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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평수현(증언자-평낙현)
이름: 관리자
2016-12-13 15:10:17  |  조회: 1343


피랍자
생년월일: 1929년 5월 29일
출생지: 서울
당시 주소: 서울시 용산구 신계동 7번지 6호
피랍일: 1950년 9월 20일
피랍장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직업: 대한소년단 용산소년대 부대장
직계/부양가족: 없음(3형제 중 둘째)
외모/성격: 미남형, 차분한 성격


증언자
성명: 평낙현(1936년생)
관계: 동생(3형제 중 막내)
증언성격: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용산경찰서 근처 2층 건물 지하실에서 5~6명이 모여서 라디오로 대한민국 단파방송을 듣고 있던 중 밀고에 의해서 용산 보안서원에게 붙잡혀 납치당함.
- 같은 건물 2층에 숨어 있다가 탈출한 띠 동갑 큰형 평상현(3형제 중 장남)으로부터 납치 소식을 알게 됨.

“양력으로는 정확히 1950년 9월 20일 새벽이었어요. 밀고자에 의해서 일이 벌어졌다는데  누군지 모르고요. 그 현장에 장형이 같은 건물에 있었어요. 같이 있다가 이 양반은 2층에 가서 뭘 하시다가 보안서원들이 지하실 문을 때려 부수고 들이닥치는 걸 듣고서 숨었대요. 그래서 장형만 2층 건물 물내려가는 통 있지 않습니까? 그 통을 타고 도망갔다고 해요. 나머지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7~8명이 다 잡혀갔어요.”


직업 및 활동

<특별한 직업은 없었으며 보이스카웃 활동을 하였음>

문_ 전쟁 당시 집안 상황과 피랍자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답_ 아버지, 어머니, 큰형님, 큰형수, 둘째형, 저, 조카들 이렇게 해서 7~8식구가 살았어요. 형님의 고향은 경기도 광명의 하면 밤1마을이에요. 형님들은 거기서 태어났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죠. 그곳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신계동 7-6호에 살았습니다.
형님께서 납치당하셨을 때 나이가 21살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직업은 보이스카우트 부대장이었어요. 지금은 보이스카우트 운동이 전국적으로 커졌지만 그 때는 지역 단위였어요. 그런 것이 용산구에도 한 두어 곳 있었어요. 그래서 한 곳은 장형이 대장이고 둘째 형이 부대장이고 저는 대원이고 그랬어요. 그리고 집안의 생계는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면서 꾸려갔죠. 아버지랑 어머니, 형이 같이 운영하셨어요.

문_ 소년단의 성격을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답_ 소년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쉽게 말하면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보이스카우트 운동이었고, 단체의 성격은 애국 우파 단체였습니다.
물론 청년단하고는 다르지요. 청년단은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했고 그때는 보이스카우트 운동은 정부에서 지원할 여력이 없었어. 그래서 각계 사회의 돈 많은 분들이 협조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납북 이유

<집 근처 지인의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잡혀감. 같이 있던 큰형은 다행히 2층에 있다가 납치 당시 상황을 목격하고 무사히 탈출해 나와서 사정을 알림>

문_ 납북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답_ 양력으로는 정확히 1950년 9월 20일 새벽이었어요. 밀고자에 의해서 일이 벌어졌다는데  누군지 모르고요.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면 그 현장에 장형이 같은 건물에 있었어요. 집이 위험해서 형님 두 분이 다른 곳에 숨어 있었어요. 같이 있다가 장형은 2층에 가서 뭘 하고 계셨대요. 그런데 느닷없이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서 숨었고 보안서원들이 들이닥친 걸 본거죠. 그래서 장형만 2층에서 물내려가는 통 있지 않습니까? 그 통을 타고 도망쳐 나왔다고 해요.

문_장소가 어디라고 했죠?
답_ 거기에 있던 7~8명 중 한 사람의 집이었던 것 같아요. 장형님이 부모님한테 설명한 바로는, 그때는 라디오가 귀했으니까 거기에 모여서 국군이 어디까지 진격했다느니 알려주는 단파방송을 들었대요. 그런데 그 주변에 좌익이 많이 있었어. 그 사람들 중 한명이 밀고를 했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문_ 어디로 끌려가셨지요?
답_ 용산 보안서로 끌려가고 나서 행방이 묘연했어요. 이놈들이 서울 수복 이후 후퇴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살했어요. 그래서 주로 효창공원 있지 않습니까? 효창공원에 가서 많이 죽였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찾으러 다닌 거지. 그런데 거기서는 못 찾으셨어. 형은 젊은 사람이고 하니까 죽이지는 않고 짐꾼으로 데려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천상륙 때 인민군이 도망가는데, 그 중에 부상병들도 많이 있었던 걸 내가 직접 봤어요. 부상병들이 많고 하니까 사람이 많이 필요해서 젊은 사람들을 끌고 가지 않았나 하고 추측하는 거죠.

문_ 유일하게 큰형님이 목격하신 거죠?
답_ 그렇죠. 그 양반 하나지. 그래서 이런 내용을 그 양반이 알려준 거죠. 아버지가‘동생 어디에 있고 너만 혼자서 왔냐?’면서 난리가 났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니까 아버지는 큰 놈이라도 죽지 않고 돌아왔으니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거든. 어머니는 마음 고생 때문에 그 후로 한 1년 6개월 사시고 56살에 돌아가셨어요. 울화병 때문이죠.

문_ 둘째 형님을 잡아간 사람들은 누구였죠?
답_ 용산 보안서에는 인민군도 있었고 또 보안대원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와서 공산주의 추종세력한테 빨간 완장을 채워 줘. 그러면 그 완장 찬 사람들이 이를테면 보좌관이야. 그 완장 찬 놈들이 사람들 잡아가고 그랬어. 그놈들이 더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형님의 마지막 이야기도 하나도 못 들으셨죠?
답_ 못 들었죠. 나중에 찾아보려는 노력도 많이 했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신고 한 것은 1951년쯤이었어요. 그렇지만 노력을 해도 길이 있습니까. 또 부모님 돌아가시니까 각자 마음으로는 걸려도 먹고 살기 바쁘니까 신경을 못 썼지요.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는 화병으로 1년 정도 후에 사망, 아버지 역시 임종 시까지 상처를 안고 살아감>

문_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답_ 어머니는 말씀 드린 것처럼 화병으로 1년 만에 돌아가셨고, 아버님은 67년경에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은 둘째 형에 대해 일절 내색을 안 하셨어요. 그렇지만 마음으로야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런데 내색을 통 안하셨어요. 한 번은 장형님이 그것에 대해 넌지시 얘기하셨나봐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느냐면‘네가 나쁜 놈이다, 동생이 그런일 당했으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돌로라도 한 대 치고 빼내 와야지.’하고 야단을 치셨어요. 그리고 그 다음 부터는 서로 간에 그 이야기는 안하는 거야. 마음만 아프니까.

문_ 형님에 대한 추억 같은 것이 있으세요?
답_ 다른 것은 생각 안 나고, 옛날에 동네에서 한 번은 애들끼리 싸움이 났어요. 그런데 상대방 아이가 자기 형을 데리고 왔는데 다 큰 어른이야. 그래서 나도 우리 형 불러왔지. 그런데 형들이야 뭐 애들 싸움에 끼어들겠습니까? 그런 기억이 나고 또 그 다음에 뭐가 있냐면 가끔 가다 이름을 부르고 그랬어요 형 이름을.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 적에 아주 혼나게 터졌지. 그 다음 부터는 찍소리 못했지. 그런 것 두 개가 생각나네요.


호적 정리

<납북자로 정리>

문_ 호적정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답_ 호적정리는 납북자로 했어요. 호적에 납북으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광명시에 문중 납골당이 있어요. 거기에도 비석에다가 납북자라고 새겨줬어요. 미혼이니까 혼자 비석도 세워드리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형님 때문에 연좌제 피해 같은 거는 없으셨나요?
답_ 그런 것은 없었죠.


정부에 바라는 말

<전쟁 초기 당시 제때 피난을 못 가게 한 정부의 사과와 보상>

문_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답_ 사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잘못한 거야. 이승만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으면 충분히 피난 갈 시간이 있었다는 거야. 저희는 안 도망간다고 하고 먼저 도망가서 방송을 하고. 그 때 정부가 다 도망갔어. 그리고서는 방송하고 안심시키고 이러니까 99%는 정부가 책임이 있는 거예요. 저 살겠다고 시민을 두고 도망가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뭐 거창 양민학살이다 뭐다 보상하라 그러지 않습니까? 이것도 정당성 있게 심사를 해서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혜택을 받으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 심적 고통은 말로다 못하고 보상도 못해요. 어머니가 뒤돌아서 눈물 흘리시던 것 지금도 기억이 나. 달뜨는 날 정한수 떠놓고 아들 돌아오게 해 달라고 비시고. 내가 좀 눈물 나려고 그래. 아무튼 우리 협의회에서 정말 좋은 일을 하시는 거고, 늦게나마 이런 활동 하시는 것을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형님께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답_ 명이 길어서 살아계신다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어디에 계시든 잘 사세요.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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