-19 11:11:40  |  조회: 1480


피랍인

생년월일: 1909년 9월 24일

출생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당시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250

피랍일: 1950년 9월 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상업

직계/부양가족: 첫째 부인, 외동딸, 둘째 부인, 아들 셋

외모/성격: 미남형

   

증언자

성명: 장순례(1936년생)

관계: 장녀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인은 강화도와 서울을 오가며 인조견사를 거래하던 상인이었음.

- 전쟁 발발 한달 후 서울 집에서 고향인 강화도로 피난을 갔으나 그곳에서 끌려감.

- 그의 가족들이 피랍인이 개성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이후 소식이 없음.


직업 및 활동

<서울과 강화도를 오가며 인조견사 사업을 하는 사업가였음>

문_ 피랍인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답_ 강화와 서울을 오가면서 인견 사업을 하셨어요. 아버지 고향인 강화에서는 인견 사업을 많이 했어요. 인조를 많이 짜가지고 서울에 가서 팔면 이윤이 좀 남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하셨나 봐요.

문_ 다른 사회 활동은 안하셨어요?

답_ 장사만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대신 공산주의는 절대 반대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문_ 피랍인의 가족은 어떻게 되지요?

답_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딸인 저 하나밖에 못 낳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작은 엄마를 두어서 아들 셋을 낳았어요.

강화가 고향이라 집이 거기에 있었어요. 큰 동생하고 저는 학교 때문에 아버지 따라 서울로 왔어요. 그러다가 6․25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막내 동생까지 서울로 다 오고 둘째 동생만 작은 엄마하고 강화도에 살았어요. 서울에 있던 가족들은 한 달 정도 있다가 강화도 집으로 피난을 갔는데 거기에서 아버지가 잡혀가신 거예요. 

  

납북 경위

<서울에서 강화도로 피난을 간지 얼마 되지 않아 내무서에 끌려갔음. 다행히 풀려났으나 이후 다시 피랍되어 개성으로 끌려감>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요?

답_ 강화도에 피난을 간지 며칠 안 되었으니 7월 말 정도 될 거에요. 저녁에 갑자기 누가 와서 아버지를 데리고 갔어요. 그때는 누가 데리고 갔는지도 몰랐어요. 무서워서 불도 못 켜고 말도 함부로 못하는 그런 세상이었어요. 아버지가 끌려갔으니 집에서는 애가 타잖아요. 그러다 한 5일 후에 아버지 데리고 가라고 내무서 지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업혀 오셨어요. 엉덩이가 멍 때문에 포도색으로 변했을 정도였어요.

다행히 회복은 되셨지만 얼마나 당하셨는지, 강화도에 식구들이 있지만 서울로 가시겠다면서 다시 서울로 가셨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또 인견 장사를 하신 거예요. 가족들 먹여 살리려다 보니까…. 서울에서 산 인견사를 강화도로 팔러 왔다가 집에 들렀는데 그걸 알고 내무서에서 또 잡으러 밤에 우리 집에 찾아 온 거예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고 조금 있다가 잡으러 왔더라고. 어디에 숨어서 망을 본건지. 그 바람에 식사도 못하고 끌려 가셨어요.

문_ 그게 언제지요?

답_ 먼저 잡혀 간 것은 7월 말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두 번째는 모르겠어요. 가만 있어봐. 그것도 생각해보면 나와요. 아버지가 음력 8월 스무날 개성으로 끌려가시기 전에 보름 넘게 갇혀 계셨으니까 양력으로 9월 쯤 될 거예요. 강화군 하점면 지소에서 5일, 강화읍 인견산업조합 창고에서 열이틀을 갇혀 있다가 가셨으니까요. 제가 아버지를 마지막 본 건 지소에서 산업조합 창고로 옮겨질 때가 마지막이었어요.

문_ 지소에서 5일, 산업조합 창고에서 12일간 잡혀계셨네요?

답_ 지소는 가까워서 할머니가 매일 밥을 해갔어요. 그런데 하루는 할머니가 오셔서 아버지가 강화읍으로 끌려간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가 보니까 묶여서 끌려가고 계시더라고. 키 작은 사람이 따발총을 메고 우리 아버지 한 명을 끌고 가는 거예요. 그때 본 게 마지막이죠.

그렇게 끌려 가셔서 강화 산업조합창고에 열이틀을 갇혀계셨어요. 엄마하고 할머니가 강화읍 친척집에서 밥을 해서 들여보내고 했는데 열이틀 되던 날 문이 활짝 열려져 있더래. 그래서 엄마가 “여기 사람 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니, 누가 우리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여기 비행기 많이 뜬다고 개성으로 데리고 갔어요.” 이러더래요. 그 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어느 산 고개 마루에서 아버지 일행을 겨우 찾아 붙들고 울었대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살면 돌아오죠.” 그러더래. 그날이 음력 8월 스무날(양력 10월 1일)이에요. 결국 아버지는 개성으로 끌려갔대요. 그게 마지막 소식이었어요.


납치 이유

<반동분자라는 것이 이유였음>

문_ 납치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_ 반동분자라 그러면서 잡아간 것 같아요. 아버지 잡혀간 다음에 어머니 두 분도 끌려가셨는데 얼마 있다가 풀려나오셨죠. 내무서 사람들이 고문을 하는데 손에다가 볼펜을 끼워서 주리를 틀더래. 아버지가 반동분자였다는 것이 이유였대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이후 들려온 소식이나 찾으려는 노력은 하셨어요?

답_ 해봤지요. 그래도 들은 소식은 없어요. 그때 소문이 많이 떠돌았어요. ‘어떤 사람이 개성의 어떤 창고에 있었는데 인민군이 총으로 쏘니까 죽은 사람 옆에 쓰러져 있는척해서 살아 돌아왔다.’ 그러면 우리 엄마하고 할머니하고 그 사람 찾겠다고 가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직접 듣겠다고. 그런데 찾아가 보면 헛소문이에요. 개성 수복한 이후에는 강화경찰서장 부인이 시체 찾으려고 갔는데 미군들이 있더래요. 그 미군들이 총으로 위협하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그랬겠지요. 그래서 ‘내 남편이 강화 경찰서장으로 있었는데 여기서 죽었다고 그러기에 시체 찾으러 와 봤다.’했다고 그랬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할머니랑 엄마는 미군들 통해서도 뭔가 소식을 들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또 찾아가 보셨다가 헛수고하고 돌아오시고 그랬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피랍자의 부인이 각종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감>

문_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저는 세상에 부러운 것 없이 자라다가 6․25가 나면서 신세가 완전히 뒤바뀌었죠. 안 그랬으면 미국 유학도 갈 수 있었죠. 전쟁이 원수 같아요. 어머니 두 분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몰라요. 별 장사를 다하셨어요. 과일 장사도 하고, 커다란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멀리까지 가서 팔았어요. 한 번은 친엄마가 김포에 강화 인조를 가져가서 팔고, 쌀로 바꿔서 그 쌀을 가방에 짊어지고 왔대요. 그 때 당시에 차가 있습니까? 그래서 몇 십리를 걸어서 오는데 가방 끈 하나가 뚝 끊어졌는데 엄마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땅에 머리를 박고 다리가 들리면서 넘어지고 말았대요. 그때 얼마나 아프셨는지 거기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대. 나중에는 친엄마가 인천에서 인견장사를 했어요. 강화 인견을 인천으로 가서 팔았어요. 그때 나도 같이 인천으로 나왔어요. 난 엄마하고 살고 작은 엄마는 애들 셋 데리고 강화에서 살았고. 우리 엄마가 돈 벌어서 그 집에 좀 보태 주며 살았어요. 그러다가 저는 인천에서 결혼해 살았지요. 엄마는 1995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하고 평생을 같이 사셨어요.

문_ 납북자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이번에 신고하려고 구청에 갔더니 아버지가 납북자로 이미 명부에 올라 있었어. 당시에 어머니가 신고한 것 같아요.


호적 정리

<미정리>

문_ 호적 정리는 하셨어요?

답_ 아직 안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그런 건 없었지.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강직한 사람으로 평이 난 사람인데.


정부에 바라는 말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봐 주었으면 함>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이제 팔십이 가까우니까 앞으로 살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내가 언제 무슨 좋은 소식을 듣겠어요? 그거 생각하면 더 억울해요. 나 살아 생전에 아버지에 대해 정부가 좀 더 알아봐주었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 주세요.

답_ 연세가 백 살이 넘었으니 살아 계실 리가 없지. 지금 소원은 아버지 유골이라도 찾고 싶은 거예요. 너무 불쌍해요. 살아 계시다고 한다면 천리 길이라도 가서 만나고 싶어요. 전에 통일전망대 가서 속으로 막 울고 있는데, 같이 가신 분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되겠어요? 아버지! 소리쳐 부르고 우세요.’라고 그래. 그래서 내가 많이 울고 왔어요. 그때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맺힌 한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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