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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해옥(증언자-이남주)
이름: 관리자
2016-12-13 16:31:18  |  조회: 1802


피랍자

생년월일: 1924년 12월 15일

출생지: 경기도 포천군

당시 주소: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무봉리 476

피랍일: 1950년 7월 중순 밤

피랍장소: 자택

직업: 경찰관(순경)

직계/부양가족: 부인, 자녀(2녀)

외모/성격: 키가 크고 성격이 활발 (별명이 노래잘하는 이해옥)


증언자

성명: 이남주(1936년생)

관계: 조카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 당시 경찰관이었으며 반동이라는 이유로 피랍인은 형, 큰 조카와 함께 강제로 포천경찰서로 끌려감.

- 납북자의 가족이 거주하던 포천은 38선으로부터 가까웠기 때문에 피난을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음.

- 9 ‧ 28 수복 직후에는 피랍인 형님의 가족, 즉 증언자의 가족이 후퇴하는 인민군들에 의해 학살을 당함.


직업 및 활동

<경찰관이었던 피랍인은 납치 당시 27살이었는데 이미 자녀가 둘이었으며, 활달한 성격의 호남아였음>

문_ 이해옥 씨는 어떤 분이셨죠?

답_ 제 작은 삼촌이었어요. 삼촌하고 제 큰형의 나이 차가 한 살이예요. 옛날에는 맏며느리가 시동생 젖 먹이고 다 그랬어요. 조혼들을 하기 때문에…. 이분이 27살에 납치되셨는데 그때 이미 결혼해서 딸 둘이 있었어요.

이 양반이 팔방미인이라 못하는 것이 없었어요. 해방되고서 정미소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사나이 중에 사나이였지. 결국 나중에 경찰관이 되었어요. 성격도 활달했지요. 남 퍼주기 좋아하고. 노래도 잘해서‘노래 잘하는 이해옥’이라는 별명이 있었어.


납북 경위

<당시 포천은 38도선에서 가까운 지역이라 피난 갈 엄두도 못 냈음. 1950년 7월 중순경 밤에 두 세 명의 내무서원이 무장한 상태로 집으로 찾아와 피랍인을 끌고 갔음>

문_ 언제 어떻게 납치를 당하셨나요?

답_ 1950년 7월 중순경 밤이죠. 집에서 자다가 그냥 끌려간 거지. 우리 집하고 이웃인데 삼촌 댁(증언자의 작은 어머니)하고 아이들이 막 울고 야단이니까, 요란스럽고 그래서 깼을 것 아니에요? 깨서는 식구들이 다 길에서 삼촌이 끌려가는 것을 봤지. 그때 제 나이가 15살 이었어요. 중학교 2학년이요.

문_ 누가 와서 납치를 했습니까?

답_ 내무서원이요. 두세 명의 내무서원이 와서 삼촌을 데리고 갔어요. 무장한 상태로요. 총하고 탄피를 매고 있었어요. 깜깜한 밤에 끌고 나갔으니까, 오라 같은 것은 했는지 그런 것은 기억이 안나.

문_ 경찰관인데 피난을 가지 않은 이유는?

답_ 피난가고 할 여력이 없었어요. 포천에서 38선까지 70리 밖에 안돼요. 6월 25일 오후 두시쯤에 벌써 쳐 들어왔는데 무슨 피난을 가? 피난을 가다가도 도로 들어올 판이지.


납치 이유

<납치 당시 내무서원들이나 피랍인이 남긴 말은 없었으나, 피랍인의 직업이 경찰관이며 그의 가족들이 국방경비대 소속에 지방 유지였으므로 피랍인의 가족 전체가 반동분자 숙청 대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

문_ 납치 이유는 무엇인지 아시나요?

답_ 삼촌 직업이 경찰관이었잖아요. 계급은 순경이고 그러니까 납치해갔지. 쉽게 말해 반동세력인거지. 죄목이 다 반동이었지. 우리 집이 반동분자 제 1호 숙청 대상에 들었어요. 삼촌의 형님이 계신데 이 양반은 그 때 국방경비대 무슨 수사과인가, 수사기관에 있었어. 해방 되자마자 국방경비대에 들어가셨거든. 그러니 삼촌도 그렇고 우리 큰 형님도 그랬지. 우리 아버지는 포천군 유지시고, 우리 할아버지도 포천에서 함자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리 행세하고 살았으니까.

문_ 납치되실 때 삼촌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답_ 무슨 경황이 있어. 그냥 발버둥 치는데 끌고 가는 거지 뭐.‘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느냐.’그런 말씀이나 있으셨겠지.


납치 후 소식

<9·28수복 이후 후퇴하던 인민군에 의해 집단으로 총살당한 것으로 추측. 피랍인의 부친과 당숙이 시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찾지 못함>

문_ 어디로 끌려 가셨지요?

답_ 이튿날 할아버지하고 나하고 내무서에 갔지. 내무서가 지금으로 말하면 경찰서에요, 포천 경찰서. 그런데 면회도 안 시켜줘. 잘 있으니까 걱정 말고 가라고 하지. 그런데 이후에 끌어다가 총살시켰겠지 뭐.

문_ 언제 어디서 그랬지요?

답_ 9 ‧ 28 수복 때 국군이 들어왔잖아요. 삼촌이 잡혀가서 며칠 있다가 아군이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소문에 그때 그 좌익들이 잡혀간 사람들의 옷을 벗기고 팬티만 입혀가지고. 전선 같은 거 가지고 엮어서 묶어다 놓고 총살 시켰다고. 그래 그런 소문을 듣고 우리 아버지하고 우리 당숙 되시는 분하고 석유를 한통 사가지고 그 학살당한 자리를 쫓아다니면서 뒤져 봤어. 왜 석유를 가져갔냐면, 그때가 여름이라서 부패가 되니까 그 자리에서 불살라서 골분이라도 찾아오려고 그랬지. 그런데 벌써 부패가 돼서 누가 누군지를 못 알아봐. 한 오십 명, 한 삼십 명 한꺼번에 놓고 총으로 갈겨 벼렸으니까. 그래서 주로 몸의 특징을 같은 것, 흉터 같은 것들을 찾았지. 당시에는 팬티 같은 것도 광목이고 무명이고 떼다가 집에서 해 입었을 때니까, 부인들이 와서 자기가 만든 옷을 알아보고 찾고 그랬지. 그런데도 우리 삼촌 시체는 못 찾았어요. 한 삼일 정도를 헤맸어. 우리 당숙 되시는 분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같이. 그런데도 못 찾았어. 그 때 찾은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있었어요.

문_ 9.28 수복 이후에 피난을 가던 북한군들이 다 쏴 죽였다는 말씀이지요?

답_ 그렇지. 후퇴하면서.


남은 가족의 생활

<피랍인의 형님의 가족은 일곱 식구가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하였으며, 증언자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음>

문_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지요?

답_ 우리 가족은 포천이 수복되기 하루 전날 밤에 총살을 당했어요. 작은 형님은 6월 26일 집에 있다가 아군 농민군, 부상병들 먹일 죽 쑤어가지고 나갔다는데, 그때가 무척 가물었어. 서울 살던 작은 형이 모 내려고 시골에 왔다가 난리를 당한거지. 보통 시골 사람들은 시커멓고 농사짓는 티가 나는데 우리 형은 서울에 있었으니까 허여멀겋고 그러니까 국방군인 줄 알고 무조건 총살이야. 이유도 없어. 피난 갔다가 27일에 다시 돌아오니까 우리 작은 형은 아휴, 벌써 총살 시켰더라고. 그리고 우리 아버지. 주요 목적이 우리 아버지 잡는 거였지. 그런데 아버지는 피하셨지. 아버지만 피하시면 되는 줄 알고 가족들은 그냥 있었지 뭐. 그런데 이놈들이 그냥 다 끌어다가 총살을… 총살 현장에 끌려가지 않은 나 하나 산 것이여.

문_ 가족 몇 분이 끌려 가셨죠?

답_ 어머니, 형수, 조카, 나, 동생 셋, 일곱 식구가 끌려갔고, 우리 작은 형은 먼저 총살당했으니까 일곱 식구가 총살당했죠….

문_ 선생님도 같이 끌려 가셨다고요?

답_ 그럼 같이 끌려갔지.

문_ 뭐라고 하면서 끌고 갔습니까?

답_ 우리 식구들이 저녁 먹고 있는데 나오라고 해. 그래서‘어디로 데려 가느냐.’고 물으니까 가 보면 안다고 해요. 여섯 놈이 왔어. 동네 빨갱이 세 놈하고 빨치산 세 놈하고. 마침 나는 더워서 검은 팬티만 입고 밤을 까고 있었다고. 그 때가 초가을이니까 밤하고 콩하고 밥에 넣어 먹으려고 그걸 까고 있는데 쳐들어 와서 다 끌려 나간거지.

동네 빨갱이들이 우리 앞에 죽 가고 가운데 이제 열 살, 아홉 살 된 내 동생이 둘 있었고 내가 가운데 있었고. 그 때 젖먹이 동생도 있었는데 세 살이었던가. 형수가 안고 있던 조카가 돌 지났고 그러니까 자꾸 애원 하는 거지. 죽으러 가는 것 뻔히 아는데 그러지 않겠어. 다른 놈들은 다 앞에 갔고 우리 어머니도 자꾸 안 가려고 버텼지. 그때가 음력 8월 스물 사흘(양력 1950년 10월 4일)이니까 초저녁에는 깜깜하지. 그때 뭐 전등이 있나.

끌려가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남동생은 아홉 살이고 여동생은 열 살이잖아. 사람의 직감이라는 것이 이상해. 저 남동생을 업고 뛰다가 엎어지면 ‘아이쿠!’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그때는 논밭에 풀이 엄청 무성했다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도랑 밑에 가서 엎드렸지. 그런데 이놈들이 그냥 쭉 가는 거야. 저만치 가다가 내 동생 둘이서‘오빠 어디갔어?’어쩌고 저쩌고 떠드니까, 그제야 뒤에서 오는 놈들이 총을 쐈단 말이야. 그런데 깜깜한 밤에 뭐가 보여요? 총으로 들입다 갈기는 거지. 난 그 때 대밭으로 기어서 막 들어갔지.

매부가 아마 한 시간 도 넘게 나를 해매고 찾았을 거야. 한참 뒤에 내가 찔레가시 같은 덤불밭에서 나오니까 마침 큰 밤나무가 있었어요. 그 때 당시에 아름드리 밤나무를 어떻게 기어 올라갔는지 몰라. 거기 올라가서 그 와중에 깜빡 잠이 들었어. 그러다가 추워서 잠에서 깼어. 깨서는 집으로 갔는데 집안에 옷이고 뭐고 막 전부 들쑤셔 놨더라고. 날 찾으려고 다시 왔었나봐.

그래서 당숙 댁에 갔더니 잠이 오나. 그 식구들도 그냥 막 덜덜 떨고 다 모여서 전부 웅성거리고 있는데 총 소리가 몇 번 나더라고. 그래 내 생각에는 차마 총살을 시켰을까 그렇게 맘을 먹고 있는데, 새벽 다섯 시 반인가 여섯시 그때 되니까 아군들이 밀고 들어온거야. 그때만 해도 아버지 연세가 마흔 넷이야. 청년 단장을 하셨거든.

청년들이 피난 나가서 산에서 매복하고 그랬다고. 거기서 광면산이 얼마 안 돼. 거기서 아군들, 패잔병, 청년단체, 한 1개 사단 병력이 숨어 있었다고. 그 사람들이 동네 습격해가지고 빨갱이 잡아다가 죽이고도 그랬어. 이제 청년들이 다 들어오니까 아버지가 다 모아 놓고서 회의를 하시는데….

어떤 젊은 이웃 동네 사는 사람이 부모가 위중해서 약국에 갔다 오는 길에 보니까 저 벌판에 어느 가족이 쓰러져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가보니까 거기에 형수, 조카딸, 내 동생 셋, 어머니까지 우리 여섯 식구가 다 그냥 사살 당한거지…. 그래서 내가 빨갱이라고 하면 이가 갈려. 내가 이렇게 모진 세월을 보냈어. 내가 그 때 수기를 쓴 것도 있다고.

문_ 그 이후에 어떻게 사셨어요?

답_ 1·4후퇴 때 피난 나갔다가 아버지하고 나하고 미군부대 노무자로 붙었댔어. 우리 아버지는 그때만 해도 중학교를 나왔으니까 영어나 일본말을 잘하셨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탄약 운송 중대에서 탄약 메고서 인왕산에 올라가셨다가 지뢰를 밟았어요.

문_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되셨어요?

답_ 아버님하고 같이 나갔던 사람이 연락장교, 통역장교하고 작전장교.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이제 작업 지시하려고 따라 간 거지. 가다가 연락장교가 지뢰를 밟아서 그냥 터져버려요. 그 사람은 거기에서 즉사하고 우리 아버지는 부상만 당해서 현장에서 헬기로 후송되고. 난 밥은 먹고 살아야겠고 그래서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가 됐지. 그랬다가 휴전 되면서 나왔지. 전쟁 끝나기 전에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서 헬기로 대구 무슨 육군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손에 장애가 생겼어. 그 이후에는 서울 시청에 근무하셨지.

문_ 이해옥 씨 가족들은 어떻게 되셨어요?

답_ 순주, 복순이는 우리 큰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데리고 있다가 시집갔어. 거기는 우리 집이랑 따로 사니까 우리 식구만 당한거야.

문_ 이해옥씨 부인 되시는 작은어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시죠?

답 ; 네. 아흔 셋인가 넷인가 그래요. 그 분은 재가 해 가셨거든. 재가하셔서 거기서 아들, 딸 남매를 둬서 아들이 지금 의정부 고등학교 교감 선생으로 있어요.

문_ 휴전 된 다음에는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_ 휴전 된 다음에는 하우스보이 그만두고 나와서 학교에 다니다가 군대 갔지 뭐. 그때 학교나 제대로 다녔겠어? 그냥 징검다리지.


호적 정리

<사망으로 정리>

문_ 이해옥씨 호적 정리는 하셨어요?

답_ 했지. 이후에 실종신고를 냈는데 법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호적정리를 하라고. 그래서 했지.


연좌제 피해

<연좌제 피해는 특별히 없었지만, 이후 정보과 형사들로부터 일 년에 한 두 차례 조사를 받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그런 것은 없었지. 다만 납북인사 가족이라고 해서 좌익계에 협조를 하나 싶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불러다가 질의응답 식으로 대담하고 그랬죠. 그 전에는 정보과라는 게 있었어요. 사찰계지. 거기 형사가 불러서 가서 조사 받고. 그 후 어느 때인가 연좌제가 폐지되면서 없어졌지.


정부에 바라는 말

<없음>

문_ 현 정부나 사회에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답_ 하고 싶은 말이 뭐 있겠어? 소수민이 말한다고 들을 것도 아니고. 납북자로 인정도 받았으니까 무슨 보상금 같은 건 없나 바랬지. 나도 낼모레면 팔십인데 뭘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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